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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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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이시여, 제가 함께 합니다!

by 바로요거 2008.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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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성도(25세)/ 도기131년 10월 16일 입도/
 신촌도장 예비 국제포교사

 
 예민한 감수성과 예술적 성향이 강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
 어린 시절 미국의 한 동물원에서 코끼리 쇼를 먼발치에 앉아 관람한 일이 있었다. 조련사의 채찍과 휘슬에 따라 가까스로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묘기를 부리는 코끼리의 눈에서 뭔가 반짝 하는 걸 보았다. 큰 소리로 웃고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는 많은 관중들 속에서 그것을 본 사람은 나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코끼리의 눈물이었다. 다들 즐거웠지만 난 슬퍼서 눈물이 났다. 코끼리가 말하는 듯했다.
 
 “나..슬퍼..자유를 얻고싶어...내 맘을 아니? 날 좀 구해 줘...”
 코끼리는 애원의 눈빛으로 내 눈을 보는 것 같았다. 가슴이 아파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몰래 눈물을 감추며 생각했다.
 ‘대체 누가 저 코끼리의 한을 알까...? 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데 왜 나에게 말을 하는 걸까?’
 
 감수성이 예민하고 예술적 성향이 강했던 나는 어릴 적부터 모든 사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나의 물건 하나 하나가 너무도 소중했고, 한번 손길이 닿은 것은 버리지를 못했다. 살아있는 생명을 내다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은 언제나 복잡했고 온갖 갖가지 물건이 여기저기 널려있어서 부모님의 잔소리가 못에 박힐 정도였다. 이런 예민한 감각으로 인해 나는 많은 영감들을 받으면서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연주하며 소설이나 시 쓰는 것을 즐겼다. 영감을 받는 과정에서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하며 자연스럽게 영혼과 정신세계에 젖어들게 되었다.
 
 
 미래에의 강력한 예감
 ━ ‘반드시 무슨일이 일어나리라 …내 인생은 변하리라’

 나는 모든 것을 먼저 몸으로 느낀 후에야 설명이 가능했다. 내게 떠오르는 수많은 영상과 느낌들을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은 굉장히 고된 작업이었다. 그 대신 그런 것들을 그림이나 음악 혹은 시로 표현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아주 자신 있고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감각과 이미지들이 나를 통해 지나갔는데 유독 한가지 내가 가장 확실하게 느낀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였다.
 
 ‘무엇인가 오고있다...무슨 일이 일어난다...나는 그 무엇을 기다리고 있으며 언젠가 때가 되면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그것은 어떤 거대하고 격동적인 에너지의 폭발이며 동시에 완전한 고요와 평화이다...’
 
 나는 이게 대체 무엇일까 많이 생각해보았다. 때때로 바람이 불 때마다 천지가 요동치는 듯하며 온몸으로 강하게 스며드는 이 기운에 나는 흥분과 기대로 영혼 끝까지 다 녹아버릴 것 같았다.
 
 ‘내 영혼을 크게 깨우쳐 인생을 바꿔 줄 위대한 스승님을 만나게 될까?’
 ‘내 모든 것을 불태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
 
 나는 아직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확신하며 언젠가 때가 되면 내게 드러나리라 믿고 마음속에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안고 기대와 떨림으로 기다려왔다.
 
 ‘반드시 무언가가 나타나리라...내 인생은 변하리라...그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난 훨훨 날아오르리라...’
 
 
 청소년 시절 구도에의 강한 열망과 현실과의 타협
 나는 세상일에 도무지 관심이 없었고 언제까지나 혼자 꿈에 젖어 살고 싶었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색하는 것과 방에 홀로 처박혀 창작에 몰두하는 것이 내겐 최대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더 절실히 원한 게 있었다면 그건 구도(求道)였다. ‘도를 닦는다’는 말이 참 정겹게 느껴졌다.
 
 어릴 적 언젠가 TV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화두를 드는 스님을 보고서는 ‘참 재미있겠다...나도 저것만 매일 했음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고 도닦을 수 있는 그들의 용기와 처지가 부러웠다. 그리고는 나도 모든 걸 버리고 가방 하나 메고 지팡이 짚고 통곡하는 가족들을 뒤로 한 채 어딘가에 숨어 계실 위대한 스승님을 찾아 훌쩍 떠나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며 도를 구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세상일은 한번 신경을 쓰자면 끝도 없이 정신이 고되었고 인간으로 태어나 세상 속에 뛰어들려면 큰일을 해야한다는 높은 이상과 뭐든 완벽하게 해야만 성에 차는 완벽주의를 나는 갖고 있었다. 그것을 만족시키며 세상 모든 사람들과 경쟁하며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너무도 끔찍했다. 그래서 나는 구도자가 아니면 속세를 떠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수단으로 예술가가 되려 했다.
 
 그러나 내 바램과는 달리 감상에 젖어 꿈꾸듯 사는 것도 언제까지나 허락되진 않았다. 곧 삶을 엄청난 허무와 고통의 현실로 인식하게 된 때가 온 것이었다. 나는 사회적 성공을 목표로 하는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공부를 요구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나의 정신세계와 추구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과 많이 부딪쳐야 했다. 결국은 나도 남들처럼 세속에 관심을 가져 성공해보자는 쪽으로 생각을 전환시켜 새로운 이상을 품고 공부하여 고려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대학시절의 공허감, 무력감, 방황 … 드디어 참 진리를 찾아 나서다
 그러나 역시 세속의 대학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새내기가 되어 이것저것 경험해보느라 신날 법도 한데 난 엄청난 공허함과 무력감에 빠져서 하나도 신이 나지 않았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 더더욱 외로웠고 늘 홀로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 인생에 잠복해있던 수많은 마(魔)들이 하나 둘씩 터져 나오면서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 집안문제, 진로문제, 인생문제 등으로 인해 나는 하루도 편히 쉴 날이 없었다.
 
 나의 정신적인 방황은 갈수록 심해졌고 나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극도로 꺼리게 되었고 거의 은둔생활을 하다시피 했다. 나는 끊임없이 나란 존재를 의식하며 모든 것에서 손을 놓고 오직 괴로움의 근원지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영혼과 윤회, 영성개발 등 정신세계에 관한 책은 보이는 대로 사서 읽었고 학교에선 전공은 팽개쳐두고 한문과 동양철학 수업만 골라들으며 진리를 찾았다. 그러면서 의문점들이 많이 풀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더 커져갔다.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대체 왜 괴로움으로 고통받아야 하는가?’
 
 나는 너무도 슬펐다. 모든 사람들이 다 슬프고 불쌍해 보였으며 세상 모든 것들이 허무했다. 사람들이 크던 작던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한다는 게 사실 당연한 듯하여도 나는 그것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기가 싫었다.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이 고통의 시작은 무엇이며 그 끝은 대체 어디인가? 대체 인간은 언제까지 괴로워해야 하는가? 마치 중생을 구제하고픈 부처라도 된 듯 나는 생각했다.
 
  ‘이유도 모른 채 고통받는 세상 사람들을 괴로움으로부터 건져낼 수 있다면,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감히 가장 먼저 나서서 그 일을 하겠다!’
 
 
 성당과 교회에서는 참하느님을 만날 수 없었다
 나는 내 안에 늘 존재해왔던 나의 하나님 아버지를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교회에 가보기도 하고 기독교 동아리에서 성경공부도 수 차례 시도해보았다. 수녀가 되려고 성당에도 나가보았다. 그러나 별다른 마음의 위안을 얻지도 못했고 너무도 따분하고 재미없는 성경공부로 예수를 모르는 나의 영적인 무지(?)를 깨우쳐주려던 그 크리스찬들은 나의 질문에 하나라도 시원스레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꾸 답을 구하려는 나를 오히려 이성과 논리에만 찌들어 영적으로는 무지한 사람 보듯 했고 우매한 신앙만을 부추겼다.
 
 도무지 결론이 나질 않았다. 대체 하나님 아버지가 뭘 어쨌단 말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그들이 말하는 하느님은 내가 알고 있는 나의 하느님이 아니었다.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들이 믿는 그런 이유도 없이 제 기분 내키는 대로 만물을 창조했다 죽였다 하는 존재가 참하느님이라면, 그리고 내가 그를 믿지 않아 나를 지옥에 보내겠다면, 나는 그런 하느님은 필요 없으니 차라리 내가 먼저 지옥에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성경공부를 미련 없이 그만두었다. 그만큼 나는 내가 믿는 하느님에 대해 본능적인 확신이 있었다.
 
 
 힌트를 던져준 대순진리회,
 그러나 그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고

 그러는 와중에 학교 앞 길거리에서 대순진리회 사람을 만났는데 ‘우주의 가을이 온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그 사람의 말에 귀가 솔깃하여 밤 12시가 넘은 늦은 시각이었지만 그 사람을 붙잡고 더 자세히 이야기 해달라고 졸랐다. 내가 그토록 기다리는 그 무언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을 따라 그들의 공부방이란 곳에 가서 처음 들은 이야기는 하느님이 이 한국 땅에 왔다 가셨다는 거였다. 이런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을 왜 나는 여태껏 몰랐단 말인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하느님이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은 충격이었고 개벽이 온다는 것은 희망이었다. 바로 이거였다! 내가 그토록 떨린 가슴을 안고 느껴왔던 격동과 고요의 에너지! 뭔가 모르게 온몸이 두려움으로 전율하면서도 희망으로 기대감을 갖게 했던 그 의문의 기운이 바로 개벽 기운이었다는 것을 난 깨달았다.
 
 그렇게 알게 된 상제님과 개벽이야기를 한달간 들으면서 나는 온갖 질문을 해대며 그곳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나 내가 이치와 마음으로 수긍할 만한 답을 못 얻는 때가 많았다. 나 자신을 억지로 적응시키려고 노력해보아도 그곳은 뭔가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고 결국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판단이 서자 난 스스로를 믿고 또 한번 미련 없이 내가 갈 곳을 찾아 그 곳을 떠났다.
 
(월간개벽 2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