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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비밀코드

[1] 뿌리를 찾아가는 이유

by 바로요거 2008. 10. 14.

[1]  뿌리를 찾아가는 이유




긴 창은 하늘을 찌르고

수레와 칼은 햇빛에 번쩍이네.

산 위에서는 사슴과 노루를 잡고

산 아래에서는 소와 양을 잡는다네.



문득 들으니 관군이 왔다는데

칼을 들어 먼 나라를 친다 하네.

그러나 요동에 가면 오직 죽음뿐

머리 잘리고 어찌 다치지 않으리오.



- 무향요동낭사가(無向遼東浪死歌)

수 양제(대업7년) 611년 2월 산동지방 제군의 왕박이 스스로 세상일을 내다보는 지세랑이라 칭하며 부른노래. 이후 왕박은 산세가 험한 장백산에서 무리를 모아 봉기함. 고구려원정을 두려워하는 수나라 민중의 심리를 반영


이윤섭, 천하의 중심 고구려, 코리아북케이스, 2004, 144~145쪽




예전에 강대한 국가가 있었는데, 그 나라의 황제는 이웃나라를 힘으로쳐 정복코자 하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뛰어난 장군과 월등히 많은 군인들과 군수물자를 가지고서도 이웃의 한 나라를 꺽지 못하였다.



그 강대한 국가와 그 이웃의 나라는 종족을 달리했는데, 강대한 국가의 사람들은 그 이웃의 나라 사람들을 이렇게 평했다.



"예의를 지키며, 겸손하고 양보하기를 좋아하며, 굳세고 부지런히 생산하며, 무용과 노래를 즐기는 군자(君子)의 나라" 『후한서』「동이전」



결국 그 강대한 국가는 이웃나라를 범하지 못했고 멸망하고 말았다.



또 그 강대한 국가에 뒤이어 나타난 또 다른 강대한 국가 역시 그 종족의 역사상 최고의 영웅이라 칭송받았던 황제조차 그 나라를 범하지 못하였다.



세월이 흘러 종족은 같으나 나라의 이름은 달라지게 된 9백 여년이 흐른때인 1488년 2월에서도, 조선에서 표류해 왔던 최부를 접견한 소주의 안찰어사들이 최부에게 "당신 나라에 무슨 장기가 있어 능히 수 당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느냐"고 질문했다.



다시 100년이 지난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해 조선군이 일본군에게 참패를 거듭하자 명의 관리들은 매우 의아하게 여기며 물었다.



"조선이 수당 이래 강국으로 불렸는데 지금 이처럼 허약해진 이유가 무엇이냐"



세월이 흘러 300년의 역사가 흐른 뒤에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의 주권을 수호하는데 열성적이었던 외국의 한 사람은 드디어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된다.



"이 사람들은 자치할 능력이 없습니다. 한국은 일본에 속하여야 합니다. 독립이라는 허구를 일본으로 하여금 더 이상 계속토록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 1904년 1월 4일 미국 공사 알렌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동아시아정책담당보좌관 록힐에게 밝힌 견해



재미있게도 과거 이 수당이래 강대했던 국가 이전의 역사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400년에서 4000년의 역사속에서 수십년째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 논쟁의 핵심은 현재 학계에서 국가성립의 기준으로 보고 있는 청동기가 언제 시작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청동기시대가 언제 시작되었느냐를 놓고 기원전 400년에서 기원전 4000년까지 말 그대로 천차만별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일본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 실무반장 성삼제, 고조선 사라진 역사,  동아일보사, 2005, 41쪽



우리는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걸까?



과거 선조들의 영화를 되새기는 것은 오늘의 삶과 동떨어진 행태이고, 과거 속에서의 잘못을 되짚어내어 반성하고 현재, 또 앞으로 닦쳐올 문제들에 대한 성찰로서 연구해두기 위한 걸까?



그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역사는 행동화된 과거의 기록이고, 그 과거의 기록속에서 어떤 생각과 의지로 그 행동화된 역사를 만들어냈는가를 읽어내어야 현재속에서 의미가 있다.



역사는 바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의 의식을 비집고 들어가 나태하고 묵은 기운을 떨치고 일어서서 다시 비정한 현실의 삶을 달구며 뜨겁게 부딪힐 것을 조용히 이야기 하고 있다.



역사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미치고 있는 영향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의식 저 깊숙한 곳에서 언젠가 분출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숨겨진 무의식 속에서의 정신무장일 것이다.



1990년대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로 부터 X세대 알수없는 미지의 생명체로 받아들여 졌다. 예전에 접할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문명의 도구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그 문명의 도구에 익숙한 또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이해할 수 없는 `괴물`들로 본 것이다.



그 뒤 약 10여 년간 이 땅의 젊은이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문화와 만났다.



그 문화는 그 문화의 평론가들이 대중문화로 지칭했던 헐리우드와 록과 재즈, 펑크로 대변되는 미국의 문화시장을 거쳐 일본의 가장 저급한 쓰레기 문화와 결합되어 복여진 문화였다.



말하자면 과거의 한국인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새로운 문화에 접목된 한국인들의 역사가 전개된 것이다. 그러다 1988년의 서울올림픽의 영광뒤 10년만에 그 거품이 산산조각나는 일을 겪어야 했다. 1997년의 IMF사태는 1910년 이후 다시 스스로를 자조하게 만들었다.



겨우 90년전의 일을 역사속에서 한 무리의 종족들이 3세대가 못되어 또 다시 되풀이한 것이다. 역사교육의 가장 기본인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기능조차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거기다 한민족이 역사속에서 지리적 조건속에서 어쩔 수 없이 부딪히며 살아야 하는 이웃들인 중국과 일본이 각기 동북공정과 교과서왜곡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집주인을 몰아내고 역사속에서 그 존재를 지워가는 과정에 있어, 단순히 역사를 교육하고 교육받음으로서 나타나는 반사적이익인 닥쳐올 앞날을 대비한다는 차원이 역사속에서 민족이 생존하느냐 멸망하느냐는 생사존망의 차원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곧 하나의 민족이 역사속에서 지우개로 지운듯 깨끗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의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또 다른 희망으로 나타난 역사속에서 벌어진 사건이 있어 현재의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때 6~700만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단합된 붉은 물결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하나의 상징 아래 통합된 광경을 전 세계인과 함께 지켜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6~700만의 사람을 하나로 집결시킨 상징에 대해서다. 말하자면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던 그 힘의 근원은 어디서 나타났는가 하는 문제다. 그 상징은 오늘날 단군조차 신화로 보는 일반적 시각도 간단히 뛰어넘는 단군이전의 역사 속에서 활약했던 `치우천황`이란 코드다.



치우는 고대 동아시아에서 동방족과 서방족이 중원의 패권을 놓고 싸웠던 첫 기록이자, 가장 치열한 역사의 흔적을 남겨놓은 인물이다. 치우천황은 그의 적과 73차례나 싸웠고, 그 속에서 늘 승리한 전승의 역사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하나의 민족 또는 종족의 역사는 그 민족과 종족에 속한 개인들의 활동범위이다. 아무리 오래된 일이라 하더라도, 예전에 나와 같은 소속인 민족에 속한 사람이 예전에 한 일이 있다면, 그건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그 속에 속한 개인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한 민족의 역사는 그에 속한 개인의 전범이 되어 활동능력과 무대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민족의 역사를 아는 만큼 자신의 활동영역이 확장되는 것이다.



그러자면 `나`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역사는 `나`란 사람이 누구인가 `나는 내가 처한 환경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나는 내 활동영역과 행동반경을 어떻게 확장시킬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모범적 사례를 제시해 준다.



사례적인 모델케이스로서의 역사는 스스로를 비하하고 깎아내렸던 자신의 능력을 한계를 극복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를 아는자의 특권이며 힘이다.



그러면 세계가 복음밥처럼 비벼지고 점차 하나로 통합되어가고 있는 이 상황에서 나는 내 활동영역과 행동반경을 어떤 방식으로 넓혀나가고 내가 처한 한계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조상이 이웃으로 부대끼며 함께 살아온 종족과 민족의 역사를 모르고서 어떻게 발전의 원동력을 제공받을 것인가?



발전이란 것은 뿌리문화 기층문화의 토대속에서 과거의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 좀더 낳은것으로 발전한다. 비교의 대상과 폭이 넓어지면 넓어질 수록 발전의 가능성은 커지고 한계를 극복할 힘은 커지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삶,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의 삶이 지금 현재의 내 삶과는 어떻게 다르며 과거와 비교할때 지금의 내 삶은 얼마만큼 낳아졌는가를 비교할때 긍정적인 발전의 싹이 틔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뿌리를 찾아가는 이유다.



도기 136년 8월 26일 토요일 늦은 1시 17분

환기 9205년 웅기(신시개천) 5904년 단기 4339년

불기 3032년 유기 2553년 서기 2006년 이슬람력 138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