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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대륙백제의 진실과 백제의 8대 성(姓)

by 바로요거 2007. 11. 19.
역사해석에는 이견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21세기가 가지는 상식을 벗어난 해석을 할수는 없다고 봅니다
백제 8대 대성의 진실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 출처 : 주간현대 (글 : 신완순)
- 신완순님은 현재 주간현대(주간신문 36면)에 고정역사칼럼을 연재중에 있습니다(1면 전체할애)
- 지도 등 그림은 운영자가 임의로 삽입하였습니다
- 기존에 본 홈페이지 글을 보신 분들은 자연스럽게 이해가 가는 글들일 것입니다
- 검색 동성대왕하시면 자세한 글들을 추가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하 참고 바랍니다


(백제의 8대 성(姓)과 대륙백제의 진실)


백제가 대륙쪽에 근거하였다는 기록을 중국의 사서에서 살펴보면,

북사(北史) 권94 열전82 백제편과
주서(周書)권49 열전 제41 이맥상편 백제조에서

"(백제는) 진(晉), 송(宋), 제(齊), 량(粱)때부터
강좌(江左, 산동성 강소성 등의 양자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또한 사신을 보내 번(藩)이라 칭하며 봉직을 받았다."

고 되어 있고,


송서(宋書) 권97 열전57 이만(夷蠻)편 백제조에,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천여 리에 있었는데
그후 고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는 요서(遼西)를 경략하였다.
백제가 다스린 지역은 진평군(晉平郡) 진평현이라 한다."

라고 되어 있고,

남사(南史) 권79 열전 제69 이맥하편에서도

"진(晉)나라 시기에 고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도 요서 진평2군을 경략하고 스스로 백제군을 두었다."

고 되어 있다.

<그림1. 남제서 : 삭제된 남제서 동남이전 백제편 15줄
(여기에 엄청난 백제의 역사적 사실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 >


또한
남북조시대 양(梁)나라의 숙자현이 편찬한 남제서(南齊書) 권58 동남이전 백제편에

백제왕 모대(牟大, 동성왕)가 표를 올려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충성스러우니

광양태수 고달을 대방태수로
조선태수 양무를 광릉태수로 회매를 청하태수로
모견을 낙랑태수로 왕무를 성양태수로
각각 제수해 달라고 요청하는 구절이 나오며,

또한
이 해에 위나라가 또 군사 수십만을 징발하여 백제의 경계에 침공하자

모대가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 장군에게 군사를 이끌고 보내
위나라 군사를 습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보통 백제의 장수하면 계백 장군이나 흑치상지 장군 정도를 떠올리는데
위의 장수의 이름에 대하여는 생소하게 느낄 것이다.

백제의 장수들이 위나라를 격파한 내용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의 백제본기 동성왕편에

"10년(488)에 위(魏)나라가 군사를 보내 침공해 왔으나 우리에게 패하였다.
(十年 魏遣兵來伐 爲我所敗)"

라고 짤막하게 기술되어 있을 뿐 장수의 이름이나 상황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다.

북사(北史) 권94 열전82 백제편과 수서(隋書) 권81 열전46 동이편의 백제조에

"나라안에 8대 성씨족이 있는데,
사(沙)씨, 연(燕)씨, 리(칼 刀가 셋인 글자, 또는 협 協)씨, 해(解)씨, 진(眞)씨,
국(國)씨, 목(木)씨, 묘(苗)씨 이다."
라고 되어 있으며,

백제의 왕족의 성은 부여(夫餘)씨라 했다.

중국성씨사전에는 부여(夫餘)씨와 복(福)씨 골(骨)씨 등도 8대성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백제가 분명한 우리의 역사상의 국가이기 때문에
이들 8대 성씨가 백제 멸망과 함께 모두 죽지 않은 이상
현재에도 그 후손이 남아 있어야만 하는데


2000년도에 발간된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국(國)씨가 2,182명으로 성씨 순위 154위이며
연(燕)씨는 3,549명으로 138위,
진(眞)씨는 1,579명으로 성씨 순위 164위,
묘(苗)씨는 61명으로 성씨 순위 258위 등이며

나머지
사(沙)씨나 리(또는 협)씨,
그리고 해(解)씨나 목(木)씨는

단 한 명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정보확인 사이트 http://www.koreandb.net/Bon/HTML/bon1.htm#마


사서에는
백제의 멸망 당시 200여개의 성(城)이 있었고
호수(戶數)는 76만호로 되어 있다.

구당서(舊唐書) 지리지에서
호당 인구수를 보면 평균 5.7명이며

토지가 비옥한 지역인 양자강 유역은
호당 인구수가 7명에 이르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백제의 인구는 430만명에서 530만명 정도로 추산이 되며

이중의 8대 성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으리라고 짐작이 가지만,
천삼백여년이 지난 지금 남한에 살고 있는 8대 성씨의 후손이
7300명 정도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백제의 주요 강역이 한반도가 아님었음을 반증하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 그림2. 남북조시대 형세도 : 중국에서 제작된 남북조 시대의 형세도로서
남북조 시대에 중국의 짧은 왕조의 존속기간의 기록과 함께
여러 지역에 굵은 글씨로 쓰여진 만(蠻)이 여럿 보인다. >



후한(後漢) 때의 '풍속통의(風俗通義)'와 '잠부론(潛夫論)'과
송(宋)시대의 '백가성(百家姓)' 등을 근거로

1994년 중국의 진명원 왕종원 등이
북경출판사에서 편찬한 중국성씨사전(中國姓氏辭典)에는
백제 8대 성씨에 관한 기록들이 보이는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부여씨와 살펴보면
'풍속통의(風俗通義)'에 처음으로 보이며
사기 화식전(史記 貨殖傳)에 의하면 한나라 시기에
북쪽의 오환(烏桓), 부여(夫餘) 등이 그 족명을 성으로 삼았다
고 되어 있으며,

성씨고략에 의하면 오흥군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고 하는데
오흥군은 지금의 절강성 임안에서 강소성 의흥일대를 말한다.

목(木)씨 또한 부여씨와 마찬가지로
오흥군에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고 유명한 사람은 목간나(木幹那)장군 이 있다.

사(沙)씨는 '
군망백가성(郡望百家姓)'에서
여남군(汝南郡)에 나타난다고 되어 있고,
'성씨고략(姓氏考略)'에는
동완(東莞), 여남(汝南)에 보인다고 되어 있는데,

여남군은 한나라 고제(高帝)때 설치했으며,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중부 상찰현(上察縣) 및 안휘성(安徽省) 회하(淮河)이북지역이며

동완군은 진(晉)무제 태시원년(265년)에 설치되었으며
지금의 산동성 기수(沂水), 영현(營縣)일대이며
백제의 유명한 인물로 사법명(沙法名)이 있다.


해(解)씨는 '군망백가성'에 이르기를
평양군(平陽郡)에 분포되어 있다고 하는데
평양군은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임분현(臨汾縣) 서남이다.
백제의 유명한 인물로는 해례곤(解禮昆)이 있다.

연(燕)씨는
'성씨고략'과 '군망백가성'에 의하면
상곡(上谷), 범양(范陽)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상곡군은 현 하북성 회래현(懷來縣) 동남이며
범양군은 현 하북성 탁현 및
북경시 창평현(昌平縣), 방산현(房山縣) 일대를 말하며,

국(國)씨는 '군망백가성'에 의하면 하비군에 보이는데
하비군은 현 강소성 서남부지역이다.

또한,
묘(苗)씨는 '군망백가성'에 의하면 동양군에 보이는데
동양군(東陽郡)은 지금의 강소성 금화(金華)지역이며,

진(眞)씨는 신(愼)씨가 진(眞)씨로 되었다고 하며
'성씨고략'에 의하면 진씨는 상곡군(上谷郡)에 보이는데
상곡군은 현 하북성 서남부와 회래현(懷來縣) 동남일대를 말한다.

리(또는 협)씨는 성씨고략에 의하면
리씨는 발해군(渤海郡)에 보이는데
발해군은 현 하북성, 요령성 발해만 일대를 말한다고 되어 있으며,

백제 멸망 후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무왕(武王)의 조카 복신(福信)으로 유명한 복(福)씨는

'군망백가성'에 이르기를
"백제에서 나왔는데, 백제는 옛 국명이며 본래 부여(扶餘)에서 나왔다.
본시 마한의 제국중의 하나이다.
전설에 의하면 후한말기에 부여왕 위구대(尉仇台)의 후예이며
(백제) 초기에 백가제해(百家濟海)에서 그 이름을 얻게 되었다.
진(晉)대에 요서, 진평 2군이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골(骨)씨는
'성씨고략'에 의하면 하남군에 보이는데
하남군은 지금의 하남성 낙양시 일대이다라고 되어 있다.

위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건대
백제의 8대 성이 거처하던 지역이
산서성과 하북성 그리고 하남성과 산동성 강소성 절강성에 이르기까지
주로 옛 동이가 터전을 이루고 살던 지역하고 거의 일치하고 있다.

사서에서 보는 백제의 활동지역과 백제의 성씨들이 분포한 지역이 또한 일치하고 있다.

백제의 요서경략과
동성왕이 북위와 싸운 지역과
일곱명의 태수를 임명한 지역

그리고 최치원이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한 군사가 백만이어서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幽州), 연(燕), 제(齊), 노(魯)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고 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백제가 대륙에 근거하고 있었음은 명확한 일이라 할 것이며
한반도와 일본 그리고 동남아까지 진출한 사실도
연계하여 살펴보아야만 백제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 할 것이다.

(완)

(최근본 남제서)

-> 삭제된 남제서 동남이전 백제편 15줄


(1637년 판본 남제서)


- 출처 : 고려대 중앙박물관(대학원) 한적실
- 복사 : 이용하 님 (감사합니다)


(운영자 주) 무엇이 두려워 검은색 공란으로 놓았는가 ?

- 고의로 삭제한 흔적이 뚜렸이 보인다
- 대륙백제의 흔적이 그토록 두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 당연한 것일지도....

1637 판본 남제서 58권 2-2쪽 

 

1637 판본 남제서 58권 3-1쪽

 

1637 판본 남제서 58권 3-2쪽

 

1637 판본 남제서 58권 4-1쪽

 

1637 판본 남제서 58권 4-2쪽

 

1637 판본 남제서 58권 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