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6일 (토) 03:02 조선일보
"원자재값 랠리 계속"… 폭락증시 빈자리, 상품 투자가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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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가스, 구리, 옥수수, 돼지고기, 설탕…. 우리의 일상 생활에 빠질 수 없는 필수품들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요즘은 투자(investment)의 대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른바 상품(commodity) 투자다.
특히 지난해는 상품 시장이 초(超) 강세였다. 국제 농산물가격 지수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 골드만삭스 상품지수는 32.7% 급등해, 같은 기간 전세계 증시(MSCI 월드지수 기준)가 평균 9.6% 오른 것에 비하면 월등한 성적을 보였다.
올해도 상품 시장 강세는 계속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올 들어 미국 경기 침체 우려로 세계 증시가 폭락하면서 상품이 주식의 대체 투자처로 뜨고 있는데다, 중국 등 신흥개발국의 소비 급증과 재생 에너지 개발 붐 등의 영향으로 원자재 가격 랠리가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상품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Rogers) 로저스 홀딩스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상품은 강세 시장 속에 있으며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상품은 어디서, 어떻게, 사고 팔릴까. 그리고 어떤 상품이 가장 유망할까? 급부상하는 상품 시장을 들여다 봤다.
지난 15일 서울시각 오후 1시.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구리(Copper) 가격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요동을 친다. t당 7000달러였던 것이 눈 깜짝할 새 7300달러로 치고 올라왔다.
유진투자선물의 홍주형 차장은 여의도 사무실에서 전화통을 잡고 "7320달러, buy"를 외친다. 구리 500t, 3월 인도(delivery)분을 t당 7320달러에 사들인 것이다.
요즘 원자재 가격은 매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날 오전 LBMA(런던금시장협회)에서는 금(金) 선물(先物) 1월물이 온스당 920달러 선에서 거래됐고, 알루미늄은 3월 선물이 t당 2600달러에서 사고 팔렸다.
홍 차장은 기업 고객을 상대로 상품 선물 거래를 중개해 주고 있는 브로커다. 상품은 24시간 거래 시스템을 통해 시세가 형성된다. 그래서 브로커들은 주간 조와 야간 조를 바꿔가며 문자 그대로 '하루 종일' 거래를 한다. 홍차장은 전날 저녁부터 거래를 시작해 밤을 꼬박 샜다.
상품 거래 수수료는 품목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거래대금의 0.1~0.2%에 달한다. 주식 중개 수수료가 최저 0.02%대까지 내려간 것에 비하면 고수익 사업인데다 거래 규모도 크다. 요즘 증권사들이 자회사인 선물회사의 몸집을 키우려고 안달인 것도 이 때문이다.
홍 차장은 "상품 가격이 폭등세를 보이기 시작한 2004년 이후, 국내 기업들이 원자재 선물에 투자하는 규모가 엄청나게 늘었다"고 말했다. 특히 제품 생산 원자재로 구리, 알루미늄, 니켈 등이 필요한 중공업·전선·가전제품 회사 등이 헤지(hedge·위험회피)를 위해 상품선물 시장에 너도 나도 뛰어 들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내에서 해외 상품 선물을 거래한 건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설탕을 비롯한 농산물 선물은 지난해 11월까지 19만5000 계약이 성사돼 전년 동기에 비해 50%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구리를 비롯한 비철금속 선물은 34.6% 늘어난 17만 3000건이 체결됐다. 원유 등의 에너지는 5배 폭증했다. 한국선물협회 김민수 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은 아직은 상품 거래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한 초보 단계"라며 "앞으로는 헤지차원에서의 기업뿐 아니라 투기 목적의 개인까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MBA(경영학석사) 출신의 A씨도 투기 목적으로 상품 선물 거래를 하고 있다. 그는 "주식보다 스케일이 크고 변동 폭도 크기 때문에 한번 대박이 나면 엄청나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강남에 작은 사무실을 얻어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주문을 넣는다. 그의 주(主) 종목은 구리, 니켈 같은 비철금속이다.
그는 "전세계 정치 뉴스를 매일 체크하며 상품 가격의 등락을 예측한다"고 말했다. 보통 t 당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1분 안팎에 몇 억 원씩도 왔다 갔다 한다.
브로커들에 따르면,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등 빌딩에 개인 사무실에 얻어 놓고, 소리 소문 없이 상품 거래를 하는 투자자들이 국내에 수백 명에 이른다. 모두 원자재 가격 급등의 파도를 타고 한 몫을 단단히 챙기려는 투기 세력들이다.
◆상품은 주로 선물시장에서 거래
상품은 동네 구멍가게에서부터 대형 석유 메이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거래자에 의해 거래된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 말하는 상품은 주로 뉴욕이나 시카고 등 상품선물시장(commodity futures market)에서 대량으로 거래돼 가격이 결정된다. 선물(先物)이란 어떤 상품을 미래 특정한 시점에, 미리 정한 가격과 수량으로 사거나 팔 것을 약정한 계약이다. 예를 들어 WTI(서부텍사스 중질유) 현재 가격이 90달러라면, 3개월 뒤에 94달러에 받겠다는 식이다.
오래 전, 미국의 농부들은 매년 가을이면 수확한 곡물을 마차나 기차에 실어 대도시로 실어 날랐다. 어떤 해는 풍년, 어떤 해는 흉년이어서 가격도 제멋대로였다. 또 열악한 운송 수단과 중간 상인들의 턱없이 높은 수수료 또한 농민들의 부담이 됐다. 이에 1948년, 시카고의 82명의 농민과 상인들이 모여 한 밀가루 상점에서 상품거래소(CBOT·시카고상품거래소)를 설립했다. 생산자와 구매자를 훨씬 효율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최초로 규격화된 상품 시장을 만든 것이다.
그 이후 전 세계 곳곳에서 상품 거래소가 생겨나, 지금은 각 품목별로 특화돼 있다. 농산물은 미국의 시카고상업거래소(CME)와 CBOT를 통해 주로 거래되고, 석유는 뉴욕 상품거래소(NYMC), 귀금속은 영국 런던의 금속거래소(LME) 등이 유명하다.
선물 시장의 주요 참가 세력은 크게 3부류다. 상품의 실수요자가 그 하나고, 가격의 급변동을 피하려는 위험회피자, 또 가격의 방향을 예측해서 돈을 버는 투기거래자가 있다.
기업 고객의 경우, 실수요자나 위험 회피 목적이 많다. 그러나 투기 세력의 파워 또한 만만치 않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는 원인 역시 헤지펀드 등 투기 목적으로 참여하는 세력(speculator)들에서 찾을 수 있다.
JP모건 선물 세일즈 & 트레이딩팀의 안아람 이사는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흥국가의 원자재 수요가 가격 상승의 기본 원인이지만, 투기 세력의 합세가 요즘 강세장의 더 큰 이유"라고 말했다.
◆상품 선물은 제로섬 게임
상품 트레이딩 회사인 커 트레이딩 인터내셔널(Kerr Trading International)의 CEO 케빈 커(Kerr)는 최근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상품 거래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월스트리트에서도 겁을 냈었는데, 요즘은 펀드매니저, 개인 투자자 할 것 없이 소떼 몰려가듯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는 사이클 내에서는, 상품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품 투자는 제로섬(zero sum) 게임이다. 한 사람이 벌면, 반드시 다른 사람은 잃게 돼 있다. 특히 선물 시장에선 적은 돈으로도 큰 베팅(betting)을 할 수 있어(품목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거래금액의 15% 정도만 갖고도 거래를 할 수 있다)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는 반면, 잃으면 크게 잃을 수 있다.
갑자기 팽창한 상품시장 덕분에, 전문가 인력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JP모건, 리먼브러더스, BNP파리바 등 IB(투자은행)들이 작년 한 해 상품 부문에서 새로 고용한 인원은 450명으로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주식 브로커 증가율(3.4%)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장세다.
전문 인력 가뭄에 헤드헌팅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인재 찾기에 나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동에 잘려나간 부동산 담보 채권 부문의 브로커들이 헤드헌팅 회사들의 유일한 대안(代案)이 될 정도다. 인력전문회사인 프린시플 서치(Principal Search)의 헤드 헌터인 폴 크리스핀(Chrispin)은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8년 동안 이 일을 해왔지만, 요즘처럼 상품 트레이더를 많이 찾는 때가 없었다"며 "앞으로 더 바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인은 펀드 통해 투자
국내 일반 투자자들도 펀드를 통해 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입할 수 있는 상품 펀드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원자재 관련 지수(index)에 투자하는 펀드이고, 두 번째는 원자재 탐사·생산 등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예를 들어 '미래에셋맵스 로저스 농산물지수 종류형 파생상품' 펀드는 '로저스인터내셔널 농산물 인덱스(RIACI)'에 연동되는 펀드다. 지난 1월 11일에 설정돼, 현재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에서 판매되고 있다. 반면, 메릴린치의 '월드광업주' 펀드는 철과 석탄 구리 아연 니켈 등을 생산하는 기업에 투자한다. 우리CS운용의 '글로벌천연자원주식' 펀드는 선진국 증시에 상장된 천연 자원을 보유, 탐사, 개발, 판매하는 기업에 투자한다.
그런데 참고로 짐 로저스는 상품 가격이 오를 때 이익을 얻으려면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투자하기보다는 상품에 직접(혹은 상품지수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다. 기업에 투자할 경우 상품 수급 이외에 경영진의 능력이나 회계 투명성, 정부 정책 등 다른 변수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품
사실 실체가 있는 모든 것, 예를 들어 동네 수퍼마켓에서 판매되는 모든 것이 따지고 보면 상품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 말하는 상품(commodity)이란 석유, 옥수수, 금, 구리 등 거래 규모가 많고 규격화돼 뉴욕이나 시카고 등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100여가지 품목을 말한다. 크게 에너지(원유, 난방유, 천연가스 등), 비철금속(구리, 납, 알루미늄 등), 귀금속(금, 은, 팔라디움 등), 농산물(옥수수, 밀, 콩, 커피, 설탕 등), 축산물(돈육 등) 등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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