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桓檀古記』가 세상에 나오게 된 까닭은?
-올해는 환단고기가 1911년에 처음으로 출간된지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
환단고기의 전수 과정과 환단고기의 저자, 환단고기가 이 세상에 나오게 된 일련의 과정들 그리고 환단고기에 얽힌 비사秘史, 환단고기 출간의 역사적 과정들을 알아 봅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저자와 출간 내력
환단고기 원문 상생출판 양장본(좌), 환단고기 정본(우)
▲ 숙명여대 도서관에 있다는 <환단고기> 진본.
일반인에게는 대출불가서적이다
©역사복원신문
1, 감수자 해학海鶴 이기李沂
『환단고기桓檀古記』는 그 출간 내력에도 숱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환단고기를 감수한 해학 이기(1848~1909)는 전라도 만경 출생으로 유형원柳馨遠.정약용丁若鏞 등의 학통을 계승한 실학자였다.
고종 31(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전봉준 장군에게 '군중을 이끌고 서울로 쳐들어가 국왕 주변의 간사한 무리들을 제거하고 왕을 받들어 국헌을 새롭게 하자'고 제의하였다.
이에 전봉준이 찬동을 하면서 그에게 김개남 장군의 동의를 얻도록 권하였다.
그리하여 김개남을 만나기 위해 남원으로 갔으나 김개남이 면담을 거절하고 도리어 그를 해하려 하자 목숨의 위협을 느껴 구례求禮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왔다.
그 후 1905년, 미국에서 포츠머스 조약이 체결될 때 그는 조선의 처지를 호소하기 위해 나인영羅寅永(나철羅喆, 1863~1916)과 미국으로 건너가려 하였으나 일본공사의 방해로 실패하고, 그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왕과 일본 정계 요인들에게 조선 침략을 규탄하는 서면항의를 하였다.
그해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귀국하여 한성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장지연張志淵, 윤효정尹孝定 등과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를 조직하여 항일운동과 민중계몽운동에 헌신하였다.
1907년에 나인영, 오기호, 윤주찬, 김인식 등과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여 을사오적乙巳五賊 암살을 계획하였으나 실패하고, 이 일로 체포되어 7년의 유배형을 받고 진도로 귀양갔다.
2년 후 석방되어 서울로 돌아와 『호남학보湖南學報』를 발행하면서 민중계몽운동을 하다 국세가 기울어지자 곡기를 끊고, 1909년 음력 5월 25일, 62세로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해학유서海鶴遺書』가 있으며,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2, 편찬자 운초雲樵 계연수桂延壽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엮은 운초 계연수는 평안도 선천宣川에서 태어났으며 해학 이기의 문인文人으로 독립운동단체인 천마산대天摩山隊,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의민사義民社, 벽파대碧波隊, 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 등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20년, 일본 밀정의 밀고로 헌병대에 체포되어 처형된 후 압록강에 그 시체가 버려지는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당시 14세의 어린 나이로 독립군 천마산대 통신원으로 활동하였던 이유립은 압록강 현장에서 토막 난 운초의 시신이 수습되는 광경을 직접 지켜봤다고 한다.
운초는 『환단고기』를 묘향산 단굴암에서 편찬하여 1911년에 출간하였는데, 그 책의 범례에서 "이 책은 대한독립단 부총재였던 청산리대첩의 영웅 홍범도洪範圖(1868~1943)와 정의부正議府 총사령관이었던 오동진吳東振(1865~1930) 양우兩友의 출금出金으로 출간하였으며, 우리 한 사람 각자의 자아발견과 민족문화의 표출이념과 세계 인류의 공존이념을 위한 큰 축복의 성사"라고 하며, 한민족 창세역사서의 출간에 대하여 감개무량한 소감을 전하고 있다.
<홍범도 장군 사진 동아닷컴> <오동진 장군>
그 후 운초는 묘향산에서 「천부경을 탑본搭本하여」1917년 1월 10일, 서울의 단군교당으로 보냈는데, 그 때 그는 "『환단고기桓檀古記』는 다음 경신庚申(1980)년이 되거든 세상에 내놓으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3,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대중화시킨 한암당寒闇堂 이유립李裕笠
오늘날 『환단고기桓檀古記』가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를 마련한 인물은 계연수의 제자, 이유립(1907~1986)이다.
평안북도 삭주의 독립운동가 이관집李觀집?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계연수를 스승으로 모시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역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는 12세 때인 1919년 10월, 단학회단학회가 주관하는 교육기관인 배달의숙에서 수학하면서 계연수, 이덕수 두 스승의 강의를 들으며 『환단고기桓檀古記』와 『홍익사서弘益사서』를 전공하엿다.
8.15 광복 후, 그는 이용담李龍潭 선생의 지휘아래 단학회를 다시 일으키고 기관지 『태극太極』을 발행, 그 주간主幹으로 활동하엿다.
이때 서로군정서의 이덕수李德秀 장군으로부터 『환단고기桓檀古記』가 그에게 전해졌다. 계연수 사후에 천마산대 최시흥崔始興 대장에게 전해졌던 책이 이덕수를 거쳐 그에게 전수된 것이다.
이유립은 이듬해 1946년, 『태극太極』지 신년호에 신탁통치 반대 격문을 실었다가 구속이 되었는데, 옥에서 풀려나자 『환단고기』를 갖고 월남하였다.
이후 그는 단학회를 단단학회檀檀學會로 개칭하고, 대전시 은행동 셋집에 단단학회 간판을 걸고 연구와 강연에 전념하였다. 이 시절, 그가 얼마나 혹독한 시련을 겪었는지, 언젠가는 식량이 떨어져서 일주일을 꼬박 굶었다고 한다.
오직 '민족의 주체사관과 가치의 정립'을 이루려는 일념으로 그는 굶주림을 밥 먹듯이 하면서 불기 하나 없는 냉방에서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꽂꽂이 사학 연구에 몰두하였던 것이다.
1949년 오형기吳炯基가 『환단고기』를 공부도 하고 소장도 할 겸 이유립에게 청하여 필사를 하였는데, 오자가 많았다. 여기에 오형기는 임의로 발문까지 써 붙였는데, 이것을 1979년 7월, 당시 단단학회 회원이었던 조병윤이 이유립의 허락도 없이 광오이해사光吾理解社에서 100부를 영인影印하여 출판하였다. 이로 인해 판권 문제와 조병윤의 파문 등 여러 문제가 빚어졌다.
구분 |
『환단고기』의 5대 사서史書 소장자와 발행 과정 | ||||
5대 사서 |
『삼성기 상』 |
『삼성기 하』 |
『단군세기』 |
『북부여기』 |
『태백일사』 |
찬 술 자 |
신라 안함로 (579~640) |
고려 원동중 (생몰연대미상) |
고려 이암 (1297~1364) |
고려 범장 (?~1395) |
조선 이맥 (1455~1528) |
소 장 자 |
계연수 집안에서 전해 내려옴 |
백관묵白寬黙(평안도 태천泰川의 진사) |
백관묵 이형식李亨栻(평안도 삭주朔州의 진사) |
이형식 |
이기 |
『환 단 고 기』발 행 과 정 |
해학 이기가 교열한 다섯 가지 사서를 1911년 5월에 운초 계연수가 『환단고기』로 합편하여 30부 발행. 1949년 이유립이 월남할 때 가져온 『환단고기』를 오형기가 필사함. 이유립이 소장하고 있던 원본은 화재와 홍수로 분실. 1979년 조병윤이 이유립의 허락 없이 광오이해사光吾理解社에서 오형기 필사본을 영인본으로 100부 발행. 1983년 단단학회에서 오형기 필사본의 오자를 바로잡고 배달의숙본倍達義塾本 100부 발행. |
단단학회에서는 같은 해 10월, 오형기 필사본의 오자를 바로잡은 새로운 필사본을 만들었다. 하지만 출판비가 없어 미루다가 1983년에 이르러서야 배달의숙에서 100부를 발간하게 되었다. 단단학회는 이 배달의숙본 『환단고기』를 각 대학의 도서관, 각 기관 및 단체에 기증하였으나, 당시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편 같은 시기에 일본인 변호사 가지마노보루(鹿島昇)는 자국의 정계政界와 재계財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광오이해사본 『환단고기』를 입수해서 일본어로 번역 중이었다.
그는 월간 『자유』지를 발행한 박창암 장군의 소개로 이유립을 찾아와, 당시 이유립이 우리말로 해석하여 가지고 있던 『환단고기』를 빌려가 참고 자료로 쓴 후 돌려주었다고 한다.
이 가지마노보루는『환단고기』를 '아시아의 지보至寶'라고 극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환단고기』를 모독하고 한민족을 우롱하는 과오를 범하였다.
『환단고기』의 역사관을 왜곡하여 동방 한민족의 시원역사가 중동 유대족의 역사로부터 발원하였다는 황당한 논리를 편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임승국, 이유립 등이 『환단고기』의 고대사 내용을 『자유』지에 수년 동안 연재한 덕분에, 우리 한민족의 상고 역사와 신교문화가 민족사학자들과 일부 청장년층들 사이에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다. 그때 가지마노보루의 『환단고기』번역본이 역수입되어 들어오자, 한국의 역사학계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환단고기』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한층 높아지게 되었다.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에서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고구려.백제.신라 이전의 고대 역사를 밝히는 표준 역사서로 『환단고기』가 대중들에게 인식되기까지, 이렇게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것이다.
편찬자 계연수의 뜻을 받들어, 그의 사후 60년이 지나서 『환단고기』를 내놓아 세상에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민족주에사관을 확립하는 데 한평생을 바친 한암당 이유립은 국사학의 아버지와 같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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