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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환단고기*韓의뿌리

[스크랩] 아메리카 인디언과 인디오는 한민족과 한 핏줄 학설 제기

by 바로요거 2012. 1. 27.

아메리카 인디언과 인디오는 한민족과 한 핏줄 학설 제기

사진출처:  httpcafe.daum.netTOOJJING

 

"아메리카 인디언, 인디오는 韓民族"…고대 아즈텍어 우리 고어와 일치

뉴시스|입력 2008.06.09 11:05

 

【대전=뉴시스】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과 인디오는 우리와 한 핏줄인 한민족이라는 새로운 학설이 제기돼 주목받고 있다.

아스텍인들이 사용한 고어 '나와들어(語)'가 우리말의 고어와 어순·문장의 구조적·형태론적인 면이 정확히 일치하며, 발음까지 같은 것이 많다는 주장이다.

배재대 스페인·중남미학과 손성태 교수는 9일 배재대 21세기관에서 열린 세미나를 통해 논문 '민족의 이동:아메리카로 건너간 우리 민족의 언어적 증거'를 발표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언어에서 오늘날 한반도에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와 구, 심지어는 문장까지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실제로 1689년 미국 LA에서 발간된 아스텍인들의 '나와들어'에 대한 연구문헌인 'Arte de la lengua mexicana'를 보면, 15세기 혹은 그 이전 우리말 고어의 특징에 대해 말한다고 할 정도로 정확하게 우리말과 일치하는 많은 설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그 내용도 매우 체계적으로 우리말 고어를 설명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손 교수는 "예를 들어 순경음 비읍(ᄫ), 15세기까지 우리말에 존재했던 세 가지 억양, 현재까지도 쓰이는 우리말 복수형 어미(~들, ~떼), 우리 고어로 땅을 의미하는 '달' 등이 나와들어에서 그대로 사용됐다"며 "단어뿐만이 아니라 '내 지이 /ne chii/ =내 집' '내 곶이 /ne kotz'i'j/ = 내 꽃(이) /my flower/' 등과 같이 단어 및 구가 같다"고 설명했다.

또 "'나 나아 트홋타(발음) /nɨ' naa tɨhota.(나와들어) /나 나를 다쳤다(우리말)/ I REFL hurt / I hurt myself (영어해석)'라든가, '야히있다(발음)/ ɳahɨ-'ta (나와들어)/ 약이 있다(우리말)/ have medicine (영어 해석)'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문장도 같은 것이 많다"는 것.

그는 이와 함께 "더구나 우리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 후렴구인 '아리 아리랑 아리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의 뜻이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이는 삼국시대 우리말이 한자어로 대체되면서 순수 우리말이 대부분 상실됐기 때문"이라면서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나와들어에서 아리랑의 가사에 사용된 말을 미국학자가 해석한 바에 따르면 'alarigá(아라리가)'는 'thus(그렇게 해서, 이렇게 해서)'로 풀이됐다"고 밝혔다.

또 "'ari(아리)'는 'now(지금)'으로 풀이 됐으며, '났네'는 '이겼다'를 의미하는데, 명절날 윷놀이와 같은 전통 놀이에서 이겼을 때 '났다'라고 환호하는 것을 볼 때, 아리랑 가사의 뜻은 '지금 아리랑 지금 아리랑 그렇게 해서 이겼네'라고 해석됐다"면서 "밝혀진 가사의 의미로 판단해 볼 때, 우리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고대 우리 민족이 어떤 축제나, 이웃 부족과의 친선 경기 또는 전쟁에서 이겼을 때 불렀던 '승리가, 승전가'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손 교수는 "멕시코 역사서에서 '아스텍인들은 사막 근처인 아스달란에서 왔으며, 두 개의 나라에서 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우리 선조들인 부여와 고조선을 의미한다"고 확신했다.

손 교수는 그 이유로 "고조선의 첫 도읍인 '아스달'과 일치하는 것은 물론, 고조선의 위치가 중국 요하강 서북쪽 즉 고비사막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다는 중국 문헌의 기록과도 일치한다"며 "우리 선조들이 흰색을 좋아해 흰옷을 즐겨 입었는데, 아스텍제국의 모든 사원들이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는 기록도 있고, 순장이라는 문화도 같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또 "아스텍인들과 우리 한민족은 언어적으로, 역사적 기록에서도, 풍습도 일치하는 면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 알려진 몇 만 년전의 고아시아인만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다는 기존 학설로는 설명될 수 없다"며 "우리 민족이 직접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음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임에 틀림없으며, 그 시기는 기원 전후 또는 초기 삼국시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손 교수는 이에 대한 증거로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신라시대의 유물 중에 많은 동물 형상들의 토우가 있는데, 그 동물 중에 중남미에서만 서식하고 있는 '개미핥기'도 있다"며 "우리 학계에서는 이것을 아직까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베링해협을 건너 멕시코까지 왕래했던 또 하나의 증거"라고 밝혔다.

손 교수는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사와 세계 문화사는 다시 써야하며 과거 화려했던 아스텍제국의 문명은 곧 위대한 우리 문명"이라고 말했다.

최정현기자 ily7102@newsis.com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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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사진 출처:  http://cafe.daum.net/soda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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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한민족의 역사

김영일(대전서부경찰서 기성치안센터장)

2010-11-11 22면기사

2003년도에 행정자치부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0일간 영국, 프랑스를 갈 기회가 있었다. 그때 영국에서 한국 출신인 학구적인 가이드가 말하길, 영국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들만 보면 뭔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고 프랑스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을 보면 “우리에게 문화를 다 배워간 놈들”이라고 우월감을 갖는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을 보면 그러한 열등감이 있고 영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에 대해 반대로 우월감이 있다고 한다.

약 150여 년 전 프랑스 사람들의 우월감에 속이 상한 영국 학자가 프랑스인들도 어디서 배워 왔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연구한 결과, 프랑스는 로마에서 거의 통째로 배워 왔고 로마는 그리스 문화에서 거의 베끼듯이 했고(여러 신들도 이름만 살짝 바꿨음) 그리스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방 문명에서 배웠고 결국 서양의 모든 문명은 수메르 문명에서 시작돼 전파됐음이 밝혀졌다고 그 가이드는 말했다.

게다가 이집트 문명, 인더스 문명보다 무려 1000년이나 앞선다니…생각해 보니 유대인의 조상들이 원래는 수메르국의 우르라는 도시에서 살았던 점을 생각할 때 유대인들도 수메르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쇠약해져 가던 말기의 수메르를 소수의 인원이 떠나 유대인 국가가 성립되기 전까지 외국에서 유랑하며 1000년 이상 살다 보니 언어는 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BC 3500년 무렵부터 BC 2000년경 우르 남무왕국이 망하기까지 1500년간 번성했던 수메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 가이드가 말하길 서양학자들은 너무 오래됐고, 따지기 복잡하니 더 이상 연구하지 말자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주 연구를 안 한 것은 아니고 수메르 사람들은 동방에서 이동해온 것 같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현재 한국어와 유사한 언어를 썼고 아직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수메르의 본국으로 추정되는 동방의 국가(고조선보다 훨씬 전 국가)와 교환한 외교문서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언어상 한 예를 들어보면 수메르인들은 하나, 둘, 셋의 수사(數詞)에서 하나를 ‘아스’라고 했는데 삼국유사에서는 우리 민족이 하나, 둘, 셋을 쓰기 전에 하나를 ‘아시’라고 했고 다른 수사도 수메르와 일치한다고 하는데, 아시빨래(첫 번째 빨래)라는 말에서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수도였던 아사달(阿斯達)도 중국어 발음으로 ‘아스따’인데 제1의 땅, 즉 수도라는 말이 아닐까 문득 생각해 본다.(땅의 옛말이 ‘따’이므로…) 한편 남아메리카 잉카문명을 발전시켰던 원주민들의 언어를 한 TV 기자가 취재하면서 몇 가지 물어보자 하늘을 가리키며 ‘하날’이라고 하고 방바닥을 가리키며 ‘바닥’이라고 발음하는 등 한국어와 상당히 유사했고, 최근 중앙아메리카 마야문명을 개척했던 원주민들을 선교하는 선교사가 이들 원주민의 언어가 한국어와 아주 유사함을 주장한 보도물을 본 적이 있다. 기타 용맹하기로 유명한 북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인 아파치족도 그렇다고 한다.(아파치는 우리말로 아버지란 뜻이라고 한다.)

최근 수메르 자료를 접해 보니, 당시 영국 사람들이 나름대로 상당한 수준의 연구를 했고 최근까지도 연구를 아주 중단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약 150년 전 해독된 수메르 언어를 가지고 동일한 언어를 쓰는 나라가 있는지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찾지 못하고 있던 차에 때마침 로마에 와 있던 조선 사람을 만나 몇 마디 물어 보니 조선에서는 그 단어들을 아직도 쓰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영국 학자가 느꼈을 놀라움과 당혹감을 상상해 본다. 하필 망해 가던 약소국 조선말이 수메르 말과 유사하다니… 세월이 흘러도 썩지 않는 점토판에 글자를 쓴 데다가 땅속에 묻혀 있던 수메르 책 도서관이 발견되어 수만 점의 수메르 책자가 남아 있음에도 더 이상의 문명의 기원 연구는 하지 말자고 선언한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것 같다. 게다가 우리는 4000년 이전 역사는 고사하고 1300여 년 전에 망한 찬란했던 고구려, 백제 역사도 완전히 보전을 못 했으니 우리 민족의 책임도 있다고 하겠다.

상고시대 세계문명을 도처에서 발전시켰던 우리 한민족이 남북문제 등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옛 영광을 되찾는 날 잊혀졌던 고대역사도 다시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김영일 대전서부경찰서 기성치안센터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우리 한민족은 약 10,000년 전 부터 동북아시아에서 동서로 이동을 시작했다~! 

 

우리 한민족이 전세계로! 한민족의 이동경로

우리 한민족이 약 만년 전부터 한반도에서 동서(東西)로 이동 시작
강동민 칼럼니스트

 

우리 한민족이 약 만년 전부터 한반도에서 동서(東西)로 이동을 시작한 흔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경남 고성 바닷가 수많은 공룡의 발자국에서 역사의 땅임을 느끼고, 여기가 우리민족의 발상지라고 한번 더 느낄 수 있는 근거는 7만년 전의 구석기시대 유물이 쏟아져 나올 뿐만 아니라, 4만년 전 어린아이 가슴국화꽃이 뿌려진 ‘흥수아이 유적, 유물’ 발굴, 탄화 볍씨 발굴 결과 중국보다 3000년이나 앞선 15.000년 전 것임이 세계학계에 보고되어 있고, 언어와 민족이동이 자연스럽게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기록에 의한 확실한 사료와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증거만으로도 충분하다.

기원전 2200년 전부터 쓰여진 우리민족 최초의 경 “산해경(山海經)”에는 많은 지리풍속들이 기록되어 있고 정확한 내용이 상세하게 나열되어 적혀있었기 때문에 한(漢)나라 때 유명한 역사학자 사마천 까지도 ‘사기(史記)’를 쓰면서 제일 많이 인용한 책이 “산해경”이었다.

우리민족의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은 지혜로운 민족으로 “이(夷)‘자는 모든 민족의 뿌리라는 뜻과 어질 인(仁)이라는 뜻, 금속을 제일 먼저 다루었다고 하여 ”철(鐵)자의 옛날자인“銕”자로 알려져 있고, 큰활을 잘 쏘는 민족 이라 하여 큰 대(大)자에 활궁(弓)을 합하여 “이(夷)족”이라고 하였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동이족을 한족들이 ’오랑캐 이‘라고 억지로 낮추어 표현 하였을 뿐이다.

그러니 오늘날 전체 아시아(중앙아시아 포함)의 종갓집이 동이족 직계인 우리민족 이다.
한웅천왕의 후손인 치우천왕을 거쳐 ‘홍익인간’ 정신을 이어받은 단군(계급의 명칭) 왕검 때
부터 ‘부여’를 거쳐 부여의 일파인 “환족-->훈족”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몽골 쪽에서 새로운 부족을 탄생 시키니, 그 부족의 이름이 “돌궐 족”이다.

이 돌궐족들이 남하하여 나라를 만드니 오늘의 터키가 되었다.

터키가 한민족인 우리와 형제국 이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터키의 역사에도“우리는 아사나민족(아사달 민족: 광명의 땅 민족. 태양족)”이라고 한다.

그래서 돌궐의 발상지인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서쪽 지역에 기념 건물을 짓고 입구도 터키정부에서 도로를 멋있게 만들어 놓았다.

한편 ‘훈족‘들이 한나라 초기 한고조 유방 때부터 한나라를 공격하여 한나라 200년 동안 ’훈족‘에  공주와 많은 조공등 온갖 수모를 당하며, 훈족을 일러’부모님의 나라’라고까지 표현하였다. 뿐만 아니라 ‘부여’에는 214년 동안 망할 때 까지 조공하였는데, 부여의 장례 습관에 따라 부여 왕이 죽으면 “옥으로 만든 갑옷인 옥갑”을 부장품으로 넣게 되어 있었다.

당시 한나라의 수도는 ‘서안(西安)’이었기 때문에, 한나라는 멀리 있는 ‘부여(동호)‘의 수도까지 미리 갖다 놓기 위해 당시의 요동(遼東)땅이었던‘북경(北京:현토군)’쪽에 미리 맡겨놓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훈족’또한 부여(동호)에 조공 하였다.

‘훈족’들이 너무 강하다 보니 한나라는 훈족들을 이간시키는 전략을 구사하여, 결국 AD48년에 남흉노와 북 흉노로 갈라져서 남흉노는 한나라에 흡수되고 북 흉노는 서쪽으로 계속 나아간다. 여기에서 한나라에서 왜 훈족들을“노비 노(奴)”를 붙여서 “흉노(匈奴)”라고 하게 되었는지는 “한(漢)나라가 훈족들에게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는지 ‘흉노’라는 글자를 보면 알 수 있다”. 훈족과 선비족. 거란족들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가면서 많은 부족을 만들었기 때문에 “~스탄”이라 붙은 나라들의 대부분은 옛 우리민족의 일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중 특히 ‘훈족’들이 대부분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만든 나라가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를 만들고 서쪽으로 계속 압박을 하니 ‘게르만 민족’이 대이동을 하게 되었다.

이렇듯 고대에는 우리민족이 움직이면 세계가 따라 움직였던 것이다.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사람들의 반 정도는 아직도“몽고반점(배달반점)”이 있으며 그들 역사에서도 자기네들 나라의 초기에 동양인들이 나라를 세운사실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핀란드‘는 ’단군‘에 관한 영화까지 상영 한다고 한다.(신용하 교수님 증언)

또한 로마를 제일 많이 괴롭혔던 부족이 있는데 그 부족이 바로 고구려의 한부족인 “연연족(蠕蠕族=유연柔然)즉 아바르족(the Avars)”이고,  그들은 ‘아바르 제국’을 건설하여 게르만 민족의 한 종족인 서양역사에 많이 나오는 롬바르드족(the Lombards)의 요청으로 힘을 합해 게피드족(Gepedes)을 물리치고 전리품의 반과 영토 반을 요구하여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6세기경에는 비잔틴 제국에서 조공을 받아가며 도와주기도 하였다.

우리민족의 일부 고구려 부족인‘아바르족’이 로마 콘스탄티네 황제와 협상을 하고 도와주며 ‘가칸(可汗)’의 절대적인 권위를 지키는 것이 역사에 보인다.(고구려와 흉노: 송동건 지음)
5세기~7세기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우리민족의 발자취는 유럽역사책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다뉴브강(the Danube river: 구 이스테르강<the river Ister>)가를 누비며 페르시아의 로마공격에, 로마황제까지도 동맹을 요청하여 보호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니 막강 종족의 본보기이다. 레바논과 예루살렘 까지도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그들의 풍습이 우리와  닮은 점이 많음으로 짐작 할 수 있다.

동쪽으로 눈을 돌려보자 가까운 일본(日本)은 모든 것을 우리민족으로부터 의지해 왔다.
북해도의 아이누족은 만오천년 전부터 건너갔고, 현재의 일본 본토 사람들은 기원전부터 동네마다 건너가기 시작하여 우리언어를 전파하고 나라를 세우고 문화를 전했으니 그들은 우리의 후손이다.

한반도 백제가 망하고 난 뒤 일본 천황의 주변세력들이 백제 사람들로 둘러싸이기 시작하여 드디어 천황의 칙령으로 발표하였으니, “일본 사람들을 한반도로부터 건너왔다고 말하지 말라, 추후 이러한 소문을 퍼뜨리는 자가 있다면 엄벌에 처한다고 공표하였다.”

이후부터 역사왜곡이 더욱더 심화되었고 마치 일본사람들은 멀리 다른 곳으로부터 건너 왔다고 거짓 기록을 하기 시작하였다.

캐나다 인디언들을 보고 남미 페루의 원주민들을 보자 ! 그들의 생김생김과 생활 습관을 보면 지역과 기후와 풍토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있지만 분명 우리민족의 일파임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들의 언어 에서도 우리와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민족의 시작이 이러니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같이 생활해본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 가까이 하면 부럽고 멀리 하면 두려운 존재가 우리민족이 아닐까?

중국과 일본이 역사왜곡을 해서라도 우리민족을 못나고 낮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나?

그러나 “홍익인간 이화세계”이념으로 이미 6천년전부터 천성과 인성이 하늘로부터 계시되어 정해져있는 지혜로운 우리민족이 아닌가?

세계 평화를 위하고 가난한 나라들을 도울 수 있는 부강하고 든든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다 같이 힘을 합하자! hanminjock1944@hanmail.net

 

기사입력: 2011/08/18 [14:59]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

 

우리 한민족의 말과 글이 세계로 흘러간 경로

캐나다 인디언들 말속에도 우리말 느낌이 많이 나타난다!

강동민 칼럼니스트

 

중기구석기시대(中期舊石器時代)에 살았으며, 약4만년전에 멸종되었다고 하는 네안데르탈(neanderthal)인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것과 같은 말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거의 정설이 되어있는 이 학설이 옳다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인류가 쓰기 시작한 것은 겨우 3만년전부터 라는 것이 된다. 발굴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을 복원하여 연구한 결과 그들의 후두(喉頭)가 현대인 보다 높게 자리잡고 있었던 탓으로 인후(咽喉)가 좁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넓은 자리를 차지하는 큰 혀(舌)의 동작이 제한되어 오늘날과 같은 발음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현대인들도 태어날 때의 후두 위치는 원숭이 같은 다른 영장류와 마찬가지로 높게 자리 잡고 있으며, 신생아가 차차 커가면서 성인(成人)의 후두와 같은 위치로 내려온다.”

▲ 강동민     ©브레이크뉴스

유아(乳兒)의 후두가 성인이 되면서 하강하는 현상은 바로 우리 몸의 진화과정을 재현해 주는 것으로써, 인간의 몸이 몇만년 동안에 이룩한 진화과정을 유아성장(幼兒成長)이라는 짧은 시기에 일어나는 변화로 재생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인류는 후두가 내려옴으로서 다른 동물처럼 먹거나 마시면서 동시에 호흡할 수 있었던 예전의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고 하는 학자들의 증언이다.

원시신앙 중 절대적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은 온 누리를 밝게 비춰 주는 태양 이었다.
태양을 아버지로 모시는 ‘태양신앙족‘은 생명 유지의 필수조건인 ’물‘을 어머니로 삼았다.
한민족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라(라-->나=태양. 일인칭)”라고 하며, 저들이 사는 곳을 ’라라(라라-->나라=國=태양의 땅. 태양의 자손이 사는 곳)‘라고 하였다.

그러니 ‘하라(하라=태양. 아버지)와 ’마라(마라=물. 어머니)‘의 흔적이 언어에 뚜렷이 남아 있다. 한국어가 언어의 탄생과 발달을 탐구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는 이유는 바로 한국어가 태양신앙족의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의 하나님 표현은“아리랑(아: 밝다. 높다. 빛난다.  리: 사람. 소유격.  라(하): 태양)”즉 ‘태양처럼 밝으신 님’의 뜻이다.

원시문화의 선구자인 한(韓)민족의 언어 한국어가 세계의 모든 언어학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한국어를 알면 인류가 최초에 사용하던 언어의 뿌리를 밝힐 수 있다!!”(말은 어떻게 태어났나? 박병식 지음) 고박병식 선생님은 책으로 증언 하였다.

영국 옥스퍼드 어원사전에 ‘A-PA(아빠)’ 이 말은 아버지를 존칭하는 말인데 ‘동양’에서 왔다. 'MA-MA(맘마)'이 말은 어머니를 존칭하는 말인데 동양에서 왔다. 이러한 우리말들이 300단어이상 어원사전에 적혀있다.

우리민족이 개척하고 언어에 영향을 가장 많이 오래 동안 끼친 곳은 중국과 일본이다.
중국의 한자(漢子)가 약5만자가 되지만 정작 중국 한족이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글자(중어 발음)는 6천자 정도이고 나머지는 모두 우리 동이족의 문자라고 하며, 당나라와 송나라 때부터 발음이 제일 많이 무너지기 시작하여, 송나라 말경에 ‘북경(北京)’이 처음으로‘베이징’으로 발음 되었다.(사단법인 국어고전문화원 원장 윤경혁 선생님의 증언)

사실 ‘북경’은 ‘요(遼:916~1125: 거란국<契丹國))나라‘의 남경(남쪽 수도) 이었고 당시는 ‘북경(北: 발음기호: 必’墨切: ㅍ+= 푹)‘이라고 발음 하였지 ‘베이징’이라 하지 않았다.

고구려의 지명(地名)중 ‘집안(集安)’은 그냥 고구려의 집안이라는 뜻의 지명이었기 때문에 구태여 집안을 중국식 표현으로‘지안’이라고 할 필요가 있느냐고 윤경혁 선생님은 반문 하신다.

허기야 고조선 옛날 조선(朝鮮)시대에는 중국 뿐 만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전체가 우리선조들인 동이족의 활동 무대 였기에 우리민족이 큰집이고 종갓집 이라고 할 수 있다. 티베트의 사투리 중에는 ‘할매(할머니)’ ‘할배(할아버지)’ ‘밤무운나(밥 먹었느냐)’ ‘지렁(간장)’ ‘조푸(두부)’ ‘통시(화장실)‘ ’오냐 오냐‘ 등의 우리나라 경상도 사투리가 많다.
인도의 사투리 중에도 ‘살(쌀)‘ ’이랑‘ ’고랑‘ ’호미‘등의 농사 용어가 많으며 당나라 때 서로 말과 뜻이 잘 통하지 않은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민족의 고어를 잘 알아서 당나라 황제를 자문해준 ’시인 이태백‘은 고향이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스탄(백제와 관계있는 곳임) 출신이었다. 때문에 그곳은 우리 고어가 통용되어 잘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현재까지 우리 고어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언어 중에는 일본어와 만주어 그리고 몽골어 순이다. 백제의 장수중 ‘흑치상지’란 장수가 있었는데 본명은 백제 왕족인“부여씨”이다. 고향은 조상이 봉을 받은 나라 ‘흑치국(黑齒國)’즉 ‘베트남’과 ‘장족’자치구 쪽 이었다. 특수 나뭇잎을 씹는 습관 때문에 이빨이 검게 물들어서 ‘흑치’라고도 하였다. 이곳에도 백제라는 지명과 말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일본말은 100% 뿌리가 우리말인데, 가장 가까운 경상도 말이 약80%나 되고 나머지 20%는 북한,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 말이 남아있다고 언어역사학자인 고 박병식 선생님은 증언 하셨다. 예를 들어 경상도말 중에 ‘마 마 그래도마’는 ‘마 마 게레도모’로 변하였고, 사람을 ‘졸졸’ 따라 다닌다. 할 때 ‘졸졸’은 ‘조로조로’로 변했고, 물건을 ‘슬슬’ 끌어 다닌다 할 때 ‘슬슬’은‘스루스루’로 변했고 ‘터벅터벅‘ 걸어간다를 ’도보도보‘라고 표현하며, 국 끓이는 ’냄비‘를 ’ㅐ‘발음이 안되어’나베‘라고하며, 연기가 굴뚝에서 ’떠나부낀다‘의 표현을’다나부끼‘로 하고 있다.

이는 AD670년경부터 모음이 셋(ㅓ . ㅐ .ㅡ)이 빠져 발음이 안 되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하여 이렇게 변하였고, 우리나라는 ‘세종대왕’이후 두 나라가 더욱더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어머(母)를 ‘아마(母)로 ‘ㅓ’발음이 안되어 ‘ㅏ’로 발음하고, ‘어째?’가 ‘아제=나제’로 변했으며, 우리말 ‘너(상대를 부르는 이인칭)’를 일본 사전에는 ‘나’로 되어있다. 일인칭과 이인칭이 똑같은 이상한 나라가 현재일본말이다. 이것은 ‘아. 이. 우. 애. 오로 대체발음을 개발하다보니 생기는 모순이다. 그러니 우리고어를 정확히 알기위해서는 일본어를 보면 된다.

AD 647년에는 신라의‘김춘추’가 백제를 공격하기 전 일본의 동정을 살피고 정치적인 관계를 돈독히 하기위해 일본 천왕가를 방문하였는데 ‘일본서기’에는 “김춘추가 인물도 잘생기고 말도 잘한다!”라고 적고 있다. 당시에는 말이 서로 똑 같아서 통역관이 필요 없었다는 말이다.

‘대마도’를 본래 ‘두시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대마도가 큰 섬이 두 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고어로 ‘시마, 사마’는 섬을 말한다. 모음 셋이 탈락된 후 ‘두시마’를 ‘즈(쓰)시마’라고 말하며 ‘대마도(對馬島)’라 적는다.

매년 천황이 주재하는 큰 행사에 읽는 축문 내용에는 “아지매 오게~~”라는 우리말을 한다.
이것은 여러 신들을 불러 모으는 뜻이기도 하지만, 일본인 들은“천 지 인”을 뜻한다고 하면서 “신라”에서 전해졌다고 말한다.

아. 지. 매의 “매” 발음을 “ㅏ+ㅣ”로 한다. 평민들에게는 없어진 발음 이지만, 천황가 에서는 아직도 발음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캐나다 인디언들의 말속에는 지금도 우리말 느낌이 많이 나타나지만 특히 지명을 말할 때 더욱더 그러하다. 그중에는 농사용어인 ‘살(쌀)’ ‘이랑’ ‘고랑’ ‘호미’ 쟁기‘등은 우리말과 거의 같다. 십수년전 KBS 방송국에서 남미 페루의 마지막 남은 잉카제국의 할머니를 만나 인터뷰를 하는 장면에 ’시집 안간 여자를 무어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에 ’체녜‘라고 답하는 것을 보고 우리민족이 남미까지 갔구나! 하고 가슴 벅찬 감정이 솟은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7만년전, 4만년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았으며 고인돌이 세계 최고(절반이상)로 많이 분포해 있는 지역이니 분명 일반적인 지역은 아니다.

위도와 경도가 적당하여 사계절이 뚜렷하고 땅속에 맥반석과 게르마늄석이 엄청나게 분포하였으니, 강고기는 물론 연근해 바닷고기의 맛이 세계최고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민족은 세계최고 언어문화민족임이 저절로 입증된다. hanminjock1944@hanmail.net
                                                    
*필자/강동민.  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기사입력: 2011/09/28 [10:24]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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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민족 미스테리
글쓴이 : 뾰족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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