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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한민족 역사문화/환단고기*韓의뿌리

수메르인과 수메르 문명

by 바로요거 2010. 2. 12.

수메르인과 수메르 문명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 바빌로니아 땅에서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던 고대 도시국가 수메르.

 

"자신들을 일러 항상 "검은 머리 사람들"임을 강조"했던 수메리안.

 

수메리안의 인종적 특징은

 

"첫째 머리카락이 검고,

둘째 후두부가 편편하며,

셋째 몸이 땅딸막하고,

넷째 중동 언어와는 전혀 다른 교착어를 사용했으며,

다섯째 청회색 토기 문화와 여섯째 순장이 강요되었다."

 

인류 최초의 문명국 수메르(소머리).

 

태음력과 60진법, 쐐기문자를 사용하고, 참성단(지구라트)을 세웠다는 그 소머리국의 검은 머리 사람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따르면 "환국은 12개국으로 동서가 2만 리고 남북이 5만 리며, 그 중엔 수밀이국과 우르국도 있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기에 나오는 수밀이국이 곧 소머리국인 수메르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즉, 수메르국은 환국에 속하는 자치국가였다는 그 말이다.

환국? 환국은 또 무엇일까.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국은 우리 민족의 시조 환인이 세운 나라를 말한다.

환인, 환웅, 환검(단군)으로 이어지는 인류 최초의 문명국이 곧 환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대사는 환국(환인시대), 배달국(환웅시대)에 이어 단군이 세운 고조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5천여 년 전에 탄생한 수메르도 그랬다.

인류사상 최초로 역사시대를 열었고, 문자사용과 도시국가 건설, 각 도시간의 연방제, 민회와 장로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어 왕을 선출하기도 했다. 문학, 신학, 수학, 천문학은 물론 최초의 법전까지도 만들었다. 거대한 신전건축과 프레스코, 모자이크 벽화 양식도 거기서부터 시작되어 세계 문명의 원류가 되었으나 그런 고도의 문명을 가진 국가도 한 야만의 세력에 의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갔다."

-작가 윤정모의 장편소설 <수메리안(파미르)> 중에서-

수메리안 1, 2(파미르)는 2003년 11월부터 2004년 8월까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장편소설.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앞 바빌로니아에 있었던 선진 문명국가 "수메르"가 환인들의 후손이 세운 "소머리국"이었다는 가설을 주춧돌로 삼았다.

 

또 작가 윤정모는 "그들은 환인의 자손이었고, 민족 이동기에 수메르로 건너갔다"고 말한다.

"수메르"라는 국호도 곧 "소머리"에서 나온 말이며, 그 어원은 성스러운 하늘의 강, 또는 소머리강(송화강)에서 유래되었다는 것.

작가는 이 같은 사실을 고대 사학자 문정창 선생의 말을 빌려 "수메르 최고의 신 엔릴(에인)도 천자의 명을 받고 메소포타미아로 건너가 5개 도시를 정복한 소호국의 영웅"이라고 곱씹는다.

 

작가는 다시 일본 학자 우에노의 말을 빌린다. "우에노조차 수메르에서 사용한 설형문자는 태호 복희의 팔괘부호와 흡사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어 작가는 보다 정확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대만 학자 서량지의 <중국전사화> 246쪽을 펴든다 그곳에는 "중국의 역법도 그 시조는 동이이며, 태호에서 비롯되어 소호에서 계승, 역정관을 두어 크게 발달시켰다"고 적혀있다. 

환족의 비밀 밝힐 <수메리안> 3권 더 집필
작가 윤정모는 누구인가?

▲작가 윤정모
파미르  
"고대사를 여행하다보면 세 가지 공통점을 만나게 된다. 첫째는 왕이나 영웅들의 정복기가 너나 없이 잔인했다는 것, 둘째는 그들 스스로 신이 되고 싶어 하거나 신격화를 원했고, 셋째로는 아무리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 해도 1천 년 이상 지속된 국가는 없으며 그것도 거의 야만인이나 다름없는 신세력에 의해서 멸망해 갔다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몇 토막 작가 윤정모는 1946년 경주 나원에서 태어나 1968년 <무늬져 부는 바람>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81년 <여성중앙> 중편 공모에 "바람벽의 딸들" 이 당선되었다. 작품집으로는 <광화문통 아이>(1976)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1982) <밤길>(1986) <그리고 함성이 들렸다>(1986) <님>(1987) <고삐>(1988) <빛>(1991) <들>(1992) <봄비>(1994) <나비의 꿈>(1996) <그들의 오후>(1998) <딴 나라 여인>(1999) <슬픈 아일랜드>(2000) <우리는 특급열차를 타러 간다>(2001) <꾸야 삼촌>(2002)이 있다. 1988년 <신동엽 창작기금>, 1993년 <단재 문학상>, 1996년 <서라벌 문학상> 받음. / 이종찬 기자

 

 5천여 년 전에 탄생한 수메르라는 국가도 그랬다.

인류사상 최초로 역사시대를 열었고, 쐐기문자 발명과 도시국가건설, 각 도시간의 연방제, 민회와 장로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어 왕을 선출하기도 했으며, 문학, 신학, 수학, 천문학, 12진법은 물론, 역사상 최초로 법전까지 만든 나라였다.

거대한 신전 건축도, 프레스코와 모자이크 벽화양식도 거기서부터 시작되어 메소포타미아 건축예술의 원류가 되었고, 그 영향이 지중해 연안과 인더스까지 미쳤는가 하면 멀리 동방까지 교역을 했던 찬란한 문명 국가였다. 그러나 그런 수메르도 결국은 사직의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 거의 1천년이 넘도록 근동의 등불로 타오르다가 갑자기 소멸한 뒤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버렸다.

단 한 가닥의 집단도 남기지 않고 깡그리 증발해버렸다.

 

고대의 모든 종족은 그 부침이 극심했고 이동 또한 잦아 비록 근거지에서 멀리 이탈했다 해도 지금껏 그 집단들은 현존하고 있다. 특히 인도유럽인, 아리아인과 셈어족들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데도 그들과 이웃하고 살았던 수메르 민족만은 그 어디에도 남아 있다는 흔적이 없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몇몇 서양의 고고학자들은 그 주변국에 흡수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 이유는 아카드인의 침략 때부터 두 종족은 융합했고, 그 뒤 점차 셈족화되어 바빌로니아 문명의 기초가 된 것이 그 증거라고 했다.

정말 그렇게 밖에 되지 않았을까?

본래 아카드와 바빌로니아 등은 일찍부터 수메르의 문명을 차용해간 나라들이었다.

종교를 가져가 신(神)의 이름만 바꾼 뒤 자기네들 것으로 활용했는가 하면, 신화, 신화 속 인물, 함무라비 법전까지도 수메르의 것이며 성경 이야기 역시 많은 부분 수메르에서 가져갔다는 것은 이제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수메르인들 스스로 자신들은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며 따라서 주변 종족과 다르다는 것을 늘 강조해왔다. 또한 인구도 많았다. 인구가 많았다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수메르는 처음부터 여러 도시국가로 형성되어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초창기 수도였던 우루크(BC 3000년경)의 인구만도 4만5000여 명이었고, 천년 후 멸망 당시, 그러니까 BC 2000년경의 수도였던 "우르" 역시 극도로 번창했던 걸 감안한다면 그간의 인구증가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데도 이처럼 주변과 다른 종족, 그 많은 인구가 깡그리 그렇게 타민족으로 흡수될 수도 있는 일이었을까? 이 궁금증은 우선 접어두고,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가. 애초 어느 민족에 속했기에 자꾸만 "검은 머리의 사람들"임을 강조했는가?

 

지금까지 고고학자들이 알아낸 인종적 특징은,

1)머리카락이 검고,

2)후두부가 편편하고,

3)몸이 작달막하고,

4)근동언어와는 전혀 다른 교착 언어를 사용했으며,

5)회도(灰陶)문화와

6)순장이 강요되었다는 것 등이다.

 

그러니까 셈어족이나 기타 근방의 민족들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그들이 어디서 온 종족인지는 알 수가 없으며, 다만 추정컨대 "민족 이동기에 북방에서 침략해 왔다", "어쩌면 스키타이 혹은 우랄알타이어 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고, 좀더 근거리 추정자로는 C.H 고든(英)이 "수메르 인은 동방에서 왔다, 그들이 중・근동에 들어서기 전에 무슨 고대문자식 기호를 가지고 온 듯하다"라고 했지만 그 동방이 어딘지, 고대 기호란 또 어떤 것인지 까지는 구체적으로 밝혀내지 못했다.

자, 이쯤에서 독자 여러분들은 "우랄알타이어? 동방? 교착어? 그건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말인데?" 라고 곱새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이는 "교착어는 일본과 한국만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가?" 하고 자문하기도 할 것이다. 그랬다. 그 민족이 어디서 왔는지의 대답은 뜻밖에도 한국에 있었다.

즉 그들은 동이족이나 혹은 환인의 자손이었고, 민족 이동기에 그렇게 내려갔다는 것이다.

또한 "수메르"라는 그 국호 역시 "소머리"에서 변형되었으며 그 어원은 동이족이 태동했던 성스러운 하늘의 강(송하강)에서 유래되었다고 했다.

 

물론 그밖에도 여러 갈래의 민족이동 설 혹은 사상유통설이 있다.

 

첫째는 서에서 동으로 유통되었다는 조지훈설이 있고

둘째는 동에서 서로 유통되었다는 문정창, 김은수, 송호수의 주장,

또 근래에 와서는 환웅족이 그리스로 건너가 황금가지 시대를 열었다는 박용숙의 저술까지 있다.

 

그중에도 문정창씨는 수메르의 개국영웅 엔릴(릴은 신이라는 뜻)조차도 동이, 즉 소호족이었다고 주장했으며 그 예증까지 들어가며 두 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의 주장들이 독특하고 또 흡인력을 가진 것은 우리의 고기(古記)에도 분명히 수밀국과 우르국이 명시되어 있었던 때문이다. 고기에 이르기를 "환국은 12개국(민족분포도?)으로 동서가 2만리고 남북이 5만리며, 그중엔 수밀이국도 있다"고 했으니 페르시아 만 근처에 있었던 수메르가 수밀이국일 수도 있지 않은가.

자, 이제 그만 본론으로 들어가자. 지금부터 나는 수메르 이야기를 펼칠 것이다. 그

것도 동이족이 건너가서 이룩한 고대사 이야기를.

그들의 역사와 영웅들의 삶, 영생을 바랐던 영웅호걸 길가메시,

진시황제보다 훨씬 먼저 불로초를 구하러 다니는 둥, 너무 많이 가진 탓으로 넘치게만 살다간 그 영웅과 백성의 풍요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목부 왕 두무지,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우루카기나, 하지만 그는 너무 조금 가지고 너무 늦게 왔고 그러므로 10년을 채우지 못한 채 결국 아카드의 침략에 빌미가 되고 말았던 비애, 그러한 역사 속에서도 교착어를 고스란히 지켜온 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가져간 표의문자(일본학자 우에노-上野景福-씨는 수메르에서 사용한 설형문자는 동이족이 사용하던 팔괘부호와 흡사하다고 증언했다.=출처 "한민족의 뿌리사상")를 소리 설형문자로 바꾸고 가다듬었으며, 1천여 년간 한 가지 언어를 지켜왔다.

물론 아카드의 사르곤 왕에게 지배되면서 말이 혼합되긴 했어도 그들은 다시 일어나 검은 머리 사람들의 나라, 그 언어를 부활시켰고 역사상 최초로 거대한 지구라트, 그 성탑을 세웠다.

신들과 가까워지고 싶어서 높은 성탑을 세우고, 그 품 아래서 영원한 보호를 받기 위해 날마다 기도를 올렸던 그들, 그럼에도 끝내는 야만인 아모리족(엘람과 수사의 침략으로 멸망했다는 주장도 많다)의 침략으로 그 고도의 문명국가도 종국을 고할 수밖에 없었던 것… 필자는 여기까지,

그러니까 우르 3왕조의 마지막 왕, 그 시대까지의 이야기만 들려주겠다.

한데 이 무슨 우연인가. 그 성탑이 세워졌던 우르, 걸프 만 근처의 고대국가 그"우르"가 지금 다시 폭격을 당하고 있다. 4천여 년 전 그날처럼 울음이 진동하고 있다.

그리하여 수십 만 점의 점토와 도자기 등 그들의 유품들마저도 사라져가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유품까지도 사라져야 했던 운명이었을까?

아, 잊을 뻔했다. 우리의 고기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7월에 우르인들이 투항해왔다(돌아왔다?). 그들에게 염수 근처 땅에 정착하도록 하였다." 자, 이제 출발을 서두르자. 갈 길이 멀지 않은가. 단번에 5천 년 전으로 달려가기가 너무 벅차다면 까짓 것 1천 년쯤 줄여버리고 거기서 잠깐 발길을 멈추자.

그러면 여러분들은 다시 보게 될 것이다. 4천여 년 전에도 오늘날과 똑같은 일이 일어났음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모양으로 온통 쑥대밭이 되어 있음을. 진종일 수메르의 애도가를 읽은 날. 윤정모.

 

중동 지방에서 발생하여 세계 문명을 일으켰으나 야만인들에 의해 사라진 나라 수메르.

그 수메르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까지도 '수메르 신화'라는 이름으로 전해 내려온다.

그 신화를 바탕으로 하여 작가적 상상력을 풀어낸 소설이 바로 윤정모의 < 수메리안 > 이다.

5천여 년 전에 탄생한 수메르의 신화에는 인류 사상 최초로 역사 시대를 열었고 문자 사용과 도시 국가를 건설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최초의 법전까지 만들고 고도 문명을 가진 나라였으나 그들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떻게 멸망하였는지에 대한 구체적 근거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의 신화를 통해 수메르의 시조가 '검은 머리의 사람'임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주변 중동의 민족과는 다르게 교착어를 사용하고 순장이 강요되었으며 청회색 토기 문화를 갖고 있었던 나라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을 통해 어떤 학자들은 이들이 동방에서 온 우랄 알타이어 계통의 종족이었음을 추정한다.

작가는 이와 같은 추정과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여 그들이 우리 민족과 같은 뿌리였을 것이라는 소설적 상상 아래 작품을 창작하였다. '수메르'라는 국호도 '소머리'라는 우리 단어에서 변형되었으며 우리의 고기(古記)에도 환인의 나라 환국이 12개국으로 동서가 2만리에 달한다는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 즉 이 기록을 토대로 하여 작가는 수메르가 우리 민족에서 뻗어나간 것임을 믿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현재 상, 하권으로 출간된 < 수메리안 > 은 수메르의 일대기에 관한 역사 소설 중 초반부에 해당한다. 즉 이 나라가 어떻게 우리 시조로부터 뻗어나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비록 허구적인 이야기이긴 하나 마치 한 편의 웅장한 우리 역사를 읽는 것처럼 재미 있게 펼쳐지는 수메르 건국의 이야기.

그 출발은 환국의 어린 소년 에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상서로운 새인 봉황을 본 적이 있어 무언가 큰 일을 이룰 인물임을 예견 받았던 소년 에인. 그는 자신의 운명과는 달리 공부에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늑대와 함께 산야를 쏘다니는 일에 몰두한다.

그러다가 서쪽의 먼 속국으로부터 온 영주를 만나게 되고 침략 당한 속국을 구하기 위해 한 군대의 수장이 되어 먼 길을 떠나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운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냈으나 하늘의 신과 교감하면서 운명을 감지하고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군대를 이끌게 된 에인.

그가 펼치는 온갖 모험들은 마치 무협지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일들의 연속이다.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하나 깨달음을 얻고 성숙해가는 이 왕자의 길에는 느닷없는 행운도 따른다. 하늘의 도움으로 언제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천리마까지 함께 하여 그의 역경은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그의 모험담이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강간범으로 몰려 내쫓김을 당하고 모함을 받으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장면은 매우 길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주인공 에인의 역경은 천신의 도움과 주변 사람들의 관심에 의해 극적으로 해소된다.

역경을 통해 더 큰 깨달음을 얻는 청년 에인은 군대의 훌륭한 수장으로 우뚝 서고 중동 지방 정벌의 꿈을 실현해 나간다. 그는 중동 지방의 땅이 풍요로운 청동기 문화를 가진 곳임을 인식하고 고향인 환국보다 이곳에서 더 큰 국가를 이룩하고자 결심한다. 그래서 결국 그 꿈을 이룬 날 중동 지역 5개국의 신인 '엔릴'로 추대를 받으며 어진 왕이 된다.

책의 마지막은 어린 소년이었던 에인이 거대한 문명 국가의 시조가 되어 멋진 나라를 이룩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120세가 된 주인공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국 환국(소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첨성단에서 사라지는 것을 결말로 설정한다.

이 수메리안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수메르라는 나라의 건국 신화에 불과하다. 도대체 작가가 어떠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나라 '수메르'의 이야기를 이끌어갈지 사뭇 궁금해진다. 특히 이들의 시조가 우리와 같은 뿌리인 하늘의 신 '환인'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천하를 지배하던 시기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지라도 대국(大國)으로 번창하던 시절의 우리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흐뭇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이 작은 땅덩이에서 아웅 다웅 치고 받으며 살고 있으나 과거 우리도 천하를 호령하던 때가 있었다는 상상. 그것이 상상이든 진실이든 과거를 돌이켜 보며 큰 꿈을 키워 보는 것도 좋지 않은가.

"7천년 "슈메르 고대문명" 모두 끝났다"

오마이뉴스 | 김상일 | 입력 2003.04.14 05:32

 
1. "역사는 슈메르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은 이라크를 두 번 죽이고 있다. 그 첫번째가 물리적인 것이었다면 두번째는 정신적인 것이었다.
 
<역사는 슈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의 저자로 유명한 사뮤엘 크레머 교수는 최초의 창조설화를 비롯한 교육제도, 사법제도 등 인류 최초의 39개 사건이 모두 슈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IMG2@슈메르인들이 살던 지역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을 의미한다.
바그다드 시내에 있는 고대문명 박물관이란 지금으로부터 7000년 된 슈메르의 유적들이 전시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박물관이 이번 전쟁으로 약탈자들에 의해 모두 털렸다고 한다.
이 박물관의 나브할 아민 부소장은 "우리의 유산은 끝났다"고 말할 정도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는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문명은 말 그대로 "meso-potamia"로 양강(兩江) 사이란 뜻이다.
양강이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서에 나오는 "에덴"동산으로 불리는 딜문동산도 바로 이 양강 사이에 있는 지역이며, 이 동산마저 이번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지금 세계는 겨우 200년 역사 밖에 안되는 미국이 전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3살 짜리 아이의 손에 핵폭탄을 들려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니 미치광이가 손에 미사일을 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2. 이라크-이란-북한은 "문명의 축(axis of civilization)"
 
부시가 "악의 축"으로 부른 나라,
이라크 이란 북한은 모두 인류 초고대 문명의 발상지란 점에서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금 북한 학자들은 "대동강문명"이라고 하여 검은머루 유적지 발견 이후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더 오래 된 문명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한다.
부시는 지금 이런 세 나라만 골라 "악의 축" 운운하면서 공격 표적으로 삼고 있다. 이를 미국의 "역사 콤플렉스"라고나 해 두자.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이 장면을 구약성서 창세기는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평야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창세기 11장 2절)라고 적었다. 이 한 무리의 인간들을 "슈메르인 Sumerian"이라고 하며 그 뜻은 "검은 머리"라는 뜻이다.
성서는 이 거대한 사건을 몇 줄로 처리하고 있다.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7000여년 전의 사건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양강 지역에 올 때 문자와 학교제도와 법제도 등 고급문화를 이미 가지고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있다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주해 왔느냐이다.
지금 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겨져 있는 이 슈메르인들의 유래 문제를 소위 "슈메르 문제 거리 Sumer Problem"라 할 정도이다.
 
@IMG3@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문명도 슈메르보다 무려 1000년 이후의 것이며,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문명도 그와 비슷한 후기 문명이다.
이스라엘의 "셈 Shem"족의 유래도 "Shum"에서 유래했다.
슈메르인들이 가지고 온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문명으로, 그 당시 지금의 히브리인들은 말 그대로 "Habiru"로 그 말의 의미는 "떠돌이" 혹은 "산적"의 의미 등을 갖는다.
슈메르인들이 설형문자라는 것을 사용할 당시 히브리인들은 문자도 없었으며 옷이란 동물 가죽을 벗겨 입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슈메르인들은 직조기술을 발견하여 이미 옷을 물들여 입고 다녔다.
건축술도 발달하여 2층 가옥을 지을 정도였다. 지금 발견되고 이번 전쟁으로 도난당한 토판들은 거의 경제거래 문서들로서 이는 거래를 한 다음 남긴 계약문서들이다. 한국의 강신택 교수는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분야의 연구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3. 기독교와 슈메르 문명
 
1830년대 처음으로 이라크에서 슈메르 문자가 발견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기독교였다.
왜냐하면 가장 최초의 사건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생겼을 것이라 여겨져 왔고 에덴동산도 그 지역 어딜 것이라 믿어 오던 터에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홍수 설화 등이 슈메르의 토판 속에 그대로 그 원형이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 그런데 슈메르에서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먼저 따먹는 다는 둥 그리고 홍수가 사람들이 다 죽는 데 지아슈드라는 의인이 있어서 배를 만들어 사람들은 구제한다는 둥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서부터 성서학자들은 기독교를 보는 눈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으며 기독교 안에서도 성서의 역사를 다시 쓰자는 주장과 그것을 반대하는 주장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한국의 기독교 장로교(기장)과 예수교 장로교(예장) 등이 갈라지는 이유도 바로 성서를 보는 이런 시각의 차이 때문이다. 기장은 고고학의 발견을 수용하는 입장이고, 예장은 그렇지 않는 입장이었다.
이것이 1950년대 한국 교회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슈메르의 유산을 성서의 한 유산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고급문화 슈메르에 대하여 히브리 문화를 저급문화로 분류한다.
서양문명은 그리스의 합리적 이성과 히브리의 감성적 신앙이라는 두 물줄기로 이루어진다.
이 두 물줄기는 고대 슈메르 문명에서 만난다.
기원전 2000년경 슈메르 우르 남무 왕국이 멸망하면서 슈메르 문명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올림푸스 신전의 원형이 슈메르의 딜문 동산의 그것이라고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히브리인들의 정신적 유산은 그대로 슈메르의 것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이라크가 저렇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인류 문명의 정신적 고향이 황폐화되거나 말살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텍사스의 한 카우보이가 나타나 한 손에는 미사일을 한 손에는 핵무기를 들고 인류의 정신적 유산을 짓밟고 있다. 아무도 지금 그를 말릴 수 없다.
 
4. 슈메르와 한국
 
그러면 슈메르인들은 과연 어디서 왔는가? 이것이 슈메르 문제의 화두이다.
그들의 유래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남긴 문자이다.
토판에 세겨진 설형문자는 아무튼 인류 최초의 문자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 전 세계 언어학자들은 어떻게든 슈메르어와 자기 모국어의 동일성을 찾아 자기들의 언어가 세계 최고의 언어임을 내세우려 하고 있다.
@IMG1@그래서 헝가리, 프랑스, 독일 등도 자국의 언어가 슈메르어와 그 유사성이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극동으로 눈을 돌려보면, 1920년대 볼(C. J. Ball)이 이미 <중국어와 슈메르어(Chinese and Sumerian)>을 저술하였다. 방대한 분량을 통해 두 언어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해 놓고 있다.
심지어 일본인 요시와라(R. Yoshiyara)는 1991년에 "슈메르어와 일본어"를 저술, 발간하였다.
어느 두 언어가 같은 계통이라면 먼저 언어의 특징이 같아야 하고, 문법 구조가 같아야 하고, 유사한 언어 특히 수사가 같아야 한다. 우리가 인도와 유럽의 언어가 같다고 하는 것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 인도 샨스크리트어가 모두 이 세 가지 점에서 같기 때문이다.
물론 슈메르어와의 비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생각키로는 이 세가지 점에서 거의 완벽하게 같은 언어는 우리 한국어가 아닌가 한다.
먼저 언어의 특징이란 슈메르어가 교착언어인데 교착언어란 우리말의 주어나 목적어 다음에 "은, 는, 이, 가" 등이 붇는 언어를 의미한다. 이는 우랄 알타이언어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데 중국와 인구어는 일단 교착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슈메르어와는 그 특징에 있어서 같지 않다. 다음으로 문법 구조에 있어서 슈메르어는 "주어+목적어+동사"이다. 이는 영어 혹은 중국어와는 다르고 우리말과는 같은 구조이다. 마지막으로 수사(數詞)에 있어서 같아야 하는 데 <삼국사기>에는 고대 우리말의 수사가 남아 있다. 필자는 슈메르 수사와 우리 고대 수사를 비교 한 바 있으며, 최근 히브리대학에서 슈메르어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 온 조철수 교수가 더욱 심화연구 하여 발표 한 바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슈메르어는 처음 1을 "아스 as"라고 하는 데 이는 <삼국유사> 고(古)한국어의 그것과 일치한다. 처음 빨래를 "아시 빨래"라고 하며 아침은 "아사"라고 하는 것이며 해 뜨는 아침을 의미하는 Asis가 여기서 유래한다.
언어 이외에 슈메르 유래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지구라트"이다.
지구라트는 벽돌로 쌓은 인조 탑이다. 물론 피라밋의 유래이며, 구약성서의 바벨탑의 전신이 다름 아닌 지구라트이다. 지구라트는 천문관측소, 고동 회의소, 제단, 무덤 등 다기능를 가지고 있다. 생각키로는 슈메르인들이 어느 고산지대에 살다가 양강 유역으로 내려 왔다고 보는 것이다.
지구라트의 기능들이란 산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걸프 지역으로 통해 들어 온 해양족이 아니고 자고로스산맥을 타고 내려 온 고산족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라크 북쪽 산악지대와 그 너머 어디선가 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행히 고고학자들은 지금 터키 그리고 몽고 지역까지 슈메르의 유적을 찾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기원전 3500년경 과연 그 찬란한 고급 문명을 가지고 있던 지역은 과연 어딘가?
그밖에 슈메르와 한국은 묘장제도, 순장제도, 60진법,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고 있는 점 등에 있어서 앞으로 두고두고 그 유사성이 연구의 대상으로 남겨져 있다.
그러나 역사 콤플렉스에 걸린 미국에게는 이런 역사연구마저도 두려움의 대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인디언 원주민을 학살하고 세운 역사의 원죄 때문에 결국 미국은 끝까지 자기들 보다 오래된 나라들의 민족문화를 말살해 나갈 것이다.
미국의 양대 세력인 유대인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이익이 의기투합할 때는 무슨 짓이든 저지를 것이다. 이라크 박물관이 약탈당하는 소식을 멀리서 접하면서 가슴 조이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부디 도난당한 유물들이 무사히 박물관으로 되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