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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고구려 코드…2000년의 비밀]<5>신라금관의 비췻빛 曲玉"

by 바로요거 2007. 8. 20.
"[고구려 코드…2000년의 비밀]<5>신라금관의 비췻빛 曲玉"

[동아일보]

《신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독특한 금관일 것이다. 찬란한 순금 금관에 수없이 매달린 조그만 원형의 금판 구슬들은 미동에도 반짝이고 함께 매달린 비취색 곡옥(曲玉)들은 신비감을 더한다. 이 신비한 신라 금관은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고고학자들은 대체로 좌우 대칭의 ‘출(出)’자형의 것은 나무로, 가지가 엇갈려 나는 모양의 것은 사슴의 뿔로 인식해 그 형태적 기원을 시베리아에서 찾는다. 그러나 미술사학자인 내 눈에는 두 형태 모두 나무의 변형으로 보인다. 두 형태가 나무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모든 크고 작은 가지 맨 위 끝을 연꽃 봉오리 형태로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라 금관의 비밀이 숨겨진 곡옥

금관의 비밀은 바로 곡옥에 있다. 구부러진 옥이란 뜻의 곡옥은 그 형태를 보고 일본인들이 붙인 것이다. 우리 학계에서는 이 곡옥의 기원도 시베리아에서 찾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동물의 태아를 연상케 한다 하여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영롱한 비취 곡옥은 주로 백제 신라 가야 등 한반도 남쪽과 일본에서 대량으로 제작됐다. 그러나 곡옥은 신석기시대에도 만들어졌다. 고고학자들은 시대적 차이 때문에 이를 직접 연결시키는 것을 꺼린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삼국시대 곡옥의 원초적 형태로 보고 싶다.

신석기 곡옥의 형태는 물고기 모양을 띠는 것도 있어 삼국시대 곡옥의 형태적 상징적 기원을 시베리아가 아닌 우리나라 안에서도 찾을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로는 곡옥이 신라에 가장 많으며 특히 금관에 집중적으로 장식되고 있다. 고구려에서는 아직 확인된 바 없지만 삼국이 공유하는 바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 발견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황남 큰 무덤 북분 왕비의 금관에는 무려 80여 개의 비취 곡옥이 달려 있다. 남분 왕의 것은 금동관인데다 곡옥도 16개에 불과하다. 왕비의 금관이 더 화려한 것은 그 당시 여사제장(女司祭長)의 위상이 매우 높았음을 의미한다. 금관무덤이나 천마무덤 출토 금관에도 60개에 가까운 곡옥이 달려 있다. 그러면 왜 금관에 이토록 많은 곡옥을 장식하였을까. 왕관에서뿐만 아니라 목걸이의 중심부에 곡옥을 두며, 또 곡옥 머리에 정교한 금세공을 한 모자 같은 것을 씌우기도 한다. 마치 곡옥이 금관을 쓰고 있는 형상이다. 이렇게 보면 곡옥이 매우 존귀한 존재임이 분명한데 그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곡옥은 용의 원초적 모습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기(靈氣)무늬를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이 꼭 던지는 질문이 곡옥도 영기의 싹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끝이 둥글게 꼬부라진 영기의 싹을 삼차원으로 만들면 곡옥의 형태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심증은 가나 확증할 수 없다고 대답하곤 했다.

특히 나의 눈을 붙잡은 것은 모자곡옥(母子曲玉)이다. 큰 곡옥에 작은 곡옥이 등이나 옆이나 배에 붙어 있는 형태의 곡옥이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고 다섯 개 혹은 열한 개 등 여러 개가 붙어 있다. 이 모자곡옥을 보았을 때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기무늬의 결합상을 떠올렸다. 모자곡옥의 형태의 기원을 고구려 고분벽화의 무늬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삼실무덤, 안성동 큰무덤, 매산리 사신무덤 등에는 하나의 영기의 싹에서 또 하나의 작은 영기의 싹이 등에 업혀 탄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기무늬의 속성은 큰 영기무늬에서 계속 작은 영기무늬가 탄생하는 복잡한 과정을 보여 준다.

그런데 모자곡옥 가운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중 그 몸체에 수많은 둥근 홈이 패어 있는 것이 있다. 이 반점 같은 구멍들은 무엇일까. 중국 명(明)대 문헌인 ‘광아(廣雅)’를 보면 용의 비늘 수가 한자리 숫자 중 가장 큰 양수인 9가 두 번 곱해져 81개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두 해 전에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용(龍) 무늬’ 전시를 기획한 장용준 군이 그 곡옥의 반점을 세어 보니 정확히 81개였다. 결국 이 곡옥은 용의 상징물인 셈이다. 나는 이 사실에 매우 고무됐다. 생명의 싹, 즉 영기의 싹을 삼차원으로 나타내면 곡옥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데 이어 그것이 영기의 또 다른 표현물인 용일 가능성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갔기 때문이다.

○랴오시 훙산문화 유적에서 발견한 옥룡(玉龍)

지난달 중국의 고구려 땅을 밟았다. 고구려 산성을 오르고, 광개토대왕비를 쓰다듬고, 백두산 천지의 영기를 느끼고 돌아오는 길에 랴오시(遼西)지방에 있었던 기원전 8000∼7000년 신석기 유적인 훙산(紅山)문화의 보고서를 접하게 됐다. 귀국길의 선양(瀋陽) 공항에서였다. 그때 우리 곡옥의 형태에 가장 가까운 곡옥을 처음으로 보게 됐는데 보고서는 이를 옥룡(玉龍)으로 불렀다. 실제 그 형태는 우리나라에서처럼 물고기 형태를 띠다가 마침내 구상적인 용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물론 훙산문화와 삼국시대는 그 시간적 차이가 엄청나다. 그러나 모든 조형은 보편성을 띠는 경우 시공간을 초월해 표현될 수 있다. 더구나 훙산문화는 중국인들이 동이(東夷)라고 불렀던 우리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문화의 신석기 유적이다. 앞으로 연구가 더 필요하겠지만 신라 백제 가야 일본 등지의 곡옥의 원류가 훙산문화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훙산문화 유적이 발견되자 중국은 경악했다. 그들의 신석기시대보다 더 빠르고 중국의 유물과 전혀 다른 것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한반도 신석기문화를 대표하는 빗살무늬 토기도 대량 출토됐다. 중원지방에서는 곡옥과 빗살무늬 토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자 중국은 역사적으로 차별해 왔던 동이문화를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동북공정도 그런 문명사적 침략의 일환일 뿐이다.

자, 이제 곡옥이 영기의 싹, 더 나아가 용의 원초적 형태일 가능성이 좀 더 커졌다. 이에 따라 신라의 금관에 그렇게 많은 곡옥이 장식된 까닭도 자연스럽게 풀린다. 금관에 곡옥을 장식한 것은 영기의 싹, 더 나아가 그것이 형상화된 용의 원초적 모양을 만들어 장식함으로써 왕과 왕비가 발산하는 영기를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곡옥이 아니고 옥룡이라 해도 좋지 않을까. 수십 년 동안 관심을 가지고 살폈던 곡옥의 신비를 풀어 줄 자료가 하나 둘 나오면서 나의 심증은 더욱 굳어지고 있다.

강우방 이화여대 초빙교수

 

[ 기사제공 ]  동아일보  |   동아일보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