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제정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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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재천 뚝방가에 핀 개나리. 2006년12월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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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제정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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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37도 34분에 위치한 서울 양재천의 강둑에 개나리가 노랗게 피었다. 강원 산간지방에는 폭설로 교통이 두절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오는 12월하고도 중순이 지난 이 겨울의 초입에 때 아니게 개나리가 피었다. 돌연변이처럼 어쩌다가 한두 송이 핀 정도가 아니고 제법 떼를 지어,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아 놓은 노란색 작은 색 전구 같이 알록달록 피어 뚝방 길을 수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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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12월16일 양재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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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제정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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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포근하였다고는 하나 아직 겨울임이 분명하고, 겨울도 기울어가는 겨울이 아니라 지금부터 '북풍한설' 본때를 보여주려는 시작하려는 겨울임이 확실한데, 4월에나 피어야 하는 저 것들이 어쩌자고 이 겨울에 꽃을 게워내는 것인지…. 천변으로 산책하는 사람들 이를 보고 신기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황당하고 염려스러워했다.
석유채굴이니 프레온가스니 밀림개발이니 하고 인간이란 것들이 별의별 방법으로 지구를 들볶아대니까 지구의 기후마저 온난화 현상이 가속되고, 그러자 저것들도 때를 망각하고 지금이 봄인 줄 알고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마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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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12월16일 양재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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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제정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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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모르고 껍죽대는 것은 개나리뿐만이 아닌 것 같다. 주중의 산에는 일터를 찾지 못한 젊은 백수의 축 늘어진 발걸음이 산야를 뒤덮고, 도심의 뒷골목에는 갈 곳이 없는 허리 구부정한 노인네의 무료급식 배식 줄이 기차 길보다도 길게 늘어져 있다.
선거가 일년이나 남은 벌써부터 다음 선거의 주자와 그 줄서기, 이합집산에만 전 신경을 쏟아부으며 설쳐대는 이 나라의 정치꾼들의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면 왜 개나리가 한겨울에 피자고 덤벼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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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속에서도 떨어질 줄 모르고 추레하게 달려있는 잎들. 2006년12월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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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제정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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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가도 떨어지지 않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나뭇잎. 때가 아닌데도 아무 때나 피려는 꽃들. 어느 유명인은 아직 나의 시절은 가지 않았다고 동네방네 찾아다니며 게거품을 뿜어대고, 어떤 머리 허연 재수생은 삼수는 기본이라고 문자를 읊어대는, 때를 망각한 것이 횡행하는 시절에 개나리는 피어 그들을 동무 삼으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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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온 날의 양재천 개나리 (2006년12월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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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눈이 내렸다. 이 겨울 들어 서울 지방에 내린 제대로 된 첫 눈이자 12월에 내린 눈으로는 20년만의 대설이라 한다. 눈 내려 사람마다 감흥이 다르겠지만, 내리는 눈을 보자 양재천 뚝방의 개나리가 생각이나 날이 밝자마자 그곳으로 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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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춥다 추워 (2006년12월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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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제정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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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그곳에 있었다. 눈을 맞으며 눈을 둘러쓰고 눈 속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이제 겨울이 오는 것이다. 가을이 가도 떨어지지 않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나뭇잎. 때가 아닌데도 아무 때나 피려는 꽃들. 그것들은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세상이란 나설 때 나서고 떨어질 때 떨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람살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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