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도 않은 한사군 타령, 이제 그만좀 해라!
소위,한4군을 한반도지역으로 설정하는 일제 식민사관론자들
한4군은 한무제의 한나라와 무관한 번조선 지역의 조선땅이다
식민사관론자들의 한사군지역[왼쪽], 번조선(요서지역)내의 번조선 제후국들[오른쪽]
소위, 한4군의 실체는 번조선 제후국명에 해당하는 지명들로 위만조선후 지켜낸 지역이다
식민사관론자들의 한사군지역[왼쪽], 번조선(요서지역)내의 번조선 제후국들[오른쪽]
소위, 한4군의 실체는 번조선 제후국명에 해당하는 지명들로 위만조선후 지켜낸 지역이다
이병도가 밤길 조심못해서 단군은 국조라고 뒈지기전에 고백했다! 일본개들도 조심해라! 한4군 자체가 춘추필법(지들 역사가 최고라며 왜곡하는 행위)에 따라 중국사가들이 후대에 만들어낸 거다.
낙랑군.진번군.임둔군.현도군은 한4군이 아니라, 위만조선이 내부분열로 망하자, 한나라가 날로 먹고서 요서지역 위쪽에 있는 천상(하늘나라.단군조선은 천상이고 중국지역은 천하라고 했다. 천상천하가 여기에서 나왔다. 한국과 배달국과 단군조선의 통치자를 천제라고 하는 이유다)지역에 위치한 북부여(진조선)로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차원에서 한나라와 고두막 북부여군대와 위만조선(번조선) 유민들이 연합하여 싸워 승리하여 요서지역지역에 설치한 번조선 유민들의 땅이 바로 한4군의 실체다.
그래서 한4군이 아니라, 조선4군이어야 맞는 것이다. 시정해야 한다. 사마천[사기]어디에도 낙랑군.진번군.임둔군.현도군이란 지명은 나오지 않는다.
1차 사료인 사마천[사기]에도 기록되지 않는 내용가지고 우리 스스로 우리 민족사를 비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또한 동이족끼리 싸우게 하여 분열시켜 어부지리하는 것이 한족들이 동방족과 벌이는 전쟁의 기본전략전술이다. 한무제가 내부분열로 망한 위만조선의 고위관리5명(위만조선을 내부분열로 망하게 하는데 공로가 많은 민족반역자들=한나라 투항자들)에게 준 땅 또한 중국 요서.산동지역이다.
한반도 낙랑군이란 후한의 광무제가 고구려배후를 치기위해 북한 평양지역에 위치한 최리 낙랑국(중국 요서지역 낙랑군에서 건너온 단군조선 유민 최숭의 나라)의 일부를 쳐서 잠시 낙랑군을 설치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전한(한무제)와 관련한 소위, 한4군과 한반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1.낙랑군=단군3조선에 해당하는 번조선(요서지역)의 제후국
“낙랑군은 옛 조선 땅이다. 요동에 있다.(樂浪郡故朝鮮國也在遼東) (후한서85 동이열전75-1)
●산서성 북쪽 음산을 지나면 요동이고, 북경지역의 낙랑군이 옛 조선 땅으로서 요동이라고 했으니 위치상으로 딱 맞는다. 그러므로 진시황과 한(漢)나라 때의 요(遼)는 북경남쪽에 있는 영정하였다.
2.최리 낙랑국=요서지역 낙랑군 태수 최숭의 후손이 한반도 평양에 개국한 단군조선유민의 나라
3.후한의 낙랑군=후한의 광무제가 고구려배후를 치기위해 배를 타고 최리 낙랑국 영역의 일부를 차지하여 잠시 설치한 지역(고고학적으로 후한조정에 보낸 인구조사통계 공문이 출토.무덤비문에 후한국명 발견되었고, 삼국사기 기록과도 일치)........구당서.신당서는 고구려의 후기 수도 북한 평양을 기록하는 대목에서 "나라의 옛땅 낙랑군지역이다"고 명기한 배경이다. 이 기록을 가지고 식민사관론자들은 마치 전한의 한4군인양 곡해하고, 일부 재야사학자들은 고고학적 유적유물이 출토되었는대도 불구하고 후한의 낙랑군지역임을 부정하려는 웃지못할 코메디가 빚어지는 것이다.
역사학은 민족.국가.조직이기주의로 왜곡축소하면 안되는 것이며, 있는 그대로 기술되야 하는 이유다.
한무제 당시에 기록한 사마천[사기]에는 한4군의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후대 중국사가들이 추가한 것이다. 사마천이 당시 보고 기록한 내용은 한무제 군대가 위만조선과 싸워 패배하여 장수들이 참수당했고, 위만조선이 내부분열로 망하자 위만조선을 분열시켜 멸망시키고 한나라에 투항한 위반조선인5명에게 땅을 분배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4군은 아니고 5군이며, 진번.현도.낙랑.임둔이란 지명하고는 무관한 지역이니 당시 번조선의 제후국명에 해당하는 진번.낙랑.임둔.현도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자료]중국의 사마천은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와 함께 '역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한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곳에 한사군을 설치할 때 사마천은 청년이였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미 조정의 벼슬을 하고, 그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사령이란 실록을 쓰는 최고 사관의 직위에 올랐었다. 사마천이 한사군의 전시 도중 약관의 청년으로서, 더욱이 태사령이었던 아버지의 직책으로 보아 무제의 조선 침략에 관심이 많았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사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42세 때부터이다. 그러나 사기를 본격적으로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48세 때에 이릉사건으로 체호되어 수년간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50세 때 부터ㅢ 일이다. 55세 때에 사기를 완성한 뒤에도 보완을 거듭하던 그는 56세에 이르러 무제의 미움을 ㄱ산 뒤 완전히 절필하고 52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와 같은 사마천의 생애를 살펴볼 때 사기의 '조선열전'은 그의 목격담 또는 당대사인 셈이다. 실제로 조선열전의 기록 전체가 한사군의 전역의 기사로 가득 차있다. 그러면서도 주요 내용과 관련해서는 "축정조선 위사군"이라고만 기록하였다. "조선을 정벌하고 한사군을 설치했다"라고 쓴 것이다. 낙랑,현도,진전,임둔의 한사군 지명과 위치조차 거론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사기보다 180년 뒤에 쓴 반고의 '한서'역시 사기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겨 적다시피하고 있다. 다른 것이라면 한사군의 명칭을 명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진번,임둔,낙랑,현도의 사군을 두고 삼을 봉하여 획청후를 삼고, 한도로 추저후를 삼고, 협으로 평주후를 삼고, 장으로 기후를 삼았다"고 쓴 것이다.
중국에서 이후의 모든 사서는 반고의 한서를 중심으로 하여 편찬되고 한사군이 한반도에 설치된 것으로 '정설'화 되었다. 여기에 우리의 분별없는 사가들이 '한서'와 그 이후의 중국 사서를 옮겨서 마치 한사군은 한반도에 설치되고 중국이 조선을 오랫동안 경영해온 것처럼 기술하였다.
예컨대 '국사대사전'에는 "사군 설치 당초의 위치 및 강역은 자세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여러 학자들 사이에 오랜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학설이 구구한 것은 진번군의 경우이다. 먼저 낙랑군은 고조선(위씨조선)의 고지를 중심으로 하여 대체로 평안남도 대부분과 황해도의 일부에 걸쳐 자리잡고 있었는데 설치 당시의 속현 수는 11현이었다. 낙랑군치의 소재지에 대해서는 문헌상으로 지금 평양이 조선의 왕검성 또는 고구려의 서울이었던 역사적 사실을 미루어 낙랑군치가 있었던 곳이라고 추론되고 있으나, 이에 반대해서, 평양 대안의 토성리를 꼽는 고고학자들의 견해도 유력하다."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것은 기록뿐만 아니라 유물이나 유적 여러가지가 있다. 그렇지만 객관적인 시각을 갖춘 인물의 기록처럼 정밀한 역사적 사실을 전해주는 것은 흔치 않다. 그런데 역사의 가장 정확한 기록자로 알려진 사마천의 기록, 더욱이 직접 한나라의 4군 설치와 고나련된 전역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주 세밀하게 이를 기록한 사기에 한사군의 이름과 설치 지명이 빠져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그로부터 약 200년 뒤에 반고는 한서에 한사군 전역 과정과 관련된 사마천의 기록을 거의 그대로 옮겨 적으면서 유독 한사군의 이름만을 추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후의 사가들이한ㄱ사군의 강역을 한반도로 옮겨서 기술하고, 우리 사학자들이 이것을 분별없이 그대로 옮기며 친절하게 해설까지 붙여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단채 신채호를 비롯하여 일부 재야 사학자들에 따르면 한사군의 강역은한반도가 아니라 만주 심지어는 산둥반도라고 한다. 사마천이 굳이 한사군의 지명을 밝히지 않은 것은 그 영역이 조선땅이 아니라 중국 지역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사마천의 한사군 관련 기록은 위서일 가능성이 많다. 윤복현님의 다른글보기
출처: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0&articleId=49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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