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우주법칙*생존법/태을주,수행,영성

기(氣)와 마음

by 바로요거 2007. 10. 17.

 

(氣)와 마음

 

기는 마음의 에너지를 표현한 단어일 뿐이다.
마음의 움직임을 에너지 화 하여 활용하는 것이 기공이다.
마음의 크기는 무한하며, 모든 우주의 에너지를 다 담고 있기에, 氣에너지는 무한하다.
누구나 그 에너지를 활용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기공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으례 그렇듯이 죽고 싶어하지 않으며,
또한 오래살기를 원한다. 그러기에 중국의 진시황제(秦始皇帝)는 죽지 않기위해 그에 상응하는
불로초를 구하는 등의 노력들을 해왔다.


그 노력의 또 하나의 결과로 만들어 지게 된 것이 우주(宇宙)의 진기(眞氣)를 모아 체내(體內)에 축적(蓄積)하여 내 몸을 우주(宇宙)의 일부분으로 만들고 나아가 신선(神仙)이 되어 살아 있는 몸으로
우화등선(羽化登仙)하기를 꿈꾸는 도가 학파인 것이다.


무협지 같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화산파(華山派), 용문파(龍門派), 청성파(淸聖派) 등의 유파는 기운(氣運)을 통하여 무병장수(無病長壽)하며 결국 우화등선(羽化登仙)을 꿈꾸며 그 명맥을 유지시켜 왔으며 지금도 그 기(氣)라는 단어가 중국, 한국과 일본에서 보편적으로 쓰여지고 있으며  우리들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또한 ‘기’(氣)와 관련이 있는 문헌 가운데, 도가의 기본 맥이 되는 노자의 도덕경은 현대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경전이다.

그렇다면 ‘기’(氣)라는 단어에 대해서 알아보자.

 옛부터 기는 우리생활문화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조선조에만 하더라도 기(氣)에 대한 학문이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되었으며, 과거시험에서도 필수과목으로 정해져 모든 학인(學人:유생)들이 이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때 성행했던 주자(朱子)학도 기(氣)에 대한 주자(朱子)의 이론을 펼친것이며, 복희(伏羲)씨의 주역(周易)도 역시 기(氣)에 대한 학문이었다.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기’(氣)라는 단어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함께해 왔다.
이를 테면 기후(氣候), 분위기, 전기(電氣), 한기(寒氣), 열기(熱氣), 건기(乾氣), 습기(濕氣), 감기,
기압(氣壓), 그리고 몸이 좋지 않을 때기가 허(虛)하다는 말등은 우리생활 자체가 ‘기’(氣)속에서
이루어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들로 어느새 우리생활 깊숙이 뿌리내려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氣)라는 단어는 그 변화가 일반적으로 둘로 나뉘어져 표현된다.
차가운 기운과 뜨거운 기운, 건조한 기운 습한 기운, 좋은 분위기 나쁜 분위기, 맑은 기운과 탁한기운 등 이런 기운의 변화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나뉘는 것이며, 사람들의 사는 방식에 따라 그 느낌도 달라진다.

 차거운 기운이 많을 때 뜨거운 기운을 원하고 , 건기(乾氣)일 때 습기(濕氣)를 원하듯이 개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기운 뿐만이 아니고 전반적인 인간의 사고도 상대되는 두 갈래,
즉 음(陰)과 양(陽)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좋고 나쁘다는 생각도 두 갈래요 맑고 흐림, 밝고 어두움, 짧고 김, 앞과 뒤,
또한 여자와 남자도 두 갈래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래는 그 근원(根源)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즉 자신의 마음이 그 근원이 되는 것이다.
마음은 이 우주(宇宙)의 근원이며, 이 세상 만물이 모두 이곳에서 그 출발점을 이루어 변모되어 지금의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의 물질문명(物質文明)은 인간 개개인의 필요나 편의에 의해 창조(創造), 발전(發展) 되었고, 지금은 컴퓨터나 자동차 등이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나, 그 이전에 전기, 전자 등의 발명이 없었다면 지금의 물질문명 또한 이뤄지기 힘들었던 것 처럼
그렇게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보면, 무(無)에서 유(有)로 창조되어 왔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無)는 유(有)의 창조주로서 사실 무(無)라고 일컫는 마음에 모든 것의 근원(根源)이 숨어 있다.


 이 마음 이라는 것의 실체는 모든 우주를 포함 하고 있으며, 모든 생물과 무생물의 근원점이 되기에


그 근본을 찾기는 위한 노력들이 행하여졌다.
그리하여 고래(古來)로부터 자신의 본래의 진면목(眞面目)인 불성 즉, 무한한 능력의 장(藏)인 자신의 마음을 찾으려는 노력이 행해져 왔고, 그로부터 종교(宗敎)와 철학(哲學)과 심리학(心理學) 등의 자신의 내면(內面) 세계로 들어가려는 노력과 함께 중국과 한국 등 동양(東洋)에서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근원적(根源的)인 작용력(作用力)과 힘 등을 ‘기’(氣)라는 단어를 빌어 표현하고 그 일련의 현상들을
연구 발전시켜 왔다.


그것들이 중국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도가(道家)의 학파(學派)를 이뤘고, 한국과 일본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들은 비단 동양에서만 행하여졌던 것은 아니다.
서구에서도 신비학(神秘學)이란 이름 하에 수 천년 전부터 계승, 발전 시켜 왔으며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현재에도 수련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각나라의 언어의 차이로 인하여 그 표현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나 전세계적으로 이러한 노력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행하여지고 있다.
이러한 마음에 항상 따르는 것이 기운(氣運)으로, 기운(氣運)은 일종의 마음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다시말해 마음은 만물(萬物)의 근원이며, 기운(氣運)의 근원이다. 그러기에 마음을 잘 다루는 사람은 기운을 잘 다룰수 있는 사람이고, 나아가 자신의 건강(健康)과 운명(運命) 까지도 잘 다스릴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기운은 중용(中庸)의 덕(德)을 중히 여긴다.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 쉽고 너무 부드러우면 힘을 쓰지
못한다. 거문고 줄을 너무 당기면 줄이 끊어지고, 너무 풀면 소리가 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기운(氣運)의 근원(根源)이 마음이니 만큼 마음을 씀에 치우침이 없이 중용(中庸)을 지키는 것이 모든 일을 쉽게 푸는 관건이 되는 것이다. 유교(儒敎)의 덕목(德目)인 오상(五常)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며 선인들은 이 오상(五常)을 중히 여기며 살아왔다. 이것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근본이념과 결부되고, 모든 중생을 한 명도 남김없이 교화(敎化)하여 고통의 바다인 인간 세상과

육도중생(六道衆生)을 해탈(解脫)에 들게하여 영원한 열반(涅槃)의 언덕에 이르게 하겠다는
부처님과 보살의 서원의 이념과도 상응한다.
여기서 이야기한 부처라는 것은 일정한 능력을 갖춘, 어떠한 틀에 한정지어지는 인물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가 본래부터 갖고있는 마음의 그 근본(根本)된 자리인 것이다.
이 근본(根本)으로 돌아가 그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다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으며, 이 마음이라는 본래의 부처는 모든 만물(萬物)의 모체(母體)이며 근원(根源)이며 근본(根本)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 나(我)라고 하는 틀(相)에 갇혀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전지전능(全知全能)한 부처라는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한낱 인간의 존재로, 듣고 배우고 익힌 지식으로만 한정되어진 물질문명(物質文明)의 그늘 속에서 초라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我)라는 틀을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육도를 벗어나 해탈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 불도(佛道)에 전념하는 것이며, 이것을 대중에게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여기에 소개하는 불가기공(佛家氣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