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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한민족 역사문화/대한민국&한민족

나의 생명 이야기

by 바로요거 2005. 10. 6.

황우석 박사의 나의 생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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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충남 부여 계룡부락 출생. 대전고, 서울 수의과 졸업
 1999년 한국 최초의 체세포 복제동물 영롱이(젖소) 탄생시킴.
 2004년 세계 최초로 인간 체세포 복제 유래 줄기세포 배양
 
 닭이 우는 시간은 통회와 고통 그리고 환희의 시간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자. 하늘을 감동시키자.
 아름다운 것들은 저희끼리 눈 맞춘다.
 사람과 짐승이 가까이 지내던 시정, 서로 눈빛을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1편. 내 친구 소 이야기
 
 자연과학도 인간으로부터 비롯된다
 
 - 나는 자연과학도지만 인간의 삶을, 그것도 막연한 인간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 분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연과학을 전공했다.
 
 - 생명을 다루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의 비난이 우리를 힘들게도 했지만 우리 노력이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의 삶을 나락에서 건져 올리는 작은 희망일 수 있는 한 우리는 쉴 수가 없다. 제발 내 딸을 걷게 해달라는 어느 부모의 통곡이 아직도 귓전에 쟁쟁하다.
 
 -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어 두렵기만 하던 자연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바로 과학의 출발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에는 과학의 산물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과학뿐 아니라 인간 또한 출발점이었던 자연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 평생 과학도로서 한길만 가자고 다짐해 온 나는 과학도야말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자연을 이해하고 경외하는 것이야말로 그 무한한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과학도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과학책을 보고 실험하기전에 먼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숲과 나무와 그 숲에 깃들어 사는 무수한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벗이 되라. 과학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소와의 인연
 
 - 나는 1953년생이다. 전쟁이 막 끝난 그때 시골은 누구나 천형처럼 가난을 짊어지고 살았다. 내 나이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잃은 우리집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철모르던 시절부터 나는 ‘생존’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런 나를 위로한 것은 푸른 산과 들 그리고 순한 눈망울을 끔벅거리는 소였다. 소는 땅 한마지기 없던 우리집을 먹여 살리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우리집에서 키우는 소는 돈 많은 사람이 사서 키워달라는 배냇소였다. 그 소가 커서 낳은 새끼가 우리 몫이 되는 것이다.
 
 - 서울대 의대를 가지 않고 수의대를 선택한 것은 소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던 나의 어린 시절 꿈 때문이었다. 그 무렵 소는 가난한 시골사람들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더 많은 새끼를 낳고 더 크게 자라는 소를 만들면 가난한 우리 식구도 내 친구들도, 이웃들도 좀 더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어린 아이다운 순진한 생각의 발로였다.
 
 땅을 닮은 사람
 
 - 경기도 광주에 서울대 실험농장이 있다. 농장을 돌 볼 사람을 찾았으나 오래 버티질 못했다. 현재는 중국 흑룡강 출신의 조선족이 돌보고 있다. 내가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자잘한 부분까지 다 알아서 하는 사람이 있으니 걱정이 없다. 그는 매일 7만평에 달하는 산을 다 돌면서 울타리에 작은 구멍이라도 생기지 않았는지 일일이 확인한다. 그는 이 작업을 추우나 더우나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소가 아프면 소 옆에서 밤을 새운다. 겨울에는 아픈 소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 소와 함께 먹고 잔다. 그는 수십년 전 내 고향 마을 사람처럼 손익을 따지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한다. 그가 소를 키우면 소가 살찌고, 토끼를 기르면 토끼가 살찐다. 채소도 그가 키운 것은 유난히 탐스럽다. 지극한 정성 때문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풀 한포기도 애정을 베풀면 그에 답한다.
 
 어머니
 
 - 어머니를 위해 나는 아무리 중요한 회의를 하는 중이라도 어떻게든 틈을 내어 전화를 드린다. 평생 자식을 위해 사랑으로 헌신하신 어머니께 더 많은 보답을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까와하면서. 어머니에게서 받은 선물 중 가장 큰 것은 물론 가없는 사랑이리라. 중학생이되어 대전에 유학하던 시절 차비가 없어서 집에 잘 들르지 못하다가 어쩌다 돈을 모아 집에 가는 날이면 동네 어귀에 이르자마자 저 멀리서 귀신처럼 나를 알아보고 논에서 피 뽑다말고 거머리에 물려 다리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지도 모르시고 맨발로 달려오셨다. 평생을 홀로 자식들 키우시느라 고생스럽게 살아오시면서 소리내어 웃을 줄도 모르시던 어머니 입가에 번지던 눈부신 미소, 말없이 어쩔줄 모르며 내 얼굴을 쓸어내리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지금도 그립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또 하나의 큰 선물은 소 같은 우직함이다. 어머니는 평생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별이 총총한 새벽부터 달이 밝은 한 밤중까지 자식을 위해 소처럼 일하던 어머니를 고스란히 배웠는지 나도 일이라면 누구에게 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남달리 명석한 두뇌도 아니고 배경도 없었다. 오직 소 같은 성실함만이 최선의 자세라는 사실을 늘 간직하며 살아왔다.
 
 등 안대기 클럽
 
 -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당숙이라고 부르던 친척 어른이 대전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그 분의 도움으로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당숙은 전쟁 당시 등 떠밀려서 잠시 인민위원장을 지낸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전쟁이 끝난 후 쫒기던 그 분을 우리 집 천장에 2년 동안 숨겨준 고마움 때문에 나를 돌보아 주신 것이다. 대전중학교에 3년 장학생으로 입학하였다.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충청도에서는 명문으로 알려진 대전고에 진학했다. 그런데 첫 시험에서 480명 중 4백 등을 했다.
 
 - 나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중학교를 다닌 사람이었고 나를 밀어주던 어머니, 당숙,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고 싶었다. 이후로 친구들과 등 안대기 클럽을 만들어 졸업할 때까지 나는 방바닥에 등을 대본 기억이 별로 없다. 참을 수 없이 졸음이 쏟아지면 눈이 쌓인 운동장을 맨발로 뛰고 도서관 한 구석의 물구덩이로 풍덩 뛰어든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잠을 아예 안 잘 수는 없어서 책상에 엎드린 채로 잠깐 눈만 부였다. 세상사는 공정해서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내 노력에 답해 주었다.
 
 - 자신의 능력을 탓하며 우울해 하는 학생들을 만나면 정신이 버쩍 들 정도로 혼뜨검을 낸다. 할 만큼 했는데도 안 된다고 포기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결과를 따지기 때문이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는 에디슨의 말이 범인들을 위한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눈앞의 결과에 연연해 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혼신의 힘으로 최선을 다하라. 안되면 될 때까지 노력하라. 될 때까지 하겠다는 각오면 이루지 못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찍소 정신
 
 - 어린시절 친구들은 나를 찍소 같은 놈이라 불렀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제 일감에서 눈을 떼지 않는 소처럼 일관되게 밀어 붙이는 성격이라는 뜻이다. 나는 밭을 가는 소를 보면 마음이 아팠고 또 존경스러웠다. 소는 일생동안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가슴 아픈, 그러나 아름다운 존재였다. 나 역시 소 처럼 살고 싶었다.
 
 - 내가 복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연구를 시작했을 때 주위에서는 모두 말렸다. 그건 이미 세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연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끝없는 실패와 도전의 반복 끝에 마침내 벽을 뛰어 넘고야 말았다. 나는 우리의 연구가 실패로 끝났다 하더라도 내 결심이 옳았다고 믿는다. 모든 연구자가 부딪쳤던 난관은 누군가 언젠가 넘어야할 벽이고 그 벽은 무수한 실패 끝에 비로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실패를 밑바탕 삼아 성공하면 되는 일이라고 믿었기에 나는 주변의 만류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욕심을 버리고 오직 찍소 정신으로 우직하게 매달렸다. 좀 더 멀리 좀 더 크게 보면 손해나 실패도 때로는 공동체를 위해 큰 이익이 될 수 있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도전과 실패가 없었다면 우리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다. 세상은, 역사는, 과학은 그렇게 진보해 가는 것이다.
 
 너는 책박사
 
 - 소는 새끼를 낳으면 태반을 먹어 치운다. 그런데 소는 초식동물이라 동물성 단백질 분해효소가 없어 동물성인 태반을 소화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내가 태반을 못 먹게 치우려고 하면 어머니는 “얘, 태반을 먹어야 자궁이 튼튼해지는 법이다. 그냥 나두어라. 그걸 못 먹으면 다음 새끼를 못 낳더라” 하시며 나를 말리는 것이다. 내가 먹으면 왜 안 되는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어머니는 경험으로 얻은 자신의 견해를 굽히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제가 명색이 수의학 박사입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빙긋이 웃으시며 이렇게 맞받으셨다. “너는 책 박사지, 나는 소 박사다.”
 
 - 송아지가 설사가 나면 나는 항생제를 들고 달려가는 반면 어머니는 어미소의 먹이를 줄였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얼마 후 송아지의 설사가 멈췄다. 아마도 어미소의 젖이 줄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나는 공부라고는 해본 적이 없지만 경험에서 우러난 어머니의 삶의 지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으면 소들이 토실토실하게 살찌던 것은 어머니의 오랜 경험도 도움이 되었을 테지만 무엇보다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이 컸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글 한줄 읽지 않고 고된 노동으로 평생을 살아온 분들을 만나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글 요약 : 윤형수 ( 한민족의 뿌리와 미래 카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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