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문일] 강아지 외교
국민일보 | 기사입력 2008.07.14 18:18
워싱턴 포스트가 이명박 대통령을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대신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애완견이 될 후보라고 표현한 것은 지난달 27일이다. 7월초로 예정된 부시의 방한 계획이 연기된 경위를 설명하면서다. 애완견이라니. 독재국 지배자에게 쓰는 험악한 욕은 아니더라도, 비례(非禮)의 표현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민은 물론이고 대통령 주변에서조차 이 때문에 흥분했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두 달째 외치는 "쥐" 소리에도 대응하지 못한 정부이니 "개" 소리를 한 외국 언론을 시비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게다.
"사람은 반드시 그 자신을 모욕한 후에야 남이 그를 모욕하게 마련"이다. 맹자의 말이다. 2003년 2월 블레어에게 '부시의 푸들'이라는 굴욕적인 딱지를 붙인 것은 다름 아닌 영국의 공영방송 BBC였다. 며칠 앞서 넬슨 만델라가 블레어를 '미국 국무장관'라고 부른 것보다 한술을 더 떴다. 블레어가 부시의 전쟁 정책에 적극 동참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그럼에도 블레어는 부시 임기 내내 미국의 뒤를 쫓았다. 이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 방문 한번으로 오명을 얻었다.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 길에 이뤄지려던 부시 대통령의 방한 계획이 8월로 연기된 사정에 말이 많다. 방한 무산과 연기된 일정이 미국측에서 일방적으로 발표되는 외교 결례가 반복됐는데도 우리 정부는 제대로 따지지 못했다. 연기 이유가 촛불시위 때문이란 것은 누구라도 알 일이다. 귀책 사유가 우리 정부에 있기 때문일까. 정부가 서울 대신 제주도 방문안을 내놨다가 거부당한 것은 졸작 중 졸작이었다.
도야코에 옵서버로 초청된 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이 1시간 예정에서 28분으로 줄었다. 회담이라고 부를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정부로서야 부인하고 싶겠지만 무시당했다고 할 만하다. 문제는 제대로 따져볼 엄두도 못 낼 만큼 한·미 간 외교의 수위(水位)차가 커진 점이다. 쇠고기 협상과 캠프 데이비드에서 드러낸 저자세 외교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어제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등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기로 한 것도 저자세 외교의 결과물이다. 일본이 뭘 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데, 대통령과 주일 대사가 잇달아 나서서 과거사는 문제삼지 않겠다,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이게 웬 봉인가. 얕잡혀도 할 말이 없다.
일본 교도통신은 도야코 한·일 정상회담에서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그 같은 방침을 미리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이 없는 일을 만들어 보도하는 우리나라 어느 방송과 같을 리 없겠고, '일본정부 소식통'까지 인용해 보도했다. 청와대는 보도를 부인했지만 앞서 정상회담 브리핑에서는 이 문제가 거론됐음을 인정했다. 더욱이 정상회담 중 이례적으로 15분간 배석자가 없었다는 점은 의혹을 낳기에 충분하다.
한국 대통령을 개로 비하한 것은 북한이 원조다. '미제(美帝)의 주구(走狗)'라는 오래된 대남 비방선전이 그것이다.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 총격을 받고 사망한 일을 두고 이 대통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라고 했다. 이 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이 대통령이 전날 국회에서 대북 정책을 수정 제안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하루 만에 얼굴색을 바꿀 일을 두고 "이건 이거대로, 저건 저거대로 대응"한다며 연설 강행을 주장한 청와대 참모들의 변명은 실용주의의 파탄이다.
노동신문으로부터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밟히고, 국민들로부터는 "제 정신이냐"는 비난을 받으니 갈 곳 몰라하는 집 잃은 개 신세가 따로 없다. 일에도 때가 있고 말에도 때가 있다.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걸으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잘못을 변명하기에 급급해 "대북정책은 일희일비할 일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참모들의 고집스런 혼란이 참 딱하다.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소리가 이미 대하(大河)를 이루었건만 여기에 물 한 방울을 더해야 하는 기자의 무력감 역시 누군가에게는 딱해 보일 것이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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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 길에 이뤄지려던 부시 대통령의 방한 계획이 8월로 연기된 사정에 말이 많다. 방한 무산과 연기된 일정이 미국측에서 일방적으로 발표되는 외교 결례가 반복됐는데도 우리 정부는 제대로 따지지 못했다. 연기 이유가 촛불시위 때문이란 것은 누구라도 알 일이다. 귀책 사유가 우리 정부에 있기 때문일까. 정부가 서울 대신 제주도 방문안을 내놨다가 거부당한 것은 졸작 중 졸작이었다.
도야코에 옵서버로 초청된 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이 1시간 예정에서 28분으로 줄었다. 회담이라고 부를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정부로서야 부인하고 싶겠지만 무시당했다고 할 만하다. 문제는 제대로 따져볼 엄두도 못 낼 만큼 한·미 간 외교의 수위(水位)차가 커진 점이다. 쇠고기 협상과 캠프 데이비드에서 드러낸 저자세 외교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어제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등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기로 한 것도 저자세 외교의 결과물이다. 일본이 뭘 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데, 대통령과 주일 대사가 잇달아 나서서 과거사는 문제삼지 않겠다,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이게 웬 봉인가. 얕잡혀도 할 말이 없다.
일본 교도통신은 도야코 한·일 정상회담에서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그 같은 방침을 미리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이 없는 일을 만들어 보도하는 우리나라 어느 방송과 같을 리 없겠고, '일본정부 소식통'까지 인용해 보도했다. 청와대는 보도를 부인했지만 앞서 정상회담 브리핑에서는 이 문제가 거론됐음을 인정했다. 더욱이 정상회담 중 이례적으로 15분간 배석자가 없었다는 점은 의혹을 낳기에 충분하다.
한국 대통령을 개로 비하한 것은 북한이 원조다. '미제(美帝)의 주구(走狗)'라는 오래된 대남 비방선전이 그것이다.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 총격을 받고 사망한 일을 두고 이 대통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라고 했다. 이 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이 대통령이 전날 국회에서 대북 정책을 수정 제안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하루 만에 얼굴색을 바꿀 일을 두고 "이건 이거대로, 저건 저거대로 대응"한다며 연설 강행을 주장한 청와대 참모들의 변명은 실용주의의 파탄이다.
노동신문으로부터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밟히고, 국민들로부터는 "제 정신이냐"는 비난을 받으니 갈 곳 몰라하는 집 잃은 개 신세가 따로 없다. 일에도 때가 있고 말에도 때가 있다.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걸으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잘못을 변명하기에 급급해 "대북정책은 일희일비할 일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참모들의 고집스런 혼란이 참 딱하다.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소리가 이미 대하(大河)를 이루었건만 여기에 물 한 방울을 더해야 하는 기자의 무력감 역시 누군가에게는 딱해 보일 것이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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