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와 트럼프...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한반도
[월드 이슈] 두 손 끝에 김정은 운명이 달렸다… 美 대선 결과 따라 달라지는 한반도 전략
국민일보 기사입력 2016-03-08 04:01
미 대선은 7월 전당대회를 거쳐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후보가 정해지고 11월 본선을 치르기까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시간과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 지켜봐야 하지만 현재 구도로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의 도널트 트럼프가 본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 당내 경쟁이 끝나지 않았고 경선 과정의 발언이 고스란히 정책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두 사람의 북핵 대응과 한반도 정책에 대한 발언과 공약은 우리의 관심을 끈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미국의 대외 정책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 힐러리 집권한다면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는 지난 1월 북한의 핵실험 직후 “세계를 협박하려는 북한의 깡패 짓에 굴복할 수 없다”며 “북한을 고립시키고 차단하는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도발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인내’를 구사하는 것과는 뉘앙스가 달랐다. 클린턴이 당선된다면 압박과 차단에 무게 중심을 둔 보다 적극적인 북핵 대응이 예상된다.
그는 북한 문제를 다뤄본 경험이 많다. 오바마 행정부의 1기 국무부 장관을 지내면서 북한의 핵 개발 정보를 상세히 보고받았고, 대북 정책을 지휘했다. 상원의원 시절에는 외교위원회 소속이었으며, 1993년 1차 북핵 위기 당시에는 퍼스트레이디로서 남편 빌 클린턴 대통령의 제네바 협상 타결을 백악관에서 지켜봤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한과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갑작스레 남북 해빙 무드가 조성되고, 이후 제네바 협상이 타결되는 과정에서 터득한 노하우를 부인인 힐러리에게 조언할 것이다.
힐러리가 대통령이 된 후 북·미 관계의 돌파구를 열 수 있는 특사를 찾는다면 남편 빌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9년 8월 억류된 미국의 여기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한 미 정부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러나 풍부한 경험과 인맥이 반드시 정책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미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 내에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지 못한 데 따른 비난을 받고 있다. 공화당은 북한의 4차례 핵실험 중 3차례가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국무장관이 감시하던 시절 일어났다며 공세를 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노선은 한마디로 ‘전략적 인내’로 불린다. 다른 말로 바꾸면 ‘북한이 먼저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실천하기 전에는 북한과 일절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핵·에너지정책 전문가인 매튜 번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연구원은 “내가 보기에 ‘전략적 인내’는 북한의 핵 개발을 지켜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을 점잖게 표현한 것뿐”이라고 꼬집었다.
번 연구원은 “김정은의 행동을 볼 때 오바마 행정부로서도 뾰족한 대안이 없었겠지만, 전략적 인내는 처음부터 잘못된 노선이었다”고 비판했다.
국무부 정보조사국에서 동북아실장을 지낸 존 메릴 박사는 “전략적 인내에는 ‘북한을 그냥 내버려두면 북한이 저절로 붕괴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며 “이는 잘못된 계산”이라고 말했다.
전략적 인내가 힐러리 클린턴의 노선이라기보다는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측근인 대니얼 러셀 현 국무부 차관보가 정한 방침이라고 번 연구원은 분석했다. 러셀 차관보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 출신으로 부인은 일본계다.
최근 공개된 클린턴 전 장관의 이메일에 따르면 그는 국무장관 재직 시절인 2010년 11월 북한의 핵 개발 실태를 보고받은 뒤 “극히 우려할 만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기술 등이 미국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클린턴이 위기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클린턴은 재직 당시 대북 문제에 관한 한 주로 스티븐 보즈워스 당시 대북 특별대표의 견해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평소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하기 전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을 폐기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클린턴이 보즈워스의 영향을 받았다면 북한에 대한 압박과 함께 대화를 병행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미국 정부도 공식적으로는 제재와 대화의 병행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다.
■ 트럼프 이길 경우엔
미국 공화당 대선 유력주자로 부상한 도널드 트럼프는 북한의 핵문제 해법으로 중국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만큼 중국을 움직여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 문외한이라지만 그의 진단은 정확했고, 이후 미국 정부도 중국을 설득해 북한의 제재 강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 결의안도 중국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미국 정부가 트럼프와 상의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카드를 활용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지적은 적절했다.
그러나 그의 대북 제안 중에는 파격적이고, 과격한 발언이 적지 않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미치광이’로 지칭하면서 김정은에 대한 암살을 시사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CNN의 ‘상황실’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핵 해법으로 중국에 대한 압박을 제시했다. 그는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무역과 관세 등으로 중국을 매우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한 암살도 시사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미 CBS방송의 ‘오늘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 문제 해법을 묻는 질문에 “대통령에 당선되면 중국을 움직여 이 자를 사라지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이 발언은 전화인터뷰가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나온 것으로 즉흥적인 발언으로 보기 어려웠다.
사회자인 노라 오도넬이 “북한 지도자를 암살하겠다는 뜻이냐”고 묻자 트럼프는 “솔직히 더 심한 방법도 들어봤다”며 “내가 말하는 건 이 자는 나쁜 사람이며, 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제안 중 중국 역할론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김정은 암살은 논란을 빚었다. 극도로 폐쇄된 북한에 특공대를 파견해 김정은을 암살하는 것이 파키스탄에서 도피생활 중인 오사마 빈 라덴을 암살한 것처럼 손쉽게 할 수 있는 작전이 아닌 데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트럼프는 북한뿐 아니라 한국의 안보상황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바로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이다.
트럼프는 “한국은 부자 나라인데 미국은 미군을 주둔시켜 얻는 게 없다”며 “한국은 돈을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런 주장이 한·미동맹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나왔지만 트럼프는 오불관언이다. 가는 곳마다, 인터뷰를 할 때 마다 한국문제를 언급할 때는 빼놓지 않고 이 문제를 끼워넣는다.
미국의 사실검증 전문매체인 폴리티팩트는 이런 트럼프의 주장을 거짓이라고 판정했다. 폴리티팩트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현재 2만8500명으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규모는 2011년에 비해 더욱 커졌다. 2014년 초 양국 합의에 의해 한국은 전년보다 5.8% 인상된 연간 8억7660만 달러의 분담금을 지불했다. 또 분담금은 2018년까지 연간 평균 4%가 오른다.
이에 대해 군사전문가인 랜스 잰다 카메론대학 교수는 “연간 8억 달러 이상의 금액을 ‘땅콩’에 비유하거나 ‘공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트럼프가 ‘슈퍼 화요일’의 승자가 되면서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유력해지자 트럼프에 반대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WP는 사설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경우 미군주둔 비용이 충분치 않다며 한국에 싸움을 걸 것”이라고 우려했다. WP는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미군이 빠지면 한국이 중국과 북한에 대한 두려움으로 핵보유국으로 가면서 미국에 훨씬 더 큰 비용을 들게 할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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