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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쉼터/東西문화,역사인물

왕, 제, 황제(王, 帝, 皇帝)

by 바로요거 2015. 3. 3.

王, 帝, 皇帝, 朕(왕, 제, 황제, 짐)  

 

王은 ‘힘·권위’ 상징 도끼 그림… 帝는 제단 모양서 나와

기사입력 2015-03-01 21:25

 

[강상헌의 만史설문] 〈51〉 왕의 다양한 호칭
진시황이 죽은 후 진의 2대 황제가 즉위할 때 만든 동판 문자의 내용이다. 진시황의 승상이었던 이사(李斯)가 작성한 조서(詔書)다. 조서는 왕의 뜻을 백성에게 고하는 글이다.

“진황제(秦皇帝)가 법제를 정비하고 도량형을 통일했다. 오직 그만이 시황제(始皇帝)로 영원하다. 앞으로는 아무도 시황제를 칭할 수 없다. 이 글은 이를 어기면 안 되는 증거다….”

구리판에 상감(象嵌)기법으로 새겨진 이 문자들은 이사가 서체(書體) 통일정책을 벌여 만든 소전체(小篆體)다. 서동문 거동궤(書同文 車同軌), 쓰는 글자는 같은 모양이라야 하고 마차 수레 바퀴의 폭이 같아야 한다는 등의 취지에 의한 여러 분야의 개혁이 있었다. 진 왕조의 통일 전에는 나라마다 각각 다른 모양의 글자를 썼다.

반대파와 그 생각(사상)을 지우기 위한 분서갱유(焚書坑儒), 즉 책을 불사르고 학자들을 묻었던 ‘만행’(蠻行)도 그런 취지의 일환이었다. 자[척(尺)]나 말[두(斗)] 등 길이나 부피, 무게를 재는 기준인 도량형의 통일은 효율적인 조세(세금)정책을 위한 것이다.

 

‘황제’라는 이름이 처음 불리기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진나라 때의 소전체 글씨판(길이 13㎝, 너비 11㎝). 소전체로의 문자(서체)통일을 주도한 이사(李斯)가 작성했다.

‘황제’ 즉 제(帝)가 지역 또는 종족의 우두머리를 이르는 이름으로 등장한 상황이다. 왕(王)은 황제 아래의 제후국(諸侯國)의 우두머리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다만 정치적인 것이다. 역사에서 황제(제)는 왕 중(中) 왕이라는 뜻으로 이해되나, 그 또한 왕의 하나 아닌가.

그 조서는 ‘첫[始] 황제’라는 명칭을 누구에게도 양보 못한다는 선언인 것이다. 역사 이전 중국 전설의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아닌 실제 황제는 그렇게 등장했다. 그는 폐하(陛下)라는 명칭으로 불렸고, 짐(朕)이라고 스스로 자신을 불렀다. ‘陛’(폐)는 집 마당의 댓돌이니 그 아래에서 우러른다는 뜻이 ‘폐하’다.

막강한 권력(힘)에 의해 이른 시기에 지어진 이런 이름들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전체에 내내 큰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우리의 역사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역시 그렇다.

갑골문의 왕(王)은 무기인 도끼 그림이다.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도끼인 것이다. 기원 후 100년경 저술된 문자 주해서(註解書)인 허신의 ‘설문해자’는 王(왕)을 ‘하나로 천지인(天地人) 셋을 꿰뚫었다’고 기발하게 풀었으나 이는 갑골문의 존재를 모르고서 추정한 결과다. 일리는 있지만, 좀 오버한 해석 아닌가? 갑골문은 청나라 말인 1899년 처음 발굴돼 그 존재를 알렸다.

왕보다 몇 수 위인 황제의 제(帝) 글자는 어떤 상징을 담고 있을까? 보일 시(示) 글자처럼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 그림이다. 본래의 의미는 신(神)이 내려와 인간에게 자신을 보이는 강림(降臨)의 현장일 터다. 중국 역사에서 황제의 뜻으로 천자(天子) 즉 하늘의 아들이라고 쓰는 것과도 통하는 대목이다.

고대 이집트의 통치자인 파라오는 신이면서 인간이었다. 파라오가 되는 순간 인간의 아들(하트셉수트나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여자 파라오도 있었지만)이었던 그는 신이 됐다. 통치를 위한 그들의 신탁(神託)은 신성(神性) 또는 영성(靈性)을 빙자한 일종의 트릭일 수 있었겠다. 물론 신의 진짜 강림이기도 했겠고. 독점적인 ‘신과의 만남’에서 권력은 그렇게 샘솟았다.

 

동아시아 황하 유역과 함께 상형문자의 큰 발상지인 이집트 나일강 유역에 있는 룩소르사원 정면. 람세스 2세 동상과 벽면의 상형문자들이 눈길을 끈다. 파라오의 이름은 사진에서 보듯 타원 안에 넣는다.

인류학적인 공통성인가? 상형문자인 이집트의 신성문자(神聖文字·히에로글리픽) 또한 신과 파라오(또는 제사장) 사이를 잇는 도구였다. ‘帝’(제)가 그런 역할의 상징이듯이. 파라오의 거대한 ‘힘’은 나일강 유역의 수많은 유적에서 오늘도 인류에게 증언한다. 특히 우리에게도 친근한 이름인 람세스 2세의 존재감은 상상을 넘는다.

짐(朕)은 王(왕)이나 帝(제)와 비길 만큼 역사 오랜 글자다. 작은 배 모양의 글자 ‘주’(舟)의 갑골문 옆에 뾰족한 막대기를 두 손에 들고 있는 그림이 어원이다. 그 시대, 배에서 물이 새는지 그렇지 않는지의 여부는 지금보다 더 중요하고 민감한 생사의 문제였겠다. 배의 틈새를 점검하는 손을 진시황은 자처(自處)했었던가 보다. ‘짐’이 황제가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 된 연원이다.

그는 자기 아래의 제후국 왕들에게 ‘짐’을 못쓰게 했을까? 그들은 그 말 대신 ‘부족한 사람’이라는 ‘과인’(寡人)을 썼다. 이런 이름들은 복식(服飾) 즉 의복이나 장신구의 규정처럼 권력과 계급의 표현이었다. 의전(儀典)의 이런 개념은 현대에도 엄연하게 활용된다. 이 이름은 우리 역사에서도 이렇게 쓰였다. 두산백과 해설의 인용이다.

“고려 태조 때부터 임금이 스스로를 ‘짐’이라 했으나 원(元)의 간섭을 받기 시작한 충렬왕 때부터 ‘고’(孤·외롭다는 뜻)를 썼다. 조선 때는 ‘과인’이라고 하다가 1897년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쳐 중국과 종속관계를 끊고 황제에 오르면서 ‘짐’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주상(主上) 성상(聖上) 지존(至尊) 상감(上監) 등은 임금의 절대적인 지위를 반영한 명칭이다. 삼국시대 초까지는 왕을 일컫는 여러 (고유) 이름이 있었으나 한자가 유입되면서 점차 중국의 직명을 따르게 됐다.

군주(君主)는 국가의 세습적인 지배자로서 왕, 여왕, 황제, 천자, 원수(元首) 등의 이름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영어 모나크(monarch)의 짝이다. 이런 이름들, 현대의 우리에게는 없는 시스템이지만 역사를 이해하는 열쇠 어휘들이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kangshbada@naver.com

■ 사족(蛇足)

의학용어의 제왕절개수술(Caesarean operation)에는 왜 황제나 국왕의 이름인 ‘제왕’이 들어있을까? 이 수술은 어머니 몸의 배를 가르고 인공적으로 태아(胎兒)를 꺼내는 수술이다. 출산에 이르러 산모와 태아의 생명에 위험이 있는 경우에 시행하는데, 고대 로마의 황제 시저(Caesar)가 이렇게 하여 태어났다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왕(王) 제(帝) 짐(朕)의 옛 글자들. (그림)문자의 상징성이 뜻을 만들었음을 느끼게 한다. 이락의 ‘한자정해’ 삽화 인용.

황제라는 뜻의 서양 단어에는 Kaiser[카이저/독일], CzarTsar(차르/러시아), Caesar(카에사르/라틴어)처럼 시저의 이름을 연상할 수 있는 명칭들이 있다. 영어 엠퍼러(emperor)는 옛 로마제국 최고 권력자의 명칭 imperator(‘명령하다’라는 라틴어 imperare와 연관)에서 왔다. 시저라는 인물의 직함(職銜)도, 개인의 이름도 모두 ‘황제’라는 뜻의 단어가 된 경우다.

이름의 유래나 연원(淵源)은 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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