본문 바로가기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사 바로알기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말하는 일본 사람들

by 바로요거 2008. 8. 4.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말하는 일본 사람들

日 AWC, 독도 파장 때 마다 "일본 정부의 해설서 독도 명기 규탄" 성명

 
박상희 기자 paknews80@gmail.com
 
일본 현지에서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외치는 일본인들이 있다. 해마다 독도 파장이 있을 때 마다 자국 정부를 규탄하며 '다케시마'가 아닌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주장하는 '아시아공동행동일본연락회의'(AWC·Asian Wide Campaign)가 바로 그들이다.

지난달 14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오는 2012년부터 실시되는 중학교 사회교과서의 새로운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명기한 것과 관련, AWC는 같은 달 20일 성명을 내고 "일본은 약 100년 전까지는 역사적으로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인식하지 않았다"면서 "에도막부도 메이지정부도,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러일전쟁 와중에 메이지정보가 독도의 군사적 거점으로서 유용성에 주목해, 조선식민지지배의 실질적인 첫해인 1905년에 제 멋대로 자국 영토라고 정하고 빼앗아간 것"이라고 밝혔다.

 

AWC는 지난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했을 때도 현 의회를 비난하며 '독도가 한국땅'임을 밝혀왔다. AWC의 이 같은 주장은 오히려 한국에서 말하는 주장보다 더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다.
ⓒ 민중의소리

이들은 "(정부가) 약탈한 것이다. 훔친 것이다. 도둑이다. 제국주의적 범죄행위 그 자체다"라고 서슴지 않으며 자국 정부를 비난하는가 하면, "자신들의 토지를 빼앗긴 한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민중이 독도문제에 관해 일본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당연하며 제국주의적 확장주의를 바탕으로 빼앗아간 것은 사죄와 함께 반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AWC는 지난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했을 때도 현 의회를 비난하며 '독도가 한국땅'임을 밝혀왔다. AWC의 이 같은 주장은 오히려 한국의 주장보다 더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일본 의회정당은 자민당으로부터 공산당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좌파진영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우익의 주장인 민족주의를 혐오하기 때문인지, 영토문제인 독도문제에 대해서 침묵 또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또한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대해서도 AWC는 "일본 우익반동세력이 주축으로 진행하는 군국주의부활 움직임"으로 규정하고 "영토문제를 계기로 삼아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2000만 명의 아시아인들의 생명과 생활, 권리를 짓밟아 강제로 빼앗았던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비참한 역사를 다시 되풀이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달 20일 AWC가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신학습 지도요령 해설서에 기재한 독도에 관한 기재를 규탄하며,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


  • 7월 14일에 문부과학성은 2012년도로부터 완전히 실시되는 중학교 신학습 지도요령 해설서를 공표했다. 문부성은 그 안에 독도(일본명 다케시마)의 영유문제를 다음과 같이 다뤘다. [또한, 우리나라와 한국 간의 독도(상동)을 둘러싸고 주장이 다른 것 등도 다뤄, 북방영토와 같이 우리나라 영토,영역에 대해서 이해를 심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로,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라고 하는 독도에 관한 일본정부의 공식견해를 아이들에게 심어주려고 하는 책동이다. 2005년 3월에 시마네현 의회가 저지른 [다케시마의 날] 조례에 잇는 민족배타주의 선동 그 자체다. 또한 [-등]이라고 한 부분은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의 영유를 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일본은 약 100년전까지는 역사적으로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에도막부도 메이지정부도,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고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러일전쟁 와중에 메이지정보가 독도의 군사적 거점으로서 유용성에 주목해, 조선식민지지배의 실질적인 첫해인 1905년에 제 멋대로 자국 영토라고 정하고 빼앗아간 것이다. 약탈한 것이다. 훔친 것이다. 도둑이다. 제국주의적 범죄행위 그 자체다. 자신들의 토지를 빼앗긴 한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민중이 독도문제에 관해 일본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당연하다. 제국주의적 확장주의를 바탕으로 빼앗아간 것은 사죄와 함께 반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우리들은 3년 전 2005년 3월 16일, 시마네현 의회에서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다케시마의 날] 조제가 제정되었을 때도 항의하여 [독도 = 타케시마 문제에 관한 성명]을 냈다. 독도에 관한 역사적 경과에 관한 부분을 아래 인용한다.

    (1) 역사적으로 조선 땅인 독도 에도 막부는 독도를 '마츠시마'로 부르고 '다케시마'로 불린 울릉도와 함께 두 섬을 일본인의 도항과 거주가 금지된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막부의 관선지도에 독도를 기재되지 않았다. 메이지 정부도 1905년 편입까지는 독도를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1869 년 조사를 위해 조선에 파견된 외무성 관료는 그 다음 해 제출한 보고서 '조선국교제시말탐서(朝鮮國交際始末探書)'에 타케시마(울릉도)와 마츠시마(독도)는 조선 부속이라고 썼다. 1877년 당시의 최고 국가 기관인 태정관(太政官)이 '일본해 내 다케시마와 기타 한 섬을 판도 외로 정한다(주- 다케시마 는 울릉도, 그 외 한 섬은 독도를 뜻함)'는 지령을 내렸다. 두 섬은 판도 외(版外), 즉 일본 영토가 아니다는 공식 선언이다. 1894년 메이지 정부가 국가사업으로 제작한 지도가 '대일본관할분지도(大日本管轄分地圖)'로 발간되었는데 두 섬은 기재되지 않았다. 일본 해군은 '조선수로지(水路誌)'1894년판과 1899년판에 두 섬을 기재했다. 이것은 독도가 조선 영토로 인식하고 있던 것을 나타낸다.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41호에서 울릉도 주변에 있는 '석도(독도)'가 자국 통치하에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메이지 정부는 이견은 내지 않았다. (2)조선 식민지배 시작과 연결된 독도 약탈  그런데 1905년 메이지 정부는 러일 전쟁이 한창인 때 군사 시설 건설을 목적으로 함과 동시에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 정책을 격렬하게 추진하는 상황 속에서 독도를 강제로 약탈한 것이다. '미국은 필리 핀을, 영국은 인도를, 일본은 조선을 취한다'는 미영일간의 제국주의적 합의를 배경으로 하여 1904년 2월 일본군은 러일 전쟁에 돌입함과 동시에 인천에 상륙한 후 한성을 제압했다. 같은 달 한일의정서 조인을 강요, 5월 대한(對韓)시설강령 각의 결정, 9월 제1차 한일협약을 맺었다. 러시아 해군이 일본 수송선을 가라 앉히는 상황 속에 11월 러시아에서 '리앙쿠르 도'로 불리던 독도에 러시아 해군 감시용 망루 건설이 가능하다고 예비 조사로 확인했다. 다음해인 1905년 1월 메이지 정부가 '리앙쿠르 도'를 '무주지(無主地)'로 단정하여 영토 편입을 각의결정해서 '다케시마'로 명명했다. 그 때 관계국인 조선과의 협의도 관보를 통한 공시도 없었다. 그 해 7월 독도에 망루를 착공하고 8월부터 감시 활동을 시작했다. 즉, 러일전쟁을 이기기 위한 군사 시설 건설을 목적으로 한 독도의 영토 편입을 비밀리에 강행한 것이었다. 이것은 전시임을 이유로 하여 타국령임을 인식하면서도 영토 편입을 한, 그야말로 제국주의적인 영토 획득이었다. (이상의 역사 경과는 반월성 '일본의 독도 포기와 영토 편입' ("조일관계사논집, 신간사, 2003)에 의거했음.)
    그리고 그것은 1905년 10월 '을사보호조약' 강제로 인한 조선 식민지배 개시와 같이 벌어진 것이었다.(인용 끝)

    그러나, 일본 의회정당은 자민당으로부터 공산당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좌파진영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우익의 주장인 민족주의를 혐오하기 때문인지, 영토문제인 독도문제에 대해서 침묵 또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국민 그 대부분이 독도가 어디에 있는 지, 독도를 일본이 지금까지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지금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들은 한국국민과 강하게 연대하여, 그것을 기초로 하여, 일본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독도에 관한 민족배타주의선동에 항의하여, 그것을 깨부술 수 있는 싸움을 조직한다. 동시에 역사를 배우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립하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일본국민 전체가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한국을 시작으로 하여 아시아 민중과 국경을 넘어 연대하고, 전쟁과 세계화 흐름을 막는 운동에 전진할 수 있도록 더욱더 힘을 쏟도록 한다.

    우리들은 다음 사항을 일본정부, 문부과학성에 요구한다.

    1.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 한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토임을 일본정부는 인정하라
    2.일본정부,문부과학성은, 중학교 신 학습 지도요령 해설서에 기재한 독도에 관한 기재를 당장 철회하라
    3.일본정부,문부과학성은 독도 및 북방제도,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를 일본영토라고 하는 기술을 당장 삭제하라
    4.일제의 아시아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의해 살해당한, 또는 피해를 입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시작으로 하는 아시아민중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일본정부는 당장 행하라.

    일본의 노동자, 민중 여러분 일제 민족배타주의선동을 저지하자. 역사왜곡교과서에 반대하자.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허용 말라. 미군과 자위대의 일체화를 저지하자. 미군재편을 반대하자. 한일민중들은 연대하자 .

    2008년 7월 20일
    미.일 제국주의 아시아 침략과 지배에 반대하는 아시아 공동행동(AWC) 일본 연락 회의

    文部科学省が中学校新学習指導要領解説書に記載した独島に関する記載を弾劾し、その撤回を求める声明

    7月14日に文部科学省が、2012年度から完全に実施される中学校の新学習指導要領の解説書を公表した。同省はその中で独島(トクト。日本名「竹島」)の領有問題に次のように触れた。「また、我が国と韓国の間に竹島(ママ)をめぐって主張に相違があることなどにも触れ、北方領土(ママ)と同様に我が国の領土・領域について理解を深めさせることも必要である。」これは、「我が国固有の領土で、韓国が不法占拠している」という独島に関する日本政府の公式見解を子どもたちに植え付けろという策動だ。2005年3月に島根県議会が行った「竹島の日」条例制定に続く民族排外主義の煽動そのものだ。また、「など」の箇所は、釣魚台(尖閣列島)の領有のことだとも主張している。絶対に許せない。
     日本は約100年前までは歴史的に独島を自らの領土と認識してこなかった。江戸幕府も明治政府も、独島は朝鮮の領土と認めていたのだ。ところが、日露戦争のさなかに明治政府が独島の軍事的拠点としての有用性に注目し、朝鮮植民地支配の実質的初年である1905年に勝手に自国の領土と決め付けて奪い去ったのだ。略奪したのだ。盗んだのだ。泥棒だ。帝国主義的犯罪行為そのものだ。自らの土地を奪われた韓国・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の民衆が独島問題に関して日本に対し怒りの声を上げるのは当然だ。帝国主義的拡張主義の元に奪い去ったものは謝罪とともに返還するのが当然なのだ。 私達は3年前の2005年3月16日、島根県議会において圧倒的多数の賛成で「竹島の日」条例が制定されたことに抗議し、「独島(トクト)=「竹島」問題に関する声明」をだした。独島に関する歴史的経過に関する部分を以下引用する。

    (1)歴史的に朝鮮領であった独島(竹島)
     江戸幕府は、独島のことを「松島」と呼び、「竹島」と呼ばれていた欝陵島とともに、日本人の渡航・居住が禁止された朝鮮領と認識していた。幕府の官撰地図に「松島」(独島)は記載されなかった。
     明治政府も1905年の編入までは独島を朝鮮領と認識していた。1869年に調査のため朝鮮に派遣された外務省高官は、翌年提出した報告書『朝鮮国交際始末内探書』で、「竹島」(欝陵島)と「松島」(独島)は朝鮮付属になったとした。1877年、当時の最高国家機関である太政官が「日本海内竹島外一島ヲ版圖外ト定ム」(注:「竹島」は欝陵島を、「外一島」は独島を指す)とする指令を発した。両島は版図外、すなわち日本領ではないとする公式宣言である。1894年、明治政府が国家事業として製作した地図が『大日本管轄分地図』として発刊されたが、そこに両島は記載されなかった。日本海軍は、『朝鮮水路誌』94年版・99年版に両島を記載した。これは独島が朝鮮領であると認識していたことを示している。1900年、大韓帝国は勅令41号で鬱陵島周辺の「石島」(独島)が同国の統治下にあるとした。これに対し明治政府は異見を出さなかった。

    (2)朝鮮植民地支配の開始と結びついた独島略奪

     ところが、1905年、明治政府は日露戦争のさなかに軍事施設建設を目的として、そして同時に韓国に対する植民地化政策の激化の只中で独島を強奪したのである。「米国はフィリピン、英国はインド、日本は朝鮮」を手に入れるとした日米英間の帝国主義的合意を背景に、1904年2月、日本軍は日露戦争突入とともに仁川に上陸し首都漢城を制圧した。同月には日韓議定書調印を強要、5月には対韓施設綱領の閣議決定、9月には第一次日韓協約を結んだ。ロシア海軍が日本の輸送船を沈める状況の下、11月にはロシアにおいて「リアンクール島」と呼ばれていた独島にロシア海軍監視用望楼の建設が可能であると予備調査で確認。翌1905年1月、明治政府が「リアンクール島」を「無主地」と決め付けてその領土編入を閣議決定し、「竹島」と命名した。その際、関係国であるはずの朝鮮との協議も、官報による公示もなかった。政府の訓令を受けた島根県が県告示40号で同島を「竹島」と命名し、隠岐島司の所管にすると公示した。同年7月、同島に望楼が着工され8月から活動が始まった。つまり、日露戦争に勝つための軍事施設の建設を目的として独島の領土編入が秘密裏に強行されたのである。これは、戦時を理由に他国領と認識していながら領土編入した、まさしく帝国主義的な領土獲得であった(以上の歴史経過は半月城「日本の竹島=独島放棄と領土編入」(『日朝関係史論集』、新幹社、2003)に拠る)。そして、それは1905年10月の「乙巳保護条約」の強制による朝鮮植民地支配の開始と一体のものであった。(引用終わり)
     しかし、日本の議会政党は自民党から共産党まで一つ残らず「竹島は日本の領土」と主張している。左派陣営においても、多くは日本においては右翼の主張である民族主義を嫌悪するためか、領土問題である独島問題については沈黙またはあいまいな態度をとっている。  そして、日本の民衆は、そのほとんどが、独島がどこにあるのか、独島を日本がこれまでどう認識していたのか、いまだに知らない。  したがって、私たちは、韓国民衆と固く連帯し、それを基礎にして、日本政府が行っている独島に関する民族排外主義煽動に抗し、これを打ち破る闘いを組織する。同時に、歴史を学び、正しい歴史認識を確立するよう努力する。そして、民衆全体が正しい歴史認識をつかみ、韓国をはじめとするアジア民衆と国境を越えて連帯し、戦争とグローバリゼーション策動を打ち破る反帝国主義運動が前進できるようにさらに力を注いでいく。

     私たちは以下の事項を日本政府・文部科学省に要求する。

     一、独島は日本の領土ではなく、大韓民国/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の領土であることを日本政府は認めろ。 

     一、日本政府・文部科学省は、中学校新学習指導要領解説書に記載した独島に関する記載をただちに撤回しろ。

    一、日本政府・文部科学省は、独島および北方諸島、釣魚台(尖閣列島)を日本の領土とする記述をただちに削除しろ。

     一、日帝のアジア侵略戦争と植民地支配によって殺された、または被害を受けた日本軍元「慰安婦」ハルモニをはじめとするアジア民衆に対する謝罪と補償を日本政府はただちに行え。

     日本の労働者民衆のみなさん。 日帝の民族排外主義煽動を粉砕しよう。 歴史歪曲教科書に反対しよう。日本の軍事大国化を許すな。米軍と自衛隊の一体化を粉砕しよう。米軍再編を粉砕しよう。日韓労働者民衆は連帯しよう。

    2008年7月20日 アジア共同行動日本連絡会議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