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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증산도JeungSanDo/증산도 커뮤니티

사람을 살린다는 대의명분 앞에 뭐가 두렵겠어요!

by 바로요거 2008.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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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성도(19세)/ 서울 동대문도장/ 청량고 3년
 도기 129년 6월 28일 입도/ 부포감/ 동주핵랑

 노스트라다무스 예언과 증산도
 저는 어렸을 때부터 신비한 것에 대한 관심이 남보다 많았습니다. 제가 중3 때는 마침 예언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가운데 1999년 7월에 세상이 멸망한다고 알려진 것이 있는데 그 해가 바로 제가 중3이면서 증산도를 처음 접하는 해였던 것입니다. 저는 TV의 예언프로그램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보았습니다. 초반에는 재밌게 봤지만 항상 결론은, 미래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매우 추상적인 것이었습니다.
 
 
 CA‘뇌호흡반’에 들어가면서 증산도와 인연이 닿다
 
 제가 증산도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학기초에 학교에 새로 부임해 오신 선생님 중에 저의 인도자 되시는 최호경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선생님은 성일중학교(제가 졸업한 중학교 이름^^;)에 오셔서 CA활동부서로 ‘뇌호흡반’을 만드셨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교감 선생님이 기(氣)나 수행에 관심이 많으셔서 쉽게 만들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기(氣)나 수행에도 관심이 있어서 ‘뇌호흡반’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최선생님은 교내에서 인자하신 좋은 선생님으로 알려져 있었고 저 또한 선생님을 존경했던 터라 마음은 강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한가지 난관이 있었습니다. 중1 때 만난 저의 절친한 친구가 다른 CA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우린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쪽의 CA로 가자고 했습니다.
 
 결과는....제가 졌습니다 ㅜ.ㅜ 옛부터 가위바위보에 약하던 저는 무참히 졌습니다. 그래서 ‘뇌호흡반’에 못 들어갈 뻔했는데 과연 못 들어갔겠습니까? 만약에 안 들어가면 여기 이런 글을 쓸 수 없겠죠. 푸하하하 ㅡ.ㅡ?
 
 조상님의 음덕인지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뇌호흡반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선생님은 중3의 수학을 가르치시고 저는 그 당시 공부도 열심히 하고 CA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기에 선생님과 쉽게 친해졌습니다.
 
 
 도장에서의 강렬한 태을주 체험과 자연스런 입도
 그리고 전교 1등

 CA에서 선생님과 나눈 이런 저런 이야기는 생략하고, 어쨌든 저는 방학기간을 통해 친구 최보성과 함께 선생님의 인도로 광화문 도장에 가서 7일간의 정성수행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도장에 입도한 사람에게 나중에 항상 물어보는 게 있습니다. 신단을 처음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냐고요? 왜냐면 저에겐 슬픈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단을 보고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다른 사람은 되게 신성하고 좋았다, 무서웠다 등등의 느낌이 있는데 전 그런 사람이 부러워요 *^^*).
 
 하여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정성수행은 배례를 하루에 300배 이상, 태을주 한시간 정도 했던 거 같습니다(잘 기억이 안나서 ㅡ.ㅡ?)
 
 그런데 아마 삼일째였을 거에요. 여름이라서 배례하는 동안 땀이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배례를 끝내고 화장실 가서 땀을 씻고 자리에 다시 앉아서 태을주를 다함께 송주했습니다. 막 집중해서 송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전 태을주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힘차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인당에서 어떤 기운이 느껴지더니 고개를 뒤로 젖혀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태을주를 읽던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전 제가 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제 몸뚱아리가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의식은 똑바로 있었지만 몸뚱아리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너와 나, 주체와 객체가 아닌 온전한 하나였습니다. 그것과 함께 저는 노랗고 환한 그러면서 전혀 눈이 부시지 않은 광명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황홀하고 좋았습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그 어떤 기분, 짜릿함 기쁨도 이 때 체험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신비하고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이 체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증산도를 전부터 좋아했지만 더욱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정성수행이 끝나기 이틀 전에 입도를 권유받았습니다. 저는 생각해 볼 것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입도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고요? 그야 좋으니까요^^ 너무나 좋고 많이 배우니까요.
 
 자랑을 조금 하면요, 증산도를 만나서 태을주 수행을 하면서 공부를 하니까 맨날 전교 2등만 하다가 전교 1등을 했습니다. 푸하하 *^^* 공부를 잘하고 싶으신 성도님들 태을주 수행 열심히 하면서 공부하면요 성적이 쑥쑥 콩나물 자라듯 자랄 거에요.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제가 경험했으니까요.
 
 
 신앙 초기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그리고 입도 후에 일어난 재미있는 사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체험을 해서 그런지 수행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내심 또 경험해보고 싶었고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시키신 수행분량을 꼬박꼬박 빼놓지 않고 다 했습니다. 제 방은 따로 옥상에 있어서 전 옥상에 나가서 밥그릇에 청수를 모시고 수행을 했습니다. 근데 아마도 증산도를 신앙하는 모든 분들은 저와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부모님께도 이 좋은 진리를 전하자, 그래서 지금까지 입은 은혜에도 보답하자.’ 저도 역시나 그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전 원래가 멍청하고 무식한지 누구도 하지 않은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의식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한 건 아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저녁 옥상에 나와서 태을주 수행을 했습니다. 수행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읽는 태을주 소리를 부모님께 들려주면 포교가 될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엉뚱하고 황당무계한 생각이었습니다. 전 지금도 그때를 가끔 생각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의문입니다 ㅡ.ㅡ?(너무 황당해요 ㅜ.ㅜ) 너무 순진해서 그랬다고 저를 스스로 위로해봅니다 ㅡ.ㅡ;;
 
 그래서 전 태을주를 조용히 읽다가 가게에서 일하는 부모님이 들을 수 있게 크게 태을주를 송주했습니다(참고로 제 방은 옥상에 있고 가게는 1층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께서 별 반응이 없으셔서 잘 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동네 아줌마들의 무슨 소리가 있더니 부모님께서는 갑자기 저에게 버럭 화를 내셨습니다. 저는 어린 가슴에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 아줌마들은 공부 잘하고 착하던 영훈이가 이상한 사이비 종교에 빠진 거 아니냐고 부모님께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걸 들은 부모님은 참고 있던 분노를 터트린 거였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갑자기 자식이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소리를 내면 참으로 황당할 거 같습니다. 하여튼 그일 때문에 부모님은 증산도에 대한 첫인상이 굉장히 나빠지셨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으로 다시는 이런 짓을 안 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ㅡ.ㅡ
 
 
 과거에의 반성과 신앙에의 깊은 자각 그리고 간절한 기도
 광화문도장에서 입도한 저는 광화문도장에는 청포도 없고 집에서도 멀어서, 청포가 있고 집에서도 가까운 동대문 도장으로 옮겼습니다. 저는 입도하고 나서 CA와 선생님 그리고 이도훈 포감님의 도움으로 제 친한 친구인 강용구와 홍동기를 입도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어느 친구도 입도시키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그때 너무나 완벽한 사람을 찾으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 착하고 공부 잘하고 인간성 좋은 사람, 도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 도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태모님께서는 사람욕심 내지 마라고 하셨는데 전 거기에 위배되는 생각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그러던 중 제가 포교했던 친구들은 개벽과 증산도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못 받아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래도 입도 초기에 선생님께서 읽으라고 한 『다이제스트 개벽』을 재미있게 2~3번 보고 일주일에 도장에 몇번 나오고 태사부님 사부님 군령이 있으면 들을 수 있을 만큼 꼭 듣고 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증산도에서 떨어지지 않고 잘 붙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조상님의 음덕 같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1년간을 신앙하고 있던 중 이도훈 포감님이 다른 도장으로 옮겨가고 다른 도장 포감님이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이도훈 포감님의 송별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날씨도 겨울이고 시간은 저녁이고 집까지 걸어오는 길은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쓸쓸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입도 후부터 지금까지의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증산도를 만난 후 1년간 아무 것도 한 게 없었습니다. 그 동안의 시간을 낭비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분하고 슬펐습니다. 너무나 분하고 슬퍼서 제 눈에 어느 순간 눈물이 맺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들을까봐 소리는 크게 지르지 못했습니다. 사실 사자나 호랑이처럼 포효(咆哮)하며 괴성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대신 이를 부득부득 갈았습니다.
 
 멍청한 내가, 무능한 내가, 시간을 헛되이 보낸 내가 너무너무 너무나 분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분한 적이 없었는데 위대한 진리를 만났으면서도 헛되이 보낸 시간이 너무나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저는 집에 올 때까지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올라오면서 속으로 전 ‘더 이상은 이렇게 지내지 않을거야. 하늘에 맹세하고 이렇게 보내지 않을거야. 변할거야. 상제님이시여 태모님이시여 태사부님이시여 사부님이시여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변할게요. 정말 변하겠습니다. 힘을 주세요. 제게 힘을 주세요. 사람을 살리고 싶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싶습니다. 사람을 살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저는 계속 올라오면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빌었습니다.
 
 정말 처절하게 간절하게 빌었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간절히 깨져서 기도했던 적이 없던 거 같습니다.
 
(월간개벽 2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