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하거나 아찔하거나’
문화일보 | 기사입력 2008.04.18 14:35
"작년 봄 김제 모악산 아래를 지나는 길에 산과 집집마다 피어 있는 산벚꽃, 진달래, 개나리, 지붕 위로 핀 살구꽃들을 보며 나는 아내에게 '참말로 이것들을 어찌하면 좋겠는가'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김용택 '시가 내게로 왔다'중에서)
14일 찾은 모악산 (母岳山·793m)이 딱 그때였다. 꽃들이 흐드러져 있었다. 마침 모악산을 찾은 날은 '모악산 벚꽃축제'가 절정에 달해 있었다. 금산사가 있는 금산리로 들어가는 도로 양편에는 길게 벚꽃터널이 만들어졌고, 주변 야산에 살구꽃 등이 만개해 환한 등을 켜 놓은 듯했다. 김용택 시인의 말을 좀 더 줄여서 "어쩔까, 잉?"이 절로 나올 때였다.
#금남·호남정맥의 서쪽에 위치하는 모악산은 전북 김제시 금산면과 완주군 구이면에 걸쳐 있으며, 북쪽으로는 만경강이, 남쪽으로는 동진강이 감싸고 흐른다. 호남평야 가운데서도 김제·만경의 넓고 기름진 들판인 김만평야 동쪽에 버티고 있어 이름 그대로 호남평야를 어머니처럼 굽어보고 있다.
모악산의 이름은, 정상 부근에 쉰길바위가 있는데 그 모습이 어미가 아이에게 젖을 물린 모습이라 해서 거기에 유래를 둔다. 하지만 쉰길바위는 모악산뿐 아니라 전국 여러 산에 있는 길게 솟은 바위를 가리키는 일반명사 같은 것으로 모악산 지도에도 따로 이름이 올라 있지 않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여러 글에서 모악산을 언급했다. 그는 모악산이 바라보이는 전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한 적이 있다.
"모악산의 길고 부드러운 능선은 언제 보아도 그 푸근함이 어머니의 품 같았습니다. 교도소의 하루가 저무는 시각에 우리는 곧잘 창가에 다가가 모악산을 바라보며 한가닥 위로를 얻던 기억을 당신도 가지고 있겠지요…."('나무야 나무야') "모악산에는 어머니 가슴에 머리 박고 젖먹는 형상의 '엄바위'가 있어 이 산을 '엄뫼'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엄바위에서 흘러내린 물이 젖줄이 되어 김제·만경 벌을 적셔준다고 합니다. 이름 그대로 모악이며 엄뫼입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금산사와 반대 방향인 대원사 들입목에 서 있는 고은 시인의 시비도 "내 고장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라고 노래한 것을 보면, 예부터 호남평야의 젖줄에 의지해 살던 사람들이 모악산을 '엄뫼'(母岳)로 불러왔다는 것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모악산은 또 이 지방 사람들의 영성(靈性)과도 관계가 깊다.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상당수가 정비돼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각종 무속시설이 적지 않게 주변에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산은 미륵신앙을 퍼뜨린 신라 경덕왕 때의 고승 진표율사가 머물던 곳이고, 또 동학농민전쟁의 무참한 좌절로 황폐해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후천개벽'의 희망을 심어준 민족종교 증산도의 창시자 증산 강일순(姜一淳)이 깨달음을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 모악산 주변 호남평야에 모여 살던 사람들은 그만큼 핍박에 시달려온 민초들이었고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었던 것이다.
금산사와 대원사 등 모악산의 주요사찰은 물론 골짜기 굽이마다 이 두 성인의 갖가지 발자취가 스며 있다. 특히 전주 정읍 익산 김제 일대는 강증산이 후천선경의 건설을 위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했다는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모악산 금산사는 599년(법왕 원년) 백제 왕실의 원찰로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백제가 망한 뒤 퇴락한 것을 진표율사가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으로 중창했다. 금산사는 보물창고라 할 만큼 국보급 문화재가 많다.
그 중 국보 제62호인 웅장한 3층 미륵전은 신라 경덕왕 21년(762)∼혜공왕 2년(766) 사이에 진표율사가 절을 중창하면서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미륵불은 희한하게도 마치 솥처럼 생긴 둥그런 청동대좌가 받치고 있다. 금산사 전체뿐 아니라 미륵전도 수많은 전란에 소실과 복원을 반복했지만, 이 청동대좌는 첫 조성시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래 미륵전 터가 연못이었는데, 어찌해 보아도 미륵불이 서지 않아 애를 먹는 와중에 미륵불이 진표율사에게 현신해 숯으로 연못을 메운 뒤 미륵불을 세우도록 가르침을 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증산도에서는 현신한 미륵불이 강증산(姜甑山) 곧 '상제'이며 '시루 증(甑)'도 쇠솥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이 "증甑" 자는 '시루 증', '솥 증' 의 뜻이 있음.
#모악산 들입목 코스는 크게 세 갈래다. 먼저 얘기한 금산사 코스와 그 너머 완주 구이 방면 관광단지에서 오르는 대원사 코스, 중인리 도계마을에서 오르는 코스 등이 그것이다. 금산사 코스와 대원사 코스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지만 원점회귀가 아니라면 한쪽 코스를 들입목으로 이용해 다른 코스로 넘어가는 종주가 가장 좋다.
금산사 코스에서 금산사를 둘러본 뒤 완만하게 오르다 보면 모악정이라는 정자가 나온다. 이곳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왼쪽 길은 한시간 정도를 제법 가파르게 올라야 정상에 닿는다. 오른쪽 길을 택하면 장군재를 거쳐 전망암을 지나는 우회길이지만 전망은 더 좋다.
모악산 정상에는 송신시설 철탑이 거대하게 차지하고 있어 험악한 느낌이 든다. 호남의 어머니산 머리에 쇠말뚝을 박은 형세다. 꼭 모악산이어야 했을까, 하는 서운한 생각이 든다. 어머니산은 그래도 묵묵히 앉아 있다.
정상 부근에선 한 젊은이가 인삼막걸리를 팔고 있다. 한잔에 2000원, 풋고추와 된장이 술안주다. 많이는 말고, 딱 한잔만 하면 그만이다.
하산길은 무제봉을 거쳐 수왕사를 둘러보고 대원사로 향하면 된다. 하산코스는 금산사 코스보다 가파르다.
대원사에 도착하니 화전(花煎)축제와 청소년축제가 각각 한창이다. 아마도 대원사에서 장소를 빌려준 것 같았다. 꽃 속에서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노래와 율동을 보고 있자니 절 마당 한편에 막걸리 항아리가 두 개나 놓인 것이 아닌가. 아마 화전축제의 일환인 듯한데, 대원사 주지스님의 화통함이 느껴졌다. 지나는 등산객마다 마음 놓고 몇잔씩을 떠먹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등산코스
▲완주 구이방면 : 원기리(구이중학교) ~ 대원사 ~ 수왕사 ~ 정상
▲금산사 방면 : 금산사주차장 ~ 금산사 ~ 모악정 ~ 안부 ~ 정상
금산사주차장 ~ 금산사 ~ 모악정 ~ 장군재 ~전망암 ~ 정상
▲중인리 방면 : 중인리 도계마을 ~ 금선사 ~능선 ~ 장군재 ~ 정상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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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호남정맥의 서쪽에 위치하는 모악산은 전북 김제시 금산면과 완주군 구이면에 걸쳐 있으며, 북쪽으로는 만경강이, 남쪽으로는 동진강이 감싸고 흐른다. 호남평야 가운데서도 김제·만경의 넓고 기름진 들판인 김만평야 동쪽에 버티고 있어 이름 그대로 호남평야를 어머니처럼 굽어보고 있다.
모악산의 이름은, 정상 부근에 쉰길바위가 있는데 그 모습이 어미가 아이에게 젖을 물린 모습이라 해서 거기에 유래를 둔다. 하지만 쉰길바위는 모악산뿐 아니라 전국 여러 산에 있는 길게 솟은 바위를 가리키는 일반명사 같은 것으로 모악산 지도에도 따로 이름이 올라 있지 않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여러 글에서 모악산을 언급했다. 그는 모악산이 바라보이는 전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한 적이 있다.
"모악산의 길고 부드러운 능선은 언제 보아도 그 푸근함이 어머니의 품 같았습니다. 교도소의 하루가 저무는 시각에 우리는 곧잘 창가에 다가가 모악산을 바라보며 한가닥 위로를 얻던 기억을 당신도 가지고 있겠지요…."('나무야 나무야') "모악산에는 어머니 가슴에 머리 박고 젖먹는 형상의 '엄바위'가 있어 이 산을 '엄뫼'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엄바위에서 흘러내린 물이 젖줄이 되어 김제·만경 벌을 적셔준다고 합니다. 이름 그대로 모악이며 엄뫼입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금산사와 반대 방향인 대원사 들입목에 서 있는 고은 시인의 시비도 "내 고장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라고 노래한 것을 보면, 예부터 호남평야의 젖줄에 의지해 살던 사람들이 모악산을 '엄뫼'(母岳)로 불러왔다는 것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모악산은 또 이 지방 사람들의 영성(靈性)과도 관계가 깊다.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상당수가 정비돼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각종 무속시설이 적지 않게 주변에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산은 미륵신앙을 퍼뜨린 신라 경덕왕 때의 고승 진표율사가 머물던 곳이고, 또 동학농민전쟁의 무참한 좌절로 황폐해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후천개벽'의 희망을 심어준 민족종교 증산도의 창시자 증산 강일순(姜一淳)이 깨달음을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 모악산 주변 호남평야에 모여 살던 사람들은 그만큼 핍박에 시달려온 민초들이었고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었던 것이다.
금산사와 대원사 등 모악산의 주요사찰은 물론 골짜기 굽이마다 이 두 성인의 갖가지 발자취가 스며 있다. 특히 전주 정읍 익산 김제 일대는 강증산이 후천선경의 건설을 위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했다는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모악산 금산사는 599년(법왕 원년) 백제 왕실의 원찰로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백제가 망한 뒤 퇴락한 것을 진표율사가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으로 중창했다. 금산사는 보물창고라 할 만큼 국보급 문화재가 많다.
그 중 국보 제62호인 웅장한 3층 미륵전은 신라 경덕왕 21년(762)∼혜공왕 2년(766) 사이에 진표율사가 절을 중창하면서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미륵불은 희한하게도 마치 솥처럼 생긴 둥그런 청동대좌가 받치고 있다. 금산사 전체뿐 아니라 미륵전도 수많은 전란에 소실과 복원을 반복했지만, 이 청동대좌는 첫 조성시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래 미륵전 터가 연못이었는데, 어찌해 보아도 미륵불이 서지 않아 애를 먹는 와중에 미륵불이 진표율사에게 현신해 숯으로 연못을 메운 뒤 미륵불을 세우도록 가르침을 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증산도에서는 현신한 미륵불이 강증산(姜甑山) 곧 '상제'이며 '시루 증(甑)'도 쇠솥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이 "증甑" 자는 '시루 증', '솥 증' 의 뜻이 있음.
#모악산 들입목 코스는 크게 세 갈래다. 먼저 얘기한 금산사 코스와 그 너머 완주 구이 방면 관광단지에서 오르는 대원사 코스, 중인리 도계마을에서 오르는 코스 등이 그것이다. 금산사 코스와 대원사 코스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지만 원점회귀가 아니라면 한쪽 코스를 들입목으로 이용해 다른 코스로 넘어가는 종주가 가장 좋다.
금산사 코스에서 금산사를 둘러본 뒤 완만하게 오르다 보면 모악정이라는 정자가 나온다. 이곳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왼쪽 길은 한시간 정도를 제법 가파르게 올라야 정상에 닿는다. 오른쪽 길을 택하면 장군재를 거쳐 전망암을 지나는 우회길이지만 전망은 더 좋다.
모악산 정상에는 송신시설 철탑이 거대하게 차지하고 있어 험악한 느낌이 든다. 호남의 어머니산 머리에 쇠말뚝을 박은 형세다. 꼭 모악산이어야 했을까, 하는 서운한 생각이 든다. 어머니산은 그래도 묵묵히 앉아 있다.
정상 부근에선 한 젊은이가 인삼막걸리를 팔고 있다. 한잔에 2000원, 풋고추와 된장이 술안주다. 많이는 말고, 딱 한잔만 하면 그만이다.
하산길은 무제봉을 거쳐 수왕사를 둘러보고 대원사로 향하면 된다. 하산코스는 금산사 코스보다 가파르다.
대원사에 도착하니 화전(花煎)축제와 청소년축제가 각각 한창이다. 아마도 대원사에서 장소를 빌려준 것 같았다. 꽃 속에서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노래와 율동을 보고 있자니 절 마당 한편에 막걸리 항아리가 두 개나 놓인 것이 아닌가. 아마 화전축제의 일환인 듯한데, 대원사 주지스님의 화통함이 느껴졌다. 지나는 등산객마다 마음 놓고 몇잔씩을 떠먹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등산코스
▲완주 구이방면 : 원기리(구이중학교) ~ 대원사 ~ 수왕사 ~ 정상
▲금산사 방면 : 금산사주차장 ~ 금산사 ~ 모악정 ~ 안부 ~ 정상
금산사주차장 ~ 금산사 ~ 모악정 ~ 장군재 ~전망암 ~ 정상
▲중인리 방면 : 중인리 도계마을 ~ 금선사 ~능선 ~ 장군재 ~ 정상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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