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한민족 역사문화/환단고기*韓의뿌리

★환단고기가 전하는 한민족 역사의 진실들

by 바로요거 2013. 1. 19.

★桓檀古記에서만 전해주는 새로운 역사의 진실들

 

환단고기에서만 전해주는 새로운 한민족 역사의 진실이 있습니다.

본문 내용은 <환단고기 역주본>을 통해서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환단고기 역주본 및 환단고기 보급판 안내 및 구입문의

http://blog.daum.net/ilsimsycheonzoo/15977040

베일에 가려진 한민족의 뿌리역사와 정신문화의 실체, 환단고기 역주본을 통해서 모든 비밀을 명쾌하게 풀 수 있습니다~★

 

1. 桓國의 위치

 

① 『고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파내류산 아래에 환인씨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의 동쪽 땅을 또한 파내류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으로 5만 리요, 동서로 2만여 리이니 통틀어 환국이라 하였다(『삼성기』하).

② 『삼성밀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파내류산 아래에 환인씨의 나라가 있다. 천해 동쪽 땅을 또한 파내류국이라 부르는데 그 땅의 넓이가 남북으로 5만 리요, 동서가 2만여 리이다. 이 땅을 모두 합하여 말하면 환국이요, 나누어 말하면 열두 나라이다(『태백일사』「환국본기」).

 

2. 9환족(九桓族)

 

천해와 금악산과 삼위산, 태백산은 본래부터 9환족에 속하니 9황 64민은 모두 나반과 아만의 후손들이다. ~환인의 형제 아홉 분이 나라를 나눠 다스렸다. 이로써 9황 64민이 되었다. ~왕검께서 나면서부터 지극히 신령하고 성덕을 겸하여 원만하셨다. 구환족을 통합하여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구환족을 분류하면 5색 종족이 된다(『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

 

3. 『고려팔관기』에 기록되어 있는 三神設

 

『고려팔관기』의 三神設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상계 주신의 이름은 천일(天一)이니 조화를 주관하시고... 하계 주신의 이름은 지일(地一)이니 교화를 주관하시고... 중계 주신의 이름은 태일(太一)이니 치화를 주관하시니... 그러나 주체는 한 분 상제님이시니 각기 따로 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용으로 보면 삼신이다(『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

 

4. 환(桓), 단(檀), 한(韓)의 의미

 

하늘에서 내려오는 광명을 桓이라 하고, 땅의 광명을 檀이라 한다. 이른바 桓은 곧 구황(九皇)을 말하는 것이다. 韓은 또 크다는 뜻이다(『태백일사』「신시본기」).

*韓: 천지 광명(桓檀)의 주인으로서, 천지 역사의 주체이자 세계문명의 주체가 된다. 그러므로 韓에는 시작, 근본, 통일, 천자, 중심, 세계의 광명이라는 다양한 뜻이 있다.

 

5. 배달국 18세 천황의 이름과 통치기간

 

倍達은 桓雄이 定有天下之號也니 其所都는 曰神市오 後에 徙靑邱國하니 傳十八世하야 歷年一千五百六十五年이라.

一世曰桓雄天皇이시니 一云居發桓이시며 在位九十四年이시오 壽는 一百二十世시니라.

......(중략).....<환단고기 역주본>을 참고하세요~~

十四世曰慈烏支桓雄이시니 世稱蚩尤天王이시오 徙都靑邱國하사 在位一百九年이시오 壽는 一百五十一世시니라.

.....(중략).....<환단고기 역주본>을 참고하세요~~

「신시역대기」참조(『삼성기』하).

 

6. 치우천황은 배달국 14세 자오지 환웅

 

치우는 배달국 14세 자오지 환웅이다(『삼성기』하 신시역대기). 다시 몇 세를 내려와 14세 자오지 환웅이 계셨는데... 세상에서는 이분을 치우천황이라 불렀는데, 속언에 치우는 ‘뇌우가 크게 일어 산하가 뒤바뀐다.’는 뜻이다(『삼성기』하).

 

7. 배달국의 천도

 

배달국의 첫 수도는 신시오, 후에 청구국으로 천도하였다(『삼성기』하).

 

8. 태호복희는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

 

환웅천황으로부터 5세를 내려와 태우의 환웅이 계셨다... 태우의 환웅의 아들이 열두 명 있었는데 맏이는 다의발 환웅이요, 막내는 태호이니 복희라고도 불렀다. 태호복희씨는 어느 날 삼신이 성령을 내려 주는 꿈을 꾸고 천지만물의 근본 이치를 환히 꿰뚫어 보게 되었다. 이에 삼신산으로 가서 하늘에 제사 지내고 천하에서 괘도를 얻었다... 『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복희는 배달국 신시에서 출생하여 우사의 직책을 세습하였다. 후에 청구, 낙랑을 지나 진 땅에 이주하여 수인, 유소와 함께 서쪽 땅에서 나라를 세웠다... 『대변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복희는 신시에서 출생하여 우사의 관직을 맡았다. 신룡의 변화를 관찰하여 괘도를 만들고 신시 시대의 계해를 고쳐 갑자의 첫머리로 삼으셨다... 복희씨의 능이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 부산 남쪽에 있다(『태백일사』「신시본기」).

 

9. 환역(桓易)

 

환역은 관원인 우사(雨師)에게서 나왔다. 당시에 복희께서 우사가 되어 육축을 기르셨다. 이 때에 신룡이 태양을 따라 하루에 열두 번 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환역을 지으셨다. 桓은 희(羲)와 같은 뜻이요, 易은 옛적에 쓰인 용(龍) 자의 원 글자이다. 환역은 체원용방(體圓用方) 즉 둥근 하늘을 창조의 본체로 하고 땅을 변화의 작용으로 하여 모습이 없는 것에서 우주의 실상을 아는 것이니 이것이 하늘의 이치이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10. 상고시대 책력, 칠회제신력

-이것이 오늘날 요일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다.

 

① 신시시대에 칠회제신력이 있었다. 첫째 날에 천신에게, 둘째 날에 월신에게, 셋째 날에 수신, 넷째 날에 화신, 다섯째 날에 목신, 여섯째 날에 금신, 일곱째 날에 토신에게 제사 지냈다 하니 책력을 짓는 방법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태백일사』「신시본기」).

② 마침 이때 자부 선생이 칠회제신력을 만들고 『삼황내문』을 천황께 바쳤다(『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③ 가을 10월에 명을 내려 칠회력을 백성에게 널리 반포하셨다(『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④ 자부 선생은 발귀리의 후손이다. 태어나면서 신명하여 도를 통해 신선이 되어 승천하였다. 일찍이 일월의 운행 경로와 그 운행도수를 측정하고 오행의 수리를 추정하여 「칠정운천도」를 지으니 이것이 칠성력의 기원이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서울 환단고기 세미나 일정 및 신청 자세히 보기

http://blog.naver.com/greatcorea10/130155925550  

환단고기 역사세미나에 참석하시는 분께 <환단고기 역주본 관련 소책자> 무료로 드립니다.

그리고 세미나 3회 이상 참석하시는 분께는 <환단고기 역주본 특별보급판>을 무료로 드립니다.

 

11. 고조선의 수도 이름과 위치

 

『신지비사』에서 저울대 부소량이라 함은 진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이곳은 바로 단군의 고조선이 도읍한 아사달이며 지금의 송화강 하얼빈이다. 저울추 오덕지라 함은 번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이곳은 지금의 개평부 동북쪽 70리에 있는 탕지보이다. 저울판 백아강이라 함은 마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지금의 대동강으로 마한의 웅백다가 하늘에 제사 지내던 마한산이 바로 그곳이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12. 『천부경』과『삼일신고』

 

① 그 옛날 배달국 때의 인문교화가 근세에 와서는 비록 행해지지 못하고 있으나 『천부경』과『삼일신고』가 후세까지 전해져 온 나라의 남녀가 모두 은연중에 믿고 받들었다(『태백일사』「신시본기」).

② 병진년(기원전 2225년)에 삼일신고비를 새겨서 남산에 세웠다(『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③ 『천부경』은 천제 환인의 환국 때부터 구전되어 온 글이다. 환웅 대성존께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내려오신 뒤에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이를 녹도문으로 기록하게 명하셨는데 고운 최치원이 일찍이 신지의 전고비(篆古碑)를 보고 다시 첩(帖)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하였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④ 『삼일신고』는 본래 개천 시대에 세상에 나왔고 그 때에 글로 지어진 것이니라. 집일함삼과 회삼귀일이 뜻을 근본 정신으로 삼고 다섯 장으로 나누어 천신과 조화의 근원, 세계와 인물의 조화에 대해 상세히 논하고 있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⑤ 최치원이 일찍이 신지가 옛 비문에 새겨 놓은 『천부경』을 얻어서 첩으로 세상에 전했다. 바로 낭하리 바위 위에 새겨져 있는 글자와 함께 모두 실제 자취이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⑥ 『삼일신고』는 옛 판본에서 장이 나뉘어져 있지 않았다. 행촌 선생이 처음으로 장을 나누었는데 1장은 허공, 2장은 일신, 3장은 천궁, 4장은 세계, 5장은 인물이라 하였다. 『삼일신고』의 ‘5대 종지’도 『천부경』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삼일신고』의 궁극적 정신 역시 『천부경』의 중일정신의 이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⑦ 세상에서 전하기를 『참전계경』은 을파소 선생이 전한 것이라 한다. 선생이 일찍이 백운산에 들어가 하늘에 기도하다가 천서를 얻었는데 이것이 『참전계경』이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13.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

 

① 이에 앞서 왕검께서는 천하의 땅을 일정한 지역으로 경계를 정해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리셨다. 모두 5가 64족이었다(『단군세기』1세 단군조).

② 단군왕검께서 천하를 평정하시고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릴 때 웅백다를 마한의 왕으로 임명하셨다(『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③ 5월에 제도를 고쳐 삼한을 삼조선이라 하셨는데 조선은 관경을 말한다(『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④ 三韓이라는 말에는 ‘조정을 나누어 통치한다’는 뜻이 있고 삼조선은 ‘권력을 나누어 통치하는 제도를 둔다’는 말이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14. 고조선의 영역

 

국경을 살펴 정하시니 유주, 영주 두 주가 모두 우리 영토에 귀속되고 회수와 태산 지역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를 두어 다스리셨다. 이때 우순을 시켜 그 일을 감독하게 하셨다(『단군세기』1세 단군 조).

 

15. 어아가(於阿歌)

 

신시 개천 이래로 매년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나라에 큰 축제를 열어 모두 삼신상제님의 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화합하였다. <어아>를 노래하며 감사를 근본으로 하여 하늘의 신명과 인간을 조화시키니 사방에서 모두 이를 본받았다. 이것이 「참전계」가 되었는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단군세기』).

 

16. 가림토 / 가림다 문자

 

① 3세 가륵단군이 을보륵으로 하여금 가림토 문자를 짓게 하였다. 이것이 한글의 기원이다(『단군세기』).

② 고려 광종 때는 장유가 접반사로 명성이 나 있었는데 초기에 난을 피해 오, 월에 가 있었다. 월나라 사람 중에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자가 있어 우리 동국의 <한송정곡>을 거문고 밑에 새겼던 글은 옛날의 가림다 종류인 것 같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17. 흉노족의 시조

 

재위 6년에 임금께서 열양 욕살 삭정을 약수지방에 유배시켜 종신토록 감옥에 가두셨다. 후에 용서하여 그 땅에 봉하시니 흉노의 시조가 되었다(『단군세기』 3세 단군 조).

 

18. 몽골 시조 임명

 

오사구 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신년이다. 임금께서 아우 오사달을 몽골리한으로 봉하셨다. 혹자는 지금의 몽골족이 그 후손이라 말한다(『단군세기』 4세 단군 조).

 

19. 국선소도의 유래

 

① 11세 도해 단군 재위 원년에 오가에게 명하여 12명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을 택해 국선소도를 설치하게 하였다. 그 둘레에 박달나무를 많이 심고 가장 큰 나무를 택하여 환웅상으로 모시고 이름을 웅상이라 하였다(『단군세기』).

② 삼한의 옛 풍속이 10월 상일에는 모두 나라의 큰 축제에 참여하였다. 이때 둥근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 지냈는데, 땅에 대한 제사는 네모진 언덕에서 지냈고 조상에 대한 제사는 각목에서 지냈다. 산상과 웅상은 모두 이러한 풍속으로 전해 오는 전통이다. ~소도에서 올리는 제천행사는 바로 구려 교화의 근본이 되었다. ~이에 온 나라에서 이 소도제천 예식을 숭상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

 

20. 고조선이 하나라 멸망과 은나라 건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줌

 

13세 흘달 단군 재위 16년(기원전 1767)에 하나라 임금 걸왕이 구원을 청함에 읍차 말량에게 구환의 병사를 이끌고 전투를 돕게 하였다. 이에 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므로 군사를 되돌리라 명했다. 이때 걸이 약속을 어기고 군사를 보내어 길을 막고 맹약을 깨뜨리려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은나라 사람과 함께 걸을 치는 한편, 비밀히 신지 우량을 보내 견군을 이끌고 낙랑의 군사와 합세하여 관중의 빈, 기 땅을 점령하여 주둔시키고 관제를 설치하였다(『단군세기』).

 

 

★서울 환단고기 세미나 일정 및 신청 자세히 보기

http://blog.naver.com/greatcorea10/130155925550  

환단고기 역사세미나에 참석하시는 분께 <환단고기 역주본 관련 소책자> 무료로 드립니다.

그리고 세미나 3회 이상 참석하시는 분께는 <환단고기 역주본 특별보급판>을 무료로 드립니다.

 

21. 화랑의 유래, 국자랑

 

13세 흘달 단군 재위 20년 무술년에 소도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를 심었다. 미혼 자제들에게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하고 이들을 국자랑이라 불렀다. 국자랑이 밖에 다닐 때에는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천지화랑이라 불렀다(『단군세기』).

 

22. 지명으로서의 영고탑(寧古塔)

 

① 재위 28년에 임금께서 구환족의 모든 왕을 영고탑에 모이게 하시어 삼신상제님께 제사 지낼 때 환인천제, 환웅천황, 치우천황과 단군왕검을 배향하셨다(『단군세기』 16세 단군 조).

② 재위 36년에 영고탑을 개축하고 별궁을 지었다(『단군세기』 20세 단군 조).

③ 재위 6년에 신지 육우가 주청하기를 “아사달은 천 년 제업의 땅이나 대운이 이미 다했고 영고탑은 왕기가 농후하여 백악산보다 나으니 청하옵건대 그곳에 성을 쌓고 천도하시옵소서” 하니 임금께서 윤허하지 않으셨다(『단군세기』 22세 단군 조).

 

23. 고조선의 우현왕 제도

 

① 21세 소태 단군 재위 49년 임진년에 개사원 욕살 고등이 몰래 군사를 이끌고 귀방을 공격하여 멸망시키자 일군, 양운 두 나라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이때 고등이 대군을 장악하고 서북 지방을 경략하니 세력이 더욱 강성해졌다. 그리하여 고등이 임금께 사람을 보내 우현왕이 되기를 주청하였다. 임금께서 이를 꺼려 윤허하지 않으시다가 거듭 청하므로 윤허하시고 두막루라 불렀다. 재위 52년에 우현왕 고등이 죽고 손자 색불루가 우현왕을 계승하였다(『단군세기』).

② 이 해에 고등이 개성에서 반역하여 천황에게 항명하였다. 마한 왕이 바야흐로 군사를 일으켜 고등을 치려 하였으나 홍석령에 이르러 천황께서 고등을 우현왕으로 윤허했다는 소식을 듣고 중지했다(『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24. 고조선 8조 금법의 내용

 

(색불루 단군 때) 또 백성을 위하여 금팔조를 정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 살인한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제2조: 상해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보상한다.

제3조: 도둑질한 자 중에서 남자는 재산을 몰수하여 그 집의 노로 삼고 여자는 비로 삼는다.

제4조: 소도를 훼손한 자는 금고형에 처한다.

제5조: 예의를 잃은 자는 군에 복역시킨다.

제6조: 게으른 자는 부역에 동원시킨다.

제7조: 음란한 자는 태형으로 다스린다.

제8조: 남을 속인 자는 잘 타일러 방면한다(『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25. 마한 36대왕의 이름과 통치 연도

 

마한세가 참조(『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26. 고조선의 일본 평정

 

① 35세 사벌 단군 재위 50년에 임금께서 장수 언파불합을 보내 바다 위의 웅습을 평정하였다(『단군세기』).

② 36세 매륵 단군 재위 38년에 협야후 배반명을 보내 해상의 적을 토벌하게 하셨다. 12월에 삼도를 보두 평정하였다(『단군세기』).

③ 갑인년에 협야후에게 명하여 전선 500척을 거느리고 가서 해도를 쳐서 왜인의 반란을 평정케 하셨다(『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27. 고조선이 나라이름을 대부여로 고침

 

① 고조선이 기원전 425년에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고치고 도읍을 백악산에서 장당경으로 옮겼다(『삼성기』상).

② 구물이 모든 장수의 추대를 받아 3월 16일에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지내고 장당경에서 즉위하였다. 구물 단군께서 국호를 대부여로 바꾸고 삼한을 삼조선으로 고치셨다(『단군세기』).

 

28. 구서지회(九誓之會) 내용

 

어느 날 구물 단군께서 꿈에 천상의 상제님께 가르침을 받고 정치를 크게 혁신하려 하셨다. 명을 내려 천제의 묘정에 큰 나무를 세워 북을 매달게 하시고 삼칠일을 기약하여 나이 순서에 따라 서로 술을 마시게 하며 교화에 힘쓰시어 그 내용을 책으로 만들게 하시니 이것이 구서지회이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29. 해모수의 출자(出自)와 북부여의 기원

 

① 47세 고열가 단군 재위 57년 4월 8일에 해모수가 웅심산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해모수의 선조는 고리국 사람이다. 종실인 해모수가 은밀히 수유국과 약속을 하고 옛 도읍지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거한 뒤 스스로 천왕랑이라 칭하였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두 해모수의 명을 따랐다(『단군세기』).

② (해모수) 임금께서 웅심산에서 기병하여 난빈에 제실을 지으셨다(『북부여기』).

③ 이때 해모수는 모든 장수를 봉하면서 수유후 기비를 올려 번조선 왕으로 삼아 상,하 운장을 지키게 하였다. 대개 북부여가 발흥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리고 고구려는 해모수가 태어난 고향이므로 북부여를 고구려라고도 불렀다(『단군세기』).

 

30. 남삼한의 기원

 

(북부여 2세 단군) 후에 기준은 떠돌이 도적 위만에게 패하여 바다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오가 무리가 상장 탁을 받들고 대규모로 여정에 올라 곧바로 월지에 이르러 나라를 세웠다. 월지는 탁이 태어난 곳이다. 이를 일러 중마한이라 한다. 이때 변한과 진한도 각각 그 백성과 함께 백리 땅에 봉함을 받아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다(『북부여기』).

 

31. 번한 75대왕의 이름과 통치 연도

번한세가 참조(『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32. 낭야성의 유래

 

가한성은 일명 낭야성인데 번한 왕 낭야가 쌓았으므로 낭야성이라 이름을 붙였다(『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33. 흉노의 청신

 

무인년에 흉노가 번한에 사신을 보내어 천왕을 뵙고자 하고 스스로 신하라 칭하고 공물을 바치고 돌아갔다(『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34. 번한 왕 기씨의 가계

 

① 임오년에 연나라가 이틀 길을 하루에 달려 빠른 속도로 쳐들어와 안촌홀을 공격하고 험독까지 쳐들어왔다. 이때 수유사람 기후(箕詡)가 청년 5천 명을 거느리고 와서 전쟁을 도우니 군세가 조금 진작되었다. ~부술년에 수한이 세상을 떠났으니 후사가 없었다. 그리하여 기후가 명을 받들어 군령을 대행하였다.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하례하였다. 이 해에 연이 왕이라 칭하고 장차 침범하려가 그만두었다. 기후도 명을 받들어 왕호를 써서 번조선 왕이 되었다(『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② 기후(70세) - 기욱(71세) - 기석(72세) - 기윤(73세) - 기비(74세) - 기준(75세)

 

35. 동명왕 고두막한

 

북부여 4세 고우루 단군 재위 34년 10월에 동명왕 고두막한이 사람을 보내어 고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로다. 장차 여기에 도읍하고자 하나니 임금은 이곳을 떠나도록 하시오” 하니 임금께서 난감하여 괴로워하셨다. 이 달에 고우루 단군께서 근심과 걱정으로 병을 얻어 붕어하셨다. 아우 해부루가 즉위하였다. ~고두막 단군의 재위 원년은 계유년이다. 이때는 고우루 단군 13년이다. 임금께서는 사람됨이 호방하고 영준하며 용병을 잘 하셨다. 일찍이 북부여가 쇠하면서 한나라 도적이 불길처럼 성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에 분개하여 개연히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큰 뜻을 세우셨다. 이에 졸본에서 즉위하시고 스스로 동명이라 하셨다. 어떤이들은 이분이 고열가의 후예라고 말한다(『북부여기』).

 

36. 고리국의 위치

 

임금께서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구려하를 건너 계속 추격하여 요동 서안평에 이르셨다. 그곳은 옛 고리국 땅이었다(『북부여기』5세 단군 조).

 

37. 연타발이 고구려 창업에 공헌함

 

연타발은 졸본 사람이다. 남북 갈사를 오가면서 이재를 잘하여 부자가 되어 거만금을 모았다. 남몰래 주몽을 도와서 창업의 기틀을 마련하고 도읍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뒤에 무리를 이끌고 구려하로 옮겨 물고기와 소금을 사고 팔아 이익을 얻었다. 고주몽 성제가 북옥저를 칠 때 양곡 5천 석을 바쳤다. 눌견으로 도읍을 옮길 때는 먼저 양곡을 지원하여 바치고, 떠도는 백성을 불러모아 어루만져 위로하며, 임금이 하는 일을 부지런히 도왔다. 이 공덕으로 좌원에 봉토를 얻었다(『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38. 고구려 열제의 연호

 

▶고주몽성제: 평락(平樂) ▶광개토호태열제: 영락(永樂) ▶장수홍제호태열제: 건흥(建興) ▶문자호태열제: 명치(明治) ▶평강상호태열제: 대덕(大德)

 

39. 광개토대왕비에 대한 기록

 

책성에 태조무열제의 기공비가 있고 동압록의 황성에 광개토경대훈적비가 있다(『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40. 고주몽의 출자(出自)

 

① (동부여 해부루왕) 재위 8년(기원전 79) 이보다 앞서 하백의 딸 유화가 밖에 나가 놀다가 부여의 황손 고모수의 꾐에 빠졌다. 고모수는 유화를 강제로 압록강 변에 있는 궁실로 데려가 은밀히 정을 통하고 하늘로 올라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유화의 부모는 중매도 없이 고모수를 따라간 딸을 꾸짖고 먼 곳으로 쫓아 보냈다. 고모수의 본명은 불리지인데 혹자는 고진의 손자라고 한다. 해부루 왕이 유화를 이상하게 여겨 수레에 태워 환궁하여 궁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셨다. 이 해 5월 5일 유화 부인이 알 하나를 낳았는데 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이 아이가 바로 고주몽이니 골격이 뚜렷하고 늠름하여 위엄이 있었다. 나이 겨우 7세에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 번을 쏘면 백 번을 다 맞추었다. 부여 말에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하므로 이름을 그렇게 불렀다. ~재위 28년에 사람들이 나라에 이롭지 못하다고 여겨 고주몽을 죽이려 하였다. 이에 고주몽은 어머니 유화 부인의 명을 받들어 동남쪽으로 달아나 엄리대수를 건너 졸본천에 도착하였다. 이듬해 새 나라를 열었는데 이분이 곧 고구려의 시조이다(『가섭원부여기』).

② 고리국의 왕 고진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고, 옥저후 불리지는 고진의 손자이다. 모두 도적 위만을 토벌한 공으로 봉토를 받았다. 불리지가 일찍이 서압록을 지나다가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나 기뻐하며 장가들어 고주몽을 낳았다. 때는 임인년(서기전 79) 5월 5일이며 한나라 임금 불릉(소제) 원봉 2년이었다. 불리지가 세상을 뜨자 유화 부인이 아들 주몽을 데리고 웅심산으로 돌아갔다. 그곳이 지금의 서란이다. 주몽이 장성하여 사방을 돌아다니다가 가섭원을 택해 살게 되었다(『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서울 환단고기 세미나 일정 및 신청 자세히 보기

http://blog.naver.com/greatcorea10/130155925550  

환단고기 역사세미나에 참석하시는 분께 <환단고기 역주본 관련 소책자> 무료로 드립니다.

그리고 세미나 3회 이상 참석하시는 분께는 <환단고기 역주본 특별보급판>을 무료로 드립니다.

 

41. 참전계의 유래

 

을파소가 국상이 되어 나이 어린 영재를 뽑아 선인도랑으로 삼았다. 교화를 주관하는 자를 참전이라 하는데 무리 중에 계율을 잘 지키는 자를 선발하여 삼신을 위한 일을 맡겼다(『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42. 오훈(五訓), 오사(五事), 오행육정(五行六政), 구서(九誓)

 

환국 시대에 오훈이 있었고 신시 시대에 오사, 고조선 시대에 오행육정, 부여에 구서가 있었다. 또한 삼한의 공통된 풍속에 오계가 있었으니... (『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43. 고구려 평원제의 북주(北周) 격파

 

대덕 18년에 열제께서 대장 온달을 거느리고 가서 갈석산과 배찰산을 토벌하고 유림관에 이르러 북주를 크게 격파하셨다(『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44. 고구려가 신라 백성을 천주(泉州)로 옮김

 

(21세 문자제) 명치 12년 신라 백성을 천주로 옮겨 그곳을 채웠다(『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45. 연개소문의 선조 이름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연개소문은 일명 개금이라고도 한다. 성은 연씨이며 선조는 봉성사람이다. 아버지는 태조, 할아버지는 자유, 증조부는 광이며 모두 막리지를 지냈다”(『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46. 고구려 요서 10성의 명칭과 위치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6세 태조무열제 융무 3년 요서에 10성을 쌓아 한나라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그 10성은 이러하다”(『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47. 백제의 요서, 진평군의 폐지

 

이해(21세 문자제 명치 12년)에 백제가 조공을 바치지 아니하므로 군대를 보내어 요서, 진평 등의 군을 쳐서 빼앗으니 백제군이 없어지고 말았다(『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48. 임나(任那)의 위치

 

임나는 본래 대마도의 서북 경계에 위치하여 북쪽은 바다에 막혀 있다. 다스리는 곳을 국미성이라 했다. 동쪽과 서쪽 각 언덕에 마을이 있어 혹은 조공을 하고 혹은 배반하엿다. 뒤에 대마도 두 섬이 마침내 임나의 통제를 받게 되어 이때부터 임나는 대마도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49. 다라한국과 구야한국

 

협보가 남한으로 달아나서 마한산 속에 은거하고 있을 때 따라와서 사는 자가 수백여 가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해 흉년이 들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길에 가득하였다. 이때 협보는 장차 변란이 있을 줄 알고 무리를 꾀어 양식을 싸서 배를 타고 패수를 따라 내려왔다. 해포를 거쳐 몰래 항해하여 곧장 구야한국에 이르니 곧 가라해의 북쪽 해안이었다. 여기에서 몇 달 지내다가 아소산으로 옮겨 살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다파라국의 시조이다. 후에 임나와 병합하여 연합정권을 세워 다스렸다. 이때 세 나라는 바다에 있었고 일곱 나라는 육지에 있었다. 처음에 변진 구야국 사람들이 먼저 들어와서 모여 살았는데 이것을 구야한국이라 하였다. 다파라는 일명 다라한국이라 불렀아. 이곳 사람들은 홀본에서 이주해 와서 고구려와 일찍이 친교를 맺었으므로 늘 고구려 열제의 통제를 받았다(『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50. 박혁거세의 모(母), 파소(婆蘇)

 

옛적에 부여 황실의 딸 파소가 지아비 없이 잉태하여 남의 의심을 사게 되었다. 이에 눈수에서 도망하여 동옥저에 이르렀다가 또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진한의 나을촌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에 소벌도리라는 자가 이 소식을 듣고 가서 이 아이를 집에 데려다 길렀다. 나이 13세가 되자 뛰어나게 총명하고 숙성하며 성덕이 있었다. 이에 진한 6부가 함께 받들어 거세간이 되었다(『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51. 궁예의 성

 

태봉국 왕 궁예는 그 선조가 평양인으로 본래 보덕왕 고안승의 먼 후손이다. 그의 아버지 강이 술가의 말을 듣고 어머니 성을 따르게 하여 궁씨가 되었다(『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52. 의려왕의 일본정벌

 

의려국 왕이 선비 모용외에게 패한 뒤... 아들 부라(의라)에게 왕위를 넘기고... 마침내 바다를 건너 왜인을 평정하고 왕이 되었다(『태백일사』「대진국본기」).

 

 

 

★서울 환단고기 세미나 일정 및 신청 자세히 보기

http://blog.naver.com/greatcorea10/130155925550  

환단고기 역사세미나에 참석하시는 분께 <환단고기 역주본 관련 소책자> 무료로 드립니다.

그리고 세미나 3회 이상 참석하시는 분께는 <환단고기 역주본 특별보급판>을 무료로 드립니다.

환단고기 역주본 및 환단고기 보급판 안내 및 구입문의

http://blog.daum.net/ilsimsycheonzoo/15977040

베일에 가려진 한민족의 뿌리역사와 정신문화의 실체, 환단고기 역주본을 통해서 모든 비밀을 명쾌하게 풀 수 있습니다~★

★관심 분야별 소책자, CD, 자료 무료신청

http://db.blueweb.co.kr/formmail/formmail.html?dataname=lyou17710

★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할 수 있는 법칙! 통찰력을 키워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과 궁금증을 풀어 줍니다. 귀하와 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틔워주는 인생의 지침서!

♣증산도 신앙문의 010-9088-7565 <신앙문의>라고 문자 주시면 연락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