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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세포를 교란하는 가공식품들

by 바로요거 2009. 11. 12.

뇌세포를 교란하는 가공식품들

[한겨레신문 2005.12.23 14:06:43]

 


지난 5월 출판된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이란 책은 상당한 센세이션을 몰고 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 동안 잘 모르고 넘어가던 각종 가공식품의 폐해가 상세하게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역부족인 듯 싶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몸에 해로운 가공식품을 애용하고 있다. 사실 몸이 많이 안 좋은 사람이 아닌 이상, 그 동안 만끽해오던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가공식품을 끊는 일은 골초가 담배를 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책을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가공식품의 위험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몸에 좋은 '식물성 유지'로 알려졌던 마가린이 사실은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트랜스지방산 덩어리일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린이들이 자주 먹는 과자는 물론 중국음식에도 광범하게 사용되는 쇼트닝이 뇌세포를 교란시킬 수 있는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다. 기타 다양한 가공식품들이 인체 건강을 위협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그러나 가공식품의 해로움을 어느정도 잘 알고 있는 이들조차 가공식품이 주는 달콤한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 하고 있다. 왜 그럴까? 올리브유나 대안과자같은 '대체재'의 높은 가격과 낮은 접근성도 주된 이유가 될 것이다.

 


주머니에 천원 몇 장과 동전 몇 개 밖에 없는데 멀리 있는 백화점에 가서 고급 천연식품을 찾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더욱이 수십년 뒤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건강문제에 대한 걱정때문에 당장 가까운 가게에서 몇 백원으로 만끽할 수 없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 왠지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거운 스트레스도 주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도 잘 안 되는데,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살면 무슨 낙으로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을까. 더욱이 스트레스 받을 때는 왠지 달고 기름진 것이 먹고 싶어진다. 스트레스가 심하다보면, 설탕과 향료와 트랜스지방산 범벅에 온통 자신을 흠뻑 내맡기고 싶은 자학적 욕망도 강해진다. 먹을 때만큼은 설탕과 향료와 트랜스지방산이 진심으로 자기를 위로해주는 유일한 벗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의식적인 '안심'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만약 가공식품에 해골 마크와 함께 Danger표시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면, 사람들은 아무리 편리하고 저렴할지라도 가공식품을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해골마크가 그려진 가공식품은 전혀 없다. 최소한 소세지나 햄에 꼭 들어가는 '아질산나트륨'은 1그램만 섭취해도 사망할 수 있는 독극물이니 분명 해골마크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런 위험한 '안심'을 불러왔는가? 아마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보고 들어온 '광고'가 이런 무의식적 '안심'을 부추기는데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어렸을 때 아이들은 어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보다 TV 광고를 더 많이 접하며 산다. 그리고 동네 구멍가게에 가보면, TV 광고에서 화려하게 선전된, 먹음직스런 가공식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어머니를 졸라 500원을 타내는 일은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다. 어머니도 가공식품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가 가공식품을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난다고 하면서. 그러나 어머니도 가공식품의 유해성에 대한 경각심이 상당히 풀어진 상태이다. 설마 TV에서 '떳떳하게' 광고를 하는 유명 대기업 회사의 제품이, 몸에 좋을리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크게 나쁠 것도 없으리라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아이를 탓하거나 어머니를 탓할 일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하루에 5편씩 광고를 본다면 그 사람은 1년에 무려 1,825편의 광고를 보는 셈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1,825편의 광고들은 모두 한결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광고를 하는 회사의 상품은 안전하고 우수하다' 정말 고집이 센 사람도 1,825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집요하게 자기를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한다면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큰 돈 들어가는 일이라면 모를까, 몇 천원밖에 안 들어가는 가공식품 구매에 고집을 부릴 사람은 별로 없다.이처럼 광고가 소비자의 판단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현상을, 제도학파 경제학자 갈브레이스는 "의존효과"(dependence effect)라 불렀다. '의존효과'는 '필요'(needs)와 '욕구'(wants)가 다른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광고가 없는 상태에서 어린이들은 간식이 '필요'할 뿐, 가공식품을 '욕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공식품을 선전하는 화려한 광고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다른 간식거리를 제쳐두고 가공식품을 선호하게끔 만든다. (TV에서 과일이나 야채를 광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가공식품들은 대개 과일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강렬한 단 맛을 느끼게 해준다. 사실 "의존효과" 이론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왔다. 이 이론은 소비자의 판단 능력을 무시하고 광고의 영향력을 과장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갈브레이스는 거의 전적으로 기업의 광고가 소비자의 수요(=욕구)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광고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 하는 기업이 존재하고, 반대로 광고를 하지 않아도 입소문을 통해 잘 팔리는 상품도 존재한다. 그러나 광고로 인해 발생한 인위적 욕구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 역시 현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의존효과"로 인해 소비자들이 가공식품에 대해 무의식적 '안심'을 하는 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친절하게도 갈브레이스는 '대항력'의 개념까지 제시해 준다. '대항력'이란 경제 외적으로 발생하며, 균형파괴를 억제하여 소비자가 열악해지지 않게 하는 힘을 뜻한다. 기업주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이, 소비재기업에 대해서는 소비자단체가 각각 '대항력'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가공식품' 생산기업에 대한 대항력에는 어떤 단체가 해당할까? 아마 환경단체들이 가장 근접해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가공식품 문제는 대항력이 상당히 약한 것 같다.

 


가공식품의 문제를 고민한다면, 다른 대안이 없다. 아무리 값비싼 대체재로 해결하려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유일한 대안은 '대항력'으로서 '만국의 가공식품 기업들을 전율케 하는 것'이다. 페놀방류 사건에 대한 강력한 항의가 환경파괴 기업들을 전율시켰듯이 말이다. 그리고 "대항력"은 스스로 무의식적 "의존효과"를 깨는 데에서 시작할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