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국 고구려와 상무정신
요즘 전세계적으로 축구열풍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물론 우리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스위스 언론에서는 ‘장외 월드컵인 응원문화 우승후보국’으로 유일하게 한 나라를 발표했다. 바로 우리 붉은악마가 주축이 된 대한민국 응원단이다. 월드컵 열기 중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열정적으로 한마음이 된 응원문화를 보여준 대∼한민국!!!
우리민족의 본성 속에는 하나로 어우러져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는 호방한 기마민족의 기질이 내재되어 있다. 북방민족의 영웅적 기질(양: 동적기질)뿐 아니라, 남방민족의 학문과 예술을 즐기는 선비적 기질(음: 정적기질)이 조화되어 있다.
노래부르고 춤추고 잘 놀며 예술을 즐긴 고구려 백성들
“그 나라 백성들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여, 나라안의 촌락마다 밤이 되면 남녀가 떼지어 모여서 서로 노래하며 유희를 즐긴다.”
이것은 중국의 『삼국지』 「동이전」 ‘고구려조’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국의 다른 문헌들도 거의 모두 이와 비슷한 기록을 하고 있어, 고구려 사람들이 유난히 춤과 노래를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문헌을 더 살펴보면, 고구려 춤과 음악이 중국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고려무(高麗舞), 고려악(高麗樂) 등으로 불리며 중국 안에서도 크게 유행했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중국 문헌인 『구당서』 『통전』 『신당서』 『수서』 등에 많이 나타난다.
『환단고기』 기록에 의하면, 해모수가 세운 북부여가 단군조선의 국통맥을 계승하는데, 이 북부여의 6대 단군(임금)의 사위가 된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여, 북부여의 국통맥은 다시 고구려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단군조선-북부여 당시의 국풍(國風: 나라의 전통풍습)인, 신교 삼신상제 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아, 하늘(하느님)에 제사지내는 천제, 건국 시조신과 마을수호신, 또 집집마다 조상신 등을 모시는 제사, 추수감사제 등의 제사문화 풍습을 지켰다.
오늘날 축제의 원형이 고대 제사문화인데, 이 제사문화의 뒷풀이로 국중 체육대회(씨름·무술·궁술 등)를 열고 하나로 어우러지는 대동(大同)문화가 뿌리내린 것이다.
『신당서』를 보면, 당나라 측천무후 때 관직이 어사대부인 양재사가 관리들의 잔치에서 즉석으로 고구려 춤을 잘 추었고, 그런 모습을 보고 관직이 사례소경인 동휴가 “공의 얼굴이 마치 고구려 사람 같습니다.” 하며 기뻐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원래 고구려 사람들은 노래와 춤을 즐길 줄 아는 멋스러운 민족이어서, 『당서』에는 고구려 노래와 춤을 ‘고려악’이라 하여 기록했고, 중국 남북조시대의 송나라 때는 고구려, 백제 기악(악기음악)이 들어왔다고 『구당서』 「음악지」에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 음악은 중국 수, 당나라 궁정음악으로 자리잡았고, 당 말기에도 고구려의 춤과 음악이 자주 공연되었으며, 고구려 멸망(668년) 이후에도 이런 현상은 지속되었다. 즉 고구려 음악은 중국역사에서 약 5백년의 긴 세월 동안 ‘아름다운 음악’이란 호평을 받으며, 중국의 예술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중국문헌에 나타난 고구려 기악을 보면, 연주 음폭이 매우 넓어 여러 표현을 마음대로 해낼 수 있었다 한다. 당시는 동양문화가 서양문화보다 훨씬 발달된 시대이므로, 고구려 예술문화가 당시 동아시아 최고의 예술문화이며, 세계적 일류문화로서 손색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 해양·군사·문화 대제국인 고구려와 상무(尙武)정신으로 충만한 백성들
고구려는 음악·무용 등 예술분야 뿐만 아니라, 원거리 항해술·선박 제조기술·천리장성 등 튼튼한 산성 제조기술·온돌문화·철제방패·철제과녁 분야에서 매우 뛰어났다. 선비족의 남연과 중국 송나라에 말 800마리를 배로 실어다 주었고, 중국 남조와 일본을 대상으로 원거리 항해를 하고, 고구려 사신들이 일본에 철제방패와 철제과녁 등 선진문물을 전해준 기록이 중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남사』「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에서 송나라에 화살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고구려 시조인 ‘주몽’이 부여말로 ‘활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인걸 보면, 당시 고구려 철제화살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고구려는 이렇게 문무를 겸비한 강대국이었기에, 수양제 당태종 등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대제국 고구려는 학자·기술자(장인)·예술가 등을 일본에 파견하여 여러 차례 선진문화를 전수해 줬다. 594년에 승려 혜자는 일본역사에서 최고 성인으로 존경받는 쇼토쿠(=성덕) 태자를 가르친 스승이었고, 담징은 일본 법륭사 금당벽화를 남겼고, 5경과 종이·먹·물방아 제조기술을 전수하여 일본의 학문과 농업 발전에 큰 전기를 마련했다.
얼마전 일본 나라현 아스카의 기토라 석실고분 천장에서 천체도(天體圖)가 발견되었는데, 고구려 옛 땅인 평양부근에서 관측된 별자리를 바탕으로 그려졌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이것은 당시 고구려의 천문 관측기술이 일본에 전래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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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본서기』 스이코(推古)기 26년(고구려 영류왕, 618년)조에는 수양제가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대패한 사실과, 또 고구려가 북 등의 악기와 큰활(화살 돌을 연달아 쏠 수 있는 무기)·대포 등을 일본에 선물로 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구려 음악은 대개 춤을 위한 반주곡으로 쓰였고, 고구려 춤은 일본에서 4인무(신토리소, 시키테), 6인무(고토리소) 등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구려왕릉의 벽화로 확인된 것만 봐도 독무·쌍무·군무·탈춤·북춤·칼춤·창춤 등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고구려춤의 특징은 부드러운 동작도 가미되어 있지만, 대체적으로 씩씩한 상무(尙武: 무를 숭상함)정신이 넘치는 기세로 춤꾼들이 칼·창·북 등을 들고 있어 전투적 기상이 느껴진다. 『삼국지』 「연개소문전」과 『한원』 『통전』 등의 중국사서에는 집집마다 온 백성들이 칼을 차고 말타기·무예수련 등을 즐겨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의 남하세력인 백제국 왕족이 개척해서 꽃피운 일본문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들인 온조, 비류(BCE18∼CE28) 왕자의 세력이 남하하여 백제와 일본을 건국하는데, 이 과정에서 고구려 상무정신은 백제의 ‘수사(修士)문화를 거쳐 일본에서 사무라이(武士: 무사)문화’로 새롭게 꽃피게 된다. 즉 백제 문화가 일본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 백제 문화의 뿌리는 고구려 문화라는 것이다.
7∼8C경 편찬기록인 『고사기』 『일본서기』에 나오는 일본왕실 계보에 등장하는 초대 ‘진무’(神武: 신무, BCE660∼BCE585), 50대 ‘칸무’(桓武: 환무, CE781∼806) 일왕 이름속의 ‘무(武)’자를 통해서도, 무를 숭상하는 고구려의 상무정신이 일본왕실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이 가장 자랑하는 문화번영 시대는 ‘아스카’ 시대인데, 그 아스카 문화 또한 고구려 남하세력인 백제 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다(백제의 학문·예술·불교문화의 일본 전래는 너무 잘 알려져 있어 생략한다).
최근에 일왕 ‘아키히토’(明仁: 명인)는 “(자기조상인) 옛 칸무(桓武)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고고학적으로도 1970년대에 발굴된 백제 무령왕릉과 일본 고대문화의 유물, 유적 등이 대단히 유사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본을 건국하고 일본 문화의 뿌리가 된 주인공들은, 모두 단군조선-북부여를 계승한 대제국 고구려와 백제·신라·가야 뿌리인 남삼한(南三韓)시대의 왕족·귀족들이다(신라-가야계는 백제보다 조금 앞서서 일본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이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 논문이 발표된 바 있다).
조선은 원래 일본을 지도하던 선생국이었나니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신도(神道)에서 허락하지 않느니라. (道典 5:118:1)
밥을 한 그릇만 먹어도 잊지 말고 반 그릇만 먹어도 잊지 말라. ‘일반지덕(一飯之德)을 필보(必報)하라.’는 말이 있으나 나는 ‘반반지은(半飯之恩)도 필보하라.’ 하노라. ‘배은망덕만사신(背恩忘德萬死身)’이니라. (道典 2:28:2∼4)
지금은 역사·문화의 뿌리를 찾는 때! 제 뿌리를 찾지 않으면, 개인도 나라도 종국적으로는 모두 소멸될 수밖에 없는 가을개벽기이다. 이제 개인은 개인대로 자신의 조상줄을 찾고, 나라는 나라대로 뿌리역사의 진실을 찾아 뿌리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할 때만이 혈통의 열매, 문명의 열매로 크게 성숙할 수 있다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천리’를 크게 깨우쳐야 하리라.
〈참고서적〉
홍윤기, 『일본천황은 한국인이다』 (효형출판, 2000)
서병국, 『다시 보는 고구려』 (한국학술정보, 2004)
박선식, 『한민족 대외정벌기』 (청년정신,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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