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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문제의 해법

by 바로요거 2008. 7. 15.

<연합초대석> 독도문제 일본 최고 전문가 나이토 교수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6.11.05 21:04

"石島=獨島 지칭 1905년 이전 기록 반드시 찾아내야"
"독도 관련 사료 전면 공개후 정정당당한 논쟁 필요"
"한국정부 웹사이트 영유권 주장 불충분..다시 써야"

(서울=연합뉴스) 김용수 편집위원 = "석도(石島)가 독도(獨島)임을 지칭하는 1905년 이전의 기록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만약 당시의 신문, 잡지, 관련 문서 등에서 이러한 기록이 나온다면 1905년 강제로 이루어진 일본의 독도 영토편입 근거는 무너지게 됩니다."

일본 내 독도문제 최고 전문가인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77) 시마네(島根)현립대학 명예교수는 일제가 1905년 단행한 독도 영토 편입의 허구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한국이 1905년 이전에 독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었다는 근거를 찾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울대 사범대 주최로 지난 달 27일 열린 `독도 교과서 문제 국제 심포지엄' 참가차 서울에 온 나이토 교수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는 물론 심포지엄 석상에서도 "당시 한국의 신문 등을 꼼꼼하게 살펴 독도(獨島) 명칭과 관련된 기록은 꼭 찾아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그렇다면 독도 표기에 관한 사료는 왜 중요한가.
대한제국은 일본이 독도를 강제 편입하기 전인 1900년 칙령 제 41호를 공포,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울도군(鬱島郡)을 설치하면서 관할 구역에 울릉도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여기서 말하는 죽도란 울릉도 바로 옆의 죽서도(竹嶼島)를, 석도는 독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칙령에 대해 나이토 교수는 한국 측의 지적과 마찬가지로 "독도에 대한 대한제국의 영유권을 명확히 나타낸 것"이라고 평가한다.

문제는 칙령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석도'라는 이름이다. 한국 학자들은 석도가 지금의 독도를 가리킨다는 근거로 "당시 울릉도 주민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던 전라도 출신들이 돌(石)을 사투리로 독(獨)으로 발음했고 중앙정부는 이것을 한자로 석도(石島)로 표기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본 측에서는 이 같은 설명을 하나의 `주장'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칙령에 등장한 `석도'가 바로 `독도'임을 보여주는 실증적 사료가 중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일본 외무성의 웹사이트는 `다케시마 문제에 관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은 이 섬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명확한 근거를 제출한 적이 없다"고 버젓이 밝히고 있다.

나이토 교수는 이번 서울대 심포지엄에서 일제의 독도 편입은 당시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일본 정부 관리들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한 어업인을 사주해 꾸며낸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논문에서 "1905년 일본의 독도 편입에는 당시 야마자 엔지로(山座円次郞) 외무성 정무국장, 마키 보쿠신(牧朴眞) 농상무성 수산국장, 기모쓰케 가네유키(肝付兼行) 해군성 수로부장 등 세 명이 중심 역할을 했으며 이들은 모두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던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나이토 교수는 독도문제의 논점을 크게 세 가지로 본다.
첫 째는 일본 외무성이 주장하는 `고유영토설'. 이것은 일본정부의 공식 견해로 일본의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일본은 바쿠후(幕府), 메이지(明治) 정부 등 두 번에 걸쳐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명백하게 말한 적은 있으나 대외적으로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한 적은 한번도 없다는 것이 나이토 교수의 지적이다.

1696년 도쿠가와(德川) 바쿠후가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로 확인해 일본 어부들의 출어를 금지한 것과 1877년 당시 일본의 최고 국가기관이었던 다조칸(太政官)이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는 영토임을 확인한 지령을 내린 것이 그것이다. 이런 사료들에 비추어 볼 때 일본정부가 주장하는 고유영토설은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게 나이토 교수의 지적이다.

두 번째 논점은 1905년 일본의 독도 영토 편입을 둘러싼 문제. 나이토 교수는 일본정부가 이른바 무주지(無主地) 선점의 법리를 내세운 데 대해 원래 한국영토였던 것을 일본정부가 일방적으로 무주지라고 단정해 강제로 편입절차를 밟았다면 무주지 선점 주장은 당연히 성립될 수 없다는 견해다. 그는 일본의 독도 편입은 사료로 볼 때 독도를 무리하게 강탈한 것으로 규정한다.

세 번째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 문제가 어떻게 다뤄졌느냐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 나이토 교수는 "강화조약에 독도에 관한 기술이 없다고 해서 과연 독도가 일본 영토로 남았다고 해석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다만 강화조약이 체결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관련됐던 각 나라들이 자료를 전면 공개하지 않고 있는 현 단계에서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은 좁고 험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음은 나이토 교수와의 일문일답.
--독도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하나
▲한일 양국은 독도 관련 사료를 모두 공개하고 역사의 사실을 정면에서 다루는 자세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독도-다케시마 논쟁처럼 불리한 사료를 감추거나 상대 주장의 발목을 잡는 식의 태도는 버려야 한다. 두나라 공히 독도-다케시마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고유영토'라는 문구만이 횡행하고 있을 뿐 과연 실제로 그런가 하는 물음이나 검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1950년대 독도 문제를 놓고 논쟁했다. 하지만 당시는 공정한 논쟁이 아니었다. 한국측은 자료가 부족했다고 일본은 불리한 자료를 숨긴 채 서로 `내가 옳다'고 주장하다가 끝났다.

--독도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정부 웹사이트에 나와 있는 (독도문제에 대한) 주장은 불충분하다. 내용도 너무 간단하다. 일본정부의 주장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으로 다시 쓸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인터넷 웹사이트가 중요한 홍보 수단이 되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독도 영유권 문제에서 어느 쪽이 먼저 인지했느냐는 식의 접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시기적으로 너무 오래된 옛날 이야기 역시 큰 의미가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 외무성의 웹사이트에 나와 있는 주장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비판해 왔다.(일본인인) 나도 그렇게 하고 있는데 한국정부도 `일본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고 따져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정부의 대응은
▲독도 문제를 대하는 일본정부의 기본 인식에는 과거 `이승만 라인'에 대한 증오가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와 함께 한국에 대한 차별의식도 깔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비판에 대해 지금까지 일본정부가 반박하거나 비판을 가해온 일은 한번도 없었다. 양국이 문서를 주고 받으면서 정정당당하게 논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본이 1905년 독도 영토편입을 단행한 배경은 뭐라고 생각하나
▲일본은 당시의 어업가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가 독도에서의 강치 잡이 사업을 독점하려고 `대하원'(貸下願.독도 이용청원)을 낸 것을 빌미로 독도를 무주지(無主地)로 내세워 억지로 영토 편입을 했다. 동해에서 러시아 함대와의 해전을 이기기 위해 독도에 해군 감시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카이로 선언에 나와 있는 `폭력 및 탐욕에 의해 약취한' 영토에 해당하는 것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우선 나는 일본정부의 주장은 외무성 홈페이지에 집약돼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내 연구는 외무성 홈페이지에 기록돼 있는 것을 사적으로 검증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나는 일본정부의 주장은 사료에 비추어 볼 때 잘못돼 있다는 점을 밝혀왔다.

--바람직한 독도문제 연구 방향은.
▲상대국의 연구 성과가 충분히 배려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의 연구 가운데 일본어로 번역된 것은 2-3개밖에 안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작년부터 일본인이 쓴 저서들이 한국어로 잇따라 번역 출간됐다. 예를 들어 `동북아 평화를 위한 바른역사기획단'이 펴낸 `독도논문번역선' ⅠㆍⅡ 등은 일본 측의 연구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사료에 입각한 객관적인 연구 성과가 국민에게 폭넓게 알려지면 (독도문제 해결의) 길이 자연스럽게 열리지 않겠는가.

(학계에 따르면 이와 함께 김병렬 국방대 교수와 나이토 교수가 함께 쓴 `사적 검증 독도의 역사'가 각각 한국어와 일본어로 번역돼 연내에 출판될 예정이다. 한일 양국 학자가 처음으로 `실제 있는 사료'를 토대로 독도문제에 대해 공동 집필한 이 책은 한국에서는 `한일 전문가가 본 독도'라는 제목으로 11월 중순 출간된다)

--일본의 연구 현황은.
▲나를 포함해 (독도 문제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자신 역시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정부의 주장은 역사의 사실이 아니다고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 나이토 교수는 = 울릉도와 독도가 가까운 시마네 현 등의 지방사 연구 등을 토대로 일본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해 왔다. 교토(京都)대학 경제학부 출신으로 전공은 일본경제사. 1993년 시마네대학 법문학부 교수를 정년 퇴직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마네현의 역사'(1969년), `竹島를 둘러싼 日朝관계사'(2000년) 등이 있으며, 세카이(世界) 2005년 6월호에 일본 정부의 영유권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 '竹島는 일본 고유영토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ys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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