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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 神敎文化

초대 교회 신자들의 작품 속에 나타난 하느님에 대한 표현들

by 바로요거 2007. 9. 10.

 

초대 신자들의 작품 속에 나타난

 

하느님에 대한 표현들

 

그리스도교 하느님을 표현하는데 있어 "텬쥬"라는 용어가 나타나는데 이는 天主의 옛 한글 표현이다.  이 표현은 이 벽이 지은 「천주공경가」(天主恭敬歌, 1779) 속에 5번 나타난다.18)  

이 작품 속에선 그리스도교 하느님에 대한 표현이 "텬쥬"로만 나타난다.  

이 '텬쥬'라는 용의의 한문 天主는  같은 저자가 지은 「성교요지」(聖敎要旨)엔 한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聖敎要旨의 옛 한글역 「셩교요지」엔 神을 '텬쥬'라 풀어 써서 해석하고 있다.19)  

1779년 혹은 1785년 경에20) 지어진 한국 최초의 호교론 이 '성교요지'에서 저자 이벽은 天主라는 용어는 한번도 쓰지 않고 있고, 그리스도교 하느님을 지칭하는데 上帝, 上主 혹은 神 이라는 개념을 사

용하고 있다. 上帝'라는 용어는 제 1절과 마지막 절의 註記에 즉 두번 나온다 :

'未生民未前有上帝' (제 1절) (아직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상제가 계셨으니).  

'始盡心以昭事上帝哉' (그러므로 정성을 다하여 상제를 섬긴다면 비로소 도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 벽은 이렇게 유교의 최고신 절대론적 개념인 上帝라는 용어를 빌어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하느님 공경의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를 알 수 있다.  

이 벽은 또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표현하는데 上主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천학초함에는 上主라는 말 대신 上帝, 天主 등으로 표현되었다) 그 자신이 쓴 주기에 주로 나타난다 :

「右節 記上主 造物之多 所以備人之用也 人柰何犯其禁令 而自取罪戾哉」(제 1절의 註記)

(윗 글은 上主께서 만물을 창조하심으로써 사람의 쓰임에 대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어찌하여 그 금령을 어기고 스스로 죄를 취한 것인가를 기록한 것이다).  

이 벽은 이 上主라는 용어를 성교요지에서 13번 사용하고 있는데, 1, 23,  31, 32, 33, 36, 39, 44절에서 각각 한번 42, 48절에서 각각 두번 사용하고 있다.  

上帝라는 용어는 「성교요지의 처음과 끝절(49)의 본문에 그리고 上主라는 용어는 모두 주기에 나온

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벽은 또한 神 이라는 용어를 한번 사용한다.  

이 용어는 대부분 철학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다른 단어와 합성어를 이루며 사용된다.  天神, 神主, 神靈, 鬼神, 地神, 聖神21) 등, 이 벽이 사용한 예는 '唯一眞神' 인데, 이는 하느님의 속성을 설명하는 철학적 용어로 보인다.  즉 그리스도교의 唯一神 사상의 표현이다.22)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이 벽이 왜 하느님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을 사용했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는 上帝, 上主, 神 이라는 용어는「천주공경가」에서는 한 마디도 안쓰고 있고, 다만 천주의 옛 한글체인 '텬쥬'라는 표현만이 나온다.  이 표현은 5번 사용된다.  그런데 '천주공경가'의 작사 이후 5년이 흐르면서 그리스도교 사상이 깊어진 1785년 무렵에 지어진 '성교요지'에는 天主라는 용어가 한번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이 벽이 의도적으로 유교의 神 개념을 빌어 그리스도교 하느님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추측으로는 성교요지의 문체가 시경(詩經) 등과 같은 古經 속에 나타나는 문체인 儷文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이 해석은 작품의

문체가 여문(麗文)의 흐름을 타고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천주로 표현하기 보다는, 중국 경서에 나오는 문체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上帝 혹은 上主의 표현으로 지칭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 해석도 '천주'라는 용어의 의도적인 기피현상을 어느 정도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당시에는 天主라는 용어는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을 지칭하는 용어였고, 늘, 天, 上帝 등의 표현은 한국인들에 의해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왔던 호칭들인 것이다.  그런데 하늘(天)이라는 개념 속에 한국인들은 하늘 그 자체를 숭배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하늘에 계신 분'을 지칭했고 그분을 "하느님"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上帝라는 용어는 또한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왕'으로서 우주를 다스리는 인격적인 神 개념이다.  

天主라는 단어는 마태오 리치와 유럽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한문으로 지은 교리서들에 나타나며, 그리스도교 하느님을 그렇게 지칭한 것이다.  이 天主라는 神 개념은 당시 주자학자들에 의해 대단히 비판받았던 개념이었다.  즉 天主는 서학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지녔던 신후담, 안정복, 이헌경 등에게는, 유교의 上帝와 동일시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신후담은 이 점에 대해 '천주실의'(天主實義)의 1편을 비판하면서 「서학변」(西學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른바 천주가 천지와 만물을 만들고 주재하며 평안히 길러낸다는 것이 이편의 요령이다.  그러나 그 말하는 것을 살펴보면 우리 유학의 上帝의 설에 근거한 것으로 참된 것에 의탁하여 거짓된 것으로 현혹시키는 계책을 삼았으니, 끝내는 그 사실을 감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程子는 '主帝하는 것은 宰라 한다'고 말하였으니 저들이 天主가 천지를 주재한다고 말한 것은 좋다...  그러나 나는 천지의 개벽이 사람이 사는 집을 만들어 내는 것과는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상제가 목수에 비교될 수는 없다...  이렇게 논한다면 하늘과 땅은 태극의 진 (眞)을 근본으로 하여 음(陰). 양(陽), 兩儀의 實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따름이다.  이른바 上帝가 천지를 이룬 후에 그 사이에서 主宰하는 것은 道와 器를 합쳐서 이름한 것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생명을 타고난 후에 바로 마음이 사람의 몸을 주재하나 사람의 몸을 만들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 즉 上帝가 비록 천지를 주재는 하되

 어째 천지를 만들어냈다는 이치가 있겠는가?  이것은 저들의 설의 잘못이다"23)  

 

유학자들의 이러한 견해는 이 벽의 시대만이 아니라 1839년 순교한 정하상의 시대까지로 지속되며 더 공격적이 된다.  그러나 이 벽에 의해 인식된 크리스찬적 하느님은 유교의 상제개념과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숭배해 온 '하늘'개념과 흡사한 점이 있다.  그것은 천지를 주재하는 최고신이라는 성격면에서 비슷하다.  이런 점에서 이 벽이 「성교요지에서는 당시 주자학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天主'라는 용어를 의식적으로 피했다고 보여진다.  그는 유교도들에게 하늘신의 친숙한 표현인 上帝, 上主라는 개념을 즐겨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벽은 上帝라는 이름하에 그리스도교의 창조주 하느님의 성격을 제시하고자 했다.  중국 경서에 나오는 上帝개념엔 우주를 다스리는 최고 신의 개념이 있지만, 우주를 창조한 신은 아니다.  바로 이 점이 이 벽이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한국에 소개하는데 당해야 했던 어려움이었다.  

천주라는 표현 속에 창조주 하느님의 의미를 잘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 벽은 오히려 상제라는 개념에 창조주 하느님의 성격을 보충하면서, 한국인들이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이 점은 이 벽이 1783년 겨울 이승훈을 북경에 보내면서 '하늘'과 '상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지칭하고 있음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 「자네가 북경에 가는 것은 참된 교리를 알라고 하늘이 우리에게 주시는 훌륭한 기횔세.  참 성인들의 교리와 만물의 창조주이신 上帝24)를 공경하는 참다운 방식은 서양인들에게서 가장 높은 지경에 이르렀네」.25)  여기서 이 벽이 말하고 있는  '하늘'의 의미는 한국의 전통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하느님'에 대한 것이다.  이 벽은 '하늘'에 대한 사상을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조화시키려 한 의도를 볼 수 있다.

이 벽은 이같이 유교의 하느님 上帝와 한국인들의 의식 구조상에 절대신의 위치를 차지하는 '하늘'신 (하느님)을 천주교의 하느님과 동일시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1779년 강학회 당시 정약전, 권상학, 이총억에 의해 지어진 「십계명가」(十誡命歌)에는 그리스도교 하느님을 표현하는데 '텬쥬'로 나타나고 있다.  총 61행 중에 이 단어는 13번이나 나온다.  이 시의 저자들도 텬쥬와 上帝를 동일시 하고 있다.  「음양태극 선비님네 상재상신 의론하뇨 마리닐러 닫라시대 이모두개 텬쥬시네」.26) 그리고 이 텬쥬는 上帝와 天主와 동일시 되면서 또한 "죠물쥬"27) 라고 표현된다. 텬쥬와 동일시된 상제는 유교에 있어서 창조주의 성격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上帝와 天主와의 동일시는 1791년 조상제사를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거부한 바 있던 윤지충 (바오로)의 옥중수기에도 나타난다.  윤지충은 天主와 上帝간에 아무런 차이점도 없이 오히려 꼭 같은 분으로 묘사하며, 천주를 아버지로 고백하며 그리스도교의 기본교리를 선포하고 있다.  

... 명례방골에 사는 중인 김범우의 집에 우연히 들렸더니 그 집에는 天主實義라는 책과 七克이라는 책 이렇게 두 권이 있었읍니다.  그 책을 대충 읽으니, 天主는 우리 공동의 아버지시요 하늘과 땅과 天神과 사람과 만물을 창조하신 분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중국에서 上帝라고 부르는 분이십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태어났는데, 비록 살과 피는 부모에게서 받으나, 사실인 즉 天主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육신과 결합하는데, 그것을 결합시키는 이도 天主이십니다.

  임금께 대한 충성의 근본도 天主의 명령이요, 부모께 효도의 근본도 역시 천주의 명령입니다.  이 모든 것을 중국의 경서에 실린 상제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라는 계율과 비교 해 본 결과 거기에는 같은 점이 많다고 믿게 되었습니다」.28)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그리스도교의 天主와 동일시된 유교의 上帝는 하늘과 땅의 창조주의 성격을 띠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음, 한국 최초의 한글로 쓰여진 교리서인 「쥬교요지」에 묘사된 천주의 상을 살펴보자.  이 작품들은 정약종 (아오스딩)에 의해 1786 - 1795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작품은 그 내용상 마태오 리치의 「天主實義」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며, 하느님 존재에 대한 스콜라 신학의 이론을 펼치고 있다.  이 작품에 나타난 하느님에 대한 표현은 "텬쥬"로 대부분 나타난다.  하지만 정약종은 '하늘' 자체와는 구분한다.  즉 "푸른 하늘"은 하느님이 아니며, '하늘의 님자'가 하느님이다.29)  정약종에게는 주자학자들이 우주의 두 생성원리로 생각하는 "음양태극"(陰陽太極)은 만물의 궁극적 원리가 될 수 없으며30) 옥황상제나 부처, 보살 등은 텬쥬의 창조물일 뿐이라고 한다.31)  그런데 上帝라는 말과 天主는 동격으로 불린다 : '텬쥬샹제'.32)

 

그후 30여년 후 조선 교우들이 북경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도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상제라고 부르고 있음을 본다.33)  그리고 정하상의 「上宰相書」 (1839)에도 우주만물의 주재자를 천주라고 하며, 유교의 上帝와 똑같은 분이라고 한다.알다시피 유학자들은 천주와 상제를 동일시하는데 항상 같은 견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하상과 초대신자들은 天主가 유교의 上帝 자신이라는 것을 설복시키려 함을 볼 수 있다.  정하상은 사람들이 上帝는 공경하면서 天主라는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정하상의 해석에 의하면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믿어 왔던 우리말의 '하느님'이란 글자를 한문으로 옮기면 天主라 쓰게 된다는 것이다.34)  이 「상재상서」의 우리말 번역본에도 天主를 '하느님'으로 옮겨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35)

 

위에서 살펴본 바처럼, 초대신자들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지칭하는데 여러가지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음을 본다.  그 표현들 중 유교의 上帝, 上主는 그리스도교의 천주 개념과 별 차이 없이 사용됐고, 가끔 하늘, 하느님이란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한국인의 전통적 '하늘신'에 대한 신앙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들의 공통점은 '하늘'에 대한 신앙심이 의식구조의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이 그리스도교 하느님 신앙의 한 토착화된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성서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개념도 그 주변 민족들이 공통적으로 호칭한 El사상을 기반으로 해서 형성되고 그것을 이스라엘의 유일신앙으로 토착화한 면을 생각할 때 동일한 현상이라고 본다.  

즉 극동에서의 '하늘'의 의미는 성서에 나타나는 El Elyôn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과 그 의미가 비슷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