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도서기(東道西器)가 아니라 동도동기(東道東器) 동양과 서양의 문명적 특징을 축약하는 말로 흔히 동도서기(東 道西器)란 말을 쓴다. 그러나 이 책을 보고 나면 이 말은 동도동 기(東道東器)로 바꾸어야만 할 것 같다. 정신문명은 물론이고 기계문명마저도 그 발원지는 동양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동양이 서양과의 문명발달 경쟁에서 근소한 시간적 우위를 점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역사의 전 과정을 통틀어 ‘숙련된’ 동양에서 ‘미숙한’ 서양으로 ‘모든’ 인문적 지식이 ‘전수’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아울러 이 전수목록에는 원천기술뿐만 아니라 거의 완제품 수준까지 아우르고 있다. 저자가 참조하고 인용하는 사료와 자료들은 충분히 치밀하고 방대하다. 따라서 구태여 저자가 존 M.홉슨이라는 전형적인 서양인 혈통이란 걸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그러한 문명발달의 원조논쟁에 있지 않고, 인류문명에 있어서 동양의 명백하고 압도적이었던 문명사적 역할이 얼마나 축소되고 은폐되어 왔는지를 밝히려는데 있다. 그 과정에서 서양이 자기기만적인 배사율을 범하기 시작한 것이 극히 최근부터임도 알게 된다. 동양은 ‘창조’ 서양은 ‘모방’ “서양 사람들은 독일의 발명가 구텐베르크가 문명에 혁신을 가져온 인쇄기를 최초로 세상에 소개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그림자 뒤에 숨은 진실은 이동형 인쇄기에 사용하는 최초의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것보다 적어도 50년은 먼저 한국에서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구텐베르크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으로부터 ‘자신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적절한 정황적 증거도 있다. 요컨대, 한국의 존재는 오늘날 질 좋은 자동차를 서양에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 1000년 동안 서양의 발흥에 기여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 중) 우리는 최초의 인쇄기술 보유국이 우리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저자는 그 사실(史實)의 이면에 고정관념의 먼지로 가려져 있는 중대한 진실들을 들추어낸다. 흔히 인류의 3대 발명을 화약, 나침반, 인쇄술이라고 한다. 이 발명품들은 모조리 동양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서양으로 전수되었다. 앞서 저자의 서문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구텐베르크는 인쇄기술을 독자적으로 연구해낸 것이 아니라 동양에서 입수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고정관념의 먼지를 털어 내어야 한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은 훨씬 오래 전부터, 아니 역사의 전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교류를 지속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교류는 일방통행이었다는 점이다. 즉 서양은 늘 문명의 수혜자였다. 동양은 ‘창조’하고 서양은 ‘모방’했다. 사실상 근대까지도 유럽인들의 기술수준은 모든 분야에서 동양에 비해 아주 조악했다. 한 유럽 지식인은 그의 저서 『위대한 우(禹)임금과 공자(Yu le Grand et Confucius)』에서 ‘유럽인이 괄목할 만한 경제적 발전을 누리고 싶다면 중국을 모방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할 정도였다(이 책 255쪽). 또한 16세기 예수회 선교사의 보고서를 접했던 서양인들은 일반적으로 중국을 세련된 문명국으로 인식했으며, 중국과 이집트는 모두 상당한 물질적 성과, 심오한 철학, 월등한 저술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257쪽). 동양의 문명신과 도통신이 서양으로 건너가서 그랬던 유럽이 17세기에 이르러 마치 ‘유전자 대혁명’을 겪는 것처럼 일대 변신을 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뉴턴 등을 비롯한 대과학자들의 세기가 열린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동양은 더 이상의 ‘창조적 지식’의 출현이 없는 까닭 모를 정체기로 빠져들게 된다(저자는 19세기 후반까지도 동양이 여전히 문명의 강자였음을 말하고 있긴 하다). 우연은 아닐 성싶은 이 두 역사적 변화에 얽힌 숨은 진실을 증산 상제님은 두 분의 성인을 통하여 처음으로 밝혀주신다. 이마두가 천국을 건설하려고 동양에 왔으나 정교(政敎)에 폐단이 많이 쌓여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道典 4:13:1∼2)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 온갖 묘법(妙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김봉곡에게 참혹히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의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명 개발에 역사(役事)하였나니… (道典 4:14:4∼5) 실제로 이마두, 즉 마테오 리치 신부(1552∼1610)와 진묵대사(1562∼1633)는 거의 동시대 인물들이며, 그들의 사후부터 곧 유럽에서는 ‘창조적 지식혁명’의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증산 상제님은 인류사의 이면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실체적인 존재들[神道]에 대해 밝혀주셨다. 또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마두의 공덕이 천지에 가득하니 신명계의 영역을 개방하여 동서양의 신명들을 서로 자유롭게 넘나들게 한 자가 이마두니라. 선천에는 천지간의 신명들이 각기 제 경역(境域)을 굳게 지켜 서로 왕래하지 못하였으나 이마두가 이를 개방한 뒤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서 천국의 문명을 본떠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 주었나니 이것이 오늘의 서양 문명이니라. (道典 4:13:3∼6)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인류역사의 모든 지적 창조물들이 신명계로부터 전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마두 대성사와 진묵대사가 전격적인 문명신단(文明神團)의 대이동을 거사한 직후부터 서양의 창조시대가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케플러(1571∼1630) 1619년 《우주의 조화》 출간 뉴턴(1642∼1727) 1687년 《프린키피아》 출간 데카르트(1596∼1650) 1637년 《방법서설》 출간 파스칼(1623∼1662) 16세에 《파스칼의 정리》 발표 보일(1627∼1691) 1662년 ‘보일의 법칙’ 발표 라이프니츠(1646∼1716) 1663년논문 《개체의 원리》 발표 페르마(1601∼1665) 17세기 최고의 수학자 서양인들의 모방과 착취
문제는 서양인들이 주도권을 쥐자마자 그것을 남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비약적인 발흥은 단순히 동양에 대한 지적인 부채에만 기인했던 것이 아니다. 서양은 동양과 소위 제3세계(이 말은 원래 3등급이란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당연히 2등급은 동양)의 식민지화를 통해서 무상의 노동력과 자원, 무엇보다도 독점에 가까운 시장확보라는 이중 삼중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 또한 동양으로부터 이러한 경제적인 이득뿐 아니라 기술적인 모방까지 동원되었다고 말한다. 현대문명을 말함에 있어서 수학(數學)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는 없다. 당연히 수학도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아라비아 숫자로 알려진 오늘날의 십진법 수 체계가 원래 인도의 산물이란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라비아 상인들이 유럽에 전했다고 해서 이름 또한 ‘아라비아 숫자’다. 그 외에도 항해술, 조선술, 천문학, 도로망 등 세계를 이미 하나로 만들었던 교통수단은 그 어느 것도 동양인들의 지적산물이 아닌 것이 없다. 콜롬부스가 신대륙이라고 착각하고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작명하기 훨씬 이전부터 동양을 비롯한 소위 제3세계인들은 전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1등급’인들은 네모난 땅덩어리 중간에 살고 있을 때 말이다. 나머지 숙제 우리의 입장에서 이 책에는 아쉬운 ‘옥의 티’가 있다. 저자도 이미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듯이 중국, 일본에 비해 한국의 역할이 너무 빈약하게 다루어졌다는 것이다(사실 최초의 인쇄술 에 관한 대목이 전부이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의 의도가 아니라 ‘영어로 쓰인 한국사 관련 책의 부족’ 때문이라고 너그러운 양해를 구하고 있다. 그리고 서문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변명 같지만 나는 이 책의 성공을 가늠할 척도를 한 가지 제시하고 싶다. 즉 지난 1500여 년 동안 한국이 세계에 남긴 많은 발명과 공헌에 관한 훌륭한 한국 서적들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데 박차를 가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책이 서양에 의해 은폐된 동양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진정한 인류사를 복원하기 위한 나머지 숙제는 우리 증산도 일꾼들의 몫일 것이다. 그것은 곧 인류문명사의 근원적 뿌리인 배달민족의 역사와 명예를 회복하는 데서부터 비롯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