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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담론*행복론/인생행로*나침반

율곡 이이 선생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

by 바로요거 2008. 4. 5.

율곡 이이 선생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

자료출처(홍형택님의 태학론)


臣按

天理之賦於人者謂之性

合性與氣而爲主宰於一身者謂之心

心應事物而發於外者謂之情

신(臣)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부여된 天理가 性이며

性과 氣를 합하여 일신의 주재자가 心입니다.

心이 사물에 감응하여 겉으로 나타난 것이 情입니다.

性是心之體 情是心之用

是未發已發之總名

故曰心統性情

性은 心의 體이며 情은 心의 用입니다.

이 둘은 마음의 이발 미발을 통틀어 이르는 명칭이므로

心은 性과 情을 통합하는 개념이라고 말들합니다.

性之目有五曰仁義禮知信

情之目有七曰喜怒哀懼愛惡欲

性은 다섯 조목으로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이며,

情은 일곱 조목으로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입니다.

情之發也有爲道義而發者

如欲孝其親欲忠其君

見孺子入井而惻隱

見非義而羞惡

過宗廟而恭敬之流是也

此則謂之道心

道義 때문에 발하는 情

예를 들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게 충성하고자 하는 것,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았을 때의 측은한 마음

불의를 보았을 때의 수오지심

종묘를 지날 때의 공경스런 마음 등은

道心입니다.

有爲口體而發者

如饑欲食寒欲衣勞欲休

精盛思室之類是也

此則謂之人心

육체 때문에 발하는 情

예를 들면, 배고프면 먹고싶고 추우면 입고싶고 힘들면 쉬고싶고

정력이 차면 결혼할 생각이 나는 것 등은

人心입니다.

理氣渾融元不相離

心動爲情也

發之者氣也所以發者理也

非氣則不能發非理則無所發

安有理發氣發之殊乎

理와 氣는 오묘한 일체로서 본시 서로 分離(분리)되는 物이 아닙니다.

心의 발동이 情입니다.

발(동)하는 것은 氣이며, (발동의)원인자는 理입니다.

氣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理가 아니면 발할 것이 없습니다.

어찌 理發 氣發(리발 기발)의 구별이 있겠습니까.

但道心雖不離乎氣而

其發也爲道義故屬之性命

다만, 道心이 氣에서 분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道義 때문에 발하므로 性命과 짝을 짓고

人心雖亦本乎理而

其發也爲口體故屬之形氣

方寸之中初無二心

只於發處有此二端故

人心도 理에서 분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육체 때문에 발하하는 情이므로 形氣와 짝을 맞춥니다.

마음에는 애초부터 두 마음이 없으나

단지 발하는 데서 人心道心으로 구분할 꼬투리가 생깁니다.

發道心者氣也

而非性命則道心不生

原人心者理也而

非形氣則人心不生

道心을 일으키는 것은 氣입니다만

性命이 아니면 道心은 생기지 아니하고

人心의 원인자는 理입니다만

形氣가 아니면 人心은 생기지 아니합니다.


此所謂

或原或生公私之異者也

이것이 주자가 말한

道心或原於性命之正, (도심은 혹 성명의 바름에서비롯되고)

人心或生於形氣之私의 구분입니다.(인심은 혹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비롯된다)


道心純是天理故有善而無惡

道心은 순전히 天理이기 때문에 有善無惡(선만있고 악이없고)하고

人心也有天理也有人欲故

有善有惡

如當食而食當衣而衣

聖賢所不免

此則天理也

人心은 天理도 있고 인욕도 있기 때문에

선도 있고 악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먹어야 할 때 먹고 입어야 할 때 입는 것은

성현이라도 면할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은 天理입니다.

因食色之念而流而爲惡者

此則人欲也

식색의 욕구로 인하여 악으로 흐르는 것은인욕입니다.

道心只可守之而已

人心易流於欲

故雖善亦危

道心은 단지 지키기만하면 되지만

人心은 인욕에 쉬 흐르기 때문에

비록 선한 人心이라도 역시 위태롭습니다.

治心者於一念之發

知其爲道心則擴而充之

知其爲人心則精以察之

必以道心節制而

人心當聽命於道心則

人心亦爲道心矣

何理之不存

何欲之不遏乎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한 생각이라도

그것이 道心인줄 안다면 확충하고

그것이 人心인 줄 알았다면 잘 살펴서

반드시 道心으로 절제하여

人心이 道心에 순종하도록 한다면

人心도 역시 道心이 됩니다.

그러면 어찌 人心에 理를 보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겠으며,

막지 못할 인욕이 있겠습니까.

眞西山論天理人欲極分曉

於學者工夫甚有益

但以人心專歸之人欲

一意極治則有未盡者

진서산의 天理人欲(천리인욕)론이 매우 분명하여

학자의 공부에 매우 유익합니다.

다만 人心을 오로지 인욕에만 배당하여

인심을 극단적으로 다스리는 것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朱子旣曰

雖上智不能無人心則

聖人亦有人心矣

豈可盡謂之人欲乎

주자도 이미 말하였습니다.

'비록 上智라도 人心이 없을 수 없으니

성인도 역시 人心이 있다.

어찌 인심을 전적으로 인욕이라고 만 할 수 있겠는가?'

以此觀之則七情卽

人心道心善惡之總名也

이런 것으로 본다면, 七情은

人心道心의 선악을 포함한 이름입니다.

孟子就七情中剔出善一邊

目之以四端

맹자는 七情 가운데서 善일변의 것을 뽑아내시어

四端으로 지목하였습니다.

四端卽道心及人心之善者也

四端不言信者

程子曰旣有誠心爲四端

信在其中矣

蓋五性之信如五行之土

無定位無專氣而寄旺於四時

四端은 道心과 人心 가운데 선한 情입니다.

四端에서 信을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정자는

이미 誠은 있는 것이고

心을 사단으로 구분하였으니

信은 그 가운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오성의 信은 마치 오행 중 土와 같아서

정한 자리, 고정된 氣도 없고, 사시에 알차게 속해있습니다.

論者或以四端爲道心

七情爲人心

四端固可謂之道心矣

七情豈可只謂之人心乎

七政之外無他情

若偏指人心則

是擧其半而遺其半矣人心

道心을 론하는 사람 중에 혹 사단을 道心으로,

七情을 人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단은 진실로 道心이라고 하겠지만

어찌 七情을 단지 人心이라고만하겠습니까.

七情외에 다른 情은 없습니다.

만약 七情이 人心만을 지적한 것이라고 하면

이는 사람마음을 반만 들고 반은 버리자는 것이 됩니다.

子思子

以七情之未發者謂之中

已發者謂之和

論性情之全德而

只擧七情則

寧有偏擧人心之理乎

此則較然無可疑者矣 

자사자께서는

七情의 미발을 가지고 中을 말씀하셨고

이발을 가지고 和를 말씀하셨습니다.

性情의 전덕을 논하시는 마당에

단지 七情만을 거론하셨으니

어찌 인심만을 들어 말할 이치가 있어서이겠습니까.

이는 확연히 의문할 것이 없습니다.

性具於心而發爲情

性旣本善則情亦宜無不善而

情或有不善者何耶

性이 心에 갖추어져 발하여 情이됩니다.

性이 본시 선하다면 情 역시 불선함이 없어야 할 터인데

情에 불선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理本純善而氣有淸濁

氣者盛理之器也

理는 본시 순선한 것이나 氣는 청탁의 구별이 있습니다.

氣라는 物은 理를 담는 그릇입니다.

當其未發

氣未用事故中體純善

미발일 적에는

氣가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므로 中體(중체:)가 순선합니다.

及其發也善惡始分

善者淸氣之發也

惡者濁氣之發也

其本則只天理而已

발할 적에 비로소 선악이 갈립니다.

선한 情은 청기가 발한 것이고

악한 情은 탁기가 발한 것입니다.

이 둘의 뿌리는 단지 天理일 뿐입니다.

情之善者乘淸明之氣

循天理而直出不失其中

可見其仁義禮知之端故

目之以四端

선한 情은 청명한 氣을 타고

天理에 순응하여 직출함으로써 中體의 본연함을 잃지 않아

인의예지라는 性의 단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四端으로 지목합니다.

情之不善者雖亦本乎理而

旣爲汚濁之氣所掩失其本體而

橫生或過或不及

本於仁而反害仁

本於義而反害義

本於禮而反害禮

本於知而反害知故

不可謂之四端耳

불선한 情도 역시 理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미 오염되고 탁한 氣에 덮여 본체의 선함을 상실함으로써

빗나가서 過(과)하거나 不及(불급)하게 됩니다.

仁을 원인자로 가지면서도 도리어 仁을 해치고

義를 원인자로 가지면서도 도리어 義를 해치고

禮를 원인자로 가지면서도 도리어 禮를 해치고

知를 원인자로 가지면서도 도리어 知를 해칩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四端이라고 하면 안되는 것일 뿐입니다.

周子曰五性感動而善惡分

程子曰善惡皆天理

朱子曰因天理而有人欲

皆此意也

주렴계 선생이 말하기를, '五性이 감동하니 선악이 나뉘어진다' 하고

정자말씀하시기를, '선악이 모두 天理로 인한 것이다' 하시고

주자 말씀하시기를, '天理에 따라 인욕이 생긴다'고 하시니

이 말씀은 모두 그런 뜻입니다.

今之學者

不知善惡由於氣之淸濁

求其說而不得故

乃以理發者爲善氣發者爲惡

使理氣有相離之失

오늘날의 학자들은

선악이 氣의 청탁에서 연유하는 줄을 모르고서

선악의 설명을 하려다가 안되니까

理發한 것이 선이고 氣發한 것이 악이라고 하여

理氣를 서로 분리하는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此是微瑩之論而

臣不揆愚僭謹

作圖如左

이상이 미영지론으로

臣은 모자람과 외람됨을 돌보지 않고

이 설을 왼쪽과 같이 도표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