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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증산도JeungSanDo/甑山상제님과 종통

난법(亂法)이 무슨 뜻인가요?

by 바로요거 2007. 11. 6.

난법(亂法)의 의미

 

 

난법의 문자적 의미는 ‘어지러울 난(亂)’, ‘법 법(法)’ 자로서 진리적으로 어지러운 교법, 앞뒤가 맞지 않는 가르침, 인류가 안고 있는 숱한 난제를 풀어줄 해답과 구원의 역량이 없는 법을 말한다.

또한 난법자란 진리의 핵심을 보지 못하고 제 눈에 안경,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耳懸鈴 鼻懸鈴)식으로, 상제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헛된 의미를 부여하여 신앙인의 눈을 가로막는 자를 가르킨다.

 

1. 난법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난법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정신을 어지럽히고 상제님 진리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게 한다.  물론 나름대로의 교리는 있지만, 진리맥을 잇는 역사적인 체계가 너무도 빈약하고 상제님 진리로 볼 때는 이미 판 밖으로 벗어나 있다.  

 

역사는 뿌리다. 역사를 외면한 가르침은 모두가 난법이다. 뿌리는 모든 현상의 본성이며 근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6,000년 역사가 전쟁의 역사이다. 그 뿌리를 살육전쟁으로 시작하였기에 지금껏 싸우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상제님께서는 이것을 "환부역조(換父易祖)"라 하셨다.

 

 

2. 교리의 무질서

 

난법은 그 교리가 논리적이지 못하고 무질서하다.  앞뒤가 안 맞는다.  잔재주를 부려 꿰어 맞춘 것이기 때문에 언뜻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진리의 눈이 열린 사람이 볼 때는 허술하고 모순 투성이다. 삿되게 흐르는 기운을 통해서 난법자들의 거짓됨을 쉽게 알 수 있다.

 

난법의 진리체계에는 논리가 없다. 진리라는 언어 자체에는 유불선이 공히 인정 할 수밖에 없는 필연의 법칙이 있는데 그 법칙을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내거는 사랑,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 사상은 진리가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고 교화하는 언어일 뿐이다. 참다운 진리란 누구도 빠져나기지 못하는 절대적인 원리 이치 규범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증산도 우주론이다. 너무도 보편적인 생장염장 = 우주일년,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우주의 원초적 시스템인 것이다.

 

 

3. 도덕성의 문제

 

일반적으로 난법에 대해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근거는 도덕성의 문제이다. 난법은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난법자는 결국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른다. 인간이기에 누구나 한두 번 정도 사소한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다. 하지만 난법자들은 그걸 넘어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을 정도의 비리를 저지르거나, 오점을 남기는 부도덕한 짓을 자행한다.

 

 상제님은 도덕률로서 난법과 참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난법이 극성해있는 지금의 3변 도운시대에는 도덕성을 난법과 참법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결론은 그 종교의 크기와 종류에 상관없이 부도덕성은 난법의 출발점이다.

 

4. 우물안의 개구리

 

대게 난법은 폐쇠적인 진리 체계를 가르친다.. 일방적인 복종,  일방적인 강요, 일방적인 배척 등으로 자신을 보호한다...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진리의 체계도 변해야 함에도[진리의 큰 틀을 말함] 전혀 변화는 없고 왜곡만이 늘어간다.. 오로지 일방통행만 있을 뿐이다..유. 불. 선 모두는 개인 고유의 특성과 좋은 점이 있다..그러나 결코 그 법이 완벽 하지는 않다..그 부족한 것을[좋은것] 타 종교에서 취하기도하며, 혹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진리를 추구해야 옳지 않겠는가.  

 

난법단체 대순진리회는 신도들에게 증산도 관련 책이나 진리와 관련된 세속의 책을 일체 못보게 가르친다. 그런 책에는 ‘척신. 복마가 붙었다’며 진법을 접할 기회를 차단하여 그들만의 폐쇄적 교리에 가두어버린다. 또한  "예수천국 불신지옥" "오직 예수" 등의 구호는 맹신과 맹종을 강요하는 이기주의적인 언어이다. 남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 무조건 자신의 기분에 맞추어야하는 문화! 이러한 문화로는 인류정신을 결코 통일할 수가 없다. 21세기는 개방의 문화이고 통일의 문화이다. 그것이 "개벽문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