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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동학혁명은 1,2차 세계대전의 신호탄!

by 바로요거 2013. 3. 26.

갑오동학혁명은 1,2차 세계대전의 신호탄!

 

동학경전을 보면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 있다. 무엇보다도 천상문답(天上問答)사건의 중심에 상제님이 자리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안심가」(安心歌)는 최수운(崔水雲, 1824~1864) 대신사의 도통체험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동학의 깨달음을 새로운 차원에서 음미케 한다. 이 글에서는 수운가사(水雲歌辭) 중 특히 「안심가」에 초점을 맞추어 「안심가」가 전해주는 동학의 근본 메시지를 알아보고, 갑오동학혁명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안심가」를 올바로 이해함으로써 진리의 근본 명제를 밝혀보도록 한다.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보냐
 

「안심가」에는 수운 대신사의 도통체험이 매우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어 그의 깨달음의 실상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무정세월 여류파라 칠팔삭 지내나니 사월이라 초오일에 꿈일런가 잠일런가 천지가 아득해서 정신수습 못 할러라 공중에서 웨는 소리 천지가 진동할 때 집안사람 거동 보소 경황실색 하는 말이 애고 애고 내 팔자야 무슨 일로 이러한고 애고 애고 사람들아 약도 사 못해볼까
침침칠야 검은 밤에 눌로 대해 이말 할고 경황실색 우는 자식 구석마다 끼어있고 댁의 거동 볼작시면 자방머리 행주치마 엎어지며 자빠지며 종종걸음 한참할 때 공중에서 웨는 소리 물구물공 하였어라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보냐  
 
십이제국 다 버리고 아국운수 먼저 하네 그럭저럭 창황실색 정신수습 되었더라 그럭저럭 장등달아 백지펴라 분부하네 창황실색 할길 없어 백지펴고 붓을 드니 생전 못본 물형부가 종이위에 완연터라 (『용담유사』 「안심가」)

 

뜻밖에도 4월에 마음에 한기가 들고 몸이 전율하여 ... 말로 형언할수 없는 즈음에 어떠한 신선의 말이 홀연히 귀속에 ... 놀라 일어나 캐어 물은대, “무서워 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라. 세상사람들이 나를 상제라 일컫는다.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셨다.(동경대전 포덕문)

 

주문을 받으라. 대도를 펴라.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 ……너에게 무궁한 도를 가르쳐 주노니 이 가르침을 닦고 글을 지어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법을 세워 온 세상에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케하여 세상에 빛나게 하리라. (동경대전 논학문)  
 
 이 수운가사(水雲歌辭)의 내용을 보면 수운 대신사가 상제님과 문답을 하는 과정에서 그 기운을 감당키가 굉장히 버거웠음을 알 수 있다.. 수운 대신사에게 ‘천명’(天命)을 내리시는 상제님은 「안심가」에서 “물구물공하였어라.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보냐”라고 말씀하신다. 『동경대전』의 「포덕문」에서도, “물구물공(勿懼勿恐)하라. 세인(世人)이 위아상제(謂我上帝)어늘 여부지상제야(汝不知上帝也)”라고 말씀하시며, “두려워하지 마라, 겁내지 말라”고 수운 대신사를 달래시는 대목이 등장한다.
 
 그리고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라 하는데,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라고 반문하고 계신다. 이 두 문구를 음미해보면, 상제님이 호천금궐(昊天金闕)에서 우주를 통치하시는 최고인격신으로 존재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다. 수운가사의 총 9편의 가사 중 상제님에 대한 호칭은 「안심가」에 2회, 「도덕가」에 1회 등장한다. 그리고 ‘상제님’의 다른 표현인 ‘하날님’도 다른 가사보다 월등하게 많은 12회에 걸쳐 나오는 것을 보면, 「안심가」의 주제가 수운 대신사의 ‘상제님 체험’임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수운 대신사가 전하는 동학사상은 한마디로 시천주주(侍天主呪)의 본주문인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교훈가」에서 상제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모실 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하염없는 이것들아 날로 믿고 그러하냐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하날님을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 하단 말가 나 역시 바라기는 하날님만 전혀 믿고 (『용담유사』 「교훈가」)
 
동학의 근본주제가 ‘시천주’(侍天主)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갑오동학혁명의 사상적 동력이 된 ‘안심가’(安心歌)
 

그런데 상제님께서는 동학 왜곡의 중심에 「안심가」가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동학(東學)신도들이 안심가(安心歌)를 잘못 해석하여 난을 지었느니라. (道典 5:4)
 
그러면 도대체 동학신도들은 안심가를 어떻게 잘못 해석했다는 말인가? 이제 그 실마리를 더듬어 보자.
 
개 같은 왜적놈이 전세임진 왔다 가서 술 싼일 못 했다고 쇠 술로 안 먹는 줄 세상 사람 누가 알까 그 역시 원수로다 (『용담유사』 「안심가」)
 
내가 또한 신선되어 비상천 한다해도 개 같은 왜적놈을 하날님께 조화받아 일야간에 소멸하여 전지무궁 하여놓고 (『용담유사』 「안심가」)
 
 
위의 두 단락에는 일본에 대한 수운 대신사의 분노와 적개심이 매우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개 같은 왜적놈을 하날님의 조화권능으로 일야간에 소멸한다’는 것보다 더 강력한 ‘항일’(抗日)의 표현이 있을까? 「안심가」가 동학(東學) 신도들에게 대단히 강력한 ‘척왜(斥倭)의 논리’로 전달되었음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당시 조선은 청·일 상인들의 조선 내지(內地)에서의 상업활동으로 인해 심각한 무역 불균형에 직면하였다. 특히 일본으로의 미곡 대량유출은 조선민중의 생존을 크게 위협하였다. 신흥자본주의 국가 일본에게 있어 조선은 값싼 농산물의 수출국으로 일본의 곡물시장을 안정시키고 저임금 노동체계를 뒷받침하는 후진적 농업국가에 불과했다.
 
 곡물의 해외유출은 쌀값 폭등과 기아의 고통을 민중에게 안겨주었다. 그리하여 조선의 관료체제는 지방과 중앙 차원에서 ‘방곡령’을 시행하기에 이른다. 이 ‘방곡’(防穀)은 체제유지를 위해 행해지기도 했지만 시세차익을 노린 탐관오리에 의해서도 자행되었다. ‘일제’와 ‘부패관료·대지주층’의 탐욕은 조선민중의 고통을 외면하였다.
 
 이러한 시운을 당하여 갑오동학혁명은 민중이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안심가」구절 중 ‘일본’에 대한 멸시와 적대의 표현은 일제의 경제적 수탈에 신음하던 민중에게 힘과 용기, 그리고 저항의 논리를 새롭게 제기했으리라 보여진다.


 
 역사의 물꼬를 새롭게 튼, 갑오동학혁명
 

안으로는 양반 지주와 관료의 착취, 밖으로는 일본·청 등의 2류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침탈에 신음하던 민중들은, 급기야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을 맞아 분연히 일어섰다. 이름하여 ‘고부민중봉기’다. 고부봉기 후 민중의 분노는 좀 가라앉는 듯이 보였지만 부패하고 잔인한 관료, 이용태의 동학교도 대탄압은 민중들의 저항의 불꽃을 다시 지폈다. 그리하여 본격적인 갑오동학혁명의 불꽃이 타오른다. 이것이 무장기포(茂長, 1차 기포)다. 
 

한편 전주화약 이후 일본군이 경복궁을 강점하고 조선의 국권을 흔들자, 전명숙 장군은 삼례기포(參禮, 2차 기포)를 통해 ‘항일(抗日)봉기’를 공식적으로 천명한다. 당시 『전봉준 공초』를 읽어보면, 일본의 경복궁 강점이 2차 기포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조선의 체제개혁’과 ‘척왜’(斥倭)가 삼례기포의 대의였다.
 
바로 이 때 「안심가」가 동학 신도들의 반일(反日)의식을 고취하면서 참전을 촉구하는 사상적 동력(動力)으로 작용했으리라 보여진다. 항일 봉기로 일컬어지는 2차 기포 시, 상제님은 동학도(東學徒)들에게 참전하지 말 것을 종용하셨다. 이는 무장(茂長, 1차) 기포 때 역사의 물꼬를 새롭게 트는 천하대란의 동세(動世)가 이미 현실화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상제님의 천지공사의 틀대로 판세가 기운 상황에서 민중의 참화를 더 이상 원치 않으셨던 상제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인류사, 우주사의 근본 명제 : 상제님 절대 신앙
 

갑오동학혁명을 흔히 ‘미완의 혁명’이라 말한다. 아직 이루지 못한 역사의 과제이기에 이 혁명은 우리에게 항상 긴 여운과 함께 새로운 역사의식의 원천이 되고 있다. “동학(東學)신도들이 안심가(安心歌)를 잘못 해석하여 난을 지었다”(道典 5:4)는 상제님 말씀은 동학혁명의 진정한 뜻을 바르게 알고 체화(體化)하여 상제님이 언제나 삶의 중심에 자리해야 함을 강조한 ‘신앙의 화두’가 깃들어 있다.
 
당시 민중들의 현실을 감안할 때, 죽창을 들고 보국안민의 대의를 천명한 것은 그 자체로서도 크나큰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상제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모시고 위하는 삶을 통해서만 조화세계를 열 수 있다”(侍天主造化定)는 동학의 순수한 참뜻을 망각한 것이 패망(敗亡)의 주된 요인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계신 것이 아닐까?
 
선천과 후천의 시명(時命: 시대정신)이 뒤바뀌는 개벽의 시운을 맞아 “상제님을 모시고 조화를 정한다”는 동학의 본래 메시지는, 수운 대신사의 깨달음의 한계와 이후 최시형·손병희의 상제님에 대한 체험과 깨달음의 빈곤, 그리고 시대적 상황의 제약 등으로 인해 양천주(養天主), 인내천(人乃天) 등으로 ‘구원관’이 변질되기에 이른다.
 
“안심가를 잘못 해석했다”는 상제님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시천주(侍天主)의 깨어진 ‘절대신앙’만이 인사(人事)의 성공을 가져온다”는 진리의 명제가 새삼 가슴을 친다.
 

 

천하의 난을 불러일으킨 갑오동학혁명


우리의 근대 역사에서 식을 줄 모르는 뜨거운 담론, 갑오동학혁명! 그 중심에 한 인물이 우뚝 서있다. 1871년 동서 문화가 본격적으로 하나 되고 개벽의 시운으로 성큼성큼 다가서는 위난을 맞아 역사적 인물이자, 우주의 주재자로서 조선에 강세한 강증산(姜甑山, 1871~1909) 상제님!
 

상제님은 갑오동학혁명을 새 역사의 문을 연 세계사적 사건으로 그 위상을 새롭게 밝혀 주셨다. 이 글에서는 갑오동학혁명으로 촉발된 제국주의 전쟁의 역사가 어떻게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사상초유의 대전란을 야기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상제님 천지공사의 참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갑오동학혁명과 청일전쟁
 

19세기말, 조선은 내우외환의 위난에 직면하였다. 안으로는 관료사회의 부패와 부의 독점이 뚜렷해졌고, 밖으로는 일본·청 등 2류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경제적 수탈이 가중되었다. 이러한 때 전명숙(全明淑, 1854~1895) 장군은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건지겠다는 대의를 갖고 갑오(1894)년에 분연히 일어섰다. 바야흐로 제국주의 종말의 서막이자, 역사의 대지진으로서의 ‘갑오동학혁명’이 발발한 것이다. 
 
전명숙은 만고의 명장이니라. 벼슬 없는 가난한 선비로 일어나 천하의 난을 동(動)케 한 자는 만고에 오직 전명숙 한 사람뿐이니라. (道典 4:11)
전명숙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2:31:4)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3:31:5)

 

나는 정세를 맡았노라

황제(黃帝)가 난(亂)을 지으므로 치우(蚩尤)가 큰 안개를 지어 이를 평정하였나니
난을 지은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느니라.
최수운은 동세(動世)를 맡았고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나니
전명숙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수운가사는 수운이 노래한 것이나, 나의 일을 노래한 것이니라.
일부가 내 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

 

우리 일은 남 잘되게 하는 공부


우리 일은 남 잘되게 하는 공부니 남이 잘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우리 일은 되느니라.
전명숙(全明淑)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되어 조선 명부대왕(冥府大王)이 되었느니라.

동방 신교문화의 두 성인, 신농씨와 태공의 은혜


신농씨(神農氏)가 농사짓는 법과 의술로 천하 만세를 윤택하게 하였고
태공(太公)이 병법과 정치로써 천하 만세에 은혜를 주었나니
이제 하늘과 땅이 성공하는 가을철을 당하여 천지의 모든 신명들이 그들을 높이 받드느니라.

 

만고명장 전명숙의 공덕


전명숙(全明淑)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건지고 상민(常民)들의 천한 신분을 풀어 주고자 하여 모든 신명들이 이를 가상히 여겼느니라. 전명숙은 만고(萬古)의 명장(名將)이니라.
벼슬 없는 가난한 선비로 일어나 천하의 난을 동(動)케 한 자는 만고에 오직 전명숙 한 사람뿐이니라.
세상 사람이 전명숙의 힘을 많이 입었나니 1결(結) 80냥 하는 세금을 30냥으로 감하게 한 자가 전명숙이로다.
언론이라도 그의 이름을 해하지 말라.

 

 

서양으로 넘어가는 동양을 붙들어 주심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동학(東學) 신도들이 안심가(安心歌)를 잘못 해석하여 난을 지었느니라.
일본 사람이 3백 년 동안 돈 모으는 공부와 총 쏘는 공부와 모든 부강지술(富强之術)을 배워 왔나니 너희들은 무엇을 배웠느냐. 일심(一心)으로 석 달을 못 배웠고 삼 년을 못 배웠나니 무엇으로 그들을 대항하리오.
그들 하나를 죽이면 너희들은 백이나 죽으리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

이제 최수운(崔水雲)을 일본 명부, 전명숙(全明淑)을 조선 명부, 김일부(金一夫)를 청국 명부, 이마두(利瑪竇)를 서양 명부로 정하여 각기 일을 맡겨 일령지하(一令之下)에 하룻저녁으로 대세를 돌려 잡으리라.
이제 동양의 형세가 누란(累卵)과 같이 위급하므로 내가 붙들지 않으면 영원히 서양으로 넘어가게 되리라.” 하시니라.

안심가를 잘못 해석하여. 「안심가」는 최수운이 지은 9편의 가사 가운데 하나다. 동학 신도들은 「안심가」의 “개 같은 왜적놈을 한울님께 조화 받아 일야 간에 소멸하고”라는 구절을 잘못 해석하여 그들의 손으로 일본을 물리친다고 생각했다.
천하사 일꾼의 심법 전수 공사

상제님께서 정읍 대흥리 경석의 집에 포정소를 정하시고 공사를 행하시는데
양지에 24방위 글자를 돌려 쓰시고 중앙에 血食千秋 道德君子 혈식천추 도덕군자 라 쓰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 그것은 그릇된 말이요, 24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진 것이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 도덕군자의 신명이 배질을 하고 전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이제 그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여 만인으로부터 추앙을 받으며 천추에 혈식을 끊임없이 받아 오게 되었는가.’를 물은즉 모두 ‘일심에 있다.’고 대답하니 그러므로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 하시고 모든 법을 행하신 후에 불사르시니라.

혈식천추 도덕군자. 예로부터 시조나 창업자, 인류를 위한 공렬(功烈)이 지극한 사람의 신위는 불천위(不遷位)라 하여 영원히 사당에서 모시도록 하였다. 불천위에는 날것을 제수로 올리는데 여기에서 ‘혈식군자’라는 말이 유래했다. 곧 모든 상제님 일꾼들은 혈심으로 일하여 천지와 더불어 영원히 공경받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되라는 말씀이다.

 

24방위에서 한꺼번에. 하늘과 땅은 만들어진 것도, 창조된 것도 아니다. 우주 조화정신의 본성(自性)으로부터 ‘문득 열린 것’이다. 즉 개벽된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주에는 자연 질서의 창조주 하느님이 아니라 우주 질서의 통치자 하느님, 개벽장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갑오동학혁명은 청·일 양국군의 조선출병을 불러왔다. 이 때 일본은 청국에게 조선의 내정개혁을 함께 할 것을 제의한다. 하지만 청국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결국 일본은 7월 23일, 경복궁을 불법 강점함으로써 조선에 친일내각을 수립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는 25일, 일본군은 풍도(인천 부근) 앞바다의 청국 함대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청일전쟁의 불을 당겼다. 육전에서는 성환전투를 전후로 일본군이 연승하였다. 이후 9월 들어 평양전투, 황해해전 등에서 청군이 계속 패함으로써 전쟁의 향방은 완전히 일본 쪽으로 기울고 만다.
 
결국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은 1895년 4월 17일, 일본과 ‘시모노세키조약’에 합의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상실하고 만다.
 
청일전쟁에서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일본이 서양 열강의 개입을 크게 우려했다는 점이다. 11월 10일자 일본군의 ‘출군훈령’(出軍訓令)을 보면, “비도를 동북으로부터 서남 즉 전라도 방면으로 구축하는 데 힘쓰도록 할 것, 만일 비도 등이 강원·함경 방면 즉 러시아 국경 근처로 도망하는 경우에는 뒤탈이 생길 염려가 적지 않으므로, 엄밀히 예방하도록 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일본이 서양 열강, 특히 러시아의 개입을 얼마나 경계했는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아무튼 일본군은 청일전쟁의 승기를 몰아 동학군을 학살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전명숙 장군을 중심으로 한 동학군은 결국 신무기를 갖춘 일본군에 의해 집단적인 학살을 당하고 말았다. 
 
 러시아의 패배와 동아시아 정세변화
 

청일전쟁의 승리로 랴오둥(요동) 반도를 얻는 듯했던 일본은, 전국이 애국주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일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해 만주와 조선에 지배권을 강화하던 러시아의 압력에 직면한다.

당시 제정 러시아의 실세인 재무장관 비테(Vitte, Sergei Yulievich, 1849~1915)는 일본의 랴오둥 반도의 점령이 러시아의 철도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뤼순항 점령은 전 조선은 물론, 중국의 황제를 일본의 천황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크게 우려하였다. 그리하여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과 더불어 ‘동양의 평화를 위해’ 랴오둥 반도를 청국에 되돌려 줄 것을 일본에 권고하였다.

 

개항 초기, 서양 열강과 전쟁을 벌인 바 있는 일본으로서는 이들 세 나라와 전쟁을 하여 승산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은 타이완을 얻었지만 랴오둥 반도를 상실하는 치욕을 맛본다. 한마디로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삼국간섭’은 일본의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을 크게 고양시켰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타이완 식민통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형 제국주의 세력권을 형성하였다. 특히 남중국과 동남아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한 것은 청일전쟁의 큰 수확이었다. 한편 일본은 청국의 배상금을 모두 신무기 개발 등 군비증강에 투자함으로써, 러시아와의 숙명의 한판 승부를 착실히 준비해 나갔다.
 
일본은 1904년 2월 8일, 인천과 뤼순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러·일 전쟁을 일으켰다. 랴오둥의 전략적 요충지인 뤼순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자 전쟁은 일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1905년 3월, 펑텐의 대전투에서 승리한 일본은 5월 28일, 쓰시마 해전에서도 승리함으로써 유럽의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세계열강들의 예상을 깨고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세계는 경악하였다. 러시아의 패배는 러시아 부르주아지의 허약성과 제국의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저임금과 기아의 고통에 신음하던 노동자·민중의 분노가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폭발하였다. 전쟁 중에 발생한 ‘제1차 러시아혁명’은 러시아의 실상을 낱낱이 폭로한 사건이었다.
 
일본은 미국의 중재로 러시아와의 ‘포츠머스 강화회의’를 통해 조선의 지배권을 확고히 함은 물론, 뤼순·다롄을 포함한 랴오둥 반도와 사할린의 남쪽 절반을 차지하였다. 만주침략의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좌절을 뜻함과 동시에 일본과 미국의 갈등을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유럽의 화약고 ‘발칸 반도’
 

러일전쟁에서의 러시아의 패배는, 유럽의 힘의 균형 상태에 균열을 일으켰다. 러시아의 후진성과 허약함이 드러나면서, 독일은 팽창정책에 대한 자신감을 한층 더 가질 수 있었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파업이 수그러들자 노동자·민중에 대한 차르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차르는 군대를 이용하여 혁명의 지도자들을 탄압하였다. 소비에트 의장 트로츠키를 비롯한 혁명 지도자들이 유형에 처해지거나 살해되었다. 1905년 혁명이 끝난 후, 스톨리핀(Pyotr Arkad’evich Stolypin, 1862~1911)은 혁명을 탄압하는 한편 자유주의적 개혁을 폭넓게 실시한다.

 

특히 1861년 농노해방 이후 농지자금대여법, 농민들의 토지소유를 허가하는 새로운 토지법을 제정함으로써 농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고자 했다. 사회주의 정당들이 의회에 진출하자 스톨리핀은 의회를 해산시켰다. 이와 같은 조치는 혁명세력을 크게 긴장시켰다. 하지만 스톨리핀이 1911년 암살당함에 따라 차르 정부는 개혁을 지속시키지 못한 채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이러한 때, 누구도 대전쟁이 발발하리라고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발칸 반도에서 벌어졌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다. 1차 대전의 격발지인 발칸 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라 불렸다. 발칸 반도는 인종·민족·종교 등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말미암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유럽의 두 강대국 독일과 러시아의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가 갈등의 두 축을 형성하였다. 1908년 오스만 제국에 혁명이 일어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강제 합병하였다.

 

결국 슬라브주의 국가인 불가리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리스가 ‘발칸 동맹’을 결성함으로써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이 발발한다. 오스만 제국은 패배하였고, 이들 국가들에게 많은 영토를 빼앗겼다.

 

헌데 불가리아가 너무 많은 영토를 획득했다고 판단한 발칸 동맹국들은 곧 오스만 제국과 힘을 합쳐 불가리아를 공격한다. 이것이 바로 제2차 발칸 전쟁(1913년)이다. 불가리아는 전쟁에서 패배한 후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접근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말미암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세르비아의 전쟁은 독일과 러시아의 전쟁으로 이어져 세계대전을 야기하였다.  
 
 
‘러시아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


1차 대전은 ‘산업전’이자 ‘총력전’으로, ‘대량살상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린 충격적 사건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 열강의 힘을 약화시키는 한편, 일본·미국 등의 새로운 강자를 역사에 등장시켰다. 그리고 러시아 제국에게는 재앙을 안겨주었다. 독일군의 공격에 서부공업지대를 상실한 러시아는, 물자부족으로 인한 노동자·농민의 불만에 직면하였다. 더군다나 빈농의 아들들인 병사들의 불만은 혁명의 실질적 토대가 되었다.
 

독일과 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1917년 2월 22일, 빵을 요구하던 부녀자들의 시위가 ‘제2차 혁명’의 불씨를 지폈다. 사회주의 세력과 병사들이 이 시위에 가담함으로써 ‘제2차 혁명’이 발발한다. 2월 혁명으로 말미암아 임시정부가 들어섰고, 10월 무장봉기로 레닌과 볼셰비키는 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제2차 러시아혁명’(레닌 주도의 볼셰비키혁명)은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의 대안으로서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즉 갑오동학혁명으로 촉발된 제국주의 전쟁은 러시아혁명(1917년)으로 이어져 ‘서양제국주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역사의 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러시아혁명’과 ‘혁명정권’의 수립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증오했던 제국주의 국가를 모델로 삼지 않더라도 근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이상을 품게 되었다. 한마디로 러시아 혁명정권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민족해방의 방법과 가능성을 새롭게 제기하였다.
 
 

러시아 혁명정부는 곧 독일과 강화를 성사시켰다. 이는 국내질서를 안정시키고 혁명을 추진하고자 하는 뜻을 품고 있었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미국이 참전하자 전세는 연합국 측으로 급격히 기운다. 1918년 8월 8일, 영국·프랑스·미국의 20개 사단은 아미앵 근방의 독일군 진지를 공격하였고, 이내 독일군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연합군은 전진을 계속했고, 독일군의 패배가 가시화됐다. 9월 30일 불가리아가 휴전협정에 조인했고, 이탈리아의 공격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휴전에 조인함으로써 제국은 해체되었다. 이에 따라 독일은 패전에 따른 위기가 찾아왔다. 11월 초 킬 지역의 해군 반란은 혁명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결국 11월 10일 빌헬름 2세가 네델란드로 망명함으로써 제국은 붕괴된다. 1918년 11월, 새롭게 수립된 공화국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1차 대전이 종식되었다. 
 
 민족자결권 : ‘인권’의 문제
 

1차 대전이 끝난 후 일어난 3.1(1919년)운동을 이야기 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의 ‘민족자결주의’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러시아혁명과도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필자는 ‘러시아혁명’을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바라볼 때만이, 20세기 역사를 올바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혁명으로 탄생한 레닌의 사회주의 정권은 무병합·무배상에 입각한 민주적 강화회담, 비밀외교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특히 러시아 혁명정부는 소수민족에 대한 자결권을 인정하여, 자국의 지배하에 있던 폴란드· 핀란드· 발트 3국의 독립을 배려하는 혁명적 조치를 단행한다.
 
한마디로 ‘러시아혁명’은 약소민족에게 새로운 희망의 새싹이자 민족해방운동의 분수령이 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바로 이러한 ‘러시아 사회주의혁명’의 도전에 대한 응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혁명 러시아의 수반,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1924)의 견해를 수용하였다. 또한 국제연맹이 약소민족의 권리를 점진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파리 강화회의 이후 윌슨의 ‘민족자결원칙’에 따라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등이 새롭게 독립을 이루었다. 이는 ‘러시아혁명’이 유럽에 미친 순기능이라 할 수 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미국의 이익과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기득권 유지라는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성을 지닌다.9)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당시 ‘민족자결권’이 ‘인권’의 문제로서 국제사회에 크게 이슈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상제님 ‘애기판(1차 대전) 도수’를 관통하는 핵심주제라 할 수 있다. 
 
그 당시 냉혹한 국제정세로 보았을 때, 러일전쟁은 분명 ‘한반도쟁탈전’이었으며 그것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제1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미니세계대전’2)이었다. 만약 이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했다면 한반도는 러시아의 수중에 떨어졌을 것이다. 러일전쟁 발발 직전 연해주의 총독 알렉세예프는 러시아 외무장관 람스도르프(1844~1907) 백작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낸다.
 
 “때가 되면 한반도가 러시아의 영토가 되게 돼 있습니다. … 우리로 하여금 한국에 침입하게 하는 힘은.....우랄 산맥에서 태평양으로 진출하게..........중앙아시아를 우리의 영토나 우리의 보호국으로 만들게..이제는 만주까지 뻗어나게 하기도 한 바로 그 힘입니다.”
 
상제님은 러시아가 한국을 집어삼켰을 때, 한민족이 혈통줄을 잃어버리고 영원히 서양제국주의의 발아래 놓이게 될 것을 크게 우려하셨다. 그리하여 차선책으로 동양 제국주의 국가 일본으로 하여금...........공사를 보신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악독했던 일본제국주의의 압제와 멸시 속에서 우리 민족은 극단적인 상극기운을 이겨내며 자주의식을 고양시켰다. 고통스러운 역사의 암흑기를 극복하면서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집념을 키워냈던 것이다.

 

서양으로 넘어가는 동양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동학(東學) 신도들이 안심가(安心歌)를 잘못 해석하여 난을 지었느니라.
일본 사람이 3백 년 동안 돈 모으는 공부와 총 쏘는 공부와 모든 부강지술(富强之術)을 배워 왔나니 너희들은 무엇을 배웠느냐. 일심(一心)으로 석 달을 못 배웠고 삼 년을 못 배웠나니 무엇으로 그들을 대항하리오.

그들 하나를 죽이면 너희들은 백이나 죽으리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

이제 최수운(崔水雲)을 일본 명부, 전명숙(全明淑)을 조선 명부, 김일부(金一夫)를 청국 명부, 이마두(利瑪竇)를 서양 명부로 정하여 각기 일을 맡겨 일령지하(一令之下)에 하룻저녁으로 대세를 돌려 잡으리라.

이제 동양의 형세가 누란(累卵)과 같이 위급하므로 내가 붙들지 않으면 영원히 서양으로 넘어가게 되리라.” 하시니라.

조선의 대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심

계묘(癸卯 : 道紀 33, 1903)년 3월에 상제님께서 대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병든 천지를 바로잡아야 하느니라. 조선의 대신명(大神明)을 서양으로 보내 큰 난리를 일으켜 선천의 악폐(惡弊)와 상극의 기세를 속히 거두어서 선경세계를 건설하리니 장차 동서양을 비빔밥 비비듯 하리라.” 하시니라.

성과 웅이 하나가 되어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성인의 바탕으로 닦고 일은 영웅의 도략을 취하라.
개벽의 운수는 크게 개혁하고 크게 건설하는 것이니 성과 웅이 하나가 되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관운장에게 세계 대전쟁의 천명을 내리심


4월에 신원일을 데리고 태인 관왕묘 제원(關王廟 祭員) 신경원(辛京元)의 집에 머무르실 때  하루는 원일, 경원과 함께 관왕묘에 가시어 관운장(關雲長)에게 천명을 내리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공대를 받았으니 그 보답으로 당연히 공사에 진력 협조함이 옳으리라.” 하시고
양지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며 관운장을 초혼하시니 경원은 처음 보는 일이므로 이상히 생각하니라.
이 때 자못 엄숙한 가운데 상제님께서 세계대세의 위급함을 설하시고 서양에 가서 대전쟁을 일으키라는 천명을 내리시거늘 ...................네가 언제까지 옥경삼문(玉京三門)의 수문장 노릇이나 하려느냐!” 하고 엄중히 꾸짖으시니라.

 
여기서 무슨 제사를 지내느냐

그 뒤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김성연(金成淵)과 함께 말을 타고 관왕묘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관운장을 서양으로 보냈는데 여기서 무슨 제사를 지내느냐.” 하시고 성냥을 그어 관왕묘에 불을 지르려 하시다가 성연의 간곡한 만류로 그만두시니라.

태인 관왕묘.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 항가산에 있었으나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1891년에 전(前) 참봉 송석진의 꿈에 백마를 탄 관운장이 며칠 동안 나타나, 그가 살고 있는 집을 가리키며 “이 자리에 있고 싶다.” 하여 창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자묘를 문묘(文廟)라 하는 데 비해 관성제군의 묘는 무묘(武廟)라 한다.

 

관운장은 의리와 용맹의 표상으로 그의 대인대의(大仁大義)를 기려 역대 왕조에서 거룩할 성(聖), 임금 제(帝), 임금 군(君) 자(字)를 놓아 성제군(聖帝君)으로 추앙해 왔다. 우리 민족이 관운장을 경애하여 잘 받들어 주어 관운장이 삼보조선(三保朝鮮)한다는 말이 전해 온다.

 

신도의 병마대권자 관성제군

관운장(關雲長)은 병마대권(兵馬大權)을 맡아 성제군(聖帝君)의 열(列)에 서게 되었나니 운장이 오늘과 같이 된 것은 재주와 지략 때문이 아니요 오직 의리 때문이니라.
 
천지에서 으뜸가는 보배, 의로움

천지간에 의로움보다 더 크고 중한 것은 없느니라. 하늘이 하지 못할 바가 없지마는 오직 의로운 사람에게만은 못 하는 바가 있느니라. 사람이 의로운 말을 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면 천지도 감동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천지의 모든 보배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의로움을 가장 으뜸가는 보배로 삼느니라.
나는 추상 같은 절개와 태양같이 뜨거운 충의(忠義)를 사랑하노라. (道典 4편 15장)

 


 
 
 ‘약자’의 자율적 삶이 보장되는 ‘우주조화정치’를 열망한다
 

 

상제님은, 씨름판에 비유해 애기판(1차 대전),총각판(2차 대전),상씨름(앞으로 있을 3차 대전)이라 하셨는데 1차 대전(애기판)를 통해 동양을 집어삼키려는 서양 열강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그리하여 1차 대전을 통해 일본은 산동성의 독일 조차지를 확보하는 등, 한층 더 강력한 제국주의의 길로 들어선다. 결국 일본의 침략열은 2차 대전(총각판)으로 이어지는데, 2차 대전은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힘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창조적 파괴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갑오동학혁명과 1차 대전의 공사정신은 과연 무엇인가?
 
애기판(1차 대전) 전쟁의 참뜻은, 먼저 상제님의 세계일가통일공사가 인사(人事: 인간역사)로 현실화되어 ‘국제연맹’이 결성되었다는 면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국제연맹은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한 ‘전 지구적인 협의·의결 기구의 맹아’로서 국제연합의 모태가 된다.
 
갑오동학혁명과 1차 대전, 즉 ‘애기판 도수’를 통해 상제님이 인류에게 가르쳐 주고자 한 역사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한마디로 약자(사회적 약자, 약소민족 등)의 자율적 삶을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영구평화의 길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공사라 말할 수 있다. 약자를 배려하며 공생하는 길만이 평화의 원동력임을 보여주고 계신다.
 
 
 앞세상에는 족속에 따라 나라를 세우리라. (道典 5:332)
 천하를 공평하게 하려는 생각을 가져야 신명의 감화를 받고 모든 일에 성공이 있느니라. (8:93)
 




지금부터 98년 전 동방의 땅 한반도에 참하나님이신 증산 상제님께서 다녀가셨다. 『도전』은 기존의 불경이나 성경 등에서 장차 오신다고 전한 우주의 주재자 참하나님이신 증산 상제님과 상제님의 종통을 계승하신 태모 고수부님의 성언(聖言)과 성적(聖蹟)을 기록한 하나님의 책이다.


 
 <참고도서>
 임영태 저, 『인류이야기 현대편 1』, 아이필드, 2004년
 크리스 월리스, 정성묵 옮김, 『대통령의 위기』, 이가서, 2005년
 미셸린 이샤이 저, 조효제 옮김, 『세계인권사상사』, 도서출판 길, 2006년
 배기찬,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 위즈덤하우스, 2005년
 나카츠카 아키라 저, 박맹수 옮김,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푸른역사, 2002년

 
 
 <참고도서>
 최제우 저, 윤석산 주해, 『용담유사』, 동학사, 1999.
 최제우 저, 윤석산 주해, 『동경대전』, 동학사, 1998.
 최제우 저, 세종출판기획 편집, 『용담유사』, 대원출판, 2000.
 최효식 저, 「水雲 崔濟愚 연구」, 『한국향토사연구』, 2002.
 하원호 저, 「곡물의 대일수출과 농민층의 저항」,
  『1894년 농민전쟁연구 1』,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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