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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대륙을 호령하던 선조 앞에 자랑스런 후손이 되자”(한의 땅, 간도)

by 바로요거 2006. 10. 24.

한恨의 땅, 간도를 되찾는 그날은?
 
 
“대륙을 호령하던 선조 앞에 자랑스런 후손이 되자”
 
이는 ‘간도되찾기 운동본부’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배너문구이다.
 
최근 고구려 열풍이 사그러드는가 싶더니 간도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10월 22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간도협약은 법리적으로 무효’라는 정부의 공식입장을 밝힌 것이 기폭제가 되어, 일부 정치인과 학자들, 네티즌들 사이에서 제기되어오던 간도협약 무효화 주장이 더욱 힘을 얻게 된 것이다.
 
비록 ‘간도의 영유권 문제는 법적인 측면과 분리해서 접근한다’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한국정부가 간도문제에 관해 이런 입장을 밝힌 것은 광복 이후 처음 있는 일이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
 
 
지금은 조선족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는 2만 1천㎢의 광활한 땅 간도지역.
일제 치하엔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의 본거지였고, 지금도 우리의 동포들이 살고 있는 애환의 땅, 간도. 그 간도지역에는 과연 어떤 역사적 사연이 서려 있는가.
 
일본이 시시때때로 야욕을 드러내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 중 독도가 우리땅임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역시 의심없는 우리땅이었던 간도지역이 지금은 “그 땅이 우리 땅이었어?” 라고 반문할 정도로 국민들의 인식에서 멀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이 가로막혀 그 지역이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멀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옛 선조들의 기상을 이어가고자 하는 역사의식의 박약이 불러온 결과가 아니겠는가.
 
 


간도에 얽힌 역사적 사연 ▒▒▒▒▒▒▒▒▒▒▒▒▒▒▒


북간도는 원래 고구려와 발해의 옛터로 발해 멸망 후에는 여진족이 거주했던 곳이지만, 조선 중기 청의 건국과 함께 사람들의 거주가 금지되면서 국경이 모호해졌다. 그러나 청의 거주금지 조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함경북도 주민과 산동지방 한족들이 이 지역 미개지를 개간해 농사를 지으면서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선과 청 양국은 1712년 현지분규 해결을 위해 이 지역을 공동으로 답사,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고 압록강과 토문강을 양국의 국경선으로 한다는 데 합의한다.
 
후에 중국은 그 토문(土門)과 두만(豆滿)이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토문강이 두만강을 가리킨다고 억지를 부렸고, 1905년 을사조약으로 우리 외교권을 강탈한 일본은 이런 중국의 억지 주장을 받아들여 남만철도부설권 푸순탄광채굴권 등 이권과 맞바꾸는 조건으로 두만강 이북 간도땅을 넘겨주었다. 이것이 간도협약의 내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