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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21세기 흑사병 ‘조류독 감’ 경고음 울렸다

by 바로요거 2008. 3. 18.
2003년부터 유행, 1918년 5000만명 목숨 앗아간 스페인독감과 유전자 흡사
인체 통한 감염 땐 급속 확산, WTO 등 최소 수백만 희생 경고···각국 약품확보 초비상

▲ 조류독감 발생 지역에 닭에 독약을 주사하는 인도네시아 관리들

21세기 인류 최대의 재앙이 다가오고 있는가. 2003년부터 아시아에서 본격적으로 번지기 시작한 조류독감이 지구촌 곳곳에서 숨가쁜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유엔의 인플루엔자 담당 조정관으로 임명된 세계보건기구(WHO)의 데이비드 나바로 박사는 지난 9월 29일 지구촌을 향해 충격적인 경고를 했다. 그는 “인류가 조류독감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500만명 내지 1억5000만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며 “앞으로 수개월간 우리의 준비 여하에 따라 희생자가 1억5000만명이 될지 500만명이 될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WHO는 나바로 박사의 발언이 전 세계적으로 파장을 일으키자 예상 사망자 수를 200만~740만명으로 낮추었지만 희생자가 수백만 명이 될지 수천만 명이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WHO가 수정한 수치를 기준으로 해도 조류독감 대유행시 전 세계적으로 5억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600만~2800만명이 입원한다.

▲ 자신이 기르던 닭을 불태우는 인도ㄴ네시아 농부
나바로 박사뿐 아니라 마이클 리빗 미 보건부장관도 최근 정부 요인들을 앞에 둔 비공개석상에서 “조류독감이 확산되기 시작하면 미국에서만 10만~200만명이 사망하는 대재앙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랑스 리베라시옹지(紙)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올 겨울 조류독감이 발병한다면 전 세계 인구의 25~50%가 12~24개월 내에 조류독감에 걸릴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는 극단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 연구팀들이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와 ‘네이처’ 최근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은 이같은 재앙 예고가 분명한 과학적 근거가 있음을 입증했다. 연구팀들은 1918년 전 세계적으로 4000만~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 바이러스(H1N1)의 유전자를 완전 해독한 결과 이 바이러스가 아미노산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현재 아시아에서 유행하는 조류독감 바이러스(H5N1)와 거의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스페인독감도 현 조류독감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조류독감이었으나 후에 인체간(間) 감염을 일으키는 살인독감으로 변이됐다고 밝혔다.

아시아 조류독감은 아직 인체간 감염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 인체간 감염이 가능한 바이러스의 변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생체분자학자 니돔 교수는 조류독감 H5N1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통해 2가지 소그룹으로 분리된 것을 확인했다며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변이를 일으키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 조류독감 확산 상황(2004년 1월 이후)
현 시점에서 조류독감이 어떤 식의 변이를 일으키고 얼마나 널리 확산될지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만큼 지구촌의 불안감은 급속도로 증폭되고 있고 ‘대재앙’을 언급하는 전문가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2003년부터 아시아 지역에 번지기 시작한 조류독감은 지금까지 모두 4개 나라에서 6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난 9월 현재 WHO가 공식 인정한 각국별 사망자 수는 베트남 41명, 태국 12명, 캄보디아 4명, 인도네시아 3명이다.

단순 사망치만을 보면 조류독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이러스의 변이에 따른 폭발적인 확산을 예상하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빌 프리스트 미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바이러스들이 끊임없이 변이되고 있어 이를 일거에 박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 일단 질병이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하면 글로벌체제가 형성된 지구촌 경제부터 먼저 무너져 내릴 것이다.

조류독감 확산 추세는 이미 세계화 양상을 띠고 있다. 동남아 조류독감은 중국 티베트와 몽골, 카자흐스탄을 거쳐 이미 러시아 시베리아까지 확산됐고, 유럽 일부 지역에도 발병이 확인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인 H5N1이 시베리아를 출발한 철새들의 이동경로를 따라 가까운 시일 내에 카스피해와 흑해 등으로 번져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FAO는 철새들의 이동경로가 아제르바이잔, 이란, 이라크, 우크라이나를 지나고 있다며 일부 지중해 국가들도 조류독감 발병 위험지역으로 분류했다.

▲ 조규독감 예방접종을 받는 앵무새
올들어 조류독감이 기승을 부리는 인도네시아는 지금까지 전국 33개 주 가운데 22개 주에 조류독감이 확산됐고 가금류 100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WHO는 인도네시아의 우기인 11월부터 내년 4월까지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활동이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조류독감은 치사율도 가공할 만하다. 태국은 17명 발병자 중 12명이 목숨을 잃었고 베트남은 91명이 발병해 절반 가까운 43명이 사망했다. 캄보디아는 발병자 4명이 모두 숨졌다.

대재앙의 그림자가 다가오자 각국은 방역 비상체제에 들어가고 국제사회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의회에서 이미 조류독감 백신 생산 등을 위해 39억달러의 예산안을 통과시킨 미국은 비상시 군동원 계획까지 나왔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지난 10월 4일 특정지역에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지방정부가 이를 통제할 수 없다며 자신에게 군소집권을 부여해 줄 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군대를 동원한 강제 검역과 발병지역에 대한 전면 봉쇄를 연상케 하는 초강경책이다. 국방부 일각과 학계에서 과잉대응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미 정부가 이 사안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각국은 조류독감 전염 차단에 주력하면서 백신 및 항(抗)바이러스 약품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수도 자카르타와 당게랑주를 조류독감 비상구역으로 선포하고 전문 치료병원을 지정하는 등 초비상이 걸렸다. 말레이시아 또한 국경감시를 강화하고 가금류 밀수업자를 엄벌하는 ‘조류독감 비상대책’을 발표했고, 싱가포르와 태국은 비상대책반을 설치했다. 베트남은 전국적인 백신 투여작업과 가금류 농장 일제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 조류독감 백신
현재 230만명분의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를 확보하고 있는 미국은 비축량을 장기적으로 1억5000만명분까지 늘릴 계획이다. 영국 정부도 제약사에 1460만명분의 백신을 주문했으며 핀란드는 전 국민에게 공급할 수 있는 백신 확보 계획을 밝혔다. 싱가포르는 전체 인구의 10% 정도인 40만명분의 백신을 비축해놓았다. 우리나라는 70만명분의 타미플루를 확보하고 있지만 WHO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50만명분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현재 백신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는 조류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 최고 3만명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예측한다.

국제사회의 공동대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유엔은 9월 29일 인플루엔자 담당 조정관을 임명하고 조류독감의 변이에 의해 인간에게 치명적인 변종 독감이 유행할 가능성에 대한 유엔 차원의 대처 노력에 착수했다.

호주 정부는 이달 말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참가하는 조류독감대책회의를 준비 중이다. 호주 브리스베인에서 10월 31일부터 이틀간 열릴 이 회담에 역내 21개국이 참가할 전망이다. 조류독감에 대한 아태경제협력체(APEC) 국가들 간 공동 전략을 개발하고 조류독감 대책 청사진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회의 주목적이다.

미국은 리빗 미 보건장관을 조류독감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 파견, 세계적인 조류독감 감시체제 마련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호주는 조류독감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인도네시아에 전문가팀을 파견, 이웃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 "익혀서 먹으면 안전하다"고 호소하는 인데네시아 농부들
하지만 재원 부족이 또다른 난제다. 유엔식량농업기구 수석 수의관(獸醫官)인 조지프 도메네흐는 조류독감 퇴치 프로그램을 위해 앞으로 3년간 1억달러 이상이 필요하다고 추산했지만 지금까지 모금된 기부금 액수는 2000만달러에 불과하다. 독일(600만달러), 스위스(400만달러), 미국(600만달러), 일본(50만달러), 유엔식량농업기구(200만달러)가 지원을 약속하고 세계은행과 유럽연합(EU)도 지원 계획을 밝혔지만 기부금은 아직 태부족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WHO가 조류독감으로 전 세계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아직까지 사람과 사람 간에 쉽게 감염된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 말이다. ‘아직까지’라는 WHO의 언급이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여시동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sdyeo@chosun.com)

 

조류독감 Q&A

1997년 홍콩서 첫 발병 6명 사망, 바이러스 변이땐 인체간 감염 가능

Q:조류독감(Bird flu)이란 무엇인가.

A:주로 닭과 오리, 칠면조 등 조류로부터 감염되는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성 질병이다. 이미 100년 전에 확인됐다. 조류독감은 15~20종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변종들으로부터 감염될 수 있다. 최근 아시아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은 주로 H5N1으로 알려진 전염성 강한 치명적인 변종에 의해 유발됐다.

Q:조류독감의 인체감염 유래는.

A:조류독감의 인체감염은 1997년 홍콩에서 처음 발생했다. 당시 18명이 감염돼 6명이 숨진 것으로 보도됐지만 즉각 질병통제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번은 1997년처럼 한 차례 충격으로 그치지 않고 매우 신속히 국가간 경계를 넘어 확산되고 있다. 또 인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의 결합 가능성도 높아졌다.

Q:조류독감은 인체간 감염이 가능한가.

A:현재까지 H5N1은 인체간 감염이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점차 변이돼 인체간 감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일부에서는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로 지금도 인체간 감염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인체간 감염이 본격화되면 바로 21세기판 대유행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Q:조류독감은 치료될 수 있는가.

A:아시아에서 유행 중인 조류독감은 리만티딘 같은 전통적인 약품에 내성을 보이고 있지만 릴렌자나 타미플루 같은 신약들은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약품들이 고가인 데다 공급량이 제한돼 있어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한다. 현재 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다양한 백신 개발에 노력하고 있지만 초보 단계다.

Q:조류독감 예방 방법은.

A:조류독감에 감염된 가금류로부터 H5N1 바이러스를 신속히 제거하는 것이 확산을 막는 데 관건이다. 오미 시게루(尾身茂) WHO 서태평양 지역 사무소장은 사람과 조류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사육장 운영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개인 위생 차원에서는 조리하지 않은 가금류와 계란 등을 만진 뒤에 철저히 손을 씻고 가금류와 계란을 잘 익혀 먹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 주간조선(2005.10.17. 18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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