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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 神敎文化

동경대전(東經大典) [중요부분발췌]

by 바로요거 2008. 1. 25.

동경대전을 아십니까?

동경대전은

최제우 대성사께서 상제님(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성령을 받아 내려서 쓰신 책입니다!

동경대전의 그 핵심 사상은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동경대전에 기록된 그 중요한 핵심 내용을 밝힙니다!

동경대전 [중요부분발췌]

동경대전(東經大典) --- 백과사전 항목

최제우(崔濟愚 : 1824∼1864)

 

<동경대전>은 동학(東學)의 창시자 수운(水雲) 최제우의 저서이지만, 그것을 엮어서 간행한 것은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이었다. 최시형이 1880년 5월에 강원도 인제에 경전간행소를 세워 <동경대전>을 간행했고, 이듬해에는 단양의 경전간행소에서 역시 최제우의 저서인 <용담유사>(龍潭遺詞)를 간행했던 것이다.

 

<동경대전>은 동학의 핵심 교리를 한문체로 엮은 것으로 오늘날에도 천도교의 경전이 되고 있으며, <용담유사>는 한글 가사체로 쓰여져 문학적인 가치도 높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동경대전>은 '포덕문(布德文)', '논학문(論學文)', '수덕문(修德文)', '불연기연'(不然其然), '참회문'(懺悔文), '축문'(祝文), '주문'(呪文), '시문'(詩文) 그밖에 운문체의 다양한 문장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논학문'은 문답체 형식으로 되어 있다. 특히 '논학문'에서 주문을 설명하는 부분에 동학의 핵심 사상 가운데 하나인 시천주(侍天主)에 대한 풀이가 나와 있다. 우리가 동학하면 떠올리게 되는 인내천(人乃天) 사상도 바로 시천주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풀이하자면, '사람이 한울님(天主)을 모셨으니(侍) 그 사람 역시 이에 한울님(人乃天)'이라는 논리인 셈이다.

 

이것은 결국 한울님이라는 우주적인 존재가 별도의 초월적인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의 내면에 모셔져 있다는 생각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한울님을 내면에 모시고 태어나게 되고, 결국 사람은 한울님의 맑고 깨끗한 성품을 그대로 지니게 된다. 역시 '논학문'에 나오는 '내 마음이 네 마음'이라는 표현도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한울님의 마음임을 뜻한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맑고 깨끗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은 태어나면서부터 한울님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 결국 한울님으로부터 부여받은 한울님의 맑고 깨끗한 성품을 회복하는 것이 동학 또는 천도교 수행의 중요한 목적이다. {동경대전} '논학문'의 해당 부분을 보면, 최제우는 시천주를 풀이하여 이렇게 말한다. '모신다(侍)는 것은 안으로 신령(神靈)이 있고 밖으로는 기화(氣化)가 있어 온 세상 사람들이 깨달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을 풀이하면, 안으로는 신령스런 한울님의 마음을 회복하고, 밖으로는 유형의 생명체로 탄생하는 그 순간을 회복하여, 다른 마음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 바로 시천주'라는 뜻이다.

(왼쪽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동경대전>에 나타나 있는 이러한 시천주 사상은 당연히 평등주의를 포함한다. 모든 사람이 본래부터 각자의 내면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면, 남녀, 노소, 빈부, 귀천의 차이는 무의미하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최제우는 <용담유사>의 '교훈가'에서 '동귀일체'(同歸一體)를 말한다. '나'라는 개인이 이기주의적 성향에서 벗어나 '너와 나'가 모두 한울님을 모신 존재로서 한울님의 회복을 통해 '우리'라는 일체의 삶으로 함께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조선의 철저한 신분 질서에 반하는 혁신적, 근대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 '수덕문'은 최제우 자신이 동학을 창시하고 가르침을 펴게 된 과정과 취지, 동학 교도들이 지켜야 할 사항 등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포덕문'은 최제우 자신이 오랜 수도 끝에 1860년 4월 양산의 천수산 암굴 속에서 한울님(상제(上帝)로 표현되어 있다.)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일종의 신비 체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자신이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는 뜻을 간곡하게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흔히 동학이라는 명칭이 당시의 서학(西學), 그러니까 천주교에 대해서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취지를 지닌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언급은 '논학문'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내가 또한 동에서 나서 동에서 받았으니, 비록 도는 하늘의 도로서 같을지라도 동학이니, 땅 또한 동과 서로 나누어져 있는데 서를 어찌 동이라 이르고 동을 어찌 서라 이르겠는가. 우리 도는 이 땅에서 받아 이 땅에서 폈으니 어찌 가히 서라 이름하겠는가'. '서양 사람은 말에 차례가 없고 글에 순서가 없으며 도무지 한울님을 위하는 단서가 없고 다만 제 몸만을 위하여 빌 따름이라. 그 도는 허무한데 가깝고 학은 한울님 위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우리의 학과 다름이 없다고 하겠는가.'

 

최제우가 살았던 조선 말기는 안으로는 부패와 무능으로 백성들이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려야 했고, 밖으로는 서구 열강들이 침략의 기회를 노리며 위협하고 있었다. 이러한 총체적 사회 불안은 인간성 상실의 위기로 이어졌다. 유교가 규정해 온 전통적인 신분 질서에 바탕을 둔 인간관이 지탱되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최제우가 <동경대전>에서 제시하는 시천주 사상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할 수 있고, 그 요지는 인간이 본연의 깨끗하고 맑은 하늘의 성품을 회복하고, 이기심에서 벗어나 서로를 한울님으로 모시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경대전>을 단지 동학 또는 천도교의 경전으로만 대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혼란과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한 종교적 선각자가 시대를 향해 외치는 간곡한 목소리이기도 하다.

 

 

布德文 (포덕문)

 

1. 盖自上古以來 春秋迭代 四時盛衰  不遷不易 是亦 天主造化之迹 昭然于天下也  

 저 옛적부터 봄과 가을이 갈아들고 사시가 성하고 쇠함이 옮기지도 아니하고 바뀌지도 아니하니 이또한 한울님 조화의 자취가 천하에 뚜렷한 것이로되

 

2. 愚夫愚民 未知雨露之澤 知其無爲而化矣   

 어리석은 사람들은 비와 이슬의 혜택을 알지 못하고 무위이화로 알더니,

 

3. 自五帝之後 聖人以生 日月星辰 天地度數 成出文卷而以定天道之常然 一動一靜 一盛一敗 付之於天命 是 敬天命而順天理者也 故 人成君子 學成道德 道則天道 德則天德 明其道而  修其德 故 乃成君子 至於至聖 豈不欽歎哉  

 오제 후부터 성인이 나시어 일월성신과 천지도수를 글로 적어내어 천도의 떳떳함을 정하여 일동일정과 일성일패를 천명에 부쳤으니, 이는 천명을 공경하고 천리를 따르 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사람은 군자가 되고 학은 도덕을 이루었으니, 도는 천도요 덕은 천덕이라 그 도를 밝히고 그 덕을 닦음으로 군자가 되어 지극한 성인에까지 이르렀으니 어찌 부러워 감탄하지 않으리오. 

 

4. 又此挽近以來 一世之人 各自爲心 不順天理 不顧天命 心常悚然 莫知所向矣  

 또 이 근래에 오면서 온 세상사람이 각자위심하여 천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천명을 돌아보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항상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5. 至於庚申 傳聞西洋之人 以爲天主之意 不取富貴 攻取天下 立其堂 行其道 故 吾亦有其然 豈其然之疑   

 경신년에 와서 전해 듣건대 서양사람들은 천주의 뜻이라 하여 부귀는 취하지 않는 다 하면서 천하를 쳐서 빼앗아 그 교당을 세우고 그 도를 행한다고 하므로 내 또한 그것이 그럴까 어찌 그것이 그럴까 하는 의심이 있었더니, 

 

6. 不意四月 心寒身戰 疾不得執症 言不得難狀之際 有何仙語 忽入耳中 驚起探問則 曰勿懼勿恐 世人 謂我上帝 汝不知上帝耶 問其所然 曰余亦無功故 生汝世間 敎人此法 勿疑勿疑 曰然則  西道以敎人乎 曰不然 吾有靈符 其名 仙藥 其形 太極 又形 弓弓 受我此符 濟人疾病 受我呪文 敎人爲我則 汝亦長生 布德天下矣   

 뜻밖에도 사월에 마음이 선뜩해지고 몸이 떨려서 무슨 병인지 집증할 수도 없고 말 로 형상하기도 어려울 즈음에 어떤 신선의 말씀이 있어 문득 귀에 들리므로 놀라 캐 어 물은즉 대답하시기를 「두려워 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라. 세상 사람이 나를 상제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시기를 「내 또한 공이 없으므로 너를 세상에 내어 사람에 게 이 법을 가르치게 하니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묻기를 「그러면 서도로써 사람을 가르치리이까.」 대답하시기를 「그렇지 아니하다. 나에게 영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형상 은 태극이요 또 형상은 궁궁이니,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 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또한 장생하여 덕을 천하에 펴리 라.」 

 

7. 吾亦感其言 受其符 書以呑服則 潤身差病 方乃知仙藥矣 到此用病則 或有差不差故 莫知其端 察其所然則 誠之又誠 至爲天主者 每每有中 不順道德者 一一無驗 此非受人之 誠敬耶   

 나도 또한 그 말씀에 느끼어 그 영부를 받아 써서 물에 타서 마셔 본 즉 몸이 윤택 해지고 병이 낫는지라, 바야흐로 선약인줄 알았더니 이것을 병에 써봄에 이르른 즉 혹 낫기도 하고 낫지 않기도 하므로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그러한 이유를 살펴본 즉 정성드리고 또 정성을 드리어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사람은 매번 들어맞고 도덕을 순종치 않는 사람은 하나도 효험이 없었으니 이것은 받는 사람의 정성과 공경이 아니 겠는가. 

 

8. 是故 我國 惡疾滿世 民無四時之安 是亦 傷害之數也 西洋 戰勝攻取 無事不成而 天下盡滅 亦不無脣亡之歎 輔國安民  計將安出   

 이러므로 우리 나라는 악질이 세상에 가득 차서 백성들이 언제나 편안할 때가 없으 니 이 또한 상해의 운수요, 서양은 싸우면 이기고 치면 빼앗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천하가 다 멸망하면 또한 순망지탄이 없지 않을 것이라. 보국 안민의 계책이 장차 어디서 나올 것인가. 

 

9. 惜哉 於今世人 未知時運 聞我斯言則 入則心非 出則巷議 不順道德 甚可畏也 賢者聞之 其或不然而 吾將慨歎 世則無奈 忘略記出 諭以示之 敬受此書 欽哉訓辭   

 애석하도다. 지금 세상사람은 시운을 알지 못하여 나의 이 말을 들으면 들어가서는 마음으로 그르게 여기고 나와서는 모여서 수군거리며 도덕을 순종치 아니하니 심히 두려운 일이로다. 어진 사람도 이를 듣고 그것이 혹 그렇지 않다고 여기니 내 못내 개탄하거니와 세상은 어찌 할 수 없는지라, 간략하나마 적어내어 가르쳐 보이니 공경 히 이 글을 받아 삼가 교훈의 말씀으로 삼을지어다. 


論學文 (논학문)

1. 夫天道者 如無形而有迹 地理者 如廣大而有方者也 故 天有九星 以應九州 地有八方 以應八卦而 有盈虛迭代之數 無動靜變易之理 陰陽相均 雖百千萬物 化出於其中 獨惟人 最靈者也  

 무릇 천도란 것은 형상이 없는 것 같으나 자취가 있고, 지리란 것은 넓은 것 같으 나 방위가 있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한울에는 구성이 있어 땅의 구주와 응하였고 땅 에는 팔방이 있어 팔괘와 응하였으니, 차고 비고 서로 갈아드는 수는 있으나 동하고 정하고 변하고 바뀌는 이치는 없느니라.

음과 양이 서로 고루어 비록 백천만물이 그 속에서 화해 나지마는 오직 사람이 가장 신령한 것이니라.

 

2. 故 定三才之理 出五行之數 五行者何也 天爲五行之綱 地爲五行之質 人爲五行之氣 天地人三才之數 於斯可見矣 

그러므로 삼재의 이치를 정하고 오행의 수를 내었으니 오행이란 것은 무엇인가.

한울은 오행의 벼리가 되고 땅은 오행의 바탕이 되고 사람은 오행의 기운이 되었으 니, 천·지·인 삼재의 수를 여기에서 볼 수 있느니라.

 

3. 四時盛衰 風露霜雪 不失其時 不變其序 如露蒼生 莫知其端 或云 天主之恩 或云化工之迹 然而以恩言之 惟爲不見之事 以工言之 亦爲難狀之言 何者 於古及今 其中未必者也 

사시성쇠와 풍로상설이 그 때를 잃지 아니하고 그 차례를 바꾸지 아니하되 여로창 생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하여 어떤 이는 한울님의 은혜라 이르고 어떤 이는 조화의 자 취라 이르나, 그러나 은혜라고 말할지라도 오직 보지 못한 일이요 조화의 자취라 말 할지라도 또한 형상하기 어려운 말이라.

어찌하여 그런가. 옛적부터 지금까지 그 이치를 바로 살피지 못한 것이니라.


4. 夫庚申之年 建巳之月 天下紛亂 民心淆薄 莫知所向之地 又有怪違之說 崩騰于世間 西洋之人 道成立德 及其造化 無事不成 功鬪干戈 無人在前 中國燒滅 豈可無脣亡之患耶 都緣無他 斯人 道稱西道 學稱天主 敎則聖敎 此非知天時而 受天命耶 

경신년 사월에 천하가 분란하고 민심이 효박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즈음에 또 한 괴상하고 어긋나는 말이 있어 세간에 떠들썩하되,

「서양사람은 도성입덕하여 그 조화에 미치어 일을 이루지 못함이 없고 무기로 침공 함에 당할 사람이 없다하니 중국이 소멸하면 어찌 가히 순망의 환이 없겠는가.」

「도무지 다른 연고가 아니라, 이 사람들은 도를 서도라 하고 학을 천주학이라 하고 교는 성교라 하니, 이것이 천시를 알고 천명을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5. 擧此一一不已故 吾亦悚然 只有恨生晩之際 身多戰寒 外有接靈之氣 內有降話之敎 視之不見 聽之不聞 心尙怪訝 修心正氣而問曰 何爲若然也 

이를 일일이 들어 말할 수 없으므로 내 또한 두렵게 여겨 다만 늦게 태어난 것을 한탄할 즈음에, 몸이 몹시 떨리면서 밖으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고 안으로 강화의 가르침이 있으되, 보였는데 보이지 아니하고 들렸는데 들리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오히려 이상해져서 수심정기하고 묻기를 「어찌하여 이렇습니까.」

 

6. 曰吾心卽汝心也 人何知之 知天地而無知鬼神 鬼神者吾也 及汝無窮無窮之道 修而煉 之 制其文敎人 正其法布德則 令汝長生 昭然于天下矣 

대답하시기를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 사람이 어찌 이를 알리오. 천지는 알 아도 귀신은 모르니 귀신이라는 것도 나니라. 너는 무궁 무궁한 도에 이르렀으니 닦고 단련하여 그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 여금 장생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7. 吾亦幾至一歲 修而度之則 亦不無自然之理 故 一以作呪文 一以作降靈之法 一以作不 忘之詞 次第道法 猶爲二十一字而已 

내 또한 거의 한 해를 닦고 헤아려 본즉, 또한 자연한 이치가 없지 아니하므로 한 편으로 주문을 짓고 한편으로 강령의 법을 짓고 한편은 잊지 않는 글을 지으니, 절차 와 도법이 오직 이십일 자로 될 따름이니라.

 

8. 轉至辛酉 四方賢士 進我而問曰 今天靈降臨先生 何爲其然也 曰受其無往不復之理 曰然則何道以名之 曰天道也 曰與洋道無異者乎 曰洋學如斯而有異 如呪而無實 然而運則一 也 道則同也 理則非也 

신유년에 이르러 사방에서 어진 선비들이 나에게 와서 묻기를 「지금 천령이 선생 님께 강림하였다 하니 어찌된 일입니까.」

대답하기를 「가고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이치를 받은 것이니라.」

묻기를 「그러면 무슨 도라고 이름 합니까.」

대답하기를 「천도이니라.」

묻기를 「양도와 다른 것이 없습니까.」

대답하기를 「양학은 우리 도와 같은 듯하나 다름이 있고 비는 것 같으나 실지가 없 느니라. 그러나 운인 즉 하나요 도인 즉 같으나 이치인 즉 아니니라.」


9. 曰何爲其然也 曰吾道無爲而化矣 守其心正其氣 率其性受其敎 化出於自然之中也 西人 言無次第 頓無爲天主之端 只祝自爲身之謀 身無氣化之神 學無天主之敎 有形無迹 如思無呪 道近虛無 學非天主 豈可謂無異者乎 

묻기를 「어찌하여 그렇게 됩니까.」

대답하기를 「우리 도는 무위이화라.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하고 한울 님 성품을 거느리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한 가운데 화해나는 것이요, 서양 사람은 말에 차례가 없고 글에 순서가 없으며 도무지 한울님을 위하는 단서가 없고 다만 제 몸만을 위하여 빌 따름이라. 몸에는 기화지신이 없고 학에는 한울님의 가르 침이 없으니 형식은 있으나 자취가 없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주문이 없는지라, 도는 허무한데 가깝고 학은 한울님 위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다름이 없다고 하겠는가.」

 

10. 曰同道言之則 名其西學也 曰不然 吾亦生於東 受於東 道雖天道 學則東學 況地分東西 西何謂東 東何謂西 孔子生於魯 風於鄒 鄒魯之風 傳遺於斯世 吾道受於斯布於斯 豈可謂以西名之者乎 

묻기를 「도가 같다고 말하면 서학이라고 이름합니까.」

대답하기를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또한 동에서 나서 동에서 받았으니 도는 비록 천도나 학인 즉 동학이라. 하물며 땅이 동서로 나뉘었으니 서를 어찌 동이라 이르며 동을 어찌 서라고 이르겠는가.

공자는 노나라에 나시어 추나라에 도를 폈기 때문에 추로의 풍화가 이 세상에 전해 온 것이어늘 우리 도는 이 땅에서 받아 이 땅에서 폈으니 어찌 가히 서라고 이름하겠 는가.」


11. 曰呪文之意何也 曰 至爲天主之字故 以呪言之 今文有古文有 

묻기를 「주문의 뜻은 무엇입니까.」

대답하시기를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므로 주문이라 이르는 것이니, 지금 글 에도 있고 옛 글에도 있느니라.」

 

12. 曰降靈之文 何爲其然也 曰至者 極焉之爲至 氣者虛靈蒼蒼 無事不涉 無事不命 然而如形而難狀 如聞而難見 是亦渾元之一氣也 今至者 於斯入道 知其氣接者也 願爲者 請祝 之意也 大降者 氣化之願也  묻기를 「강령의 글은 어찌하여 그렇게 됩니까」

대답하기를

「지」라는 것은 지극한 것이요

「기」라는 것은 허령이 창창하여 일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일에 명령하지 아니 함이 없으나, 그러나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듯하나 보기는 어려우니, 이것은 또한 혼원한 한 기운이요

「금지」라는 것은 도에 들어 처음으로 지기에 접함을 안다는 것이요

「원위」라는 것은 청하여 비는 뜻이요

「대강」이라는 것은 기화를 원하는 것이니라.


13.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主者 稱其尊而與父母同事者也 造化者 無爲而化也 定者 合其德定其心也 永世者 人之平生也 不忘者 存想之意也 萬事者 數之多也 知者 知其道而受其知也故 明明其德 念念不忘則 至化至氣 至於至聖  「시」라는 것은 안에 신령이 있고 밖에 기화가 있어 온 세상 사람이 각각 알아서 옮 기지 않는 것이요

「주」라는 것은 존칭해서 부모와 더불어 같이 섬긴다는 것이요

「조화」라는 것은 무위이화요

「정」이라는 것은 그 덕에 합하고 그 마음을 정한다는 것이요

「영세」라는 것은 사람의 평생이요

「불망」이라는 것은 생각을 보존한다는 뜻이요

「만사」라는 것은 수가 많은 것이요

「지」라는 것은 그 도를 알아서 그 지혜를 받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 덕을 밝고 밝게 하여 늘 생각하며 잊지 아니하면 지극히 지기에 화하여 지극한 성인에 이르느니라.

 

14. 曰天心卽人心則 何有善惡也 曰命其人 貴賤之殊 定其人 苦樂之理 然而君子之德 氣有正而心有定故 與天地合其德 小人之德 氣不正而心有移 故 與天地違其命 此非盛衰之理耶 

묻기를 「한울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라면 어찌하여 선악이 있습니까.」

대답하기를 「그 사람의 귀천의 다름을 명하고 그 사람의 고락의 이치를 정했으나, 그러나 군자의 덕은 기운이 바르고 마음이 정해져 있으므로 천지와 더불어 그 덕에 합하고 소인의 덕은 기운이 바르지 못하고 마음이 옮기므로 천지와 더불어 그 명에 어기나니, 이것이 성쇠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15. 曰一世之人 何不敬天主也 曰臨死號天 人之常情而命乃在天 天生萬民 古之聖人之所謂而 尙今彌留 然而 似然非然之間 未知詳然之故也 

묻기를 「온 세상 사람이 어찌하여 한울님을 공경치 아니합니까.」

대답하기를 「죽음에 임하여 한울님을 부르는 것은 사람의 상정이라. 목숨이 한울에 있음과 한울이 만민을 내었다는 것은 옛 성인의 하신 말씀으로서 지금까지 미루어 오 는 것이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여 자세한 것을 알지 못하 기 때문이니라.」

 

16. 曰毁道者何也 曰猶或可也 曰何以可也 曰吾道今不聞古不聞之事 今不比古不比之法也 修者如虛而有實 聞者如實而有虛也  묻기를 「도를 훼방하는 자는 어째서입니까.」

대답하기를 「혹 그럴 수도 있느니라.」

묻기를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대답하기를 「우리 도는 지금도 듣지 못하고 옛적에도 듣지 못하던 일이요, 지금도 비교하지 못하고 옛적에도 비교하지 못하는 법이라. 닦는 사람은 헛된 것 같지만 실 지가 있고, 듣기만 하는 사람은 실지가 있는 것 같지만 헛된 것이니라.」

 

17. 曰反道而歸者何也 曰斯人者不足擧論也 曰胡不擧論也 曰敬而遠之 曰前何心而後何 心 也 曰草上之風也 曰然則 何以降靈也 曰不擇善惡也 曰無害無德耶 曰堯舜之世 民皆 爲堯舜 斯世之運 與世同歸 有害有德 在於天主 不在於我也 一一究心則 害及其身 未詳知之 然而斯人享福 不可使聞於他人 非君之所問也 非我之所關也  묻기를 「도를 배반하고 돌아가는 자는 어째서입니까.」

대답하기를 「이런 사람은 족히 거론하지 않느니라.」

묻기를 「어찌하여 거론하지 않습니까.」

대답하기를 「공경 하되 멀리할 것이니라. 」

묻기를 「입도할 때 마음은 무슨 마음이었으며 도를 배반할 때의 마음은 무슨 마음입니까.」

대답하기를 「바람앞의 풀과 같은 것이니라.」

묻기를 「그렇다면 어찌 강령이 됩니까」

대답하기를 「한울님은 선악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 니라.」

묻기를 「해도 없고 덕도 없습니까.」

대답하기를 「요순의 세상에는 백성이 다 요순같이 되었고 이 세상 운수는 세상과 같이 돌아가는지라 해가 되고 덕이 되는 것 은 한울님께 있는 것이요 나에게 있지 아니하니라. 낱낱이 마음속에 헤아려 본즉 해 가 그 몸에 미칠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이런 사람이 복을 누리리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듣게 해서는 안되니, 그대가 물을 바도 아니요 내가 관여할 바도 아니니라. 」


18. 嗚呼噫噫 諸君之問道 何若是明明也 雖我拙文 未及於精義正宗 然而矯其人 修其身 養其才 正其心 豈可有岐貳之端乎 凡天地無窮之數 道之無極之理 皆載此書 惟我諸君 敬受此書 以助聖德 於我比之則 怳若 甘受和白受采 吾今樂道 不勝欽歎故 論而言之 諭而 示之 明而察之 不失玄機  아! 참으로 감탄할 일이로다. 그대들의 도를 물음이 어찌 이같이 밝고 밝은가. 비록 나의 졸렬한 글이 정밀한 뜻과 바른 종지에 미치지 못했을지라도, 그 사람을 바르게 하고 그 몸을 닦고 그 재주를 기르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어찌 두갈래 길이 있겠 는가.

무릇 천지의 무궁한 수와 도의 무극한 이치가 다 이 글에 실려 있으니, 오직 그대들 은 공경히 이 글을 받으라. 성스러운 덕을 돕기를 내게 비하면 황연히 단 것이 화청 을 받고 흰 것이 채색을 받는 것 같으리니 내 지금 도를 즐거워하여 흠모하고 감탄함 을 이기지 못하므로 논하여 말하고 효유하여 보이니 밝게 살피어 현기를 잃지 말지어 다. 


修德文 (수덕문)

1. 元亨利貞 天道之常 惟一執中 人事之察 故 生而知之 夫子之聖質 學而知之 先儒之相 傳 雖有困而得之 淺見薄識 皆由於吾師之盛德 不失於先王之古禮   

 원·형·이·정은 천도의 떳떳한 것이요, 오직 한결같이 중도를 잡는 것은 인사의 살핌이니라. 그러므로 나면서부터 아는 것은 공부자의 성인 바탕이요, 배워서 아는 것 은 옛 선비들의 서로 전한 것이니라.

비록 애써서 얻은 천견박식이라도 다 우리스승의 성덕으로 된 것이요 선왕의 옛 예 의를 잃지 아니한 것이니라.

 

2. 余出自東方 無了度日 僅保家聲 未免寒士 先祖之忠義 節有餘於龍山 吾王之盛德 歲復回於壬丙 若是餘蔭 不絶如流 家君出世 名盖一道 無不士林之共知 德承六世 豈非子孫 之餘慶 나는 동방에 태어나 부질없이 세월을 보냈으니, 겨우 가문의 명예를 보존했을 뿐이 요 빈한한 선비임을 면치 못하였노라. 선조의 충의는 절개가 용산에 남음이 있고, 우 리 임금의 성덕은 해가 다시 임진 병자에 돌아왔더라.

이같이 남은 음덕이 그치지 아니하고 물 흐르듯 하여 아버님이 세상에 나타나심에, 이름이 한 도에 덮였으니 선비들이 모르는 이가 없었고 덕이 육대를 이었으니 어찌 자손의 남은 경사가 아니겠는가.

 

3. 噫 學士之平生 光陰之春夢 年至四十 工知芭籬之邊物 心無靑雲之大道 一以作歸去來 之辭 一以詠覺非是之句 携笻理履怳若處士之行 山高水長 莫非先生之風 龜尾之奇峯怪 石 月城金鰲之北 龍湫之淸潭寶溪 古都馬龍之西 園中桃花 恐知漁子之舟 屋前滄波 意在 太公之釣 檻臨池塘 無違濂溪之志 亭號龍潭 豈非慕葛之心 

슬프다. 학사의 평생은 세월이 봄 꿈과 같이 흘러가서 나이 사십에 이름에, 공부한 것은 울타리 가에 버린 물건으로 아시고 마음에는 벼슬할 뜻이 없었노라. 한편으로는 귀거래사를 지으시고 한편으로는 각비시의 글귀를 읊으시니라. 지팡이를 짚고 짚신을 신은 것은 마치 처사의 행색 같고, 산이 높고 물이 긴 것은 선생의 풍도와 다름이 없 더라. 구미산의 기이한 봉우리와 괴이한 돌은 월성 금오산 북쪽이요, 용추의 맑은 못 과 보배로운 시내는 옛 도읍 마룡의 서쪽이라.

동산 가운데 복숭아꽃은 고기잡이 배가 알까 두려워 함이요, 집 앞에 푸른 물은 뜻 이 강태공의 낚시에 있었더라. 난간이 못가에 다다름은 주렴계의 뜻과 다름이 없고, 정자 이름을 용담이라 함은 제갈량을 사모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4. 難禁歲月之如流 哀臨一日之化仙 孤我一命 年至二八 何以知之 無異童子 先考平生之 事業 無痕於火中 子孫不肖之餘恨 落心於世間 豈不痛哉 豈不惜哉

세월의 흘러감을 막을 길이 없어 하루 아침에 신선되는 슬픔을 당하니 외로운 나의 한 목숨이 나이 겨우 열여섯에 무엇을 알았으리오. 어린 아이나 다름이 없었더라. 아 버지의 평생 사업은 불 속에서 자취마저 없어지고 자손의 불초한 여한은 세상에서 낙 심하게 되었노라. 어찌 슬프지 아니하며 어찌 애석치 아니하랴.

 

5. 心有家庭之業 安知稼穡之役 書無工課之篤 意墜靑雲之地 家産漸衰 未知末稍之如何 年光漸益 可歎身勢之將拙 料難八字 又有寒飢之慮 念來四十 豈無不成之歎 巢穴未定 誰云天地之廣大 所業交違 自憐一身之難藏 自是由來 擺脫世間之紛撓 責去胸海之弸結

마음으로는 가정을 돌볼 생각이 있지마는 어찌 심고 거두는 일을 알며, 글공부를 독실히 하지 못하였으니 벼슬할 생각이 없어졌노라. 살림이 점점 어려워지니 나중에 어떻게 될런지 알 수 없고, 나이 차차 많아가니 신세가 장차 궁졸해질 것을 걱정하였 노라. 팔자를 헤아려 보니 춥고 굶주릴 염려가 있고, 나이 사십이 된 것을 생각하니 어찌 아무런 일도 해놓은 것이 없음을 탄식하지 않으랴. 몸담을 곳을 정하지 못하였 으니 누가 천지가 넓고 크다고 하겠으며, 하는 일마다 서로 어긋나니 스스로 한 몸 간직하기가 어려움을 가엾게 여겼노라.

이로부터 세간에 분요한 것을 파탈하고 가슴속에 맺혔던 것을 풀어 버리었노라.


6. 龍潭古舍 家嚴之丈席 東都新府 惟我之故鄕 率妻子還捿之日 己未之十月 乘其運道受 之節 庚申之四月 是亦夢寐之事 難狀之言 察其易卦大定之數 審誦三代敬天之理 於是乎 惟知先儒之從命 自歎後學之忘却 修而煉之 莫非自然 覺來夫子之道則 一理之所定也 論其惟我之道則 大同而小異也 去其疑訝則 事理之常然 察其古今則 人事之所爲 

용담의 옛집은 가친께서 가르치던 곳이요 동도신부는 오직 내 고향이니라. 처자를 거느리고 용담으로 돌아온 날은 기미년 시월이요 그 운수를 타고 도를 받은 시절은 경신년 사월이러라.

이 또한 꿈같은 일이요 형상하기 어려운 말이니라.

주역괘의 대정수를 살펴 보고 삼대적 경천한 이치를 자세히 읽어보니, 이에 오직 옛 날 선비들이 천명에 순종한 것을 알겠으며 후학들이 잊어버린 것을 스스로 탄식할 뿐 이로다.

닦고 단련하니 자연한 이치 아님이 없더라.

공부자의 도를 깨달으면 한 이치로 된 것이요, 오직 우리도로 말하면 대체는 같으나 약간 다른 것이니라. 의심을 버리면 사리의 떳떳한 것이요, 예와 지금을 살피면 인사 의 할 바니라.


7. 不意布德之心 極念致誠之端 然而彌留 更逢辛酉 時維六月 序屬三夏 良朋滿座 先定其法 賢士問我 又勸布德

포덕할 마음은 두지 않고 지극히 치성할 일만 생각하였노라. 그렇게 미루어 다시 신유년을 만나니, 때는 유월이요 절기는 여름이었더라. 좋은 벗들이 자리에 가득함에 먼저 도닦는 법을 정하고, 어진 선비들이 나에게 물음에 또한 포덕을 권하니라.


8. 胸藏不死之藥 弓乙其形 口誦長生之呪 三七其字 開門納客 其數其然 肆筵設法 其味其如 冠子進退 怳若有三千之班 童子拜拱 倚然有六七之詠 年高於我 是亦子貢之禮 歌詠 而舞 豈非仲尼之蹈

가슴에 불사약을 지녔으니 그 형상은 궁을이요, 입으로 장생하는 주문을 외우니 그 글자는 스물한자라. 문을 열고 손님을 맞으니 그 수효가 그럴듯 하며, 자리를 펴고 법 을 베푸니 그 재미가 그럴듯 하도다.

어른들이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은 마치 삼천제자의 반열같고, 어린이들이 읍하고 절 하는 것은 육칠의 읊음이 있는 것 같도다.

나이가 나보다 많으니 이 또한 자공의 예와 같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니 어찌 공자 의 춤과 다르랴.

 

9. 仁義禮智 先聖之所敎 修心正氣 惟我之更定 一番致祭 永侍之重盟 萬惑罷去 守誠之 故也 衣冠正齊 君子之行 路食手後 賤夫之事 道家不食 一四足之惡肉 陽身所害 又寒泉 之急坐 有夫女之防塞 國大典之所禁 臥高聲之誦呪 我誠道之太慢 然而肆之 是爲之則 

인의예지는 옛 성인의 가르친 바요, 수심정기는 내가 다시 정한 것이니라. 한번 입 도식을 지내는 것은 한울님을 길이 모시겠다는 중한 맹세요, 모든 의심을 깨쳐버리는 것은 정성을 지키는 까닭이니라. 의관을 바로 갖추는 것은 군자의 행실이요, 길에서 먹으며 뒷짐지는 것은 천한 사람의 버릇이니라. 도가에서 먹지 아니할 것은 한가지 네발짐승의 나쁜 고기요, 몸에 해로운 것은 또한 찬물에 갑자기 앉는 것이니라. 유부녀를 막는 것은 나라 법으로도 금하는 것이요, 누워서 큰 소리로 주문 외우는 것은 나의 정성된 도에 태만함이니라. 그렇듯이 펴니 이것이 수칙이 되느니라.


10. 美哉 吾道之行 投筆成字 人亦疑王羲之迹 開口唱韻 孰不服樵夫之前 懺咎斯人 慾不 及石氏之貲 極誠其兒 更不羨師曠之聰 容貌之幻態 意仙風之吹臨 宿病之自效 忘盧醫之 良名

아름답도다, 우리 도의 행함이여. 붓을 들어 글을 쓰니 사람들이 왕희지의 필적인가 의심하고, 입을 열어 운을 부르니 누가 나무꾼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겠는가. 허물 을 뉘우친 사람은 욕심이 석숭의 재물도 탐내지 아니하고, 정성이 지극한 아이는 다 시 사광의 총명도 부러워 하지 않더라. 용모가 환태된 것은 마치 선풍이 불어온 듯하고, 오랜 병이 저절로 낫는 것은 편작의 어진 이름도 잊어 버릴만 하더라.


11. 雖然 道成德立 在誠在人 或聞流言而修之 或聞流呪而誦焉 豈不非哉 敢不憫然 憧憧我思 靡日不切 彬彬聖德 或恐有誤 是亦不面之致也 多數之故也 遠方照應而 亦不堪相思 之懷 近欲敍情而必不無指目之嫌 故 作此章 布以示之 賢我諸君 愼聽吾言 

비록 그러나 도성덕립이 되는 것은 정성에 있고 사람에 달렸느니라. 혹은 떠도는 말을 듣고 닦으며 혹은 떠도는 주문을 듣고 외우니, 어찌 그릇된 일이 아니며 어찌 민망한 일이 아니겠는가.

안타까운 나의 심정은 날로 간절치 않은 날이 없고, 빛나는 거룩한 덕을 혹 그르칠 까 두려워 하노라. 이것은 또한 직접 만나지 못한 탓이요, 사람이 많은 까닭이라. 먼 곳에서도 서로 마음과 마음은 비치어 응하지만 또한 그리운 회포를 이기지 못하겠고, 가까이 만나서 정회를 펴고자 하나 반드시 지목받을 혐의가 없지 아니하므로 이 글을 지어 펴서 보이니, 어진 그대들은 삼가 나의 말을 들을지어다.


12. 大抵此道 心信爲誠 以信爲幻 人而言之 言之其中 曰可曰否 取可退否 再思心定 定之後言 不信曰信 如斯修之 乃成其誠 誠與信兮 其則不遠 人言以成 先信後誠 吾今明諭 豈非信言 敬以誠之 無違訓辭.

대저 이도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 정성이 되느니라. 믿을 신자를 풀어 보면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니 사람의 말 가운데는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을, 그 중에서 옳은 말은 취하고 그른 말은 버리어 거듭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라. 한번 작정한 뒤에는 다른 말 을 믿지 않는 것이 믿음이니 이와 같이 닦아야 마침내 그 정성을 이루느니라. 정성과 믿음이여, 그 법칙이 멀지 아니하니라. 사람의 말로 이루었으니 먼저 믿고 뒤에 정성 하라. 내 지금 밝게 가르치니 어찌 미더운 말이 아니겠는가. 공경하고 정성들여 가르치는 말을 어기지 말지어다.



不然其然 (불연기연)


1. 歌曰 而千古之萬物兮 各有成各有形 所見以論之則 其然而似然 所自以度之則 其遠而甚遠 是亦杳然之事 難測之言 我思我則 父母在玆 後思後則 子孫存彼 來世而比之則理無 異於我思我 去世而尋之則或難分於人爲人  

노래하기를... 천고의 만물이여, 각각 이룸이 있고 각각 형상이 있도다. 보는 바로 말하면 그렇고 그런듯하나 그부터 온 바를 헤아리면 멀고도 심히 멀도다. 이 또한 아득한 일이요 헤아리기 어려운 말이로다. 나의 나 된 것을 생각하면 부모가 이에 계시고, 뒤에 뒤 될 것을 생각하면 자손이 저기 있도다. 오는 세상에 견주면 이치가 나의 나 된 것을 생각함에 다름이 없고, 지난 세상에서 찾으면 의심컨대 사람으로서 사람된 것을 분간키 어렵도다.

 

2. 噫 如斯之忖度兮 由其然而看之則 其然如其然 探不然而思之則 不然于不然 何者 太古兮 天皇氏 豈爲人 豈爲王 斯人之無根兮 胡不曰 不然也 世間 孰能無父母之人 考其先則 其然其然 又其然之故也 

아! 이같이 헤아림이여. 그 그러함을 미루어 보면 기연은 기연이나 그렇지 않음을 찾아서 생각하면 불연은 불연이라. 왜 그런가. 태고에 천황씨는 어떻게 사람이 되었으며 어떻게 임금이 되었는가. 이 사람의 근본이 없음이여, 어찌 불연이라고 이르지 않겠는가. 세상에 누가 부모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 선조를 상고하면 그렇고 그렇고 또 그런 까닭이니라.

  

3. 然而爲世 作之君作之師 君者以法造之 師者以禮敎之 君無傳位之君而法綱何受 師無受訓之師而禮義安效 不知也不知也 生以知之而然耶 無爲化也而然耶 以知而言之 心在於 暗暗之中 以化而言之 理遠於茫茫之間

그렇게 세상이 되어서 임금을 내고 스승을 내었으니 임금은 법을 만들고 스승은 예 를 가르쳤느니라. 임금은 맨처음 자리를 전해준 임금이 없건마는 법강을 어디서 받았 으며, 스승은 맨처음 가르침을 받은 스승이 없건마는 예의를 어디서 본받았을까.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할 일이로다. 나면서부터 알아서 그러함인가, 자연히 화해서 그 러함인가. 나면서부터 알았다 할지라도 마음은 어두운 가운데 있고, 자연히 화했다 해도 이치 는 아득한 사이에 있도다.

 

4. 夫如是則 不知不然故 不曰不然 乃知其然故 乃恃其然者也 於是而揣其末 究其本則 物爲物理爲理之大業 幾遠矣哉 況又斯世之人兮 胡無知胡無知

무릇 이와 같은 즉 불연은 알지 못하므로 불연을 말하지 못하고, 기연은 알 수 있으므로 이에 기연을 믿는 것이라. 이에 그 끝을 헤아리고 그 근본을 캐어본 즉 만물 이 만물되고 이치가 이치된 큰 일이 얼마나 먼 것이냐. 하물며 또한 이세상 사람이여, 어찌하여 앎이 없는고, 어찌하여 앎이 없는고.

 

5. 數定之幾年兮 運自來而復之 古今之不變兮 豈謂運豈謂復 於萬物之不然兮 數之而明之 記之而鑑之 四時之有序兮 胡爲然胡爲然 山上之有水兮 其可然其可然 赤子之穉穉兮 不言知夫父母 胡無知胡無知 斯世人兮 胡無知 聖人之以生兮 河一淸千年 運自來而復 歟 水自知而變歟 耕牛之聞言兮 如有心如有知 以力之足爲兮 何以苦何以死 烏子之反哺 兮 彼亦知夫孝悌 玄鳥之知主兮 貧亦歸貧亦歸

수가 정해진지 몇 해런고, 운이 스스로 와서 회복되도다. 예와 이제가 변치 않음이 여, 어찌 운이라 하며 어찌 회복이라 하는가. 만물의 불연이여, 헤어서 밝히고 기록하여 밝히리라. 사시의 차례가 있음이여, 어찌하여 그리 되었으며 어찌하여 그리 되었는고. 산 위에 물이 있음이여, 그것이 그럴 수 있으며 그것이 그럴 수 있는가. 갓난아기의 어리고 어림이여, 말은 못해도 부모를 아는데 어찌하여 앎이 없는고. 어찌하여 앎이 없는고. 이세상 사람이여, 어찌하여 앎이 없는고. 성인의 나심이여, 황하수가 천 년에 한번씩 맑아진다니 운이 스스로 와서 회복되는 것인가, 물이 스스로 알고 변하는 것인가. 밭가는 소가 사람의 말을 들음이여, 마음이 있는듯하며 앎이 있는 듯하도다. 힘으로써 족히 할 수 있음이여, 왜 고생을 하며 왜 죽는가. 가마귀 새끼가 도로 먹임이여, 저것도 또한 효도와 공경을 알고, 제비가 주인을 앎이 여, 가난해도 또 돌아오고 가난해도 또 돌아오도다.

 

6. 是故 難必者不然 易斷者其然 比之於究其遠則 不然不然 又不然之事 付之於造物者則 其然其然 又其然之理哉

이러므로 기필키 어려운 것은 불연이요, 판단하기 쉬운 것은 기연이라. 먼데를 캐어 견주어 생각하면 그렇지 않고 그렇지 않고 또 그렇지 않은 일이요, 조물 자에 부쳐 보면 그렇고 그렇고 또 그러한 이치인저.


懺悔文 (참회문)

姓名某 生居某國忝處人倫 叩感天地盖載之恩 荷蒙日月照臨之德 未曉歸眞之路 久沉苦海 心多忘失 今玆聖世 道覺先生 懺悔從前之過 願隨一切之善 永侍不忘 道有心學 幾至修煉 今以吉辰 淨潔道場 至誠至願 奉請感應  

 성명 「아무」는 「아무」나라에 태어나 살면서 욕되이 인륜에 처하여 천지의 덮고 실어주는 은혜를 느끼며 일월이 비추어 주는 덕을 입었으나, 아직 참에 돌아가는 길 을 깨닫지 못하고 오랫동안 고해에 잠기어 마음에 잊고 잃음이 많더니, 이제 이 성세 에 도를 선생께 깨달아 이전의 허물을 참회하고 일체의 선에 따르기를 원하여, 길이 모셔 잊지 아니하고 도를 마음공부에 두어 거의 수련하는데 이르렀습니다. 이제 좋은 날에 도장을 깨끗이 하고 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소원으로 받들어 청하오니 감응하옵소서.

呪文 (주문)

 

先生呪文

 

降靈呪文:   至氣今至四月來

(지기금지사월래)

本 呪 文:    侍天主令我長生無窮無窮萬事知

(시천주영아장생무궁무궁만사지)

 

弟子呪文 

 

初學呪文:   爲 天主顧我情永世不忘萬事宜

(위 천주고아정영세불망만사의)

降靈呪文:   至氣今至願爲大 降

(지기금지원위대강)

本 呪 文:   侍 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시 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立春詩 (입춘시)

道氣長存邪不入

(도기장존사불입)


世間衆人不同歸

(세간중인부동귀)  

도의 기운을 길이 보존함에 사특한 것이 들어오지 못하고,

세간의 뭇사람과 같이 돌아가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