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100만원, 3500원 백반 먹는 서민은 목멘다
오마이뉴스 | 기사입력 2008.07.15 16:15 | 최종수정 2008.07.15 16:41
[[오마이뉴스 양형석 기자]무더운 열대야를 버티기 위해 큰 맘 먹고 할부로 구입한 에어컨은 전기세 걱정에 '개점 휴업' 상태다. 모자란 생활비 쪼개서 꾸준히 불입하고 있는 적립식 펀드는 폭락하는 주가에 힘입어(?) 연일 손실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올해로 서른 한 살이 된 나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서민들은 대체로 이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서민들이 살아가기 점점 피곤한 세상이 되고 있다.
가만히 놔둬도 힘든 세상에 '높으신 분'께서 제대로 기름을 부었다. 지난 12일 한나라당 소속의 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이 신임 의장 선거를 앞두고 시의원 30여명에게 30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밥값' 100만 원, 밥 한 끼가 얼만 줄 아시나요?
경찰에 따르면 김 의장은 의장 선거를 앞두고 30명의 동료 한나라당 시의원들에게 "식사나 하라"는 명목으로 1인당 100여 만원을 제공했다고 한다. 100만원이 '밥값'이란다.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니까 개그는 분명한데,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걸 보니 김 의장은 재능 없는 개그맨인가 보다.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나는 14일 아침 식사로 3500원짜리 백반을 먹었다. 아침 일찍부터 영업하는 식당이 그리 많지 않아 언제나 같은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3500원이라고 무시하면 섭섭하다. 아침 장사를 하는 상인들을 위해 새벽 6시부터 음식을 만드시는 아주머니의 정성에 '단골 인심'이 담긴 푸짐한 반찬들이 더해져 든든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든든하게 먹고도 다시 출출해지는 걸 보니 벌써 점심 시간인가 보다. 어느덧 주변의 식당들이 대부분 문을 열어 이제는 고를 수 있는 메뉴가 꽤나 다양해진다. 날씨가 더우니까 시원한 냉면이나 콩국수가 생각나기도 하고, 힘든 오후 시간을 위해 든든한 설렁탕이나 갈비탕이 먹고 싶기도 하다.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돈다.
그러나 금고를 열어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경기가 워낙 어려운 데다가 날씨까지 더워지는 바람에 상가를 찾는 손님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드문드문 찾아 오는 손님들마저도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결국 장고 끝에 선택한 메뉴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장면'. 전화번호를 누를 때는 '자장면' 앞에 '간', '삼선', '쟁반' 등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정작 중국집에서 전화를 받으면 3500원짜리 '자장면 보통'을 외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7000원으로 하루의 아침과 점심을 해결했다. 만약 내가 김 의장에게 '밥값'을 받았다면 무려 142일 동안 두 끼의 식사를 보장받는다. 그러고도 6000원이 남으니 장사가 잘되는 날엔 당당하게 '자장면 곱빼기'나 '쟁반 자장면'을 외칠 수도 있겠다.
권력의 단맛, 국민들 허탈하게 할 만큼 가치 있나?
평소 친하게 지내던 옆 가게 점원 김아무개(39)씨에게 이번 김귀환 의장의 밥값 100만원 사건을 얘기했다. 그는 지난 2005년에 결혼해 얼마 전 첫 아이의 돌잔치를 했던 '가장'이다. 그는 "새삼스럽게 뭘…"이라며 피식 웃고는 곧 담배를 핀다며 밖으로 나갔다. 한숨 대신 담배 연기라도 내뿜고 싶었던 모양이다.
참 허탈하다. 그리고 기가 죽는다. 서민들은 평소보다 1000원 더 비싼 점심을 먹기 위해서도 큰 결심을 해야 하는데,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100만 원의 '밥값'을 주고 받는다니…. 106명의 서울시의원 중 30명 정도가 연루되었다고 하니, '일부 몰지각한 소수의 만행'이라고 할 수도 없다.
시의원들은 그 돈을 유흥비, 채무 변제금, 주식 투자금, 해외 여행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의장은 분명 '밥값'이라고 했거늘, 이들은 100만원이라는 화폐의 가치를 각자의 처지에 맞게 극대화 시켰다. 역시 배운 사람들 답다.
나는 학창 시절에 특출나게 성적이 뛰어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인기있는 학생도 아니어서 그 흔한 '반장' 한 번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 살아가면서 권력이 가진 '단맛'이 어떤 건지 느낄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양심을 팔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만하면서까지 맛봐야 할 만큼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혹시 진정한 '단맛'이 어떤 건지 느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근처 커피 전문점에 가서 "캬라멜 마끼아또에 시럽 듬뿍 넣어 주세요!"라고 외칠 것을 권한다. 김 의장이 썼던 방법보다 훨씬 간편하고 저렴하다. 그리고 정직하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기원한다 해도, 분명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제2, 제3의 김 의장이 등장할 것이다. 그 사람이 누가 될진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그에게 진심으로 부탁하고 싶다.
앞으로 100만 원의 '거금'을 뇌물로 줄거면 "식사나 하라"는 되도 않는 말은 하지 말자. 차라리 "동남아 관광이라도 다녀 오세요" 혹은 "최신 드럼 세탁기 한 대 장만하시죠"라고 솔직하게 말하자. 3500원짜리 밥 먹으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덜 허탈해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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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놔둬도 힘든 세상에 '높으신 분'께서 제대로 기름을 부었다. 지난 12일 한나라당 소속의 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이 신임 의장 선거를 앞두고 시의원 30여명에게 30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밥값' 100만 원, 밥 한 끼가 얼만 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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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나는 14일 아침 식사로 3500원짜리 백반을 먹었다. 아침 일찍부터 영업하는 식당이 그리 많지 않아 언제나 같은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3500원이라고 무시하면 섭섭하다. 아침 장사를 하는 상인들을 위해 새벽 6시부터 음식을 만드시는 아주머니의 정성에 '단골 인심'이 담긴 푸짐한 반찬들이 더해져 든든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든든하게 먹고도 다시 출출해지는 걸 보니 벌써 점심 시간인가 보다. 어느덧 주변의 식당들이 대부분 문을 열어 이제는 고를 수 있는 메뉴가 꽤나 다양해진다. 날씨가 더우니까 시원한 냉면이나 콩국수가 생각나기도 하고, 힘든 오후 시간을 위해 든든한 설렁탕이나 갈비탕이 먹고 싶기도 하다.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돈다.
그러나 금고를 열어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경기가 워낙 어려운 데다가 날씨까지 더워지는 바람에 상가를 찾는 손님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드문드문 찾아 오는 손님들마저도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결국 장고 끝에 선택한 메뉴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장면'. 전화번호를 누를 때는 '자장면' 앞에 '간', '삼선', '쟁반' 등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정작 중국집에서 전화를 받으면 3500원짜리 '자장면 보통'을 외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7000원으로 하루의 아침과 점심을 해결했다. 만약 내가 김 의장에게 '밥값'을 받았다면 무려 142일 동안 두 끼의 식사를 보장받는다. 그러고도 6000원이 남으니 장사가 잘되는 날엔 당당하게 '자장면 곱빼기'나 '쟁반 자장면'을 외칠 수도 있겠다.
권력의 단맛, 국민들 허탈하게 할 만큼 가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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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허탈하다. 그리고 기가 죽는다. 서민들은 평소보다 1000원 더 비싼 점심을 먹기 위해서도 큰 결심을 해야 하는데,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100만 원의 '밥값'을 주고 받는다니…. 106명의 서울시의원 중 30명 정도가 연루되었다고 하니, '일부 몰지각한 소수의 만행'이라고 할 수도 없다.
시의원들은 그 돈을 유흥비, 채무 변제금, 주식 투자금, 해외 여행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의장은 분명 '밥값'이라고 했거늘, 이들은 100만원이라는 화폐의 가치를 각자의 처지에 맞게 극대화 시켰다. 역시 배운 사람들 답다.
나는 학창 시절에 특출나게 성적이 뛰어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인기있는 학생도 아니어서 그 흔한 '반장' 한 번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 살아가면서 권력이 가진 '단맛'이 어떤 건지 느낄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양심을 팔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만하면서까지 맛봐야 할 만큼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혹시 진정한 '단맛'이 어떤 건지 느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근처 커피 전문점에 가서 "캬라멜 마끼아또에 시럽 듬뿍 넣어 주세요!"라고 외칠 것을 권한다. 김 의장이 썼던 방법보다 훨씬 간편하고 저렴하다. 그리고 정직하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기원한다 해도, 분명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제2, 제3의 김 의장이 등장할 것이다. 그 사람이 누가 될진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그에게 진심으로 부탁하고 싶다.
앞으로 100만 원의 '거금'을 뇌물로 줄거면 "식사나 하라"는 되도 않는 말은 하지 말자. 차라리 "동남아 관광이라도 다녀 오세요" 혹은 "최신 드럼 세탁기 한 대 장만하시죠"라고 솔직하게 말하자. 3500원짜리 밥 먹으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덜 허탈해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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