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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천하대세 흐름 읽기/통찰력과 생존전략

인류의 시원

by 바로요거 2005. 8. 22.
하얀 산맥 아래 푸른 숲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알마티 상공에 찬란한 쌍무지개가 떴다. 저녁 7시30분에! 청주나 충주쯤에 온 것마냥 편안하고 쾌적한 이 도시의 이름 "알마티"의 뜻은 "사과의 아버지"란다. 생명의 근원, 아!나의 배낭여행이 드디더 본격화한다. 거리로 나선다. 중앙광장 독립기념탑 꼭대기에 날개 달린 표번을 탄 "고깔 쓴 황금전사"가 서있다. 부여(扶餘)의 근원인 흑해 근처 프리기야인의 바로 그 고깔이다."고깔 쓴 단군"의 기원이다. 깃털 달린 고갈 모자에 황금 갑옷을 입은 왕자 전사의 모습은 국립박물관 입구에도 우뚝 서 있었다. 흡사 신라와 고려의 복식이다.

   박물관에서는 낯익은 설화들을 만난다. "엄마사슴"신화로부터 부자 형인 카자흐와 가난한 동생인 키르기스 사이의 놀부 흥부의 근원 설화를, 몽골족과 독같은 "매사냥"의 민담을 확인한다. 그러나 참으로 깜짝 놀란 것은 그 다음 순간이다. 카자흐, 키르기스의 스텝 지역들과 터키 및 아제르바이잔, 그리고 파미르, 천산의 산악지역들은 물론이고, 알타이와 사얀산맥, 바이칼 지역에까지도 모두 통용되는 "탱그리"즉 주신(主神)의 단 하나의 이름! 그 이름이 "영원한 푸른 하늘"이었다는 점을 이곳에서 확인한다. 한단고기에 "옛 시베리아 허공에서 홀로 외치던 외로운 한님"바로 그분이었기 때문이다.
카자흐의 샤먼들이 한국의 무당처럼 "콩점"을 쳤다는 데에 이르러서는 이미 놀랄 것도, 고개극 갸웃할 것도 없었으니 당연한 신화적 연속성이다.
 카자흐 국립민속대학의 민속학연구소를 방문한 나는 카스카바소프소장과여러 전문가들로부터 궁금한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고(麻姑)는 과연 있었는가
-그렇다. 있었다.
-그러나 없었다.
   마고와 같은 모권사회, 모계사회는 분명히 있었으니 여성이 통치하고 종내는ㄴ 여성이 남성을 생산해서 종족의 시원을 이루는 선례는 너무나 허다하다. 4000~5000년전 "토미리스"라는 여신,"사키"종족의 모권적 여신이자 통치자였던 여성에 대한 숭배의 신화, "카라칼팍"족의 40명의 여신들의 신화 등이 그것이다.
 파미르의 마고신화는 바이칼, 캄차카,그리고 남방해양계 신화와 함께 우리에게 새로운 문화적 창의력을 촉발할 훌륭한 콘텐츠를 담고 있다. 특히 여성성의 가치와 생태학적 세계관에 관심을 가진 디지털 세대의 젊은이들에게그에 걸맞은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할 것이 틀림없다.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는 흰눈 덮인 티베트 고원과 고비사막 너머 타림분지를 지났다. 눈이 시리다. 천산, 곤륜으로 연속되는 험준한 백설의 산악과 무인지경의 검은 대지사이에 오후의 기이한 흰 그늘이 널리널리 퍼져나간다. 듣건대, 파미르 고원은 쉽게 볼 수가 없다고 한다. 늘 구름이 끼어 있거나,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사람을 밀어낸다고한다. 모든 거대한 강들의 첫 샘물은 흔히 제 자취를 감추는 법. 르네상스는 그래서 자주 도리어 문화혁명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마고"또는 "마구"는 "토미리스"나 고대 투르크의 여신 "우마이", 즉 땅을 관장하는 생명의여신 "우마이"일 것이다. 1만4000년의 시간 역시 신화의 시간으로 측정불가능한  "아주 먼 옛날:로서 선천과 후천의 결합의 상징일 것이다. 또한 "우마이"는 몽골북부 바이칼의 여성무당인 "어마이,오마이" "우다간"이니 우리말 "할미"가 아닐까?
 역시 모든 첫 샘물은 그 현장에서 자취를 감춘 채 아주 멀고 먼 땅에서 문득 솟아나는 법. 다만 현장에는 그것이 역사화된 형태로서만 남는 법이 아닐까? 백두산 천지에서 치렸던 신시와 같이 산 위의 호숫가에서 제사를 지낸 사실들은 너무나 많고 풍요하여 거의 상식 수준이며, 파미르로부터 마고 딸들의 자손인 황궁씨와 유인씨등이 바이칼로 이동한 자취라고 유추할 수 있는 문화의 소통과 문명의 공유는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사이에서 수없이 발견된다. 마고는 없으면서 분명히 있다. 이 기행은 파미르고원의 1만4000전년 마고성신화를 겨냥하면서, 그곳으로부터 동족으로 이동해온 우리민족의 최상고대 문화의원형을 찾아 역순으로 거슬러가낟. 고대 아시아 르네상스를 향해, 아마도 그 첫 번째 배낭여행이 될 것이다. 내 양어깨에는 인천을 더날 때부터 줄곧 검은색 배낭이 걸려 있고, 인천에 내릴 때, 벗을 것이다. 이 기행은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항상 말하지만, 붉은 도깨비로 해야 한다.편집자註)의 그 거대한 물결에 부딪쳐 소스라치듯 구상되었다. 브로 그들, 10대 20대 30대초중반 신세대의 아시아 르네상스를 향한 활기찬 배낭 여행을 촉발하는 곳에 이 기행의 또 하나의 목적이 있다. 아시아에 대한 전 세계의 눈길이 크게 달라지고 있으며, 동아시아 태평양 신문명 창조의 예감은 나날이 무르익어간다. (중략) 알마티 시내 고등학생들의 집단적 졸업 축제의 흥겨운 소란 속에서 나는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로 강제 이송당한뒤 80년의 고난속에서도 끝내 한글과 하닌족의 문화를 지켜온 고려일보를 방문하여 '새벽 흰그늘'이라는 제목의 이월 매화한점, 백설이 분분한 중에 홀로 피는 매화한가지를 선물로 놓고 돌아왔다. 쉽게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새벽 흰그늘!'아시아 르네상스의 또하나의 이름일 것이다.

 '마고 할미'신화 지리산 산신-중앙아시아에서 왔다는 설

   우리나라 민족 신화에는 단군신화만 있는게 아니다. 또다른 창세신화로 "마고할미 신화"가 있다. 지리산 반야봉은 높이 1751미터의 제2봉우리로, 지리산 산신인 천왕봉의 마고 할미와 결혼한 반야가 불도를 닦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 여러 큰 산에는 마고할미전설이 발견된다. 환웅과 단군이 남성성을 띤 천신이라면 마고 할미는 여성성을 띤 산신이라고 할 수 있다. 5세기 신라때 충신 박제상이 썼다고 알려진 '부도지'라는 책에도 마고 신화가 나온다.
 부도지의 마고는 중앙아시아에서 왔으며, 지구를 생명이 있는 별로 만들기 위해 궁희와 소희를 낳고 율(律)과 려(呂)를 맡아보게 한다. 그리고 이들의 각각 황궁,청궁,백소, 흑소의 네 천인과 천녀를 낳는다. 이들은 마고성 가운데 천부를 중심으로 율과 려,음과 향을 맡아서 만물이 자랄 수 있게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동서남북으로 흩어졌고, 이것이 인류의 시원이 됐다. 세계문명의 시원을 찾아나선 첫 번재 여행지로 김지하 시인은 마고할미가 살았다는 중앙아시아의 파미르고원을 선택했다. 우리문명의 첫 샘물을 그 원형으로 탐색하여 그 연결고리를 짐작하려는 시도다.

 

(3)산위에 물이 있음이여! /졸본아타(키르키스스탄)

     5월 28일 현지시각 오후 4시 정각. 해발 1609m의 산상호수 이시쿨(따뜻한 물)’의 물가의 호텔 ‘아브로라(오로라)’에 도착한다. 청청한 대낮 새파란 호수 너머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톈산산맥의 연봉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넓이는 가로 180㎞ 세로 60㎞다. 키르기스의 수도 비슈케크로부터 다섯 시간을 달려 올라온, 분명 허공에 뜬 장엄한 하나의 신기루다.여기가 어디인가?나에게, 우리에게 있어 이곳은 도무지 무엇인가?
   민족의 아득한 시원을 회복함으로써 전 인류문명사의 일대전환을 시도했던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崔水雲) 선생의 시 가운데 ‘산 위에 물이 있음이여(山上之有水兮)!’라는 구절이 있다.

   키르기스스탄으로 오기 전, 카자흐 국립 민속대학의 카스카바소프 박사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고구려의 후예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형제다. 옛‘키리카자흐’는‘고구려, 고려, 고리, 커리,카우리와 같은 혈통이다. 그러나 나는 그제 키르기스 국경을 넘어오면서 생각했다. ‘어디 키리카자흐뿐이겠는가. 키르기스의 ‘키르’ 역시 ‘커리’와 ‘고리’의 한 혈통일 것이다.

   지금 시각 오후 5시45분.  내가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호텔‘아브로라'가 있는 동네 이름이 다름아닌 ‘촐폰아타’이다.‘촐폰’은 '금성(金星)'이란 뜻이다. 유목민들이 산 위에서 저녁에 맨처음 발견하는 가장 밝은 별이니 신화에서는 유목민의 보호자다. 그래서 촐폰아타’는 ‘금성의 아버지, 금성의 고향’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촐폰’이란 말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그렇다.  고구려의 수도인 바로 그 ‘졸본(卒本)이다.  이시쿨 호수는 분명 고구려, 고려, 커리와 직결돼 있음을 알겠다.
  그렇다면 그 옛날 키르, 고리 등은 이 이시쿨 호숫가에서 무엇을 한 것일까?

‘촐폰아타’ 바로 가까이에‘카라콜(검은 계곡)’이란 곳이 있다. 3,000년이 넘은 옛 도시로서 소련 점령 전에는 샤먼들이 살았고, 옛 시장 바자르’도 있었던 활기찬 곳이었다고 한다.   이 사실이 과연 이시쿨 호숫가의 옛 신시와 아무 연관도 없는 것일까? 그제 국경을 넘어오면서 카자흐와는 달리 가난과 적막에 쌓인 키르기스의 거리거리를 썰렁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중 한 가게간판에 ‘한 탱크리’라고 러시아 글자로 쓰인 것을 일행의 도움으로 해독하였다.
‘탱크리’는 아시아 보편의 우주의 주신(主神)으로 우리말 ‘당골(또는 단군)’의 근원이다.
그리고 ‘한’은 역시 우리말의 ‘한울님’ 또는 ‘한님’이다. ‘낱(個)’이요, ‘온(全)’이며, ‘중간(中)’이자 ‘관계(間)’이니 개체와 전체와 그 관계를 두루 드러내는 한 민족사상의 알짬이다.전율이 오기 시작했다.
   어제 아침 나는 이곳 마나스 연구소의 무사예프 사마르 박사를 만남으로써 결정적 해답들을 거의 초과달성하였다. 문답은 대개 이렇다.

―이시쿨 호숫가에서 제사가 치러졌는가?

“그렇다. 이시쿨만 아니라 송쿨, 샤토르쿨 등 모든 산 위의 호수에서 치러졌다.”

―하필이면 왜 산 위의 호수에서였는가?

“유목민에게 절대 필수적인 물이 풍부하고, 아름답고, 신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호수의 필요성, 아름다움, 신성함은 어떻게 유지되고 지켜졌는가?

“오랜 옛날부터 산 위의 호수에서는 목욕, 수영, 오염이 금지되었다. 자연과 생명 전체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필요불가결한 것 이외에는 결코 여분을 취하지 못하도록 했고, 이 명제를 주문으로 해서 외워야 했다.”

―주문(呪文)은 원어로 무엇인가?

“게레이네 자라샤 포파이난 바이달란!”

―그 주문을 포함한 호숫가의 제사를 뭐라 불렀는가?

“‘스에노’다.”

―그 제사에서 공동체의 정치 문제도 협의되었는가? 되었다면 그 이름은?

“그렇다. 매우 민주적으로 협의되었다. 그 이름은 ‘갱애쉬’라고 불렀다.”

―그 제사 때에 교환시장 ‘바자르’도 열렸는가?

“당연하다. 그러나 제사와 뒤섞이지는 않았다. 바자르와는 또 다른 호혜(互惠), 선물(膳物), 자선(慈善), 증여(贈與)의 경제행위가 있었다.”

―그런 경제행위의 이름은 무엇이었는가?

“‘스이’라고 불렀다.”

―마나스 서사시에 나타난 키르기스 문화와 사상의 핵심을 무엇이라 보는가?

“인간과 자연 일체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생명사상과 자기종족의 생명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필요 이외에는 어떤 경우에도 전쟁을 회피하는 철저한 평화사상이다.”

―그것은 어디에 표현되어 있는가?

“마나스 서사시다.”

―그 생명과 평화 사상이 신화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가이베렌’이라는 여신(女神)이 자연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사냥꾼을 처벌하는 신화형식이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1만4000년 전 파미르 고원의 마고(麻姑) 신화를 어떻게 보는가?

“마고는 없다. 그러나 ‘우마이’라는 여신의 신화와 모권제, 모계 사회의 전통은 분명히 있었고, 마나스 서사시에서는 그 여신의 기능을 ‘간느게이’라는 여성이 대표한다.”

―마고라는 이름이 아예 있지도 않았단 말인가?

“‘마고 코곡크’라는 신화는 있다. 그러나 이 신(神)은 왼쪽 다리는 여자이고, 오른쪽 다리는 남자인 중성적이면서 단성(單性) 생식적인 신이다. 그러나 심판에서는 악한 역할을 맡는 부정적 여신이다.”

아항! 알 만하다.

   박제상의 부도지(符都誌)에 나타난 마고(麻姑)도 중천(中川) 또는 짐세(朕世)에 태어나 "선천(先天·남성)"과 "후천(後天·여성)"을 결합한 단성생식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첫 샘물이 흔히 자취를 감추듯 마고 역시 현장 부근에서는 지워지고 한반도의 끝 신라에서 홀연히 그 모습을 드러낸 사례다.  더욱이 생각컨대 8세기 이후 이슬람 도그마에 의하여 아주 인멸되거나 부정적으로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유교 도그마 밑에서 화랑이 활랭이로, 단군이 당골네로, 풍류가 노름으로 전락하듯이….
   어제 오후 일행은 톈산 밑 ‘알아르차’라는 서낭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거기 서낭나무에 한 조각 천을 묶으며 빌었다. 한국과 키르기스의 산상호수의 전통이 양국 젊은이들을 통해 거대한 아시아 르네상스의 태풍으로 부활하도록! 글쓰기를 마치니 5월 29일 아침 8시다. 푸른 호수 건너 하얀 톈산 너머 파미르 고원의 모습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다.

[김지하, 문명의 시원을 찾아서]
<4>‘장바닥에 비단이 깔릴 때’

   사마르칸트(우즈베키스탄) ‘단군의 신시(神市)’를 여기서 볼줄이야…
궁정·사원 앞에 역동적인 바자르 펼쳐져 온갖 빛깔의 사람들
‘소명’집행하듯 흥정 “교환은 곧 자선… 서로 평화와 우정 나눠”
고구려 사신 벽화는 ‘卒本의 고향’ 증명

▶▶사마르칸트 시 입구에 ‘사마르칸트’라고 쓴 거대한 입간판이 있고 그에 겹치면서 나직한 뒷구릉 위에 알파벳으로 흰 돌들을 쌓아 만든 큰 글자들이 보였다. 초폰아타(CHOPON OTA). 내 뒤에 탄 이쪽 방면 연구가인 양민종 교수(부산대)의 놀란 목소리가 내 뒤통수를 친다.

“촐폰아타는 촐본아타입니다. 졸본(卒本)의 아버지요 고향이니까 바로 고구려의 근원입니다.”

   아아!! 졸본의 고향! 아아 고구려의 근원! 아시쿨 호숫가에서도 보았던 그것이 왜 이곳에까지 새겨져 있는가? 물론 나는 다음날 사마르칸트를 떠날 때 아프라시압 박물관에서 7세기경 조로아스터교 시절에 그곳에 온 두 사람의 새 깃털 모자를 쓴 고구려 사신의 프레스코 벽화를 통해서 그 역사적인 까닭을 대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진정한 놀라움은 그것이 가진 문화적 의미, 그 신화적 원형을 발견하면서부터 왔다. 사마르칸트 시내 초입에서 아미르 티무르 대제의 한 황후를 기념하는 비비하눔 사원(寺院) 바로 앞마당에 시끌벅적 수백 명 장꾼들의 바자르가 열리고 있는 현장에서 그것을 발견하면서부터 본 것이다, 그 신화적 원형을.

   신시(神市)! 신성한 시장. 그렇다. 그것은 다름아닌 계와 벼룩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교환과 함께 인격교환이, 인격교환과 함께 생태계의 보전이, 생태계의 보전과 함께 성스러운 우주에 대한 영성적 경외심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시장! 교환과 호혜의 이중 교호 결합! 옛 시장이요 또한 새 시대의 시장!