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통하는 고무 ‘살아있는듯’ 움직이네!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7.04.05 03:15
2005년 2월 27일 미국 샌디에이고. 17세의 여고생 파나 펠슨은 상대의 손을 꼭 쥐었다. 신호가 울리자 펠슨은 온힘을 다해 상대를 밀어붙였다. 몇 초간 버티던 상대의 손이 바닥에 닿았다. 이날 펠슨은 인공근육을 가진 기계팔과의 팔씨름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인간이 됐다.
◆17세 여고생 vs 인공근육 팔
이날 펠슨과 대결을 벌인 기계팔은 놀이공원에 흔한 팔씨름 게임용 기계팔과는 차원이 다르다. 게임용 기계팔은 순전히 모터나 유압펌프에 의해 움직이는 말 그대로 기계다. 따라서 운영자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이길 수 있게 할 수 있다. 반면 이날 펠슨과 겨룬 3대의 기계팔은 사람의 팔과 같은 작동원리를 갖고 있다. 즉 기계팔 내부에는 근육처럼 전기를 받으면 수축하는 인공근육이 들어있다.
인공근육 기계팔과 인간의 대결은 미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요셉 바 코헨 박사가 제안해 시작됐다. 코헨 박사는 전기가 통하면 수축하는 '전기활성 고분자(EAP, Electroactive Polymer)'를 이용해 근육의 움직임이 필요한 장애인용 인공 팔다리와 비행선의 날개, 인공심장판막 등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팔씨름 대회는 EAP 연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전 세계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해에도 펠슨은 3대의 기계팔과 힘 대결을 벌였으며, 올해는 아직까지 기계팔이 준비되지 않아 대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이제 캘리포니아공과대 학생이 된 펠슨은 아직까지는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대표적인 인공근육은 이른바 '전기가 통하는 고무'다. 얇은 고무 밴드 양쪽 면에 전기가 통하는 고분자 물질을 바른다. 전류가 흐르면 한쪽 면은 양극, 다른 쪽은 음극이 된다. 양극과 음극은 서로 끌어당기게 되고 그 결과 고무 밴드가 휘어지게 한다. 전류를 차단하면 밴드는 원래 모양대로 돌아간다. 원하는 대로 전류를 흘렸다가 끊으면 마치 살아있는 근육처럼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미 캘리포니아의 SRI 인터내셔널 연구소는 이 고무로 비행기의 펄럭이는 날개나 저절로 펴지는 우주선용 안테나, 인공 횡격막 등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꼬리치며 움직이는 비행선
실제로 지난달 미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EAP 학술대회에서는 스위스 연구팀이 개발한 비행선용 인공근육 날개가 선을 보였다. 이 날개는 배터리에서 전류를 받아 움직이면서 20분간 비행선을 상하좌우로 조종했다.
연구팀을 이끈 실바인 미셀 박사는 "EAP로 만든 인공근육이 2년 내 비행선 조종뿐 아니라 송어처럼 꼬리를 쳐 비행선을 앞으로 나가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인공근육으로 움직이는 비행선은 소음이 전혀 없어 야생동물 조사에 적합하다. 또 대기권 높은 곳에서 위성이나 송신탑처럼 무선통신 중계기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지난해 8월 '사이언스'지에는 수축력이 인간 근육의 100배 이상이나 되는 인공근육을 만들었다는 미국 텍사스대 연구팀의 연구결과가 게재됐다. 연구팀은 인공근육의 소재로 탄소 원자들이 벌집 모양으로 연결된 탄소나노튜브를 사용했다. 탄소나노튜브는 전류의 흐름에 따라 근육처럼 늘어나고 줄어들었다.
특히 탄소나노튜브는 수소가 들어오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해 전기를 발생시키는 촉매 역할도 했다. 따라서 한쪽에선 전기를 만들고, 다른 쪽에선 이 전기로 근육처럼 수축하게 된다. 실험에서 탄소나노튜브 인공근육은 50g의 추를 가볍게 들어올렸다. 이 연구에는 부산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학생 오지영씨가 참여해 화제가 됐다.
◆내구성 문제 해결돼야
국내에서는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 프론티어 사업단에서 성균관대 연구팀이 캡슐형 내시경을 움직이게 하는 인공근육을 연구했다. 항공대 김병규 교수는 KIST에 있을 때 인공근육 꼬리로 움직이는 올챙이 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서울대, 성균관대, 한양대, 단국대, 인하대 등에서도 인공근육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로봇이 인간과 같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려면 모터의 수를 계속 늘려야 한다. 반면 인공근육은 고분자 소재라서 자유롭게 휘어질 수 있다. 따라서 로봇이나 장애인용 인공 팔다리를 만들 때 EAP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 텍사스대 연구팀은 EAP로 만든 얼굴 피부를 이용해 기존의 인간형 로봇이 나타내지 못한 다양한 표정들을 구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공근육이 상용화되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국내외 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비행선용 인공근육 날개를 만든 미셀 박사는 "인공근육의 내구성이 문제"라며 "결국 재료공학에서 보다 좋은 인공근육 물질이 개발돼야 한다"고 밝혔다. 단국대 이승기 교수도 "똑같은 방법으로 만들어도 연구자마다 다른 성질이 보이는 것이 문제"라고 소재 문제를 지적했다.
[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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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여고생 vs 인공근육 팔
이날 펠슨과 대결을 벌인 기계팔은 놀이공원에 흔한 팔씨름 게임용 기계팔과는 차원이 다르다. 게임용 기계팔은 순전히 모터나 유압펌프에 의해 움직이는 말 그대로 기계다. 따라서 운영자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이길 수 있게 할 수 있다. 반면 이날 펠슨과 겨룬 3대의 기계팔은 사람의 팔과 같은 작동원리를 갖고 있다. 즉 기계팔 내부에는 근육처럼 전기를 받으면 수축하는 인공근육이 들어있다.
인공근육 기계팔과 인간의 대결은 미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요셉 바 코헨 박사가 제안해 시작됐다. 코헨 박사는 전기가 통하면 수축하는 '전기활성 고분자(EAP, Electroactive Polymer)'를 이용해 근육의 움직임이 필요한 장애인용 인공 팔다리와 비행선의 날개, 인공심장판막 등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팔씨름 대회는 EAP 연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전 세계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해에도 펠슨은 3대의 기계팔과 힘 대결을 벌였으며, 올해는 아직까지 기계팔이 준비되지 않아 대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이제 캘리포니아공과대 학생이 된 펠슨은 아직까지는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대표적인 인공근육은 이른바 '전기가 통하는 고무'다. 얇은 고무 밴드 양쪽 면에 전기가 통하는 고분자 물질을 바른다. 전류가 흐르면 한쪽 면은 양극, 다른 쪽은 음극이 된다. 양극과 음극은 서로 끌어당기게 되고 그 결과 고무 밴드가 휘어지게 한다. 전류를 차단하면 밴드는 원래 모양대로 돌아간다. 원하는 대로 전류를 흘렸다가 끊으면 마치 살아있는 근육처럼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미 캘리포니아의 SRI 인터내셔널 연구소는 이 고무로 비행기의 펄럭이는 날개나 저절로 펴지는 우주선용 안테나, 인공 횡격막 등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꼬리치며 움직이는 비행선
실제로 지난달 미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EAP 학술대회에서는 스위스 연구팀이 개발한 비행선용 인공근육 날개가 선을 보였다. 이 날개는 배터리에서 전류를 받아 움직이면서 20분간 비행선을 상하좌우로 조종했다.
연구팀을 이끈 실바인 미셀 박사는 "EAP로 만든 인공근육이 2년 내 비행선 조종뿐 아니라 송어처럼 꼬리를 쳐 비행선을 앞으로 나가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인공근육으로 움직이는 비행선은 소음이 전혀 없어 야생동물 조사에 적합하다. 또 대기권 높은 곳에서 위성이나 송신탑처럼 무선통신 중계기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지난해 8월 '사이언스'지에는 수축력이 인간 근육의 100배 이상이나 되는 인공근육을 만들었다는 미국 텍사스대 연구팀의 연구결과가 게재됐다. 연구팀은 인공근육의 소재로 탄소 원자들이 벌집 모양으로 연결된 탄소나노튜브를 사용했다. 탄소나노튜브는 전류의 흐름에 따라 근육처럼 늘어나고 줄어들었다.
특히 탄소나노튜브는 수소가 들어오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해 전기를 발생시키는 촉매 역할도 했다. 따라서 한쪽에선 전기를 만들고, 다른 쪽에선 이 전기로 근육처럼 수축하게 된다. 실험에서 탄소나노튜브 인공근육은 50g의 추를 가볍게 들어올렸다. 이 연구에는 부산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학생 오지영씨가 참여해 화제가 됐다.
◆내구성 문제 해결돼야
국내에서는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 프론티어 사업단에서 성균관대 연구팀이 캡슐형 내시경을 움직이게 하는 인공근육을 연구했다. 항공대 김병규 교수는 KIST에 있을 때 인공근육 꼬리로 움직이는 올챙이 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서울대, 성균관대, 한양대, 단국대, 인하대 등에서도 인공근육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로봇이 인간과 같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려면 모터의 수를 계속 늘려야 한다. 반면 인공근육은 고분자 소재라서 자유롭게 휘어질 수 있다. 따라서 로봇이나 장애인용 인공 팔다리를 만들 때 EAP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 텍사스대 연구팀은 EAP로 만든 얼굴 피부를 이용해 기존의 인간형 로봇이 나타내지 못한 다양한 표정들을 구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공근육이 상용화되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국내외 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비행선용 인공근육 날개를 만든 미셀 박사는 "인공근육의 내구성이 문제"라며 "결국 재료공학에서 보다 좋은 인공근육 물질이 개발돼야 한다"고 밝혔다. 단국대 이승기 교수도 "똑같은 방법으로 만들어도 연구자마다 다른 성질이 보이는 것이 문제"라고 소재 문제를 지적했다.
[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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