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22일 (월) 22:15 MBC뉴스
이종욱 WH0 사무총장 별세
[뉴스데스크]
● 앵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UN기구를 이끌어온 이종욱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 오늘 별세했습니다.
뇌수술을 받은 뒤에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박충희 기자입니다.
● 기자: 이종욱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 우리 시각으로 오늘 오후 스위스 현지 병원에서 61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의 칸톤병원 관계자는 이 총장이 뇌혈전 제거수술을 받은 회복하지 못한 채 뇌사상태에 빠졌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총장은 지난 20일 주 제네바 중국대표부의 리셉션에 참석했다가 갑자기 쓰러져 긴급수술을 받았습니다.
부인인 레이코 여사와 동생 이종구 계명대 교수등이 이 총장의 곁을 지키고 있으며 곧 이 총장의 생명유지장치를 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WHO 현지 직원: 수술하고 썩 그렇게 좋지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의식이 없으셨어요.
● 기자: 이 총장은 지난 2003년 7월 치열한 선거전을 거쳐 WHO 사무총장에 올라 한국이 배출한 첫 국제기구의 수장으로 기록됐습니다.
지난 1983년부터 23년 동안 WHO에서 일해 온 이 총장은 AIDS와 결핵 등 질퇴치를 위해 힘썼고 최근에는 조류인플루엔자의 위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이 총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 서울대 의대 동문회 등이 일제히 애도의 뜻을 밝혔고 정부는 이 총장의 장례절차를 지원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MBC뉴스 박충희입니다.
(박충희 기자 piao@imbc.com)
[저작권자(c) MBC (www.im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 앵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UN기구를 이끌어온 이종욱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 오늘 별세했습니다.
뇌수술을 받은 뒤에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박충희 기자입니다.
● 기자: 이종욱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 우리 시각으로 오늘 오후 스위스 현지 병원에서 61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의 칸톤병원 관계자는 이 총장이 뇌혈전 제거수술을 받은 회복하지 못한 채 뇌사상태에 빠졌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총장은 지난 20일 주 제네바 중국대표부의 리셉션에 참석했다가 갑자기 쓰러져 긴급수술을 받았습니다.
부인인 레이코 여사와 동생 이종구 계명대 교수등이 이 총장의 곁을 지키고 있으며 곧 이 총장의 생명유지장치를 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WHO 현지 직원: 수술하고 썩 그렇게 좋지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의식이 없으셨어요.
● 기자: 이 총장은 지난 2003년 7월 치열한 선거전을 거쳐 WHO 사무총장에 올라 한국이 배출한 첫 국제기구의 수장으로 기록됐습니다.
지난 1983년부터 23년 동안 WHO에서 일해 온 이 총장은 AIDS와 결핵 등 질퇴치를 위해 힘썼고 최근에는 조류인플루엔자의 위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이 총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 서울대 의대 동문회 등이 일제히 애도의 뜻을 밝혔고 정부는 이 총장의 장례절차를 지원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MBC뉴스 박충희입니다.
(박충희 기자 piao@imbc.com)
[저작권자(c) MBC (www.im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 기사제공 ] MBC뉴스 | MBC뉴스 기사보기
-------------------------------------------------------------------------------------------------------------------------
-------------------------------------------------------------------------------------------------------------------------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산하 국제기구 수장이었다. 그가 2003년 7월 21일 사무총장에 공식 취임한 WHO는 연간 예산 22억 달러(약 2조6400억원),전문 직원 5000여명에 이르는 유엔 내 최대 국제기구다.
이 총장은 이곳에서 에이즈(AIDS)와 결핵,조류인플루엔자(AI),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등 전염병의 퇴치와 예방,세계 각국의 보건통계 및 보건의료 행정 지원 등 전 세계인의 건강과 복지관련 일을 총괄해왔다.
서울 경복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와이주립대 대학원에서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이 총장은 평생을 의료봉사활동에 바쳤다.
의대 재학시절 경기도 안양시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던 중 가톨릭 신자로서 봉사활동차 한국에 온 동갑내기 일본인 레이코를 만나 결혼했다.
그가 WHO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3년 피지에서 WHO 남태평양지역 사무처 한센병퇴치팀장으로 일하면서였다. 이후 WHO 남태평양지역 사무처 질병예방관리국장,예방백신사업국장,정보화담당팀장,결핵관리국장 등을 거쳐 사무총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 총장은 예방백신사업국장 시절 소아마비 유병률을 세계인구 1만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리는 성과를 올려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WHO 사무총장에 취임한 후 두 가지 큰 작업에 매달려 왔다. 이 총장 스스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추진중"이라고 표현한 WHO의 구조조정과 AIDS 및 조류인플루엔자의 치료와 예방법 마련이었다.
WHO의 구조조정은 느슨하고 비대해진 중앙본부 조직과 구성원을 축소하는 것이었다. 이 총장은 "WHO 예산의 40%를 본부에서 사용하는 예산 분배는 문제가 있다"면서 "본부는 이중 30%만 사용하고 나머지를 빈곤지역 의료지원 등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또한 에이즈의 퇴치를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대표적 사업이 개도국의 에이즈 환자와 감염자 300만명에게 치료제를 투여,환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3 바이(By) 5 계획'이다. 여기에 필요한 연간 40억달러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세계 각국을 돌며 기부금을 내줄 것을 설득해 왔다.
이 총장은 각국 지도자들로부터 '청백리'로 불렸다. 그는 생전 자신 명의의 집 한채 없이 임대주택에 살며 대기환경 보호를 위해 전기와 가솔린 겸용의 소형 하이브리드카를 몰고 다녔다.
이 총장은 "젊은이들이 의대를 지원하는 것이 돈 때문이라면 차라리 사업가의 길을 걷는 게 낫다"면서 "달콤하고 안락한 길은 아니지만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면 언젠가는 세계기구 총장도 되고 노벨상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해 왔다.
△1945년 4월12일생
△1976년 서울의대
△1981년 미 하와이대학 대학원 전염병학 석사
△1983년 세계보건기구(WHO) 남태평양 나병퇴치팀장
△1991년 WHO 서태평양지역사무처 질병예방관리 국장
△WHO 제네바본부 국장
△1994년 WHO 백신면역국 국장
△1998년 WHO 정보화담당팀장(사무차장보급)
△2000년 WHO 사무총장 특별대표
△2003년 WHO 제6대 사무총장
이기수 전문기자 ksle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 총장은 이곳에서 에이즈(AIDS)와 결핵,조류인플루엔자(AI),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등 전염병의 퇴치와 예방,세계 각국의 보건통계 및 보건의료 행정 지원 등 전 세계인의 건강과 복지관련 일을 총괄해왔다.
서울 경복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와이주립대 대학원에서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이 총장은 평생을 의료봉사활동에 바쳤다.
의대 재학시절 경기도 안양시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던 중 가톨릭 신자로서 봉사활동차 한국에 온 동갑내기 일본인 레이코를 만나 결혼했다.
그가 WHO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3년 피지에서 WHO 남태평양지역 사무처 한센병퇴치팀장으로 일하면서였다. 이후 WHO 남태평양지역 사무처 질병예방관리국장,예방백신사업국장,정보화담당팀장,결핵관리국장 등을 거쳐 사무총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 총장은 예방백신사업국장 시절 소아마비 유병률을 세계인구 1만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리는 성과를 올려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WHO 사무총장에 취임한 후 두 가지 큰 작업에 매달려 왔다. 이 총장 스스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추진중"이라고 표현한 WHO의 구조조정과 AIDS 및 조류인플루엔자의 치료와 예방법 마련이었다.
WHO의 구조조정은 느슨하고 비대해진 중앙본부 조직과 구성원을 축소하는 것이었다. 이 총장은 "WHO 예산의 40%를 본부에서 사용하는 예산 분배는 문제가 있다"면서 "본부는 이중 30%만 사용하고 나머지를 빈곤지역 의료지원 등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또한 에이즈의 퇴치를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대표적 사업이 개도국의 에이즈 환자와 감염자 300만명에게 치료제를 투여,환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3 바이(By) 5 계획'이다. 여기에 필요한 연간 40억달러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세계 각국을 돌며 기부금을 내줄 것을 설득해 왔다.
이 총장은 각국 지도자들로부터 '청백리'로 불렸다. 그는 생전 자신 명의의 집 한채 없이 임대주택에 살며 대기환경 보호를 위해 전기와 가솔린 겸용의 소형 하이브리드카를 몰고 다녔다.
이 총장은 "젊은이들이 의대를 지원하는 것이 돈 때문이라면 차라리 사업가의 길을 걷는 게 낫다"면서 "달콤하고 안락한 길은 아니지만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면 언젠가는 세계기구 총장도 되고 노벨상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해 왔다.
△1945년 4월12일생
△1976년 서울의대
△1981년 미 하와이대학 대학원 전염병학 석사
△1983년 세계보건기구(WHO) 남태평양 나병퇴치팀장
△1991년 WHO 서태평양지역사무처 질병예방관리 국장
△WHO 제네바본부 국장
△1994년 WHO 백신면역국 국장
△1998년 WHO 정보화담당팀장(사무차장보급)
△2000년 WHO 사무총장 특별대표
△2003년 WHO 제6대 사무총장
이기수 전문기자 ksle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민족 역사문화 > 한민족의 비밀코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최초 유엔기구 수장, 의료봉사 한평생-이종욱 박사님 생전모습 (0) | 2008.01.17 |
---|---|
세계보건기구(WHO) 이종욱 총장 누구인가? (0) | 2008.01.17 |
WHO 사무총장의 권한 및 위치 (0) | 2008.01.17 |
한반도에 얽힌 비밀이 있다! 뭘까? (0) | 2008.01.15 |
"20세기 한국사상계의 위대한 스승 탄허 " [추천]소설 탄허 (0) | 2008.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