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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사 바로알기

중국의 한민족 역사왜곡의 시초와 동북공정 의도

by 바로요거 2009. 12. 21.

중국의 한민족 역사왜곡의 시초와 동북공정 의도

 

한민족 역사를 최초로 왜곡한 사마천의 사기 

 

승자와 패자가 뒤바뀐 탁록 대전

한중 고대사를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날조한 기록상의 첫 번째 인물은 2,100년 전 한나라 무제(BCE 141~BCE 87) 때의 사관, 사마천(BCE 145~?)이다.


그가 왜 한민족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는지는 당시의 시대 배경을 살펴보면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북방 흉노족을 정벌한 한나라 무제는 동북아 전역에 한나라 군현을 설치하여 명실상부한 중화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을 품었다. 그리하여 위만조선(BCE 194~BCE 108)을 멸망시키고 이어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BCE239 해모수가 개국)의 영토까지 넘보았다. 그러나 동방 조선족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그 야망은 좌절되고 말았다.


이 같은 시대 배경 속에서 사마천은 중국 25사의 첫머리인 『사기』를 편찬했고, 그 첫 번째 왜곡작품의 상징적 문구가 『오제본기』 서두에 나오는 ‘금살치우擒殺蚩尤(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이다. 이는 4,700년 전에 살았던 중국 한족 시조 황제 헌원이 자신에게 복종치 않고 난리를 일으키는 치우라는 인물을 잡아 죽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그게 아니다. 치우가 누구인가? 동방 한민족의 고대사가 송두리째 뿌리 뽑힌 지난 2천여 년의 세월 속에서 잊혀 졌지만, 치우는 바로 동방을 다스리면서 우리의 영토를 가장 넓게 개척한 배달국의 14대 자오지 환웅천황이다.


당시 염제 신농씨 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8대 유망이 쇠퇴의 길을 걷자, 치우천황은 웅도의 대망을 품고 서방으로 출정하여 모든 제후들을 정벌하고 유망의 수도를 함락시켰다. 이 때 서방 토착민의 우두머리였던 헌원이 대신 천자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군사를 일으켜 이에 대항하였다. 그리하여 동방 최초의 국제 전쟁인 ‘탁록 대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10여 년간 무려 73회의 치열한 공방전이 오고간 이 전투에서 치우천황은 쇠로 만든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뛰어난 도술로 큰 안개를 지었다. 이 안개술법에 대항하기 위하여 헌원은 지남차를 만들어 싸웠다. 당시 치우천황의 군대는 갈로산에서 쇠를 캐어 금속무기를 만들었는데 이 내용이 춘추전국시대에 기록된 『관자』에 전해져 온다.

 

마침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은 치우천황은 동방 무신의 시조가 되어 수천 년 동안 동방의 조선족은 물론 중국 한족에게까지 숭배와 추앙의 대상이 되었다. 『사기』에 주석을 붙인 응소는 ‘치우는 옛 천자였다(蚩尤古天子)’라고 했고, 『사기정의』는 치우 군대가 ‘동두철액’, 즉 ‘금속 투구를 머리에 쓰고 큰 쇠뇌 등 각종 병장기를 갖추고 출전하여 그 위엄을 천하에 떨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사마천은 이러한 역사의 진실을 ‘금살치우’로 완전히 뒤집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동북아 역사와 문명의 뿌리를 황제 헌원으로 조작하고, ‘중국이 천자국으로 천하의 중심이며 주변민족은 모두 야만족’이라는 중화사관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조선을 중국의 종속국 만든 기자조선

치우천황 시대 이후 1,600년의 세월이 흐른 고조선 시대에 한중역사의 시원을 뒤집는 또 하나의 터무니없는 역사 왜곡이 있었다.


일찍이 중국이 한민족이 뿌리 역사를 말살하는 상투적인 방법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정식 국호인 ‘조선’이라는 호칭을 직접 쓰지 않고 조선의 전성기 때 제후국이었던 70여 개국의 이름 몇 개를 끌어다가 기록하는 것이다. 예, 맥, 발, 숙신, 우이, 래이, 견이, 서이, 고죽, 고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사마천이 당,우,하,상,주 시대 역사를 기술할 때도 그러했다.


그런 사마천이 『송미자세가』에서는 느닷없이 ‘조선’을 언급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봉기자어조선’이라는 기록이 등장한다. 왜 그런 것일까?


이 내용은 지금으로부터 약 3,100년 전 상주 교체기를 배경으로 한다. 주나라 무왕은 동이족의 명재상인 강태공의 보필을 받아 주지육림에 빠진 상(은)나라 폭군 주왕을 방벌하고, 감금되어 있던 상나라 삼현(기자, 미자, 비간) 중 한 사람인 기자를 풀어 주었다. 그런데 풀려난 기자는 조국 상나라가 멸망한 것에 절망하여 동방족의 본고장인 ‘조선’으로 떠나 버렸다. 그때 무왕이 이를 섭섭해 하며 기자를 ‘조선’의 제후로 봉했다는 이야기이다. 요순시대로부터 자기들에게 선진 문물을 전수해 준 종주국 고조선이 주나라의 한 제후국이라는 것이다. 이는 한나라를 세계의 중심 나라로 만들고 조선을 짓밟기 위해 지어낸 날조극이다.


여기에는 4,338년 전에 배달국을 계승하여 개국한 뒤, 2,096년간 존속한 독립국가 고조선을, 3,127년 전에 개국하여 겨우 900년간 존속한 주나라의 제후국으로 끌어내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역사는 중국의 5천 년보다 훨씬 짧은 3천 년으로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조선이라는 나라는 ‘우매한 한민족이 중국의 은혜를 입어 제후로 봉해짐으로써 출발한 국가’로 매도당한 것이다.


기자조선 역사 또한 새빨간 거짓말이다. 『송미자세가』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봉기자어조선’ 바로 뒤에 ‘이불신야’, 즉 ‘그러나 신하로 삼지 못했다’는 말이 나온다. 제후도 당연히 신하인데 왜 신하로 삼지 못했다는 것일까? 실제로 기자가 새로 정착한 곳은 지금의 하북성 태행산 일대로 주나라와 하등 무관한 고조선 영토였기 때문에 애당초 주나라가 그를 제후로 봉할 수도, 신하로 삼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동북공정의 역사적 배경

중국이 과거 2천여 년 동안의 역사왜곡을 총정리 하여 종합한 회심의 작품이 바로 동북공정이다. 그 추진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동북공정은 가까운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통일 대한민국의 성립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만주와 한반도에 대한 연고권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발판으로 동북아의 맹주이자 미국을 앞지르는 초강대국으로 비상하여 21세기를 중국의 시대로 만들려는 거대한 국가 전략이다. 역사 왜곡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동북공정은 중국이 고대부터 동아문명의 중심(천자국)이었다는 역사관을 이론적 배경으로 깔고 있다. 그 기본 논리를 보면 ‘중국 땅에서 일어난 고조선, 고구려, 대진국은 중국 중심의 조공체제에 예속된 변방 정권, 다시 말해서 중국의 국내정권이었으므로 한국사가 아닌 중국사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한족을 중심으로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그들은 건국 초부터 소수민족의 독립을 막고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한족과 소수민족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공동운명체라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티베트족의 독립운동을 잔혹하게 진압하고 그들의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시키는 서남공정을 완결지은 중국은, 지난 1980년대부터 또 다시 조선족을 상대로 한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 동북 3성에서는 그 계획이 실행에 옮겨져 마무리 단계까지 와 있다. 더욱이 조선족의 민족성을 말살하여 완전한 중국인으로 개조하려는 세뇌공작이 진행 중이다. 그 주요 내용은 ‘첫째, 조선족 역사는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로서 중국사에 포함된다. 둘째, 조선족은 중국의 다양한 민족 가운데 하나이다. 셋째, 조선족의 조국은 한국과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다’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중국 동북지역과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무관하다’는 논리의 역사관, 민족관, 국가관을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민족 고대사 전체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음모로서 단순한 과거사 정리 차원의 문제를 넘어 우리의 미래까지 위협하는 끔찍한 역사 찬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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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사의 진실

그러면 중국이 그토록 한민족사를 왜곡 말살해가며 뒤바꾸려는 중국 고대사의 진실은 무엇일까?


중국 산동성을 중심으로 황하문명 형성에 큰 공적을 남긴 고대의 성자들은 모두 동방 한민족의 혈통이었다. 역철학의 시조인 5,500년 전의 태호 복희씨, 농경,의약,교역의 시조인 5,300년 전 염제 신농씨, 그리고 동아시아 최초의 금속문명을 일으킨 4,700년 전의 치우천황은 모두 한민족의 혈통인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뿌리를 잃어버린 오늘의 한국인은 고대 동방 한민족 문화의 정수를 중국 한족에게 전수한 이 세 성황들의 존함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으며, 역사 연구가들조차 중국인의 조상으로만 알고 있다.


역사를 잘 살펴보면 중국의 5천 년 역사에서 자기네 한족 출신의 왕이 왕조를 열어서 대륙을 통치한 일이 거의 없다. 한족의 시조로 알려진 황제 헌원을 비롯하여 오제로 손꼽히는 소호, 전욱, 제곡, 요임금, 순임금과 그 뒤를 이은 3왕조의 개국조인 하나라 우임금, 상나라 성탕,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까지도 본래의 혈통은 100% 동방족이다.


중국의 삼황오제로부터 고대 하상주 3왕조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통치했던 왕조나 그들의 문화를 보면, 단순히 동이족이 문화를 전수해 준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중국의 고대사는 바로 우리 배달 조선민족이 직접 현지에서 나라를 건설한 창업의 역사이다.


어디 그뿐인가. 전국시대를 통일한 시황제의 진나라, 오환선비족인 양견(문제), 영광(양제)의 수나라, 이연과 이세민의 당, 야율아보기의 요나라, 여진족인 아구타가 세운 금나라와 황태극의 청나라, 몽골족 칭기즈 칸, 쿠빌라이 칸이 세운 원나라, 고려 출신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도 모두 순수한 한족의 왕조가 아니다. 이러한 역사의 사실을 무엇으로 뒤엎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중국은 왜 한민족사를 왜곡하는가

중국이 그들 역사의 뿌리인 한민족사를 찬탈하고 부정하고 말살한 대죄는 고금의 인류역사를 통틀어 배은망덕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이 한민족의 역사를 왜곡하는 저의는 무엇일까? 한민족은 동방문명의 종주로서 수천 년에 걸쳐 중국에 문물과 문화를 전해주었는데, 왜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 역사가 중국의 식민지 역사로 둔갑하고 말았는가?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이중적인 역사의식을 갖고 있었다. ‘앞으로 10년 후면 세계의 최강대국 미국도 따라 잡는다’는 중국의 자신감은 그들의 5천 년 역사에 대한 긍지와 ‘낙양은 천하의 중앙이요, 만국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자긍심의 이면에는 그들의 시원문화 역사가 동이족에 의해 시작된 것이며, 그 뒤 새 왕조 개척사의 대부분도 동이족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깊은 ‘역사 콤플렉스’가 도사리고 있다. 그들이 우리 고대사를 왜곡하는 가장 큰 심리적 충동과 문화적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중국은 이 ‘자긍심’과 ‘역사 콤플렉스’의 이중적 의식 속에서 허황된 중화주의 역사를 뿌리내리려는 야심으로 동방 조선을 숱하게 침탈해 왔다. 그러나 한무제, 수양제, 당태종 등은 결연한 항쟁의지를 불태운 동방의 영웅들(고두막한, 을지문덕, 양만춘)에게 치욕스런 패배를 당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더욱 강렬한 보복 심리를 갖게 되었으며, 결국 동방 한민족의 시원역사 창업의 진실을 은폐하고 역사의 뿌리를 말살하려는 거대한 음모를 진행시킨 것이다.




  안경전 / 증산도 종정님

증산 상제님과 태모 고수부님의 대도大道 세계를 정힙하는데 평생을 바쳐온 증산도 종정, 도전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존 기록을 총체적으로 검토 정리하고 현장 답사와 증언 채록을 통하여 '인류 통일문화 대경전' 『도전道典』을 1992년 출간하였다. 그 후 더욱 광범위한 답사와 확인 끝에 2003년  『도전道典』 완간본을 성편하였다. 이 외에도  『증산도의 진리』, 『이것이 개벽이다』, 『개벽실제상황』, 『천지성공』 등의 서적을 집필하였다. 증산도대학교와 TV방송국 상생방송『STB』을 설립하여 증산도 세계화와 인재 양육에 전념하고 있다.

 

적바림  [개벽실제상황, 안경전, 178p ~ 18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