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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세 흐름 읽기/통찰력과 생존전략

나는 잡놈이다[영남대 배영순 교수님]

by 바로요거 2009. 12. 11.

<방하 한생각> 나는 잡놈이다 - 문화일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비유가 있다.

한 사람이 사나운 맹수를 피해 우물 속으로 도망을 가서 겨우 칡넝쿨을 잡고 있는데, 아래를 보니 독사가 입을 벌리고 있고, 위를 쳐다보니 들쥐라는 놈이 그나마 매달려 있는 칡넝쿨을 갉아먹고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 와중에도 그 사람은 이마 위로 꿀물이 떨어지니까 그것을 받아먹느라 맹수도, 독사도, 칡넝쿨을 갉아먹고 있는 쥐도 잊어버린다. 그러고 사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고 비유한 설화다.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을 살펴보면 실제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자기 문제를 방치하고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자기기만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이리저리 문제를 비켜나가면서 쾌락거리를 찾아 헤맨다.

우리가 흔히 그런다. 문제가 ‘골치 아프다’ ‘고민스럽다’고 하지만 문제를 푸는 데 열심인 것이 아니라 문제를 빙자해서 스트레스를 푸는 데 더 열심이다. 거기에 재미가 붙으면, 문제의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푼다는 것이 문제의 현장에서 도망치는 구실이 되고 만다. 그렇게 문제는 문제대로 굴러가고 나는 나대로 굴러간다. 남의 문제도 아닌 나 자신의 문제와 내가 평행선을 달린다. 말하자면 자기 문제의 방관자, 내 인생의 방관자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삶이란 것은, 마주하는 자신의 문제로부터 그리고 다가오는 모든 고통과 고난에서 지혜를 얻어야 하며 그 얻은 지혜로 행동하고 생활로 소화시켜야 한다. 그게 살아 있는 이유일지 모른다. 자신의 문제를 방치하고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다면 삶이란 개념은 성립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그런다. 잡념이 많다고 한다. 공부를 해도, 일을 해도, 그리고 기도하는 순간에도 잡념이 끊이지 않는다. 잡념이 많다는 것은 잡스럽기 때문이고, 잡스러운 물건이 잡놈이니까, 그런 면에서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잡놈인 셈이다.

한순간도 잡념이 떠나지 않는 주된 원인이 무얼까. 그것은 삶에 있어서 다가오는 매 순간순간의 문제들을 나의 문제로 철저히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충대충 필요한 만큼만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나의 이해관계와 그렇게 긴밀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부분에서는 대충대충 흘려버리기 때문이다. 자기 문제를 방관하는 습관이 너무나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즉 자기 문제에서 떨어져 나와 딴 눈을 팔고 딴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딴 마음이 없다면, 문제를 풀고자 하는 진정성이 있고 그렇게 문제에 절실히 매달리고 있다면 잡념이 개재될 틈이 없다. 문제와 나 사이에 거리가 없다면, 문제를 푸는 데 자신을 다 던져 넣고 있다면, 잡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자신을 다 던지지 않고 문제를 구경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삶의 주인도 되었다가 손님도 되었다가 하니까 그 틈에 잡념이 끼어드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묘수는 없다. 문제를 놓치지 않고 문제의 중심으로 뛰어들어가는 것, 다른 허망한 생각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들어가는 것, 그 이상의 묘수는 없다.
 
오늘부터 매주 목요일 영남대 배영순 교수의 ‘방하 한생각’이 연재된다.
배 교수는 2003년 7월부터 문화일보 홈페이지에 같은 제목의 글을 연재해왔다.
제목의 ‘방하’(放下)란 ‘욕심을 비운다’ ‘번뇌를 내려놓는다’는 의미의 불교용어지만, 배 교수는 인간의 삶을 병들게 하고 자기소외를 야기한 욕망의 억압기제로부터의 인간해방을 말하는 적극적인 의미로 방하를 설명한다.
▲1949년생 ▲서울대 사학과 박사 ▲영남대 교수(국사학과·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