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차 한잔 쉼터/핫이슈*정보상식

정대세, 그는 누구인가?

by 바로요거 2010. 6. 21.

정대세, 그는 누구인가?

 

한국 국적 정대세 왜 북한에서 뛸까

스포츠동아 | 입력 2010.06.17 07:09 | 수정 2010.06.17 20:16

대학때 한국프로 진출 불발
북한, 2006년 자국인 인정


브라질전 단 1경기로 관심이 집중된 정대세의 국적은 어디일까? 북한대표팀이지만 혹시 한국인이 아닐까?

정답은 '○'다. 정대세의 국적은 한국이다. 그러나 정대세의 국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기도 하다.

정대세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로, 아버지 정길부 씨의 국적은 한국, 어머니 리정금 씨는 북한이다. 정대세의 조부 정삼출씨는 경북 청송군 현서면에서 태어나 동래 정씨 집성촌인 경북 의성군 윤곡리에서 자랐고, 1930년대 일본으로 이주했다. 아버지 정 씨는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귀화하지 않고 지금까지 한국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정대세 역시 형, 누나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국적을 등록했다. 국내에서 주민등록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주민등록번호는 없지만 일본 외국인등록증 국적이 대한민국인 한국인이다.

하지만 정대세는 많은 재일교포 학생들처럼 국적이나 이념과 상관없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려는 부모의 뜻에 따라 조총련계 민족학교에 입학했다. 일본에서 한국계가 운영하는 학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정대세는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북한 문화와 친근해졌고 고교 때 수학여행으로 평양을 방문한 후 '조선'의 국가대표를 꿈꾸기 시작했다.

대학 2학년 때인 2004년 북한에서 대표팀 제의를 받는다. 그러나 한국국적 때문에 최종 선발이 불발됐다. 일본법상 외국인등록증 국적을 한국에서 북한으로 바꾸는 건 불가능했다. 일본정부는 미수교 국가며 일본인 납북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북한으로 국적변경을 허용하지 않았다.

정대세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 잠시 한국프로축구팀 진출을 모색하기도 했다.

한국과 북한은 정대세 뿐 아니라 모두 재일교포에게 같은 조국이다.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 입단이 불발됐지만 만약 정대세가 한국프로에 진출했다면 태극마크로 '조국 대표팀'의 꿈을 이룰 수도 있었다.

2006년 정대세는 일본 조선대학교 졸업 후 2006년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했다. 그리고 같은 해 북한은 일본 내 국적과 관계없이 정대세에게 여권을 발급하고 자국인으로 받아들였다.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수준에 오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 정대세의 땀으로 이룬 결실이었다.

공식 국적은 한국, 거주지는 일본, 그리고 북한대표팀. 월드컵 무대에 선 정대세에게는 태어나기 수 십 년 전 일인 일제강점과 한국전쟁, 남북분단의 아픔이 모두 깃들여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 다시보기 = '아시아의 루니' 정대세의 눈부신 활약
북한-브라질 경기 주요장면


 
정대세의 눈물로 보는 ‘차별사회’ 한국
[ 제175호] / 등록일 : 2010-06-21 15:29:35
 

▲ 최영태 편집국장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최영태 편집국장

흔치 않은 일이지만, 월드컵에서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나이가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궜다. 북한 축구 대표팀의 정대세 선수(재일교포)다. 그의 눈물은 큰 화제가 됐다.

그의 눈물을 보면서 같은 재일동포 출신인 격투기 선수 추성훈의 눈물이 떠오른다. 당시 그의 눈물에 대해 “어찌 그 눈물이 추성훈만의 것이겠는가. 모든 재일동포의 눈물이다”라고 누군가 평했던 말이 생각난다.

재일동포는 왜 눈물을 흘릴까? 이 세상의 누구도 그들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일본에서 나름 업적을 이루며 살지만 일본인들은 ‘조센징’이라고 무시하고, 재일동포 중 상당수가 아직도 일본으로의 귀화라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한국 또는 북한 국적을 고집스레 갖고 살지만, 한국에서나 북한에서나 ‘2등 국민’ 취급받기 일쑤다.

올림픽 무대에 서고 싶어 한국으로 돌아와 유도를 했던 추성훈이나, 월드컵 무대에 서고 싶지만 국적이 한국이라 국제축구연맹(FIFA)에 여러 번 가능성을 타진한 끝에 북한 대표선수가 됐다는 정대세나, 최고의 자리에 서는 우여곡절이 간단치 않았기에 결정적 순간에 눈물이 쏟아지는 모양이다.

이들의 ‘사나이 눈물’을 보면서 차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국 연예계를 보면 재미동포 출신이 대세인 듯하다. 한국 출신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 같다. 노래에 랩이 들어가고 영어 가사를 삽입하니 그렇다고 하지만, 단순히 ‘미국 출신’이라는 배경이 프리미엄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인 듯하다. 반면, 재일동포 출신으로 한국 대중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볼 수가 없다.

한국에서 재미동포들이 큰 우대를 받고 있지만, 사실 문화예술적 성과로만 본다면 재일동포 쪽이 더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된 영화 ‘피와 뼈’(최양일 감독), 일본 영화상을 휩쓴 ‘훌라 걸스’(이상일 감독) 등 진지한 작품을 생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외국에 사는 한국인은 주변인·변방인이다. 유대인도 마찬가지로 주변인·변방인이었지만, 현재는 미국 문화예술·언론·금융계를 휩쓸고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억압당한 그들의 역사가 있다. 국외자 또는 변경인이어야 남다른 방법으로, 남다른 시각으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어떻게 최하층 민족에서 최상층 민족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한국인은 알 필요가 있다.

재일동포에 비한다면 재미동포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아주 좋은 대우를 받는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 중 재미동포처럼 현지에서 당당하게 사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미국이란 나라가 원래 이민자로 구성됐기 때문에 외국 출신이라도 당당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미동포는 한국에 오면 또 최고 대우를 받는다. ‘특급 동포’다.

반면,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사는 동포는 ‘열등한 한민족’ 취급을 받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는 지역에 따라 사람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것은, 우대를 받는 재미동포·강남사람 등 소수는 좋겠지만, 다수를 불행하고 만들고, 결국 전체를 불행하게 만든다.

‘재일동포의 눈물’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준 정대세를 보면서, ‘우리 속의 차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최영태 편집국장  [ 제175호]

추천서적, 관심서적 자료 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