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주의로 달리는 중국] ① 고대사 확장 프로젝트 '探源工程' |
大中華 야심… 신화·전설 꿰맞춰 '1만년 歷史 만들기' 고구려史 왜곡은 큰 밑그림의 일부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외교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은 오는 24일 수교 12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동북공정’은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거대한 ‘중화문명사의 복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서 일어난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입장에서 중국사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한편으로, 여태까지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간주돼 왔던 하(夏)나라와 3황(三皇) 5제(五帝)까지도 역사로 편입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전설상의 요(堯)나 순(舜)임금도 중국은 ‘실존인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사와 ‘중화문명’의 시작은 무려 1만년 전으로 끌어올려질 수도 있다. 중국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확장하는 작업이 국가 주도로 펼쳐지면서 이집트보다도 오래된 ‘세계최고 문명’이라고 강변하는 ‘역사적 패권주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 신화 전공자로 최근 ‘중국 신화 이야기’를 출간한 김선자(金善子) 박사(연세대 강사)는 “중국이 작년 6월부터 추진하고 있는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은 ‘신화’를 ‘역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작업으로, ‘동북공정’보다 훨씬 거대하고 근본적인 역사왜곡”이라고 말한다. ‘중화문명의 시원(始源)을 캐는 프로젝트’라는 뜻인 ‘중화문명탐원공정’은 현재 예비연구가 진행 중이며, 산시(山西)성 린펀(臨汾)시, 샹펀(襄汾)현과 허난(河南)성 신미(新密)·덩펑(登封)시 등에서 중점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곳은 한족(漢族)의 조상인 ‘화하족(華夏族)’이 활동했던 중심 지역이다. 중국사회과학원 원보 인터넷판(cass.net.cn)은 작년 6월 30일자에서 이 ‘공정’의 과제로 ▲고문헌의 요(堯)·순(舜)·우(禹) 관련 자료의 수집과 연구성과 정리 ▲중국 천문학의 기원 연구 ▲예제(禮制)의 기원과 연구성과 정리 ▲초기 야금기술·문자 자료 수집과 정리 ▲문명 기원에 대한 이론과 방법 정립 등이라고 밝혀 놓았다. 구체적인 발굴이 이뤄지기 전에 중국 문명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뛰어난 문명이었음을 입증한다는 목표를 미리 정해 놓은 것이다. “지난 6월 샹펀현 타오쓰샹(陶寺鄕)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4100년 전의 천문대가 발견됐다”는 보도도 바로 이 ‘공정’의 일환이었다. ‘공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오쓰샹이 요임금의 도읍지였다고 전해지는 것과 결부시켜 이 ‘천문대 유적’이 요순시대의 흔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02년 후난(湖南)성 융저우(永州)시 닝위안(寧遠)현에서 발견됐다는 1만년 전 대형 무덤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순임금이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3황5제’ 시대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요순뿐이 아니다. 김선자 박사는 “최근 중국에서 10권으로 완간된 ‘염황자료집(炎黃資料集)’은 요순보다 앞서 중국을 다스렸다는 염제(炎帝)와 황제(黃帝)를 역사화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염제 신농씨는 2000여년 전 ‘사기(史記)’를 저술했던 사마천(司馬遷)조차 정식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3황’ 중의 한 명이다. 최근 중국 학계에서 “고구려 왕실인 고(高)씨가 5제 중의 한 명인 전욱 고양씨(高陽氏)”라며 고구려 족속이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조법종(趙法鍾) 우석대 교수(한국고대사)는 “이른바 ‘중화문명’의 유구함을 강조한 뒤 주변 국가들을 그 아류로 만들어 중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모두 집어넣으려는 대(大)중화주의 프로젝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화문명탐원공정’은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이 ‘공정’은 지난 1996년 시작돼 2000년 끝난 ‘하·상·주(夏商周) 단대공정(斷代工程)’을 계승한 것이다. 최근 연세대에서 ‘중국신화의 역사화 연구’라는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이유진(李有鎭) 박사는 “이 공정에 의해 하는 기원전 2070년, 상(商=은·殷)은 기원전 1600년 무렵, 주(周)는 기원전 1046년 건국된 것으로 연대가 확정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중국사에서 연대가 검증된 가장 빠른 시기는 서주(西周) 공화(共和) 원년인 기원전 841년이었다. 결국 중국의 ‘역사 시대’는 이 ‘공정’을 통해 무려 1129년이 늘어나게 됐다. 이 박사는 “순수한 학술적 입장이 아니라, 의도를 설정하고 자료들을 꿰어맞춘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동북쪽 고조선·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중국사로 만들려는 ‘동북공정’은 그 다음의 수순이었다. 이춘식(李春植) 고려대 명예교수(중국고대사)는 “이 ‘공정’들은 역사학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민족주의를 고취하려는 정치·군사적인 행동으로 봐야 한다”며 “군국주의 시대 일본의 ‘일왕 만세일계’ 등의 조작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중국 내부의 갈등과 불만을 해소하고 상호 결집을 노리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고대사 복원’ 작업 모두를 왜곡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시각도 있다. 이형구(李亨求) 선문대 교수(고고학)는 “하·상·주 단대공정’의 경우 탄탄한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무시해선 안 된다”며 “오히려 홍산(紅山) 문화 유적 등 한국사의 기원으로 봐야 할 만주 지역의 많은 유적들을 우리 스스로 도외시함으로써 고대사의 많은 부분들을 잃어버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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