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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담론*행복론/상생해원*한풀이

천륜을 해한 기록의 시초와 원한의 시초

by 바로요거 2006. 11. 13.

천륜을 해한 기록의 시초


1 무릇 머리를 들면 조리(條理)가 펴짐과 같이 천륜을 해(害)한 기록의 시초이자 원의 역사의 처음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깊은 원을 풀면 (도전4:17:1)


왜곡의 역사는 유교에서 도덕정치로 모델로 표방하는 요순시대로부터 시작합니다. 요순선양설을 만들어 내어 이 시대 역사를 조작하면서 동북아 역사가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우임금이 자신의 종통을 주장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합니다.


다음은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역사 왜곡의 핵심입니다.


대동세계를 만들고자 한 단주의 진실 왜곡사

5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堯)의 아들 단주가 불초(不肖)하였다.’는 말이 반만년이나 전해 내려오니 만고의 원한 가운데 단주의 원한이 가장 크니라.

6 정말로 단주가 불초하였다면 조정의 신하들이 단주를 계명(啓明)하다고 천거하였겠느냐.

7 만족(蠻族)과 이족(夷族)의 오랑캐 칭호를 폐하자는 주장이 어찌 말이 많고 남과 다투기를 좋아하는 것이겠느냐?

8 온 천하를 대동세계(大同世界)로 만들자는 주장이 곧 ‘시끄럽고 싸우기 좋아한다.’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9 한 성도가 상제님께 여쭈기를 “우(禹)가 단주의 허물을 들어 말하기를 ‘밤낮 쉬지 않고 강마다 배를 띄우고, 벗들과 떼를 지어 집 안에서 마시며 세상을 없애려 하였다.’ 하였습니다.” 하니

10 말씀하시기를 “단주가 밤낮없이 쉬지 않았다는 것은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하며 부지런하였다는 것이요

11 강마다 배를 띄웠다는 것은 대동세계를 만들자는 것이며

12 벗들과 떼지어 집 안에서 마셨다 함은 사람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하였다는 말이요

13 세상을 없애려 하였다는 것은 서로 주장하는 도(道)가 같지 아니하였다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도전4:30:5~13)


요순 선양(禪讓)을 논한 최고(最古)의 문헌은 [상서(尙書)]입니다. 이후 맹자나 사마천 등이 이를 근거로 요순 선양설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순자(荀子)는 [정론(正論)]편에서 ‘세속에서 만들어낸 말’이라 비판하였고, 한비자(韓非子) 역시 요순 선양 고사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였습니다. (도전4:17:3 측주)


尙書는 書經을 말합니다. 상서는 上古의 책으로 숭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二帝三王의 정권의 授受, 政敎 등의 기록으로, 고대의 史的 사실이나 사상을 아는 데 중요한 책입니다. 당시의 史官·史臣이 기록한 것을 공자가 편찬했다고 합니다.


결국 역사왜곡의 주체는 공자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공자의 또 다른 왜곡을 한번 볼까요?

오랑캐 夷자는 본래 큰활이라는 뜻입니다. 이를 공자가 오랑캐 夷자로 쓴 것입니다. 우리 한민족은 치우천황때부터 大弓을 만들고 이를 사냥, 전쟁의 무기로 삼았습니다. 대궁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민족을 夷라고 하였습니다. 즉 중국인이 '동방에 사는 大弓, 큰 활을 다루는 민족'이란 뜻으로 썼는데, 공자가 ?춘추?에서 戎狄과 동일한 명칭으로 사용한 이래 우리나라 사람도 이에 동화되어 한문 교과서에서까지 夷를 오랑캐라 부르고 있습니다. (9천년 역사의 뿌리를 찾아서 61p)


공자는 자신으로부터 3대에 걸쳐 出妻를 하게 됩니다. 제가를 전혀 하지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요순선양설의 또다른 주체, 맹자는 누구일까요?

상제님께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4 다시 큰 소리로 맹자를 부르시어 “맹자야 이 역적놈아!” 하고 꾸짖으시니라.

5 이에 한 성도가 여쭈기를 “맹자를 역적이라고 꾸짖으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6 말씀하시기를 “마음속에 임금과 신하의 의리가 있다면 임금을 임금 같지 않게 볼 수가 있겠느냐.

7 신하가 임금을 원수같이 보았으니 내쳐도 무방하니라.” 하시니라. (도전4:46:4~7)


왜 이렇게 심한 말씀으로 표현하셨을까?

맹자는 신하가 군주를 시해함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仁義를 해친 자는 賊殘한 一夫일 뿐으로, 이미 민심이 떠난 왕은 군주로 여길 수 없다.’ 하여 紂왕의 시해를 정당화 하였습니다.


君師父일체 문화를 표방한 유학에서 아무리 부모가 죄악을 저질렀어도 부모임에 틀림이 없을진데, 아무리 임금이 포악할지라도 군주임에 틀림이 없을진데, 맹자는 지금에 우리가 흔히 보는 부모를 해하는 패륜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뿌리부터 잘못된 유학이 인류의 뿌리역사를 왜곡하는데 큰 공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 상제님 말씀으로 대신합니다.


18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둑놈이 따로 없나니 글 배운 사람이 도둑놈이니라.

19 붓대 가진 놈이 앉아서 이리저리 다 만드니, 그들이 제일 큰 도둑놈이니라.” 하시니라. (도전6:16:18~19)


실제 중국의 유학은 동중서董仲舒(BC170?-BC120?)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중화주의를 연 장본인입니다. 그는 유교를 국교화하고 삼강오륜 체계를 확립합니다.

동시대 인물 사마천(BC159-BC87)은 사기를 통해 동방 뿌리역사를 왜곡(도전201p)합니다.

그들은 현재까지도 우리의 뿌리역사를 줄기차게 왜곡(동북공정)시키고 있습니다.


이 때 확립된 유학은 당나라 때 국학이 설립되면서 유교식 대학체제가 확립되고, 이 대학이 신라이후 우리나라 국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 영향을 받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필두로 유학자들에 의해 우리 스스로 역사가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이 썩디 썩은 쓰레기 역사를 대청소하는데 동참할 인재가 그리도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