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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환국(桓國)의 홍산문명

by 바로요거 2007. 11. 9.

 

환국(桓國)의 홍산문명

 

대륙의 요녕지역에서 홍산문명(紅山文明)이 발견되었는데 화하족의 문명이 아니고 한(韓)민족의 문명으로 인식됩니다

 

발견의 파장

황하(앙소)문명보다 고대국가를 먼저 형성시킨 문명이 내몽고의 요녕에서 발견되었는데 발해만 북부의 신석기문명 중에서 가장 주목할 문명이 홍산문명입니다.

 

이 문명의 발견으로 대륙은 황하중심 문명전파론을 철회하고 [다중심문화론]을 인정했고 산동에서 발견되는 북신문화,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가 바로 이 홍산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론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홍산문명이 바로 한(韓)민족의 나라인 고조선의 중심지로 인정되는 요녕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한국학계의 일부에서도 홍산문명을 보고 고조선이 실제로 BC.2333년에 건국이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명은 또한 강단사학계를 '반도중심의 식민사관'이라 비판했던 사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홍산에서 황하보다 먼저 고대국가를 형성한 유적으로 성곽과 왕궁터가 발견되므로 고조선의 건국전에 이미 고대국가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사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환국이 바로 홍산문명(BC.5000~ 2500)이고 홍산문명은 흥륭와문화, 신락문화(BC.6000~ 5000)을 기반으로 세워졌다는 주장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매도할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홍산문명은 요녕지역과 내몽고 동부지역에 넓게 전개된 BC.4000년의 신석기-중기에 해당하는 2단계 신석기문화로 인식되며 사해문화와 연속고선문계 토기와 세석기등을 융합하여 한단계 발전하여 전개 되었고 그 후에 하가점-하층문화에 연결되며 황하유역과 산동반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동이족(東夷族)의 활동영역을 문헌으로 보면 하북성 동북부와 산동지역 그리고 양자강 하류지역인데 산동지역에서 가장 앞서는 신석기유적은 북신문화이고 BC.5000년까지 소급되며 황하의 자산- 배리강문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BC.4500년경에 이 지역에 있었던 대문구문화와도 직접적인 연결관계에 있습니다.

 

대문구문화는 하남성서쪽의 앙소문화와 대비되는 문화로 동이계(東夷系)문화로 추정되고 있고 이후의 용산문화에 연결됩니다.

 

문명의 특징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묘장법인데 죽은 사람의 장례의식은 오랜기간 변하지 않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홍산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석묘계(石墓系)돌무덤인데 돌을 쌓아 묘실을 구성하는 적석총과 돌판을 잘라 묘실벽을 짜는 석관묘가 대능하 상류지역 요녕성 우하량유적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석관묘- 돌널무덤

*적석총- 돌무지무덤

 

반면에 대륙의 화하족은 땅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시신과 유물을 안장하는 토광묘가 유행하였고 주(周)나라시대에 들어서 나무로 관을 짜서 묘실을 만드는 목관묘가 유행합니다.

 

역사적으로 홍산문명과 동일한 석묘계의 묘장법을 채용하고 있는 나라가 고조선이며 고조선의 전단계인 홍산문명은 고조선의 선조들이 이룩한 문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돌을 이용해서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이 고조선 이후 부여, 고구려 그리고 백제에도 계속해서 계승되는 한(韓)민족 고유의 풍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홍산은 대륙의 사서에 나오는 헌원과 전쟁을 했던 치우천황의 근거지로 지적이 되는 곳으로 헌원과 결전을 벌이며 하남, 산서와 산동일대를 개척하여 청구국을 세웠다는 기록은 사마천의<사기>에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또한 홍산문명 이후 하가점-하층문화(BC.2000~BC.1300)가 그 지역에 넓게 확산되는데 홍산문명은 하가점-하층문화로 이어졌고 하가점-하층문화는 고조선의 문화입니다.

 

홍산문명은 소하연문화를 거쳐 하가점-하층문화로 연결되는 것은 대륙학계에서 공식화 되었습니다.

 

더구나 소하연문화에 이어지는 하가점-하층문화 구체적으로 풍하문화에서는 고조선의 건국연대보다 조금 앞서는 BC.2400년경으로 보이는 청동기유적이 발굴되는데 출토된 유물을 보면 화살촉, 칼, 창도 발굴되어 BC.2333년에 고조선의 건국이 신빙성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이 요동, 요서일대에서 발굴된 청동기유물은 황하유역에서 발굴되는 청동유물보다 연대가 앞서며 대륙의 동부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문명의 의미 

홍산문명의 발견은 한국과 대륙의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파장이 큽니다.

 

대륙의 학자들은 지금까지 대륙의 앙소와 대비되는 문화로 대문구와 용산으로 보았는데 홍산문명을 발견한 후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의 주인공으로 홍산문명을 듭니다.

 

다시 말하면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동이족이므로 한(韓)민족의 선조들이 화하족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하북, 산동의 동이족이 한민족의 선조였다는 근거가 됩니다.

 

또한 북신문화, 대문구-용산문화, 악석문화로 이어지는 [산동문화]와 흥륭와문화, 신락문화, 홍산문명, 하가점-하층문화로 이어지는 [요령문화]의 주인공이 한(韓)민족 입니다.

 

그래서 대륙학자들도 산동문화의 주인공인 동이족이 동북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느민족인지 밝히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륙학자의 일부가 개인적으로 고조선(古朝鮮-辰國)이 동이족의 중심지였다고 주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홍산문명은 고조선의 선조가 일으킨 문명이고 그 당시에 화하족은 하북성과 산동성을 넘지 못했으므로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동이족이라는 것을 대륙학계도 인정하고 있고 그 동이족이 고조선입니다.

 

현재 한국학계에서도 고조선의 중심을 평양에서 요서,요동의 요녕지역으로 보고 있으며 한(韓)민족의 기원도 요녕지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화하족문화에 중요한 획을 그었던 홍산문명의 주인공은 동이족이 됩니다.

 

이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고조선을 건국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