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사 바로알기

단군조선 최대강역과 일제의 역사왜곡정책

by 바로요거 2009. 12. 21.

단군조선 최대강역과 일제의 역사왜곡정책

 

[두 조선의 문제]
붕당정치의 폐해가 드러난 이성계의 ‘근세조선’이 있고,

47대 단군임검이 통치하였던 ‘단군조선’이 있다. 놀랍지 않은가? 

 

이는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명제이다.

 

왜냐하면 이성계의 조선은 단군조선에서 그 명칭을 따온 것이며, 모티브를 제공한 단군조선시대는 한민족의 뿌리사 시대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기록이 ‘근세조선’만을 기억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지금의 탄핵정국과 같은 난장판이 떠오르지만, 본래 중원의 대륙을 웅비하던 단군조선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조선을 그렇게 쉽게 업신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우리 민족이 정신을 잃어버리고 역사를 왜곡 당하여 일어난 일인 것이다.
 
 『단군조선사』의 매력과 가치
단군조선사의 재출간. 민주화를 위해 한창 투쟁하던 시절, 일반사학계는 물론 민족사학계까지 놀라게 만들었던 김영주 씨의 저서이다. 이것이 17년이 지난 오늘날 한·중·일이 역사전쟁에 돌입하면서 재출간되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상고사통사’라는 대단하고도 도전적인 타이틀이 담고 있는 『단군조선사』는 우리 역사가 왜 왜곡되었고 무엇이 왜곡되었으며 누구의 소행인가로 시작하여, 단군조선사 뿐만 아니라 아직 민족사학계에서도 과감히 논하지 못하고 있는 환국과 배달국시대 그리고 단군조선에서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사국시대로 넘어오기 전의 과도기시대인 (우리의 사라진 상고사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열국시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민족사의 정통성에 관하여


 단군조선하면 언제나 문제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그 강역이 얼마나 되는 것인가에 대해서이다.

 저자는 제4장 단군조선시대에서 이용범 교수의 ‘고조선은 대동강의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북부의 넓지 않은 부분이다’라는 주장을 일축하면서 삼국유사, 삼국사기, 제왕운기, 중국문헌의 삼국지 동이전, 사마천의 사기, 후한서, 산해경 등을 폭넓게 넘나들며 고조선이 가장 강성했던 시절의 최대 강역은 중국의 감숙성부터 북만주 전체와 한반도 전체 그리고 일본의 절반까지였다고 주장한다.
 
 환인·환웅시대를 지나 아사달에 첫 도읍을 정하여 중원의 본토까지 호령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했던 단군조선.
 
 또한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의 요·순, 은·주, 춘추·전국 그리고 진시황 시대의 배후에 단군조선이 있었다.
단군조선은 중국에 문화를 전해준 선생국이었는데 반해 단군조선의 몰락은 문화를 전수받은 중국의 배반 때문이었다. 작금의 한·중·일 역사전쟁을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자못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단군조선이 몰락하는 핵심에는 소위 위만조선(정권, 도적집단임)이 있다. 강단사학계에서는 이 위만정권이 단군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하였다고 보고 있지만, 단군조선의 정통성은 위만조선과 오환, 부여, 예맥, 조선, 진번 및 한반도의 남삼한으로 구성되는 열국들 중 북부여로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북부여를 잇는 고구려로 그 정통성이 계승되어지고 있다. 즉 북부여는 단군조선과 고구려를 이어줄 ‘잃어버린 고리’였던 것이다.
 이점이 우리 한민족사 국통의 핵심 맥이 되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일제의 역사왜곡정책에 말려든 우리 겨레]

 

 “일제는 총독부 안에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해서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특히  단군을 말살함으로써 한국의 역사를 2000년 역사로 만들었습니다.  단군의 역사는 바로 우리 민족운동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제가  단군을 의도적으로 말살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없애고 그리고 일본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의도 하에서  단군 조선의 역사를 없애려고 했던 것입니다.” (박성수)
 
 일제에 의해 발행된 『조선소사』1)라는 교과서를 보자. 조선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시조인  단군 의 이야기를 ‘전설’로 표현하고 있다. 『조선사천년사』2)라는 또 다른 교과서. 조선의 역사는 4000년이라고 전제하고 있으면서도 그 장구한 역사 자체가 ‘전설’에 불과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이렇듯 일제강점기 35년을 거치면서  단군 의 역사는 신화나 전설로 변조되었고, 그 역사마저 축소되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보면 반만년 대륙민족의 영광사입니다. 그것을 일제는 2600년보다 줄이기 위해서 뿌리를 없애고 일본에 동화시키기 위해서, 말하자면 일본 제국주의의 마수에 우리가 걸려든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준환 회장 / 국사찾기협의회)
 
 실제 일제의 사이토 총독은  단군과 고대사를 없애는데 주력했다.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先人)들의 무위(無爲), 무능(無能), 악행(惡行)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둥으로 만들라.”

(사이토가 발표한 ‘교육시책’ 중에서)
 
 “이마니시 류 이런 사람들은 『 단군 사』라든지 『 단군 고사』라든지 이런 글을 통해 그것은 신화다 또 승려 일연이 만든 망발이다 이런 식으로 봤고, 그것을 이어받아서 이병도 박사가 『삼국유사』를 해석할 때 고조선 부분을 신화로 몰아버린 것입니다. 1938년부터 본격화되어서 해방될 때까지 몇 년간 한 것이 전국에 퍼져서  단군 조선 2000년 역사가 전부 신화인 것처럼 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의 뿌리가 없어져버리는 위기에 와 있다고 말할 수 있죠.” (고준환)
 
 

 식민사관 벗지 못한 대한민국 역사교과서
 모든 배움의 근본이 되는 교과서. 그것은 역사의식이 없는 학생들이 왜곡된 역사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어왔다. 해방 후에도 교과서는 일제 잔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단군 이 세운 고조선의 역사가 상당 부분 축소되는가 하면 여전히 신화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조선에 관한 역사왜곡은 크게 봐서 두 줄기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고조선의 역사,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공간을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의미는  단군 조선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공간을 축소시킨다는 의미는 고조선의 강역을 한반도 내 평안도 일대에 국한시키려는 움직임을 뜻합니다. 청동기 유적을 전부 한반도로 국한시켰는데, 우리 상고사의 본무대는 만주지역의 광활한 이쪽 지역이었지 한반도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계속 우리 상고사의 무대를 좁은 한반도에 갇혀있었던 것처럼 (국사교과서 내 청동기시대) 지도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덕일)
 
 실증사학의 거두 이병도 박사. 그는  단군 조선을 신화로 생각한 대표 주자다. 그러나 그런 그도 지난 1986년 한 신문을 통해서  단군 의 실존에 대해 인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단군 의 진면목을 찾아야 겨레의 미래도 보인다
  단군 의 역사를 확신하며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는 이가 있다. 바로 김산호 화백. 그는 우리 상고사의 현장인 만주를 오가며 역사 속  단군 의 모습을 복원하고 있는 중이다. 실물을 보진 못했어도 옛 기록을 통해 잃어버리고 왜곡된 역사의 복원을 붓끝으로 실천하고 있다.  단군 은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 마흔 일곱 명이다.
 
 “ 단군 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옛날(신라시대) 솔거가 그려준 할아버지의 모습만 놓고 하는데, 우리가 기마민족 아니에요! 말을 타고 적들을 하나하나 정복을 해서 거대 제국을 세울 수 있는 영웅의 모습은 절대로 아닙니다. 씩씩한 기상에 맞고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복장으로 바뀌어야 하고 그 모습도 바뀌어야 합니다.” (김산호)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다고 밝혀지고 있는 치우천황. 전쟁에 나서면 절대 패하지 않는 불패의 왕으로 이미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상징으로 되살아나기도 했었다. 화가로서 우리의 상고사가 그림으로 정리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고 한다.
 
 93년  단군 릉 발견으로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한 북한. 그렇듯  단군 은 남과 북을 잇는 다리가 돼가고 있다. 오늘날  단군 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구심점이 없다는 거요. 어떤 구심점이 있어서 우리 국민이 하나로 화합을 해야지 지금처럼 열두 쪽 나서 잘 될 건 아무 것도 없어요.”(시민)

 

출처: 김영주 저의 『단군조선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