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동명성왕은 고두막한이고, 고주몽은 추모성왕입니다!

by 바로요거 2008. 12. 20.

동명성왕은 고두막한이고 추모성왕은 주몽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동명은 동명이며 주몽(추모)은 주몽(추모)일 뿐 입니다!

동명과 주몽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동명성왕과 고주몽 성제는 엄연히 다른 인물입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동명성왕은 고두막한이며 졸본부여, 즉 동명부여의 시조이시고, 고주몽은 고구려의 시조이십니다.

국사책에는 고주몽과 동명성왕이 동일한 인물로 나오고 있지만, 이것은 전혀 잘못된 것을 우리가 배워 온 것입니다.

그 역사의 실체를 알고 보면 고주몽과 동명왕은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지요!^^

 

동명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동명왕은 한무제의 북부여 침략 때 이를 막아냄으로서 북부여의 단군으로 추대된 인물이 바로 동명왕 고두막한입니다.

 

 한무제가 흉노를 정벌하고 난 후에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패자가 되기위해서 동북아의 주인인 북부여를 찬탈하려다 오히려 전쟁에서 패하게 됩니다.

 한무제의 침략사건으로 북부여를 개국한 해모수의 자손들은 동부여로 밀려나게 됩니다.

고두막한이 일어난 곳이 졸본땅이라서 졸본부여 혹은 동명부여라 합니다.

 

후에 고두막한의 아들인 고무서단군에게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데 그 딸의 이름이 지금  드라마 주몽에 등장하는 소서노입니다.

 

주몽이 소서노와 결혼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북부여를 계승하고 국가 통치권을 잡게 됩니다. 고구려의 건국은 북부여의 국호를 바꾼데 불과합니다.

동명왕과 고주몽과의 관계는 동명왕 손주사위가 고주몽입니다.

 

주몽은 어머니 유화부인인 하백녀사이에  아버지가 없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고불리지란 사람이 주몽의 아버지인데, 유화부인을 정식혼인으로 주몽을 낳은 것이 아니라 요즘 말로 미혼모로 만든 것입니다.

 

왜 고주몽과 동명왕을 동일인물로 보느냐 그리고 역사책에도 그렇게 등장하느냐 하면,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의 실태는 어떠한가 이해해야 합니다.

 

고조선과 고구려사를 이어주는 북부여사가 전혀 없습니다.

역사의 맥이 끊어져서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가 되어버린 것이 북부여사입니다.

역사책에도 몇 줄 안 나옵니다.

 

대표적인 예가 해모수와 고주몽은 120년의 연대기적 차이가 나는 인물임에도 드라마에서는 아버지와 아들로 등장합니다.

 

기가막힌 일이죠 고조할아버지가 아버지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동명성왕은 휘가 고두막한이시고 졸본부여 혹은 동명부여의 왕이며, 고주몽은 고구려의 첫번째 추모성왕이십니다.
저는 고주몽성제가 동명성왕이란 시호를 갖은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삼국사기와 그 내용을 참고한 사서에서만 주몽이 죽어서 동명성왕이라 하였다고 나옵니다.

이 내용이 '김부식'의 인간적인 실수였던, 우리의 견해적 실수였던 간에 고구려인들이 스스로 남겨 놓은 기록으로 들어가 보면... 




우선 첫번째 기록인 광개토태왕비를 살펴보면,

'옛날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세우셨다. 북부여에서 나왔는데, 천제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녀이다.'

이 부분에는 후대의 기록이기 때문에 당연히 시호가 나와야 하지만 단지 추모왕이라고 쓰여있습니다.
단지 당시 풍습이 그랬던 것이 아니냐는 분들을 위해
광개토태왕에 대한 기록을 보면,

'십칠대손에 이르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 섰다.'

광개토태왕에 대해서는 이렇게 긴 시호를 기록했습니다.
주몽이 시호가 있었다면 기록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기록인 천남생 묘지에는

"옛날에 동명은 기운에 감촉되어 호천을 넘어서 나라를 열었고,
주몽은 해로 잉태되어 패수에 임하여서 도읍을 열었다."

시호가 있었음에는 당연히 시호를 기록해야 겠지요? 



그리고 마지막 모두루 묘지에도 역시 추모왕이란 것만 나옵니다.

'하백지손, 일월지자추모성왕 원출 북부여'
즉 '하백의 손자이고, 태양과 달의 아들인 추모성왕은 북부여에서 나왔다.'

역시 추모성왕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동명과 주몽은 먼 시대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과,
부여 출신의 주몽이 부여왕인 동명이라는 칭호를 다시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주몽이 동명성왕이라는 시호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더 명백해 집니다.

이 자료들을 종합해 본 결과 주몽은 죽을 당시에 시호를 갖은 적은 없었고, 김부식은 부여왕 동명의 기록과 추모의 기록을 혼동해서 동명에 '성'을 붙여서 '동명성왕'이라는 가상의 시호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