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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비밀코드

이종욱 WH0 사무총장

by 바로요거 2008. 1. 17.

 

2006년 5월 22일 (월) 22:15 MBC뉴스

이종욱 WH0 사무총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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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UN기구를 이끌어온 이종욱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 오늘 별세했습니다.

뇌수술을 받은 뒤에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박충희 기자입니다.

● 기자: 이종욱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 우리 시각으로 오늘 오후 스위스 현지 병원에서 61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의 칸톤병원 관계자는 이 총장이 뇌혈전 제거수술을 받은 회복하지 못한 채 뇌사상태에 빠졌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총장은 지난 20일 주 제네바 중국대표부의 리셉션에 참석했다가 갑자기 쓰러져 긴급수술을 받았습니다.

부인인 레이코 여사와 동생 이종구 계명대 교수등이 이 총장의 곁을 지키고 있으며 곧 이 총장의 생명유지장치를 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WHO 현지 직원: 수술하고 썩 그렇게 좋지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의식이 없으셨어요.

● 기자: 이 총장은 지난 2003년 7월 치열한 선거전을 거쳐 WHO 사무총장에 올라 한국이 배출한 첫 국제기구의 수장으로 기록됐습니다.

지난 1983년부터 23년 동안 WHO에서 일해 온 이 총장은 AIDS와 결핵 등 질퇴치를 위해 힘썼고 최근에는 조류인플루엔자의 위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이 총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 서울대 의대 동문회 등이 일제히 애도의 뜻을 밝혔고 정부는 이 총장의 장례절차를 지원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MBC뉴스 박충희입니다.

(박충희 기자 piao@im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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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2일 (월) 21:45   국민일보

최후까지 AIDS·조류독감 예방 혼신…사망한 이종욱 WHO총장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산하 국제기구 수장이었다. 그가 2003년 7월 21일 사무총장에 공식 취임한 WHO는 연간 예산 22억 달러(약 2조6400억원),전문 직원 5000여명에 이르는 유엔 내 최대 국제기구다.

이 총장은 이곳에서 에이즈(AIDS)와 결핵,조류인플루엔자(AI),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등 전염병의 퇴치와 예방,세계 각국의 보건통계 및 보건의료 행정 지원 등 전 세계인의 건강과 복지관련 일을 총괄해왔다.

서울 경복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와이주립대 대학원에서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이 총장은 평생을 의료봉사활동에 바쳤다.

의대 재학시절 경기도 안양시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던 중 가톨릭 신자로서 봉사활동차 한국에 온 동갑내기 일본인 레이코를 만나 결혼했다.

그가 WHO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3년 피지에서 WHO 남태평양지역 사무처 한센병퇴치팀장으로 일하면서였다. 이후 WHO 남태평양지역 사무처 질병예방관리국장,예방백신사업국장,정보화담당팀장,결핵관리국장 등을 거쳐 사무총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 총장은 예방백신사업국장 시절 소아마비 유병률을 세계인구 1만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리는 성과를 올려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WHO 사무총장에 취임한 후 두 가지 큰 작업에 매달려 왔다. 이 총장 스스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추진중"이라고 표현한 WHO의 구조조정과 AIDS 및 조류인플루엔자의 치료와 예방법 마련이었다.

WHO의 구조조정은 느슨하고 비대해진 중앙본부 조직과 구성원을 축소하는 것이었다. 이 총장은 "WHO 예산의 40%를 본부에서 사용하는 예산 분배는 문제가 있다"면서 "본부는 이중 30%만 사용하고 나머지를 빈곤지역 의료지원 등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또한 에이즈의 퇴치를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대표적 사업이 개도국의 에이즈 환자와 감염자 300만명에게 치료제를 투여,환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3 바이(By) 5 계획'이다. 여기에 필요한 연간 40억달러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세계 각국을 돌며 기부금을 내줄 것을 설득해 왔다.

이 총장은 각국 지도자들로부터 '청백리'로 불렸다. 그는 생전 자신 명의의 집 한채 없이 임대주택에 살며 대기환경 보호를 위해 전기와 가솔린 겸용의 소형 하이브리드카를 몰고 다녔다.

이 총장은 "젊은이들이 의대를 지원하는 것이 돈 때문이라면 차라리 사업가의 길을 걷는 게 낫다"면서 "달콤하고 안락한 길은 아니지만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면 언젠가는 세계기구 총장도 되고 노벨상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해 왔다.

△1945년 4월12일생

△1976년 서울의대

△1981년 미 하와이대학 대학원 전염병학 석사

△1983년 세계보건기구(WHO) 남태평양 나병퇴치팀장

△1991년 WHO 서태평양지역사무처 질병예방관리 국장

△WHO 제네바본부 국장

△1994년 WHO 백신면역국 국장

△1998년 WHO 정보화담당팀장(사무차장보급)

△2000년 WHO 사무총장 특별대표

△2003년 WHO 제6대 사무총장

이기수 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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