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한민족 역사문화/환단고기*韓의뿌리

붉은악마와 치우천황

by 바로요거 2008. 9. 26.

붉은악마와 치우천황

붉은악마의 함성으로 지구가 들썩들썩하였다!

 

‘붉은악마(Red Devils)’는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의 4강신화 때 한국의 국가대표 축구팀 응원단 이름인데,  ‘붉은악마’는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서포터스 그룹의 일원으로 그 시효는 1997년 PC통신 하이텔 축구동호회이며, 1998년 프랑스월드컵 1차 예선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붉은악마’란 이름은 1998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한국이 4강으로 올랐을 때 당시 외국 언론들이 우리 대표팀을 ‘붉은 악령(Red Furies)' 등으로 지칭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이 다가오면서 점점 더 힘을 받아 국민들에게 크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붉은악마와 치우천황/이종호의 과학이 만드는 세상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4 강의 신화를 이룰 때 한국의 응원단 이름은 ‘붉은악마(Red Devils)’였다. 원래 ‘붉은악마’는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서포터스 그룹의 일원으로 1997년 PC통신 하이텔 축구동호회가 그 시초인데 1998년 프랑스월드컵 1차 예선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붉은악마’란 이름은 1998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한국이 4강으로 올랐을 때 당시 외국 언론들이 우리 대표팀을 ‘붉은 악령(Red Furies)' 등으로 지칭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이 다가오면서 점점 더 힘을 받아 국민들에게 크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독교계에서는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붉은악마가 설치는 한 한국 팀이 16강에

▲ 붉은악마의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공식 서포터스 클럽 치우천황 로고. ⓒ

들어가지 않는 것이 낫다’느니 ‘악마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한 16강은 불가능하다’라고까지 비난하면서 ‘붉은악마’를 규탄했고 외국에서도 악마를 상징으로 쓰는 한국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일부 목사들은 ‘백의 천사’라는 응원단까지 조직했다. 종교적인 열정을 무기로 한 ‘백의천사’는 기독교계 중·고등학생들을 동원붉은악마의 응원에 방해가 되도록 엇박자로 응원을 펼치기도 했으나 결국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민중서관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악마란 ‘생명을 빼앗고 선법(善法)을 방해하는 나쁜 귀신’ 또는 ‘아주 흉악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고 그 반대말이 ‘천사’이다. 종교인들이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악마를 내세운다는 자체가 악마주의(惡魔主義)로서 인생의 암흑면(暗黑面)을 그리며 악을 찬미하는 퇴폐적인 경향을 조장한다는 점 때문이다. 

붉은악마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창윤은 벨기에 국가대표팀과 영국의 유명 축구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도 붉은악마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악동(惡童)’ 혹은 ‘악당(惡黨)’이라고 타인을 지칭할 때 실제로 ‘성품이나 언행이 나쁜 아이’나 ‘악한 사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아주 친한 친구한테 종종 ‘악당’이라는 말을 쓴다. ‘붉은악마’의 ‘악마’라는 단어도 이런 범주에 속하는 퍽 재미있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거리 응원에 나선 수많은 사람들이 ‘붉은악마’를 상징하는 붉은 셔츠를 아무런 부담감 없이 입었던 것이다. 

 

 

 

▲ 2006 길거리 응원에 등

 

장한 태극기 패션. 태극기

 

는 길거리 응원단을 결속

 

시키는 구심체로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사진 최용민).  ⓒ

 

붉은악마의 응원도구는 대형태극기와 붉은 티셔츠, '대∼한민국’으로 통칭되는 응원구호이다. 붉은악마들의 응원은 다른 나라 서포터스(응원단)와 분명히 다르다. 강력한 응원무기는 ‘태극기’이다. 그 중에서도 2002년에 등장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던 대형태극기는 가로 60미터, 세로 40미터 무게 1.5톤이나 된다. 이를 펼치면 그 넓이가 무려 720평에 달한다. 한국 팀 경기에 앞서 애국가가 연주되면서 이 초대형 태극기가 관중석을 뒤덮었다.

 

태극기가 바람에 물결칠 때 한국인들은 짜릿한 감동을 느꼈다.

 

응원 소도구는 ‘COREA’와 붉은악마의 상징인 ‘치우천황’이 함께 새겨진 머플러, ‘탐탐이’로 불리는 작은 북, 꽹과리, 태극기 등이다. 2006년 월드컵에서는 아쉽게도 16강에 올라가지 못했지만 응원문화는 더욱 업그레이드되어 빨간색 두건, 가면, 응원봉은 물론 밤 경기 응원용 악마뿔 머리띠, 손목 아대, 빨간색 투혼 팔찌, 축구공 귀걸이도 등장했다. 

더욱이 국경일에나 사용되던 태극기를 국민들의 장식품으로 끌어내린 것은 상당 부분 ‘붉은악마’의 공으로 돌릴 수 있다. 응원가는 ‘오∼필승 코리아’, ‘아리랑’, ‘젊은 그대’ 등이 사용됐으며 ‘대∼한민국’ ‘한국’ 등의 구호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박자에 맞춰 다양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붉은악마’의 상징으로 ‘치우천황(蚩尤天王, Chi you)’을 내세웠다는 데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한다. 붉은악마 응원단이 처음 치우를 잘못 알고 악마로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지만 붉은악마가 치우천황을 내세운 것은 치우천황은 환인이 다스리던 환국의 뒤를 이어 환웅천황이 건국한 배달국(倍達國)의 14대 이기 때문으로 설명되었다. 

또한 치우천황은 한국인의 선조로 알려진 동이족(東夷族)이며 그의 근거지가 고대 고조선의 영토이므로 그를 내세우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조였다(중국 측에서는 치우(蚩尤)가 공손 헌원(軒轅)과 전쟁을 벌인 사실을 ‘동이전’이 아닌 ‘흉노전’에 기록하고 있음). 

 

<지구를 들썩거리게 한 함성〉

 

 

2006년 월드컵이 진행되자 한국이 온통 월드컵 열기로 들끓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축구공 하나가 세계를 웃기고 울리는 요물이 된 것이다. 한국의 월드컵 열기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길거리 응원이다. 

그동안 2002년, 2006년 월드컵 기간 중에 나타난 놀라운 현상에 대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나름대로 진단하고 평가했으므로 이곳에서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다음 두 가지에 대해서만 설한다. 

 

우선 월드컵 때 한국인이 쏟은 에너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거리의 응원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수치로 풀어보자. 

2002년 6월 25일, 독일과 결승전 진출을 가리는 준결승전, 월드컵이 열리는 한국의 심장부 광화문, 시청에는 무려 140만 명이 몰렸고 서울 시민의 1/4인 250여만 명이 거리 응원에 나섰으며 전국 450여 곳에 4천700만 전 인구의 17퍼센트에 달하는 800만 국민들이 모였다. 

 

 

 

▲ 2006년 시청 앞 길거리

 

응원을 위해 모인 군중.

 

세계를 놀라게 한 길거리

 

응원은 응원문화 한류로

 

승화될 수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

 

(사진 이종호). 

 

2006년 월드컵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역 예선전, 평가전서부터 붉은악마와 길거리 응원이 등장하더니 2006년 6월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토고와 예선 1차전을 벌일 때 한국의 곳곳에서 응원을 벌인 사람이 무려 218여 만명이나 되었다. 6월 19일에는 새벽 4시에 프랑스와의 예선전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70여 만명이 길거리 응원에 나섰고 6월 24일 같은 시간 스위스와의 예선전 마지막 경기에는 100여 만명이 전국 각 곳에서 길거리응원에 열중했다.

 

한국의 길거리 응원이 얼마나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는지는 국의 응원을 직접 취재하기 위해 각국의 기자들이 몰려들었으며 관광객들이 방문하여 한국인들의 응원 실력을 현지에서 직접 목격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길거리 응원이 한국 내에서만 펼쳐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미국, 영국은 물론 전 세계 각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자발적인 붉은악마 응원이 벌어졌다. 이들의 응원 열기에 자국인들도 휩쓸려 붉은악마와 함께 한국을 응원하는 것도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붉은악마의 응원문화를 한류로 이끌자는 주장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길거리 응원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2002년 6월 25일 한국인들이 내뿜은 에너지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1인당 1일 발산 에너지는 대략 2500㎉가 되는데 이날 많은 사람들이 정오부터 축구가 끝난 자정까지 쉬지 않고 ‘대∼한민국’이나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쳐댔다. 거의 12시간에 걸친 열띤 응원이었으나 이를 6시간으로 줄여 계산한다면 1인당 625킬로칼로리를 발산했다는 뜻으로 이날 800만 명의 한국민들이 거리에 분출한 에너지는 5,000,000,000 ㎉이다. 

이 에너지를 태양에너지로 흡수하려면 한국의 경우 집열기 1㎡ 당 평균 2500㎉를 획득할 수 있으므로 무려 2,000,000㎡ 즉 60만6천여 평의 집열기가 하루 종일 태양열을 흡수한 양이 된다. 태양에너지를 집열하는 집열기의 가격을 400,000원/㎡으로 산정 하더라도 무려 8천억 원이 소요된다. 

인간이 이와 같은 에너지를 방출하려면 음식으로 흡수해야 하는데 이를 계산한다면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다. 달걀은 66,667,000개, 자장면은 무려 11,363,000그릇에 해당한다. 이를 소고기로 환산하면 3,731,343킬로그램(134㎉/100g)이 소요되며

돼지고기로 환산할 경우 3,546,099킬로그램(141㎉/100g)이 필요하다. 황소 한 마리를 400킬로그램으로 볼 때 9,328마리, 돼지 한 마리를 150킬로그램이라고 볼 때 무려 23,640마리가 소요되어야 하는 양이다.

 

함성을 생각해보자.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리의 세기는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의 세기의 1,000,000,000,000배까지이다. 그러나 소리의 크기의 차이는 이보다 훨씬 적다. 

귀가 듣는 상대적 소리의 크기를 음량이라 하고 데시벨(db) 단위로 측정한다. 데시벨은 로그눈금을 사용하므로 10데시벨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인 0데시벨보다 10배, 20데시벨은 100배이다. 일반적으로 집에서의 라디오 소리를 40데시벨, 집에서의 대화소리를 65데시벨, 귀에 장애를 주는 소리를 85데시벨, 매우 혼잡한 교차로는 90데시벨, 도로 공사시 굴착기의 소음은 100데시벨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큰 소음은 제트기 이륙 때 나는 소리로 140데시벨로 본다. 인간은 120데시벨에서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고 140데시벨에서 고막에 통증을 느끼며 방향감각을 일시 잃는다. 

전문가들은 2002년 6월 25일 광화문에서 국민들이 한꺼번에 터뜨린 함성을 150데시벨로 보았다. 150데시벨이 얼마나 높은 수치인가는 일반 소음계(sound level eter)의 측정 범위가 0∼130데시벨인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800만 명이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소리를 질렀다면 200데시벨도 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엄밀한 계산을 한다면 이보다 훨씬 낮은 수치가 되지만 전 세계에서 아직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프리미엄까지 붙여 적어도 제트기의 소음보다 100만 배는 된다고 가정해도 무리는 아닐 성 싶다. 

이들의 함성으로 지구가 들썩들썩했을 것이라는 데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한국민이 마음껏 동시에 터뜨린 함성으로 고막이 터지거나 귀에 병이 들었다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세계인들이 TV에서 한국민들이 지르는 함성을 보고 기가 질렸음은 틀림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