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도전[8편21장] 천하창생의 생사가 너희들 손에
1 내 밥을 먹는 자라야 내 일을 하여 주느니라.
2 장차 천지에서 십 리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일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3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느니라.
4 다 죽고 너희만 살면 무슨 낙이 있겠느냐.
장차 탄식줄이 나오리라
5 너희들이 지금은 이렇듯 친숙하되 뒷날에는 눈을 바로 뜨지 못하리니 마음을 바로 갖고 덕 닦기에 힘쓰라.
6 수운가사에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 이러하고 어떤 사람 저러한가.'라 함과 같이 탄식줄이 나오리라.
7 나를 잘 믿으면 양약(良藥)이요, 잘못 믿으면 사약(死藥)이니라.
21:6 수운가사. 『용담유사』 「흥비가」
21:7 오동정 교단 김락원의 손자 김상용(1941~ ) 증언.
<태사부님, 사부님의 강독 말씀>
천하창생이라고 하면 60억 인류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 지구상에 60억 인류의 죽고 사는 것이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 너희들이 잘 하면 많이 살릴 수도 있고 잘못하면 다 죽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다. 상제님이 그런 절규絶叫를 하셨다, 끊어질 절 자 부르짖을 규 자, 절규를!
-종도사님도훈 (2002.5)-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주역의 세상이다. 주역을 부정하는 사람은 여기 없을 테지. 주역은 봄여름 세상 둥글어 가는 이치를 상징적으로 써놓은 것이다. 봄여름 세상의 지구는 그 궤도가 타원형, 계란 같은 형으로 돼 있다. 지축이 기울어져서 계란 같은 형 궤도로 지구가 태양을 안고 한 바퀴 돌아가는데, 이 때문에 춘하추동 사시가 생긴다.
그런데 주역 다음 세상에는 정역시대가 온다. 지금 타원형 궤도의 지구가 정원형, 공 같은 형으로 궤도수정을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지구의 어느 곳은 물 속으로 빠지는 데도 있고, 바다가 육지로 솟는 데도 있다. 묶어서 얘기하면 그것도 개벽이다, 개벽!
허면 그 개벽으로 사람이 얼마나 사느냐?
학자 중에는 일억만 명이 산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60억 인류가 다 죽고 60분지 1인 일억만 명이 산다 하면 그게 개벽 아닌가. 다 죽는 건데. 허나 상제님은 그건 숫제 개벽으로 치지도 않으셨다. 이번 상제님 공사내용의 개벽이라는 것은 오다 죽고 가다 죽고 서서 죽고 밥 먹다가 죽는 개벽이다. 한 마디로, 몸 돌이킬 여가가 없다고 하셨다.
"십 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는 것이 상제님 말씀이다. 상제님은 또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있다." 고도 하셨다. 여기서 천하창생이라면 60억 인류를 지칭하신 것이다. 60억 인류의 생사가 나를 믿는 너희들 손에 매여있다, 너희들이 잘 하면 많이 살릴 수도 있고, 잘못하면 다 죽이는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다.
사실 내가 신도를 규합하는 것은 천지의 역군을 찾는 것이지, 저 혼자 믿어서 혼자만 살려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니다. 아니, 죽는 세상에 사는 진리를 갖다 대주는데 나는 직장이 있어 바쁘고, 우리 마누라가 잔소리를 하고, 애들하고 놀아줘야 되니까 신앙을 못 하겠다? 그 따위 대의명분에 어긋난 사람들은 안 믿어도 좋다.
사람이 개벽하는 세상에 살 수 있는 진리를 만났다면, 대의명분에 입각해서 그 성스러운 진리를 가지고 가족도 살려주고, 남도 살려주고,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계 내에서 유형과 무형을 다 바쳐 믿어야 할 것 아닌가! 그렇지 않고 자기 이기지욕利己之慾과 편한 것만 찾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은 더불고 가고 싶지도 않다.
사람은 가정에 효도하고, 국가에 충성하고, 사회에 의로운 사람이 돼야 한다. 국가와 민족, 인류를 위해, 그리고 신도라는 대의명분, 인간이라는 대의명분에 입각해서 무슨 방법만 있다고 하면 내 한 몸뚱이가 좀 희생된다 하더라도 사람을 많이 살려야 한다. 나 하나의 희생으로 만인이 좋을 수만 있다면, 좀 희생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여기는 다 사람이 모인 자리다. 사람인지라 사람다운 노릇을 해야 한다.
-종도사님 도훈 (도기132.11.10)
이번 가을개벽에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지어서 사람 결실을 하고, 나머지는 다 죽여 버리는데 어떻게 사람을 다 죽이느냐?
여름철 말이 되면 초목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만지평야滿之平野하듯이, 사람이 너무 많이 생겨서 지금 산아제한도 하고 그러잖는가? 사람 씨종자가 그렇게 많이 생겼거든.
헌데 가을철에 초목을 없애 버리듯이 이제 천지에서 사람 농사지은 것을 씨종자만 추리고 다 없애버린단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죽이느냐?
상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천지에서 십리에 한사람 볼 듯 말 듯 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 (道典 8:21)
이건 누가, 사람이 죽이는 게 아니다. 천지 이법으로, 천지에서 죽이는 것이다. 십리면 4킬로미터 아닌가. 4킬로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 죽으면 하늘땅밖에 안 남는데, 그것을 어떻게 하나. 다만 씨종자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시 상제님은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고 하셨다. (道典 8:21)
천하 창생이라면 60억 인류를 지칭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너희들’이라는 것은 ‘상제님을 신앙하는 신도들’이다. 이것은 “60억 인류가 살고 죽는 것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 너희들이 잘하면 좀 많이 살릴 수도 있고, 잘못하면 다 죽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알아서 해라.” 하는 말씀이다.
-종도사님 도훈 (도기133.2.28)-
상제님은 앞으로 다가오는 괴병에 대해 한마디로 “천지에서 십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쓰지 않겠냐?”고 하셨다. 이 말씀이 상제님의 끊어질 절絶 자, 부르짖을 규叫 자, 절규다, 절규. 입 구口 옆에 말 두斗 하면 부르짖을 규 자다. 이건 우리 신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느니라.”
천하창생이란 지구상에 생존하는 60억 내지 70억 인구를 말씀한 것이다. 천하창생의 죽고 사는 것이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 너희들이 잘하면 많이 살릴 수도 있고 잘못하면 다 죽이는 수밖에 없다.
그 작업을 하는 데가 바로 이 38선 이남 남조선이다. 증산도, 상제님 진리의 본거지가 바로 여기다.
헌데 상제님이 우리 혈통을 타고 우리나라에 오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한민족에 국한된 하나님만은 아니다. 그것도 잘못 알면 안 된다. 우리 상제님, 참 하나님은 다만 우리나라에서 오셨을 뿐이지, 전 인류의 하나님이다.
-종도사님 도훈 (도기133년.5.11)-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아까 어떤 신도가 무한유사지불명無恨有司之不明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게 다한 말이다. 맡은 바 일을 잘못 처리해서 한을 남기지 말란 말이다.
기회는 천지의 이법에 의해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헌데 상제님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 이러하고, 어떤 사람 저러한가’라 함과 같이 탄식줄이 나오리라.” 고 하셨다. 그와 같이 일을 잘못 하면 앞으로 탄식줄이 나온다.
이유야 어찌됐든지 너희들은 여태까지 만족스런 세상을 못 살았다. 너희들이 딴 생각을 해봤댔자 소용이 없단 말이다. ‘나는 가정에서 남처럼 못 살았다. 나는 가정이 불우하다. 무엇이 어떻다.’고 생각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그걸 생각하면 또 뭘 하나? 무슨 뾰족한 수가 있어? 방법이 있냐 말이다.
-종도사님 도훈 (도기133년.4.8)-
왜 증산도가 세계종교냐?
증산도는 자연섭리를 집행하는, 자연 이법을 가지고서 개벽기에 전 인류를 구출하려고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왜 증산도가 세계종교인지 집약해서 말해 줄 테니 들어 봐.
상제님 말씀이 “천지에서 십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 종자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하셨어. 이건 사람이 죽이는 게 아녀. 또 상제님 마음대로 그렇게 공사를 보신 것이 아녀. 상제님도 통곡을 하셨어. “다 죽어 넘어가는데 아무리 해도 다 건져 살릴 도리가 없으니 얼마나 원통하냐!”고 말씀하시고 울부짖으셨어.
천지의 가을개벽에, 천지에서 십리(십리면 4킬로다)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인단 말이다. “그런 때에도 씨 종자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 이 말씀은 “천하 창생의 생사가(천하 창생이라고 할 것 같으면 60억 인류를 지칭한 말씀이다) 60억 인류의 살고 죽는 것이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있다.” 바로 여기 앉았는 신도들,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단 말씀이다. ‘너희들이 잘하면 많이 살릴 수 있고 잘못하면 다 죽는 수밖에 없지 않으냐?’ 하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이 현실을 사는 전 인류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상제님을 신앙하는 신도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허면 다 죽여도 좋아?
만일에 신도라는 위치에서 자기의 안일安逸함, 편안하고 무책임하고 불의하고 ‘남이야 죽든지 말든지, 상제님 진리권에서 나 혼자만 살면 되지 않으냐?’ 이런 부도덕한 생각으로 조직 속에서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은 절대로 용서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죽으라는 말이 아니고 공중 거치적대지 말고 일 다 됐다고 개벽소식이 알려지면 그 때 와. 종 나걸랑 오란 말이다.
상제님 말씀에 따르면 병목이 터지면 오다 죽고 가다 죽고 서서 죽고 밥 먹다 죽고, 다 죽는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거치적대지 말고, 가서 자기 볼일 보고서 그 때 찾아와. 그러면 받아줄 테니.
사람은 정의롭게 살아야 돼. 우리는 신도라는 대의명분, 역사적인 사회 속에서 인간이라는 대의명분에 입각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우리 능력을 다 발휘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종도사님 도훈 (도기133.6.8)-
증산도는 반드시 성장을 해야 돼. 왜 그러냐 할 것 같으면 이 개벽철에 우리 증산도가 성장하지 않으면 이 지구상 60억 인류가 다 죽는다.
우리 증산도 신도들이 얼마만한 일심을 가지고 실천에 옮기느냐 하는 데서, 이번 개벽철에 천지에서 사람농사 지은 것을 얼마만큼 수확하여 사람을 살릴 수 있느냐, 그게 달라진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내가 입버릇처럼 노냥 하는 소리지만 상제님이 “천지에서 십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 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 종자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 하시지 않았어? 이번에는 천지에서 죽이는 것이다.
헌데 다행히도 참하나님이 오셔서, 주재자主宰者의 대권으로써 천지공사로 이화해서 의통으로 사람을 살리도록, 최종적으로 그렇게 매듭짓도록 프로그램을 짜 놓으셨다.
지금은 천지에서 죽이는 정사政事밖에 않는 때다. 봄철에는 물건을 내는 정사만 하고 가을철에는 죽이는 정사밖에 안 해. 맞잖아? 일 년 지구년도 봄철에는 물건 내는 정사만 한다. 가을철에 가서는 죽이는 정사만 하고.
이번에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지어서 가을철에 인종 씨 추리는 개벽으로, 십 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이는 정사를 한다. 해서 상제님의 의통이라는 대권을 가지지 않으면 다음 세상에 넘어가지 못하게 되어져 있다.
그러니 증산도는 선천에서 후천을 건너가는 생명의 다리다. 제아무리 하늘 쓰고 도리질하는 사람이라도 상제님 의통이라는 은총의 길을 타고서만이 다음 추동 가을세상을 넘어가게 되어져 있어. 그건 상제님의 공사 이전에, 5천7백 년 전에 우리나라 조상인 태호 복희씨가 주역에다 써놨다.
이 자리에 앉은 우리 성도들은 너무나 잘 알고도 남잖은가.
-종도사님 도훈 (도기133.6.25)-
상제님 말씀 하나를 정리해서 얘기하면, “천지에서 십 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 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쓰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천지에서 십 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 하게 사람을 다 죽인다는 말씀이다. 누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천지에서, 생장염장이라는 천지 자연 이법이 다 죽인다는 말이다.
허면 “씨 종자는 있어야 쓰지 않겠느냐?” 하셨는데 씨 종자는 누가 추리나? 이 자리에 앉았는 상제님의 성도들이 그 일을 한다.
다시 또 얘기해서 “천하창생의 생사가, 천하창생은 60억 인류를 지칭한 말씀이다, 이 천하창생의 생사, 살고 죽는 것이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고 하셨다. 이것은 “차차소자嗟嗟小子아, 나를 믿는 우리 신도들아. 천하창생의 생사가 너희들, 신도들의 손에 매여 있다.”고 하는 상제님의 절규絶叫다. 끊어질 절 자, 부르짖을 규 자, 상제님이 이런 절규를 하셨다.
상제님을 신앙하는 신도로서, 참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저버리겠나. 스스로 알아차려서 너희도 살고 세상도 구제해 주어라. 인간이라는 대의명분에 입각해서 내가 사는 성스러운 이념을 갖고 나도 살고 가족도 구하고 남도 살려주란 말이다.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계 내에서!
그래서 내가 멸사봉공 얘기를 하고 있다.
여러 천 년 여러 백 년 만에 소중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때를 못 만나면, 초목과 더불어 같이 썩어지고 마는 것이다. 헌데 이런 좋은 시기를 만나고, 이런 좋은 일거리를 만났으니 유형도 바치고 무형도 바쳐서 “개벽철에 남 죽는 세상에 살고, 나 살고 남 산 그 뒤 세상에는 잘도 되는 일이다.”라고 하신 그 일을 하자.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건 상제님이 판 다 짜놓으신 것이니 거저먹기다, 거저먹기. 거기다가 정성만 덧붙여서 잘 믿으면 150% 그렇게끔 되어지는 것이다. 이건 아주 틀림없는 일이다.
-종도사님 도훈 (도기133.7.6)-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도전을 한번 봐 보라. 무슨 말씀이 있는가. 너희들이 도를 받아 어떻게 살라고 하는 일꾼에 대한 도가 나온다.
이런 말씀이 있다.
“내 밥을 먹는 자라야 내 일을 하여 주느니라.”
상제님의 밥을 먹는 자가 상제님 일을 해 준다는 것이다.
입도를 하면 그 날부터 수저를 수평으로 올려놓고, “상제님이시여! 태모님이시여!” 하고 기도를 한다. 기도할 때는 공적인 기도를 먼저 하고 사적인 기도를 뒤에 한다.
기도는 아주 간단하게, 진실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문장력도 필요 없고, 일체의 수식어도 필요 없다. “상제님 태모님 잘 믿겠습니다.” 해도 좋고, 이러 이런 게 잘못됐으니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해도 좋다.
또 일이 안 되면 “저는 머리가 둔합니다. 머리가 좀 잘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하라. 기도하다 보면 자연 그렇게 된다. 이상하게 머리가 밝아진다
그럼 ‘내 밥을 먹는 자라야 내 일을 한다.’는 말씀의 뜻은 뭘까?
삼성에 다니는 사람에게 “어디 다니세요?” 하고 물으면 “저는 삼성 밥을 먹습니다.” 한다. 또 현대에 다니는 사람은 “나는 현대 밥을 먹고 20년 살았어요.” 한다. 밥을 먹는다는 건 어디에 몸 붙여서, 그곳에 몸담고 모든 걸 바쳐서 일하는 걸 뜻한다. 자기 인생을 바친다는 말이다.
우리는 어디 밥을 먹어야 하는가?
상제님 밥을 먹는 사람이 돼야 한다. ‘내가 이 세상 사는 목적은 상제님 도업을 위해서다. 우리 증산도의 도성 덕립을 위해서다. 나는 상제님 태모님 진리 공부하는 재미로 산다. 상제님 태모님의 도를 남에게 전해주고 함께 체험하면서, 개벽의 그 날을 성취하기 위해 산다.’
이런 사람만이 “나는 증산도 밥을 먹는 사람이다.” 이렇게 외칠 수 있다.
능력이 있는 한, 상제님 사업을 위해 유형과 무형을 다 바치고, 상제님 밥을 먹기 위해 경제 행위를 하고, 산책을 하거나 등산하면서도 상제님 생각을 하고 태을주 읽는 사람, 그들이 바로 상제님 밥을 먹는 사람이다.
잘못 닦는 일꾼
그러나 도장 따로, 가정 따로, 학교 따로, 진리는 도장 들어가서 주문 읽을 때뿐, 아침에 청수 올리고 잠깐 기도할 때뿐, 딱 대문을 나서는 순간 저 개인 밥 먹고사는 일로 머리가 꽉 차는 사람이 있다. 그 순간 강증산 상제님과 태모님이 사라지고, 『도전』이니 천하사가 의식에서 다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또 하루 24시간 가운데 상제님 얘기는 한 20분, 10분 한두 시간 하는 사람, 그런 사람도 현실적으로 증산도 밥 먹고산다고 할 수 없다. 그는 증산도를 취미생활로 하는 세속 인간이다. 증산 상제님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는가!
그 다음 상제님은 이런 엄청난 말씀을 하셨다.
“천하 창생의 생사가 너희들 손에 매여 있느니라. 장차 천지에서 십 리에 사람 하나 보일 듯 말듯하게 다 죽일 때에도 종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사람은 크고 작고간에 틀이 있나니 큰 틀이 되어야 하느니라. 작으면 내두르기 쉽고 바람만 불어도 날아가기 쉽다.”
사람은 틀이 커야 한다. 틀이 작은 데다가 진리 공부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면, 세상의 묵은 기운에 휩쓸려 나자빠지기 쉽다.
틀이 큰 사람은 ‘야, 세상 모든 게 상제님 진리에 다 들어 있다. 나는 언젠가 이 모든 걸 위해 다 정리해버리고 상제님 사업을 하겠다. 상제님 사업을 하는 성직자, 그 사람이 천지에서 최고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때가 되면 상제님 사업에 직접 뛰어드는 사람이다.
일본인 선사 스즈끼 순류(Suzuki Shunryu)가 미국에 가서 선도를 가르치면서 서양 사람들을 위해 『선심초심禪心初心 Zen Mind, Beginner’s Mind)』이라는 책을 썼다.
물론 아랫사람들이 정리해 놓은 거지만, 그 책이 한 백 판은 나왔는데, 거기 보면 ‘큰 마음’과 ‘작은 마음’이 나온다.
우리는 상제님의 도를 받아 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천지를 안을 수 있는 마음을 말이다. 그게 상제님이 전해주신 심법인 천지일심天地一心이다.
‘나는 천지와 함께 산다, 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천지와 함께 한다.’
이것이 천지공사다.
천지공사의 문자 뜻이 뭔가? 하늘 천, 땅 지에다가 함께 공, 공변될 공 자, 일 사 자. 하늘과 땅, 천지 부모와 함께 일하는, 그런 삶을 산다는 말이다.
-종정님 도훈 (도기133.6.22)-
상제님이 “장차 십 리 길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일 때에도 인간 씨종자는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세상 죽이고 살리는 게 다 너희들 손에 달려 있다.”고 하셨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지고한 인생의 대업인가.
상제님 진리를 공부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어. 상제님 진리 사업보다 더 영광스럽고 인간으로서 보람된 일이 없다.
상제님 신앙의 박자가 딱 한 박자만 제대로 맞으면, 이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진다. 이세상 사는 목적이 달라진다. 이 세상을 사는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이 순간서부터 마음을 바꾸라. 신앙하는 목적을 바꿔야 한다. 잘못된 신앙관을 바꿔야 한다.
증산도는 단순히 기성종교처럼 신에게 매달리거나, 무슨 취미생활 하듯이 다니면서 참회하기 위해 신앙하는 게 아니다.
남사고가 한 얘기 가운데 진실 한 마디가 있다. “지금은 선천의 성자들이 천상에서 통곡하는 때다.” 예수도 울고 있고, 석가모니도 울고 있다는 것이다.
진리를 제대로 아는 것만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 진리를 제대로 아는 참신앙의 길을 접어든다는 것은, 범용한 한 인간을 역사를 움직이는 위대한 사역자로 만들어 주는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다.
도장 중심으로 말씀 듣는 것을 재미로 알라. 그렇게 해서 아침저녁으로 달라져야 한다.
상제님 진리를 떠나, 무엇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단 말인가. 아무 것도 기약할 수 없다. 믿을 수가 없다.
유가에서 인륜의 덕목 가운데 부부유별夫婦有別을 얘기한다. 남편과 아내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건데, 여기에는 남편과 마누라는 진리가 통하지 않을 때는 믿을 수 없다는 뜻이 들어있다.
인간은 어떤 사이이든지 간에 진리 중심이 아니면 통정할 수가 없다. 통정이 안 된다.
상제님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이 나온다.”고 하셨는데, 태모님은 “어디 사람 있냐? 쓸 만한 사람은 십 리 길에 하나 뒀다.”고 말씀하셨다.
-종정님 도훈 (도기133.6.22)-
이번에는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는 사람이라도 천지의 이법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물세계라 하는 것은 멸망당하는 수밖에 없어. 천지의 이법이 참 하나님이 오셔서 인간개벽을 한다. 우리 참 하나님이 의통이라는 대권을 가지고, 다 죽는 세상에 사람 씨 종자 추리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단 말이다.
내가 상제님 말씀으로 결론을 맺어줄 테니 들어봐.
“천지에서 십 리에 한사람 볼 듯 말 듯 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
이건 누가 죽이는 게 아녀. 강증산이 죽으라고, 무슨 조화로 병을 내린 게 아녀. 가을개벽이 됐단 말이다. 천지에서 죽이는 주장만 하는 때가 돼서, 죽이는 정사만 하는 것이다.
가을은 죽이는 정사밖에 더 해? 천지에서 십 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인다. 한 명도 못 살고 다 죽는단 말이다. 그래 ‘그런 때에도 씨 종자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 다 죽어서 하늘하고 땅하고만 남으면 되겠냐?’ 하는 말씀이다. 상제님은 인종씨 추리러 오신 분이다.
또 다시 얘기해서 “천하창생의 생사가 - 천하창생이란 60억 인류를 지칭한 것이다 - 이 지구상의 60억 인류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천하창생의 생사가 상제님을 신앙해서 상제님 진리를 집행하는 천지의 역군인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 상제님 위치에서 볼 때 ‘나의 신도들이 잘할 것 같으면 많이 살릴 수도 있고 잘못하면 다 죽이는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다. 그런 절규絶叫, 끊어질 절 자, 부르짖을 규 자, 입구 옆에 말 두 한 자, 그런 절규를 하셨어.
“차차소자嗟嗟小子아, 안타까운 내 신도들아, 너희들이 잘 하면 창생을 많이 살릴 수도 있고 잘못하면 다 죽이는 수밖에 더 있냐?”상제님이 당신을 신앙하는 신도들에게 이런 안타까운 부탁을 하셨다.
다시 얘기해서 “나의 이런 성스러운 진리를 가지고서 죽는 세상에 너희들도 살고 너희들이 사는 그 성스러운 진리를 가지고 너희 가족도 친지도 인아족척姻�族戚도 국가와 민족도 전 인류도 많이 살리면 인간이라는 대의명분에 입각해서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하는 말씀이다. 그 공으로써 너희들이 잘되니 좋고 여러 사람 잘 사니 좋고 말이다.
-종도사님 도훈 (도기13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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