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기의 서문에서 일본측이 해석한 내용중에
'성 가운데「日下」란 글자를 「玖沙訶」로 읽고, 이름 가운데 「帶」란 글자를 「多羅斯」라고 읽는 종류는 종래의 방법을 따라 바꾸지 않는다' 라고 했다.(노성환, 권오엽 남 역주 古事記 참조)
이 문장을 풀어 쓰면, '일하구사 가(=일하고서 가)'라는 말 중에서 「일하」를 성으로 하고 ‘구사가’라고 읽고 ‘대 다라사(=띠 달아서)’라는 말 중에서 ‘대’ 라는 이름을 ‘다라사’라고 읽는다고 했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명치 이후, 성과 이름뿐만 아니라, 일반 생활에 쓰이는 말들도 이런 식으로 문장의 허리를 잘라서 새 말을 만들어 내었다. 조선말을 말살하기 시작한 것이다.(새 말을 만들기 시작한 시점을 알아 내는 일은, 우리가 연구해 내야 할 명제임)
물론 이런 식으로 말을 만들기 이전에는 ‘일하구사 가’라는 백제 말은 ‘日下玖沙訶’ 라고 쓰고 , 음 그대로 읽으면, 백제 말이 되도록 기록 했었다. 즉 한자는 백제 말을 기록하기 위하여 빌려 온 글자로서, 한자의 뜻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25회에서
ふるさと의 경우는 古里故里鄕처럼 다음 말이 한자로 남았지만, 이번에는 뜻으로 남는 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들을 모두 ’명치식 말 만들기‘라고 해 둔다.)
‘(늘어진)가지 에다’ 라는 노랫 말에서 ‘에다’라고 말하고 ‘가지’를 뜻으로 만들었다. 일어사전을 보면 えだ[枝]:가지,로 되어 있다.
(※이런 형태의 말 만들기는 ‘現代’를 ‘げんだい’라고 읽는 형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문제는 ‘일본서기’가 720년에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曳多’(예다)를 ‘명치(1867~1911)식 말 만들기’에 따라 えだ라고 읽어서 ‘가지’라는 뜻으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서기에 나오는 노랫말을 모두 이런 식으로 풀이했다. 약 1100년 이후에 만들어 낸 방법으로 일본서기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曳多 : 성은구님 역주 ‘일본서기’ 457쪽 상단에 나오는 말 임) 웃기는 일이다. 앞으로 틈틈이 일본서기를 비판하고 해석해 나갈 것이다.
※다음은 ‘多致播那(다치파나)’에 대하여 밝힐 예정임.
'성 가운데「日下」란 글자를 「玖沙訶」로 읽고, 이름 가운데 「帶」란 글자를 「多羅斯」라고 읽는 종류는 종래의 방법을 따라 바꾸지 않는다' 라고 했다.(노성환, 권오엽 남 역주 古事記 참조)
이 문장을 풀어 쓰면, '일하구사 가(=일하고서 가)'라는 말 중에서 「일하」를 성으로 하고 ‘구사가’라고 읽고 ‘대 다라사(=띠 달아서)’라는 말 중에서 ‘대’ 라는 이름을 ‘다라사’라고 읽는다고 했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명치 이후, 성과 이름뿐만 아니라, 일반 생활에 쓰이는 말들도 이런 식으로 문장의 허리를 잘라서 새 말을 만들어 내었다. 조선말을 말살하기 시작한 것이다.(새 말을 만들기 시작한 시점을 알아 내는 일은, 우리가 연구해 내야 할 명제임)
물론 이런 식으로 말을 만들기 이전에는 ‘일하구사 가’라는 백제 말은 ‘日下玖沙訶’ 라고 쓰고 , 음 그대로 읽으면, 백제 말이 되도록 기록 했었다. 즉 한자는 백제 말을 기록하기 위하여 빌려 온 글자로서, 한자의 뜻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25회에서
ふるさと의 경우는 古里故里鄕처럼 다음 말이 한자로 남았지만, 이번에는 뜻으로 남는 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들을 모두 ’명치식 말 만들기‘라고 해 둔다.)
‘(늘어진)가지 에다’ 라는 노랫 말에서 ‘에다’라고 말하고 ‘가지’를 뜻으로 만들었다. 일어사전을 보면 えだ[枝]:가지,로 되어 있다.
(※이런 형태의 말 만들기는 ‘現代’를 ‘げんだい’라고 읽는 형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문제는 ‘일본서기’가 720년에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曳多’(예다)를 ‘명치(1867~1911)식 말 만들기’에 따라 えだ라고 읽어서 ‘가지’라는 뜻으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서기에 나오는 노랫말을 모두 이런 식으로 풀이했다. 약 1100년 이후에 만들어 낸 방법으로 일본서기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曳多 : 성은구님 역주 ‘일본서기’ 457쪽 상단에 나오는 말 임) 웃기는 일이다. 앞으로 틈틈이 일본서기를 비판하고 해석해 나갈 것이다.
※다음은 ‘多致播那(다치파나)’에 대하여 밝힐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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