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우주법칙*생존법/태을주,수행,영성

단주丹珠(염주,묵주)의 뜻과 단주를 차고 다니는 이유!

by 바로요거 2007. 10. 17.

 

단주는 불가에서는 묵주 또는 염주라고 일컫는 것이기도 한데,

불가에서 묵주 또는 염주에도 기도문 또는 글을 새겨넣기도 하는데,

구슬에 글을 새겨넣거나 또는 특별한 수에 해당하는 글자를 새겨넣는 것은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었습니다.

 

 보통 손목에 차고 다니는 단주는 21개의 구슬로 되어 있습니다.

21수는 완성 거듭남 재생, 부활을 상징하는 수이기도 합니다.

21수의 기원은 태고적 수행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곰과 호랑이가 환웅으로부터 수행법을 전수 받고

동굴에서 3*7일(21일)간 수행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원래 보통 어떤 것에 대한 기도나 수행 또는 바램이 있으면

21일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 기도하고 수행하고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단주는 보통 21개의 구슬로 만둘어지죠.

그런데 꼭 21개만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21의 5배 수인 105수로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105 구슬 단는 길이가 길고 보통 목에 목걸이처럼 걸치고 다니거나

아니면 몸에 감고 다니거나 아니면 손목에 감고 다니기도 합니다.

105에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보통 100이라는 숫자는 꽉찬수 완성 완전함, 신성함,

하나의 주기가 완성됨을 뜻하는 수입니다.

이러한 100수는 인간의 행동과 사고, 습관을 정착시키는 기간을

뜻하는 시간의 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증산도 신앙인들은 보통은 간편하고 또 보기 좋게 21 구슬 단주를 많이 애용하죠.

 

 단주는 붉을 단 구슬주 해서 붉은 구슬이라는 뜻인데,

재질은 보통 참나무를 깎아서 만들고,

최근에는 옥을 깎아 만든 옥주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단주의 용도는 숫자를 세는 계수의 역할과 함께,

단주에 새겨진 태을주 자체가 하나의 기도문

또는 사마가 범접치 못하는 기운을 항상 발산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예상밖에 낭패를 당하는 것으로 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태을주는 천지기도문이고 모든 주문의 완성이자 궁극의 기도문이 태을주이고,

인류가 오랜 수행과 기도 고민과 방황 그리고 구도의 결과로서

얻어낸 것이 태을주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문헌상으로 등장하는 태을주를 완성하기 까지는 대략 3천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태을주는 태을신(太乙神) 만물의 근원이 되는 존재,

도의 근원자리에 계신 존재로서 모든 신성과 부처와 보살

그리고 신선이 반드시 뵙게 되는 분입니다.

말하자면 태을신 곧 태을천의 상원군님을 뵙는 다는 것은

곧 너는 우주가 인증하는 사람이다라는 뜻입니다.

 

 단주에는 이러한 태을주가 새겨져 있는데,

태을주는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 도래 훔리함리 사파하"라는

23구절이 21개의 구슬에 나뉘어져 새겨져 있습니다.

 

 혹시 『물, 치료의 핵심』이라는 책과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시리즈를 보았다면 아시겠지만,

만물에는 소리 또는 글 또는 정신의 작용이 사물에 미치는 반응 또는 그에 반응하여 영향을 미치는 현상들을 보거나 아니면 느끼는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물을 세분해서 들어가 원자의 단위까지 나아가게 되면,

가장 세밀한 단위 곧 쿼크와 렙톤으로 까지 들어가게 되는데,

이러한 쿼크와 렙톤의 입자는 파동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곧 몸뚱이가 그냥 붙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많은 몸에 10조개의 세포들이,

또 더 작은 쿼크의 단위로 들어가면 수 경 또는 수 해에 이르는

쿼크의 입자들이 운동하고 있는 파동의 연속체라는 것이죠.

 

 그래서 소리라는 것은 인간에게 또 인간을 둘러싼 환경

곧 돌이나 쇠, 나무, 불이나 물, 그리고 흙 등의 사물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소리를 전달하는 파동의 움직임이 달라짐에 따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은

글을 통해서 글을 보면서 생각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정보를 가지게 되었잖습니까?

 

 그 처럼 단순히 소리의 파장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만물에 새겨진 또는 종이에 쓰여진 글을 통해서도 사물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다만 그것이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눈에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서서히 그 사람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죠.

 

 

 교회를 다니든 절을 다니든, 모스크를 다니든, 성당을 다니든,

도교나 힌두 사원을 다니든 단주를 차고 다니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상당히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겪게 될 겁니다. ^-^

 

 태을주는 우주 율려인데,

율려라는 것은 태극의 물결 또는 파동의 움직임을 말합니다.

태초로 부터 만물이 형성될때의 본래의 파동이 바로 율려인데,

그 인류는 오랜 수행과 고민 방황 그리고 구도의 과정 끝에

우주의 율려를 인간의 소리로 표현하는 방법을 신교 또는 계시로 받아내렸습니다. 

곧 혼란과 불안 그리고 마성이 깃들거나 사마가 정신을 어지럽히거나

또는 사건이나 사고를 당하여 마음이 놀라거나

가정이나 사회 국가의 불화로 마음이 언잖거나 분노하거나 증오하는 마음을

가라앉혀 줍니다.

이것이 율려의 힘입니다.

 

 율려는 모든 것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하는 힘입니다.

우주가 또 생명이 영원히 생성하고 소멸되는 과정을 반복해 나가는 것은

바로 우주가 율려 곧 한번은 율(올라가고) 한번은 려(내려가는) 파동의 과정

또는 율려의 주기를 작게는 쿼크의 단위로 부터

크게는 은하 또는 전 우주에 미치기 때문에

영원히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여 지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앞서 사물의 가장 작은 입자 곧 퀘크와 렙톤에 대해서 말했는데

태을주를 새긴 단주에는 태을주의 파동 곧 태을주를 새긴 형상이 운동합니다.

이로서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내죠. 

곧 태을주는 마음을 안정시켜 사람을 편안하게 하며, 

성령을 접하게 하고 신도(神道)를 통하게 합니다.

태을주를 제대로 많이 읽게 되면, 만물에 깃든 신성을 보게 됩니다.

 

 만화나 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면들이 현실로 다가오는 경우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길을 가다 거리에 침을 뱉었는데,

나무가 "야! 너 왜 거기 침뱉어~! 더럽잖아!"하고

소리치는 것을 듣는다면 어떻겠습니까? 황당하겠죠? 또는 굉장히 미안하겠죠?

 

 또 내가 앉아 있는 의자가 "아! 힘들어! 살좀 빼주라~!" 하고,

화장실의 소변기에 소변을 잘못 누어서 밖으로 튀면

이렇게 말하는 걸 듣게 될 겁니다.

"남자가 흘려야 할것은 눈물만이 아녀~!"

 

 그런 조화의 세계, 지금 세상 사람들은 까막눈이 되어서

잃어버린 신령한 대자연의 조화의 세계가 있습니다.

태을주를 읽으면 바로 그 세계를 찾게 됩니다.

태을주를 읽으면 읽을 수록 인간의 본성,

인간의 본래 마음 자리를 찾게 됩니다. 

단주를 차고 다닌다는 것은 그러한 가능성을 지닌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주에 새겨진 태을주를 마음으로 차고 다니고 또 입에 물고 다니면 더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