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變 道運] 보천교 700만 구도자 시대 | |||
차경석 성도 : 이종도수, 초패왕도수, *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이 장차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로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나 잡화전 본을 이루리라. (道典 6:81:1)
초장봉기지세.: 진나라 말기에 진시황의 포학을 타도하기 위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봉기했던 항우(項羽, 서기전 232∼202)와 초나라 장수들의 기세와 같이 각 성도들이 판을 이루어 여기서 어지럽게 난법의 도운을 열어 갈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도전 각주 6:69:8)
차경석 성도는 일제치하에서 엄청난 포교를 합니다. 상제님께서 붙이신 이종도수와 초패왕 도수, 동학혁명 역신 해원 도수를 맡아 판안의 난법판이 펼쳐지게 됩니다. 당시 인구 2천만명중 7백만명이 보천교를 신앙하였습니다. 간부만 55만명이라고 하니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열심히 한 것은 당대에 개벽이 오는 줄 알았겠죠. 상제님과 태모님께서 여러번 당대에 일이 되지 않음을 얘기를 해도 귀담아 듣질 안한거지요.
*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끼리 일했으나 나의 일은 판밖에 있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6:60:3) * 판 안과 판밖: 전선필의 전언에 의하면 태모님께서 항상 “너희들 가지고는 안 되느니라. 판밖에서 성공해서 들어와야 되느니라.” 하시므로 하루는 종도들이 “그러면 우리는 다 소용이 없습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울안에 들어 있느니라.” 하셨다 한다. (도전 각주 11:147:3) | |||
"추수할 사람(대두목)은 다시 있느니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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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천교의 7백만 구도자 시대는 추수할 사람 대두목이 나오는 들러리 역할을 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물론 신도세계에서 그 분들이 맡은 역할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증산도가 있는 것입니다. | |||
보천교 새 건물 십일전의 규모 : 십일전의 본체 건물은 가로 30m, 세로 16.8m로 단일 규모로는 우리나라 건축사상 가장 컸다고 한다.
보천교, 십일전 철거 : 보천교의 십일전(十一殿)은 불교도들이 뜯어다가 서울에 옮겨 지어서 태고사(太古寺 : 현재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 조계사)라고 이름 지어 불교 총본부로 사용하고 정화당(靖化堂)과 보화문(普化門)은 부안 사람 김성기(金性基)가 뜯어다가 전주역사(全州驛舍)를 짓는 데 썼다. (도전 각주 11:197: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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