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로 만삭된 아내와 태아 모두 숨진 안타까운 사연

신종플루로 만삭된 아내와 태아 모두 숨진 안타까운 사연

[종합]신종플루로 만삭 아내·태아 숨져…남편 '눈물의 편지'

뉴시스 | 김석훈 | 입력 2010.03.05 16:12

【순천=뉴시스】김석훈 기자 = 신종 플루로 만삭의 아내와 아이를 한꺼번에 잃은 비운의 30대가 '눈물로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편지로 가슴시린 사연을 전해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다.

오모씨(31)는 5일 '신종 플루로 산모와 8개월 된 태아가 사산한 사례로 유족들의 슬픈 현실을 알리고자 한다'는 문구로 시작되는 장문의 편지를 통해 중국교포 3세인 아내 김모씨(31)와의 첫 교제에서부터 결혼, 신종 플루로 급작스레 사망한 순간까지 비통한 심정을 절절이 소개했다.

아내 김씨는 오씨와 결혼한 후 아이를 가졌으며 태어날 아이와 행복한 나날을 꿈꾸던 중 지난해 10월 중국어 능통자를 찾던 모 농산물선별기 수입회사에 취직해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 밤낮으로 구슬땀을 흘렸다.

김씨는 중국 내 농산물선별기 제조회사를 도와 허난(河南)성에서 해당 회사를 찾게 됐으며, 회사 직원들과 지난해 12월13일부터 24일까지 11박12일 일정으로 중국 출장을 다녀왔다.

하지만 귀국 직후 몸에 이상 증세를 느끼다 결국 신종 플루 감염 사실을 알게 됐고 대학병원 중환자실 입원 20여일만인 지난 1월21일 끝내 숨을 거뒀다. 뱃속의 태아는 산모가 숨지기 보름 앞서 사산돼 태아와 산모가 꼭 살아주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던 가족들을 오열케 했다.

오씨에 따르면 중국에 다녀온 아내가 고열과 함께 기침을 하자 전남 순천에 있는 병원 3곳을 전전하면서까지 진찰을 했지만 신종 플루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중 한 곳인 A병원은 진료시설마저 고장났던 것이 나중에 확인돼 순천보건소로부터 과태료 처분까지 받았다.

김씨는 결국 각혈과 함께 폐 20~30%가 손상됐다는 진단에 따라 광주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져 신종 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으나,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23일 간 투병하다 가족들의 기대를 뒤로 하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차마 아내가 숨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오씨는 아내가 죽자 보건소와 병원 등에 부실 관리, 부실 진료 등을 강하게 항의했지만, 부질 없는 일로 판단하고는 근로복지공단 여수지사에 산재 신청서를 내면서 아내의 억울함을 달래주고자 했다.

그러나 지난 3일 통보된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는 '산재 불승인'으로 전혀 뜻밖의 결과였다.

위원회는 심의 결과서에서 "김씨와 같이 동행한 동료는 신종 플루 음성 판정을 받았고, 김씨의 업무 활동 범위와 신종 플루 전염 경로가 불분명하며 업무 수행 중 신종 플루에 전염될 만한 명백한 행위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신종 플루와 인과관계가 인정치 않는다"고 판단했다.

오씨는 그러나 "임신 8개월, 임신성 당뇨, 10여일 간 장기 중국 출장, 입·출국시 4번의 항공기 탑승 등과 온종일 서서 기계를 살피고 통역하는 일은 불특정 다수와 접촉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임신으로 힘든 몸을 이끌고 과로해 면역력이 저하됐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위원회 결정에 반발했다.

오씨는 "임산부를 출장보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보내게 한 회사도 산재를 인정해 산재신청서에 도장을 찍어줬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재심 청구와 행정소송을 벌여서라도 아내와 자식의 억울함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ki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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