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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쉼터/東西문화,역사인물

주공

by 바로요거 2008. 9. 22.

주공


주공(周公)은 성이 희(姬), 이름이 단(旦)이며 숙단(叔旦)이라고 한다. 주나라 문왕(文王)의 넷째 아들이며 무왕(武王)의 동생이다. 서주(西周) 초기의 유명한 정치가, 군사가, 교육가이다. 그의 채읍(采邑)이 주(周)의 땅(지금의 섬서성 扶風縣)에 있었기 때문에 "주공"이라 일컬어졌다. 휘는 문(文), 후세 사람들은 그를 선성(先聖), 원성(元聖)이라 칭하였으며, 당대(唐代)에는 문헌왕(文憲王)이라 하였다.

주공은 어릴 때부터 촘명하고 다재다능하였으며,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였다. 문왕(文王)이 살아있을 때부터 그는 형 희발(姬發: 무왕) 함께 항상 아버지를 도와 주나라의 여러 업무를 관장했다. 문왕이 세상을 떠난 후 무왕이 왕위를 이어받자 그는 계속해서 무왕을 보좌하였다. 이때 그의 위치는 노신 강태공(姜太公)에 버금갔다.

주공은 무왕을 도와 상(商)의 폭군 주왕(紂王)을 토벌하고 주나라를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공을 인정받아 그는 곡부(曲阜)에 봉해지고 "노공(魯公)"이라 일컬어졌다.

그러나 그는 봉지(封地)로 가지 않고 그의 장남 백금(伯禽)을 대리로 부임시키고 자신은 도읍지에 체류하면서 계속 무왕을 보좌했다. 백금이 봉지로 가기 전에 인재의 중요함을 익히 알고 있던 주공은 백금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나는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으로 제후 중에서도 고귀한 몸이지만, 어진 사람이 찾아오면 머리를 감다가도 그것을 쥔채로 나가서 맞이하고, 밥을 먹다가도 그것을 뱉고 나가서 맞이한다. 그것은 유능한 현인에게 예를 다하기 위한 것이다. 너는 노나라에 가거든 현인의 소중함을 알고 예로써 선비들을 대해야지 결코 오만하게 굴어서는 안된다."

상나라를 멸망시킨지 2년 후에 무왕은 중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무왕이 세상을 떠난 후 주공은 강보에 싸여있던 어린 성왕(成王)을 대신하여 국정을 다스렸다. 당시에 주공의 남동생 관숙(管叔)과 일부 사람들은 "주공이 성왕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을 내었다. 이에 주공은 다른 동생 여공(呂公) 희상(姬爽)에게, "내가 유언비어에 신경쓰지 않고 정사를 맡는 이유는 천하가 주나라를 배반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주공이 정사를 맡은지 4년째 되던 해에 관숙과 채숙(蔡叔)이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원래 상나라를 멸망시킨 후 무왕은 무경에게 상왕조의 도읍 조가(朝歌)를 계속 다스리게 하고, 관숙과 채숙으로 하여금 무경을 감시토록 하였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동이(東夷)의 여러 부락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주공은 즉시 성왕의 명을 받들고 동으로 출정하여 상왕조의 잔여 세력을 깨끗이 토벌함과 동시에 관숙과 무경을 죽이고 채숙을 추방하였다. 또 강숙(康叔)을 위(衛)에 봉하고, 상왕조의 중신을 송(宋)에 봉하여 상왕조의 옛땅을 다스리게 했다. 주공은 동방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서 상왕조의 귀족들을 성주(成周)에 모아두고 새 도읍지 낙양(洛陽)을 건설하였다.

 성왕이 장성한 후 주공은 정권을 성왕에게 돌려주고 신하를 자처하면서 제후의 예를 갖추었다. 성왕이 정사를 맡은 뒤에 주공은 모함을 받아 초(楚)나라로 쫓겨났다. 나중에 성왕이 일의 진상을 알고는 울면서 주공을 모셔왔다. 주공은 성왕이 주색이 빠질 것을 염려하여 <다사(多士)> <모일(母逸)> 등의 글을 지어 상(商)의 탕(湯)이나 무정(武丁), 조갑(祖甲), 주(周)의 문왕(文王)과 같은 성군이 되도록 충고하였다. 그리고 ≪주관(周官)≫≪입정(立政)≫ 등의 책을 지어 관리들이 지켜야 할 본분과 임무에 대해서 밝히고, 각종 개혁을 시행하여 주왕실의 기초를 공고히 다졌다. "주례(周禮)"의 제정, 장자 상속제, 봉건제, 제반 관제 등 주대의 제도는 대부분 주공에 의해 정해졌다.

주공은 중국 전통문화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다. 위로는 요순(堯舜)을 계승하고 아래로는 공맹(孔孟)을 열어주어 수천년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왔던 것이다. 주공은 음력 1월 6일에 태어났기 때문에 매년 이 날에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주공의 사당(周公廟)을 찾아가 예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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