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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약이되는 생명말씀/도전말씀(天地)

대속하시어 목포 경찰서에 구속되심

by 바로요거 2007. 11. 6.
[11:49] 대속하시어 목포 경찰서에 구속되심
1 정사년에 경석이 유람을 떠난 후 대흥리 차경석의 교단에서 연이어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므로 관할 경찰서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감시하는데
2 무오년 동짓달에 제주 신도 문인택(文仁宅)이 성금 10만여 원을 면화 포대 속에 감추어 가지고 나오다가 목포항에서 발각되매
3 차윤칠을 비롯한 방주 18명이 체포되어 목포 경찰서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거늘
4 이 때 경석의 교단에서 이상호(李祥昊)가 사건 해결의 담당자로 나서서 모든 책임을 태모님께 떠넘기니라.
5 이에 25일 정오쯤에 순사들이 태모님을 체포하려고 조종리로 찾아와 사성에게 태모님 계신 곳을 물으니
6 응칠이 태모님께 달려와 이 사실을 아뢰며 걱정하여 말하기를 "반드시 화(禍)가 있을 듯하오니 잠깐 피하시옵소서." 하매
7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미 알고 있노라. 그러나 이번에 내가 순하게 받아야 뒷일이 없을지니 피하는 것이 불가하니라." 하시고
8 즉시 소멸음해부(消滅陰害符)에 해마주(解魔呪)를 적어 불사르신 다음 태연히 앉아 계시니라.
9 얼마 후 순사들이 응칠의 집으로 들어와 태모님의 행방을 찾으므로 태모님께서 순사들을 불러오게 하시어 몇 마디 말씀을 나누신 뒤에 응칠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되시니라.

'무오년 옥화' 이후

10 태모님께서 응칠과 함께 정읍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지내시고 이튿날 목포 경찰서에 이송되어 심문을 받으시되 별다른 증거가 없는지라
11 응칠은 섣달 12일에 석방되고, 태모님께서는 38일 만인 그 이듬해 기미(己未 : 道紀 49, 1919)년 정월 초사흗날에 석방되시니
12 세인들은 이를 일러 '무오년 옥화(獄禍)'라 하니라.
13 이로부터 태모님께서 농사에 마음을 두시고 몇 년 동안 한가로이 지내실 뿐이더라.
 

 
49:1 불미스런 일. 차경석 성도가 유람을 떠난 후 김형규가 멋대로 명령을 내리며 금전을 남용하여 문정삼과 간간이 충돌한 일 등을 말한다.

49:4 사건 해결의 담당자. 이상호의 사촌이 총독부 서기로 근무하고 있어서 보천교에서 일을 처리할 때 총독부와 관련된 일은 이상호가 전담하였다 한다.

49:8 소멸음해부를 불사르심. 일본 경찰은 면화포대 사건을 계기로 '차경석 교단'의 신도 대검거령을 내렸는데 태모님께서 소멸음해부를 불사르신 후 기미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경실색하여 이 사건을 더 확대하지 않고 흐지부지하게 취조를 한 뒤 5월 5일에 목포 일본 검사국에서 불기소로 석방하였다.

49:13 한가로이 지내실 뿐. 태모님께서 목포 경찰서에서 고초를 당하고 나오신 직후이고, 또 일제 강점기라 더 이상 도정을 집행하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